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탐꽁로에서의 교통 사고
가슴이 내려앉은 교통 사고와
라오스식 합의금.
......꽁로 마을의 선한 사람들.
교통 사고를 냈다
교통이랄 것도 없는 한적한 라오스의 꽁로 마을에서.
님이란 10살 짜리 여자 아이가 다쳤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고
님은 마을 아이들과 길을 가면서 장난을 치다가
내 차로 뛰어들었다
길이 우기에 워낙 파여 일부러 고글을 만들어 놓은 듯 해서
차에 다행이 속도는 없었으나
아이가 넘어져 머리에 혹이 나고, 왼팔꿈치가 까지고
다리에도 상채기가 났다
님도 놀라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꽁로 마을 보건소는 의사가 부재중이라
40킬로를 나가 제법 규모있는 보건소에서 치료를 시켰다
아이가 다친 시간 5시 30분.
돌아온 시간 10시.
마을 사람들이 더 없이 순박하다.
그들은 나를 알고 있었다.
돼지잡아 잔치를 몇번 했었으니까.
이장이건, 사공이건, 장애인이건
차별없이 대해왔고,
특히 사공들에게 잘해왔다.
님의 친척들도 다 농부이면서 사공일도 하므로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트렉킹 가이드로 고용하기도 해왔고.
나는 님의 가족과 친척들을 안심을 시켰다.
전적으로 내 책임이니 완전히 치료를 해줄 것이다.
내 능력에 닿지 않으면 보험사에서 치료를 해줄 것이라고.
내 차로 보건소 두 군데를 가면서
그들은 아이를 돌보면서 가해자인 나에게 농담까지 건냈다.
아이는 의사와 간호사가 돌보고
어머니가 님의 곁을 지켰다.
나는 같이 간 님의 친척들
할아버지, 아저씨들 네명과 밥을 먹고
님과 그녀의 어머니가 먹을 밥을 실어왔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님과 어머니가
치료를 해서 집으로 돌아간단다.
꽁로 마을 보건소에서 약을 타서 치료를 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님의 집을 몰랐으나
데려다주니 바로 꽁로 초등학교이고 보건소.
바로 길 건너에 님의 집이 있다.
전형적인 라오의 집.
아래층은 비워두고 2층에 넓은 간살이 있는 제법 큰 집이다.
일종의 합의 절차가 있었다.
그리고 합의금.
보건소에 매일 가서 지료해야 하는 약값.
절에서 손에 실을 묶는 므캔값.
라오에서는 사람이 아프거나 불운하거나 모든 흉사에는 절에 가서 손에 실을 묶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돼지값!
내가 돼지를 잡아왔으므로 공양은 돼지 잡아서 한단다.
나는 따지지 않고 다주었다.
그들이 터무니 없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보험을 동원하기에는 많은 돈도 아니고.
님은 놀랐던 핏기없는 얼굴에서
아이들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미 그 아이의 룽허(허가 라오에서 쓰는 내 이름. 룽:아저씨)가 되었으므로.
님의 가족들이 돈을 받으면서도 미안해했다.
이런,
답답하게 착한 사람들이다.
내가 미안해 죽을 일이지....
라오의 시골길에서 한국 운전자들이 안되는 것이 있다.
중앙선이 생명선이라는 교육을 받아
중앙선도 없는데 길 가운데로 안다닌다.
가운데로 가다가 마주 오는 상대를 보면서 대응하는 것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운전 방법인 것인데...
또 하나는 경적을 사용하는 버릇이 없다.
내가 라오 운전자들에게 들어온 충고가 그것이다.
라오 오지 마을의 사람들은 차량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경적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오 마을의 찻길은 그들의 마을길이나 마실길을
빼앗아 포장을 한 것에 불과하다.
차량을 위해 길을 낸 것이 아니고...
그들은 그 길의 원주인이므로 주인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마을길에서 마실을 다니는 것이다.
아이들이 길에서 장난을 치다 돌발 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차가 다닌다는 사실이 머리 속에 아직 깊이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 타인으로 무례하더라도 경적을 사용해야 한다.
"빵빵: 마실길의 침입자에요. 지나갑니다"
일이 될려고 그랬는지
새로 바꾼 차는 경적을 누르기가 힘들고
가벼운 소리를 내는 탭이 안된다.
아마도 한국에선 경적을 울릴 일이 없거나
아주 급박하지 않으면 써서는 안되는 신호로 자리를 잡았으므로 부러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수년전에 탔던 일본차도 그랬으니까...
한국에서 일년이나 수년동안 사용해야할 경적의 분량을
하루에 다 쓰는 것이 라오에서의 운전이다.
모든 책임이 경적에 있다는 듯이
애꿎은 자동차의 운전대에 책임을 몽땅 미뤄본다.
까쏭이라는 배기가스 제로지대의 트렉킹은
같이 온 여행자들을 현지 가이드에게 맡기고
나는 님의 집에 문병을 가야겠다.
나힌 마을에서 온 경찰들에게 차량등록증 등의 서류와 면허도 찾아야 한다.
그들도 상황을 알고 환자 가족들과 내가 우호적이며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제 근무중도 아닌데 일을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비야라오 맥주값은 주었는데...
라오 정부가 월급을 체불하는 경우가 많으니
또 인정을 써야할 것이다.
성가스럽지 않으려면;;;;
돼지잡아 마을 잔치를 해온 덕에
가슴 철렁한 사고도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다.
이제 꽁로 마을에선
꼼짝없이 아이허(허 오빠)가 아니고
룽허가 되어야 하는 인연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