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2 (Muang Ngoi Neau)
오늘 시간이 나서 미얀마편 3개 사진 업로드했습니다. 이제 2개 남았네요.
15일 (숙취편) - http://lkfar.tistory.com/72
16일 (트레킹) - http://lkfar.tistory.com/73
17일 (트레킹) - http://lkfar.tistory.com/74
그리고 이번편 입니다.
http://lkfar.tistory.com/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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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모기는 쉽게 물리칠 수가 없다. 모기장을 미리 쳤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신경이 거슬리게 괴롭혔다. 그래도 엊그제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잠을 많이 설치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오니 이곳도 농키아우 처럼 운무가 산 중턱에 멋지게 깔려 있다. 고지대라 그런걸까. 강의 물이 좀 적어서 뷰가 약간 아쉽지만 역시나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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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형님들한테 듣기로 이 동네에는 조식 경쟁이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메인거리로 이어지는 사거리에 거리를 마주하고 두 식당이 모두 조식 뷔페를 아침에 운영한다. 25,000킵에 빵과 과일, 커피 등을 제공해주는데 한쪽은 네덜란드인이 다른 한쪽은 현지인이 운영중이다. 형님들이 맛은 네덜란드인이 더 좋지만 현지인 식당도 좀 팔아주라고 당부하셨기에 오늘은 그쪽을 한번 가볼까 한다.
옆 방을 보니 이 커플들은 오늘 떠난거 같다. 어디로 간거지? 트래킹이라도 갔나 싶다. 나무가 뷰를 막고 있어서 좀 아쉬웠는데 옮겨도 되냐고 한번 슬쩍 물어봐야겠다.
마당에 가니 정체 모를 남자가 여기 강아지 두마리와 놀아주고 있다. 여기 아주 촐싹 맞은 강아지 두마리가 있다. 나도 합류해서 놀아주니 얘네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다. 덕분에 바지가 다 더러워졌지만 이미 더러운데 더 더러워진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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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한테 방 옮기는 얘기를 해보지면 역시 의사소통이 안된다. 영어가 안되니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손짓발짓 동원해가며 겨우 얘기를 하니 흔쾌히 아무데나 옮기라고 하신다. 여기는 방이 5개 밖에 없는데 지금은 왠지 나 빼고 다 방을 뺀거 같다. 왼쪽으로 옮길까, 오른쪽으로 옮길까. 일단 아침을 먹고 와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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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가 좀 되기 전에 거리 산책을 한바퀴 한다. 조식 뷔페는 7시부터이기에 여기 저기 기웃 기웃 거리며 분위기 파악을 해보려 한다. 다른 식당들도 아침 식사를 운영하긴 하는데 아마 여기가 메인인거 같다. 비수기라 그런지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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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돌고 돌아오니 문을 연듯 해서 현지 레스토랑 쪽으로 앉는다. 25,000킵짜리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바로 과일과 커피를 가져다준다. 한쪽 통을 가리키면서 "숟가락"이라고 하길래 빵 터진다. 한국인이 여기도 오는걸까? 헌데 가고 보니 숟가락이 아닌 설탕이다. "슈가"를 잘못 들었나보다. 어쩐지 아까 아줌마 표정이 얘는 개그코드가 왜 이리 변태 같다냐 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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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무척 맛있다. 바나나가 이리 달고 맛있다니, 몰랐던 사실이다. 파파야, 바나나, 망고 이렇게 단촐한 과일들이지만 모두 맛있으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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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닭 한마리가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고 있다. 갑자기 병아리 "삐약삐약" 소리가 엄청 커져서 보니 병아리 한마리가 엄마와 형제자매 일행을 못 찾고 있다. 자기 여기 있다고 알려주려고 죽을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지른다. 도랑안에서 열심히 뭔가를 쪼아먹던 어미가 목을 쭉 빼서 올려다보니 그걸 본 병아리가 불이나게 달려가서 어미 옆으로 간다. 이제. 좀 조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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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와 오믈렛이 나와서 먹어본다. 역시 이 깊숙한 곳까지도 라오스에 바게트는 빠질 수가 없다. 딱히 완전 맛있는건 아니지만 먹을만 하다. 밑에서 뭔가 움직이길래 보니 개와 강아지다. 빵도 먹을려나? 던져주니 받아먹는다. 고양이와 달리 개는 잡식이라 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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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한놈을 줬더니 다른 애들이 우루루 온다. 왜 다들 이리 말랐다냐. 안주려 했는데 마른걸 보니 마음이 아파서 빵 하나를 잘라서 나눠준다.
여기 개 사이에도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 멀리서 개 한마리가 다가서니 이놈들이 우루루 가서 그 개를 둘러싸고 쫓아낸다. 헌데 돌아오는걸 보니 누렁이 한마리와 그 자식 둘, 검둥이 한마리가 그 자식 둘이다. 얘네 가족이었나? 이놈들이 이 구역의 짱인가보다. 한쪽에서 싸움이 나면 가서 말리고 돌아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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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다보면 가축들이 별다른 재지 없이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하염없이 다니는게 뭔가 신기하다. 소 같은 똑똑한 애들이야 저녁이 되면 돌아온다지만, 닭도 그러한다니 이건 놀랍지 아니한가. 이제 더이상 닭대가리라는 표현을 쓰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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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반대편을 보니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꽤나 훌륭해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또 길 좌판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식사도 괜찮아보인다. 작은 동네이지만 은근히 옵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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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서 방을 옮길 준비를 한다. 왼쪽, 오른쪽 다 가보고 오른쪽으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 더블이 아닌 트윈 침대라서 침대 하나가 놀게 되지만 뭐 상관없다. 어차피 침대 커봤자 좋을게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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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가지고 바로 옆의 방으로 들어온다. 짐을 내려놓고 베란다에 해먹에 누워보니 확실히 나무로 막혀 있지 않아서 뷰가 시원하다. 그래, 옮기기 잘했다. 라오스는 강도 그렇지만 산이 주는 마음의 평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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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트래킹 좀 다녀올까 했는데 여기 있으니 게을러진다. 그냥 있을까. 나가기 귀찮아져서 그냥 누워서 뒹굴거린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미얀마 여행기 몇개에 사진을 추가한다. 3G 무제한을 최대한 이용해먹어야 한다.
졸리면 살짝 자기도 하고 일어나면 또 책도 보면서 오전을 보낸다. 헌데, 나 여행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 해먹에 멍하니 누워있다보니 왠지 초심을 잃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에 내 마음에 쏙 드는 마을에 왔음에도 시포에서와 같은 감흥이 안생긴다. 뭐랄까... 감정이 좀 죽어있는듯 하다.
이거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권태기. 당연히 여행에도 권태기가 있을 수 있다. 자극이 계속되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감정이 죽어버리면서 모든게 루즈하고 지루해진다. 보통 연애에서 많이 생기지만 40일이 넘어가니 여행에서도 같은 느낌이 든다.
굳이 이런 감정으로 여행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아직 베트남에서 인천으로 떠나는 표를 예매하지 않은 상황이니 일정을 당길려면 얼마든지 당길 수 있다.
연애에서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방법이 있고, 그냥 그 생활을 인정하는 방법도 있고,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 방법이 제일 안좋다. 그러한 해결이 익숙해지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새로운 만남을 갈구하게 되고 오랜 연애에서 비롯되는 깊은 신뢰와 사랑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내 상황은 어떨까. 여기서 이별이라함은 귀국일거다. 이걸 극복하면, 또 다른 여행의 의미가 찾아올까? 하지만 이게 사람과의 관계도 아니고 굳이 극복하면서 다닐 필요가 있는걸까. 나는 내 자의로 온거지 누가 보내서 의무적으로 온것은 아닌데 말이다.
잘 모르겠다. 일단 베트남까지는 넘어가야 하고 그 시간도 좀 남아있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점심을 먹고는 근처에 트래킹이라도 혼자 천천히 다녀와봐야겠다. 너무 평온한 이곳의 분위기가 더 나른하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좀 쉬다가 12시쯤 되서 나온다. 점심을 먹고 근처 트래킹이라도 가봐야겠다. 마당에 나오니 내 옆집 이웃 총각이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다. 말이 대화지 각종 몸짓의 향연이다. 이 총각이 어제 트래킹 갔다왔다고 들은거 같아서 슬쩍 물어보니 표지판이 있어서 찾기 쉽단다. 헌데 하늘을 가리키며 지금 가기에는 좀 위험하지 않냐고 한다.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좀 껴있다. 하지만 먹구름이 언제 안껴있었던 적이 있더냐. 겁은 많아서리.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일단 한바퀴 돌아봐야겠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슬쩍 빗방울이 한두개 떨어지더니 10초만에 엄청난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데. 오메, 이게 뭐시다냐. 놀래서 일단 뛰어서 급하게 앞에 식당으로 들이닥친다. 칠레 총각 예지력도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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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엄청나게 온다. 우기의 동남아는 진짜 예측이 안된다. 어쩔때는 절대 안오더니 또 안올거 같더니 한번에 온다. 그래서 오히려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다 .비 오면 그냥 어딘가로 들어가서 피하고 본다. 아마 이 비도 오래 가지는 않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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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랜만에 신이 난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겨야 기분이 들뜨나보다. 비를 조금 맞았지만 아까까지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살아난다. 하지만 트레킹은 두어시간 있다 가거나 내일 가야겠다. 비는 괜찮은데 흙바닥이 젖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거 같다.
점심으로는 닭국수와 망고쉐이크를 주문한다. 현지 음식을 먹어야 가장 싸다. 근데 스티키라이스를 주냐고 계속 물어본다. 국수 먹는데 밥이 왜 필요하지. 근데 이게 말이 안통하니 어렵다. 그냥 달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그리 먹나보다. 배부르게 먹으면 좋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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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라도 일으킬거 같던 비는 정확히 10분 후에 멈춘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두시간이 있어야 땅이 마를거라던 나를 비웃는듯하다. 한시간만 있어도 매마른 땅이 되기에 충분해보인다.
거리에는 한 젊은 어머니가 아이를 옆구리에 업고 지나간다. 한쪽에서는 엄마를 봐서 반가운 아들이 뛰어와서 엄마 품에 안긴다. 닭들이 지나다니고 개들이 뛰어다닌다. 라오스의 시골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여행 초기에 이곳에 둥지를 텄다면 내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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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노여사와 잠시 얘기를 나눈다. 권태기가 온듯 하다고 하니 안내키면 돌아오란다. 정말 그럴까. 다낭을 포기하고 베트남 북부 도시만 돈다면 7일에서 10일이면 충분할거 같다. 사실 그래봤자 15일 비자제한기간에서 큰 차이는 아니긴 하지만 이동은 확실히 줄어든다.
내가 여행을 온 이유를 되새겨본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 5년을 정리하며, 향후 10년을 어찌 살아갈지를 정하고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쩍 떠나왔다. 지금의 한달, 두달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시기는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행 다니면서 하루하루에 억지로 무슨 의미를 담으려는건 더욱더 안좋지만, 만성적으로 그냥 하루를 보내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정답을 찾았나? 아직 시간이 남긴 했지만 정답이 없다는 정답은 찾은 것도 같다. 정답을 찾으려 하는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정답도 찾은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자신을 되새기려는 노력을 멈추는건 어리석다. 인생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고민의 연속이다.
책을 좀 바꿔볼까 싶다. 지금 읽는 펄벅의 책이 문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철학'을 하기에 적합한 책은 아닌거 같다. 내 마음가짐이 준비가 되어 있을때라면 이런 책도 괜찮지만 지금은 시동을 걸만한 책이 필요하다. 꼬리뻬에서 만났던 말레이시아 여자애가 여행다니면서 읽기 좋다던 'Tuesday with Morrie'를 볼까 싶다. 물론 예전에 본 책이지만 지금 보는건 또 다르겠지. 근데 그러면 킨들을 와이파이에 연결해야 하고, 그러면 론리플래닛이 모두 사라질텐데... 뭐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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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값으로 3만킵을 내고 길을 나서본다. 아까 비가 한바탕 왔는데도 먹구름이 끼여있다. 설마 또 비가 올까? 한번 뿌렸으면 됐지 뭘 또 뿌릴려고 하니. 안오겠지.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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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가깝다는 3키로 떨어진 동굴을 향해본다. 이길은 저번에 형님들하고 잠깐 왔던 길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길을 지나가면 평야가 열리며 소들이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먹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들이 열심히 허기를 채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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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은 왜 이리 겁이 많을까? 가까이 가면 모두 한결같이 도망간다. 덩치는 커가지고 뭐 이리 순박한지. 눈빛을 보면 순수함이 보인다. 개고기 먹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은 소고기도 절대 먹으면 안된다. 얘네 왜 이리 귀엽지... 죄책감 느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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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구름이 좀 무섭다. 소들하고 놀고 있는데 커다란 먹구름이 산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무슨 UFO가 하나 나타나는 광경 같다. 제국의 역습인가. 이거 아무래도 위험해보인다. 날을 잡아도 정말 잘못 잡았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습기도 장난이 아니다.
오늘은 아닌거 같다. 돌아서자. 동네로 가기는 그렇고 킨들 책도 받으려면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부두에 있는 카페로 향해본다. 먹구름이 더 짙어지며, 볼에 빗방울이 한방울 떨어진다.
큰일이다. 여기에 비가 오는 속도는 선형이 아닌 기하급수적이다. 한방울이 떨어졌다면 5분 안에 폭풍우가 온다. 서둘러 맨 끝에 카페로 간다. 그 와중에도 이쪽이 전망이 좋다던 형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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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자리에 앉고 커피 한잔을 주문하니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비가 오기 바로 직전에 한 커플이 더 들어온다. 보니 내 옆방의 이웃이다. 나를 바라보며 비온다고 했지,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나도 동굴로 안떠난거 보면 이제 동남아 우기의 날씨를 조금은 읽게 된것 같다.
이 비는 지금까지 비와는 좀 다르다. 하긴 아까 구름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짜 우주선이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비가 들이닥쳐서 어쩌나 하는데 사장님이 대나무 장막을 내려서 비로부터 막아준다. 아 저게 저런 용도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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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좀 진정되면서 사장님이 대나무 장막을 조금 걷어올린다. 아직도 성이 안풀린듯 하늘은 계속해서 천둥소리를 울부짖지만 비가 좀 잦아들은 강에는 뭔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쌓여있던 울분을 토해놓은 후에 찾아오는 마음의 안정을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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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때문에 내 이웃 커플은 다른 커플들과 합석을 해서 스페인어로 얘기를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독일 사람들이 있다. 모두 강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떤 생각들을 가슴에 담고 있을까.
비가 멈춰서 3시쯤 동굴을 가볼까 했는데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냥 포기구먼. 헌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앉아서 비를 보는거 자체가 기분이 편안하다. 어릴때부터 항상 비를 좋아했다. 나는 전생에 비였을까. 모든 것을 정화해주는 비, 전생이 아닌 현생에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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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양인들이 얘기하는걸 우연히 듣다가 끼어들어서 내 정보를 좀 알려준다. 루앙프라방으로 간다기에 폭포에 대해서도 좀 알려주고, 루앙프라방에서 올라오는 배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원래 예전에는 루앙프라방에서 농키아우로 배로 이동이 가능했다는데 지금은 댐이 생겨서 안된단다. 형님들한테 듣기로는 라오스는 전기 생산에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지라 지속적으로 댐을 늘리고 있단다. 여기서 위쪽에도 댐을 하나 짓고 있어서 몇년 후면 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는건 쉽지 않을듯 하다.
강가에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전화? 전화?! 뭐지? 보니 카톡으로 온 전화다. 항상 나한테 연애상담을 하는 친구놈이다. 이놈 내가 지금 어디 있는건지 알고 있는거겠지? 근데 카톡 전화가 되나?
받아보니 생각보다 잘 된다. 여기 3G 꽤나 괜찮다. 어차피 무제한이니 한번 얘기를 들어본다. 역시 연애상담이다. 정말 긴급상황인거냐. 철학을 하다가 갑자기 연애상담을 하게 되었다.
20분이나 통화를 한다. 라오스 산골의 시골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애상담이라니, 진귀한 경험이다. 음질도 꽤나 괜찮다. 이따 저녁에 노여사와도 통화를 오랜만에 한번 해야겠다 싶다. 무제한이 좋긴 좋다. 그나저나 내 '단절'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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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적당히 멈춘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보니 바닥이 너무 질퍽해서 어차피 오늘 트레킹은 물 건너갔다. 다른 마을에도 식당이 있다고 하니 내일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해서 한 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오는 코스를 계획해본다. 가는 길, 혹은 오는 길에 이곳에 있다는 동굴도 보면 되겠다.
숙소 베란다에 앉아서 책을 본다. 'Tuesday with Morrie'는 카드가 막혀서 아직 준비가 안되었고, 오기 전에 혹시 몰라서 받아온 '왕좌의 게임'을 펼쳐본다. 딱히 볼게 없어서 펼쳤는데 이거 흡입력이 장난아니다. 이미 드라마를 열성적으로 다 봤고 꽤나 팬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태라는걸 감안하면 대단한 필력이다. 더불어 드라마가 정말 대단히 잘 만들었다는것을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책에 묘사되는 인물과 배경이 그대로 드라마와 일치된다. 주인공들의 나이만 뺀다면 말이다. 'Tuesday with Morrie'와 이 책을 번갈아가며 보면 좋겠다.
여행에서 책이 중요한게 책을 바꾸고 베란다 해먹에서 보고 있으니 또 낮에 그 권태기가 사라진다. 책이 재미없어서 권태기가 온거였나보다. 책으로 인하여 생각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재미가 있는 책이 여행에는 필요하다. 왕좌의 게임이 뭐 엄청나게 자기 성찰을 하게 하는 책은 아니지만 운무를 바라보며 책에 빠져 있으니 뭔가 힐링 되는 기분이다. 그래, 어떻게 두달 동안 내리 철학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을소냐. 즐기기도 하고, 액티비티도 하고, 또 아무런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것도 다 여행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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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숙취편) - http://lkfar.tistory.com/72
16일 (트레킹) - http://lkfar.tistory.com/73
17일 (트레킹) - http://lkfar.tistory.com/74
그리고 이번편 입니다.
http://lkfar.tistory.com/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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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모기는 쉽게 물리칠 수가 없다. 모기장을 미리 쳤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들어왔는지 신경이 거슬리게 괴롭혔다. 그래도 엊그제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잠을 많이 설치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오니 이곳도 농키아우 처럼 운무가 산 중턱에 멋지게 깔려 있다. 고지대라 그런걸까. 강의 물이 좀 적어서 뷰가 약간 아쉽지만 역시나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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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형님들한테 듣기로 이 동네에는 조식 경쟁이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메인거리로 이어지는 사거리에 거리를 마주하고 두 식당이 모두 조식 뷔페를 아침에 운영한다. 25,000킵에 빵과 과일, 커피 등을 제공해주는데 한쪽은 네덜란드인이 다른 한쪽은 현지인이 운영중이다. 형님들이 맛은 네덜란드인이 더 좋지만 현지인 식당도 좀 팔아주라고 당부하셨기에 오늘은 그쪽을 한번 가볼까 한다.
옆 방을 보니 이 커플들은 오늘 떠난거 같다. 어디로 간거지? 트래킹이라도 갔나 싶다. 나무가 뷰를 막고 있어서 좀 아쉬웠는데 옮겨도 되냐고 한번 슬쩍 물어봐야겠다.
마당에 가니 정체 모를 남자가 여기 강아지 두마리와 놀아주고 있다. 여기 아주 촐싹 맞은 강아지 두마리가 있다. 나도 합류해서 놀아주니 얘네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다. 덕분에 바지가 다 더러워졌지만 이미 더러운데 더 더러워진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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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한테 방 옮기는 얘기를 해보지면 역시 의사소통이 안된다. 영어가 안되니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손짓발짓 동원해가며 겨우 얘기를 하니 흔쾌히 아무데나 옮기라고 하신다. 여기는 방이 5개 밖에 없는데 지금은 왠지 나 빼고 다 방을 뺀거 같다. 왼쪽으로 옮길까, 오른쪽으로 옮길까. 일단 아침을 먹고 와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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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가 좀 되기 전에 거리 산책을 한바퀴 한다. 조식 뷔페는 7시부터이기에 여기 저기 기웃 기웃 거리며 분위기 파악을 해보려 한다. 다른 식당들도 아침 식사를 운영하긴 하는데 아마 여기가 메인인거 같다. 비수기라 그런지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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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돌고 돌아오니 문을 연듯 해서 현지 레스토랑 쪽으로 앉는다. 25,000킵짜리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바로 과일과 커피를 가져다준다. 한쪽 통을 가리키면서 "숟가락"이라고 하길래 빵 터진다. 한국인이 여기도 오는걸까? 헌데 가고 보니 숟가락이 아닌 설탕이다. "슈가"를 잘못 들었나보다. 어쩐지 아까 아줌마 표정이 얘는 개그코드가 왜 이리 변태 같다냐 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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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무척 맛있다. 바나나가 이리 달고 맛있다니, 몰랐던 사실이다. 파파야, 바나나, 망고 이렇게 단촐한 과일들이지만 모두 맛있으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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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닭 한마리가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고 있다. 갑자기 병아리 "삐약삐약" 소리가 엄청 커져서 보니 병아리 한마리가 엄마와 형제자매 일행을 못 찾고 있다. 자기 여기 있다고 알려주려고 죽을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지른다. 도랑안에서 열심히 뭔가를 쪼아먹던 어미가 목을 쭉 빼서 올려다보니 그걸 본 병아리가 불이나게 달려가서 어미 옆으로 간다. 이제. 좀 조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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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와 오믈렛이 나와서 먹어본다. 역시 이 깊숙한 곳까지도 라오스에 바게트는 빠질 수가 없다. 딱히 완전 맛있는건 아니지만 먹을만 하다. 밑에서 뭔가 움직이길래 보니 개와 강아지다. 빵도 먹을려나? 던져주니 받아먹는다. 고양이와 달리 개는 잡식이라 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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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한놈을 줬더니 다른 애들이 우루루 온다. 왜 다들 이리 말랐다냐. 안주려 했는데 마른걸 보니 마음이 아파서 빵 하나를 잘라서 나눠준다.
여기 개 사이에도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 멀리서 개 한마리가 다가서니 이놈들이 우루루 가서 그 개를 둘러싸고 쫓아낸다. 헌데 돌아오는걸 보니 누렁이 한마리와 그 자식 둘, 검둥이 한마리가 그 자식 둘이다. 얘네 가족이었나? 이놈들이 이 구역의 짱인가보다. 한쪽에서 싸움이 나면 가서 말리고 돌아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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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다보면 가축들이 별다른 재지 없이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하염없이 다니는게 뭔가 신기하다. 소 같은 똑똑한 애들이야 저녁이 되면 돌아온다지만, 닭도 그러한다니 이건 놀랍지 아니한가. 이제 더이상 닭대가리라는 표현을 쓰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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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반대편을 보니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꽤나 훌륭해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또 길 좌판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식사도 괜찮아보인다. 작은 동네이지만 은근히 옵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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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서 방을 옮길 준비를 한다. 왼쪽, 오른쪽 다 가보고 오른쪽으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 더블이 아닌 트윈 침대라서 침대 하나가 놀게 되지만 뭐 상관없다. 어차피 침대 커봤자 좋을게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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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가지고 바로 옆의 방으로 들어온다. 짐을 내려놓고 베란다에 해먹에 누워보니 확실히 나무로 막혀 있지 않아서 뷰가 시원하다. 그래, 옮기기 잘했다. 라오스는 강도 그렇지만 산이 주는 마음의 평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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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트래킹 좀 다녀올까 했는데 여기 있으니 게을러진다. 그냥 있을까. 나가기 귀찮아져서 그냥 누워서 뒹굴거린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미얀마 여행기 몇개에 사진을 추가한다. 3G 무제한을 최대한 이용해먹어야 한다.
졸리면 살짝 자기도 하고 일어나면 또 책도 보면서 오전을 보낸다. 헌데, 나 여행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 해먹에 멍하니 누워있다보니 왠지 초심을 잃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에 내 마음에 쏙 드는 마을에 왔음에도 시포에서와 같은 감흥이 안생긴다. 뭐랄까... 감정이 좀 죽어있는듯 하다.
이거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권태기. 당연히 여행에도 권태기가 있을 수 있다. 자극이 계속되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감정이 죽어버리면서 모든게 루즈하고 지루해진다. 보통 연애에서 많이 생기지만 40일이 넘어가니 여행에서도 같은 느낌이 든다.
굳이 이런 감정으로 여행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아직 베트남에서 인천으로 떠나는 표를 예매하지 않은 상황이니 일정을 당길려면 얼마든지 당길 수 있다.
연애에서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방법이 있고, 그냥 그 생활을 인정하는 방법도 있고,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 방법이 제일 안좋다. 그러한 해결이 익숙해지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새로운 만남을 갈구하게 되고 오랜 연애에서 비롯되는 깊은 신뢰와 사랑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내 상황은 어떨까. 여기서 이별이라함은 귀국일거다. 이걸 극복하면, 또 다른 여행의 의미가 찾아올까? 하지만 이게 사람과의 관계도 아니고 굳이 극복하면서 다닐 필요가 있는걸까. 나는 내 자의로 온거지 누가 보내서 의무적으로 온것은 아닌데 말이다.
잘 모르겠다. 일단 베트남까지는 넘어가야 하고 그 시간도 좀 남아있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점심을 먹고는 근처에 트래킹이라도 혼자 천천히 다녀와봐야겠다. 너무 평온한 이곳의 분위기가 더 나른하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좀 쉬다가 12시쯤 되서 나온다. 점심을 먹고 근처 트래킹이라도 가봐야겠다. 마당에 나오니 내 옆집 이웃 총각이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다. 말이 대화지 각종 몸짓의 향연이다. 이 총각이 어제 트래킹 갔다왔다고 들은거 같아서 슬쩍 물어보니 표지판이 있어서 찾기 쉽단다. 헌데 하늘을 가리키며 지금 가기에는 좀 위험하지 않냐고 한다.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좀 껴있다. 하지만 먹구름이 언제 안껴있었던 적이 있더냐. 겁은 많아서리.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일단 한바퀴 돌아봐야겠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슬쩍 빗방울이 한두개 떨어지더니 10초만에 엄청난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데. 오메, 이게 뭐시다냐. 놀래서 일단 뛰어서 급하게 앞에 식당으로 들이닥친다. 칠레 총각 예지력도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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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엄청나게 온다. 우기의 동남아는 진짜 예측이 안된다. 어쩔때는 절대 안오더니 또 안올거 같더니 한번에 온다. 그래서 오히려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다 .비 오면 그냥 어딘가로 들어가서 피하고 본다. 아마 이 비도 오래 가지는 않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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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랜만에 신이 난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겨야 기분이 들뜨나보다. 비를 조금 맞았지만 아까까지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살아난다. 하지만 트레킹은 두어시간 있다 가거나 내일 가야겠다. 비는 괜찮은데 흙바닥이 젖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거 같다.
점심으로는 닭국수와 망고쉐이크를 주문한다. 현지 음식을 먹어야 가장 싸다. 근데 스티키라이스를 주냐고 계속 물어본다. 국수 먹는데 밥이 왜 필요하지. 근데 이게 말이 안통하니 어렵다. 그냥 달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그리 먹나보다. 배부르게 먹으면 좋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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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라도 일으킬거 같던 비는 정확히 10분 후에 멈춘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두시간이 있어야 땅이 마를거라던 나를 비웃는듯하다. 한시간만 있어도 매마른 땅이 되기에 충분해보인다.
거리에는 한 젊은 어머니가 아이를 옆구리에 업고 지나간다. 한쪽에서는 엄마를 봐서 반가운 아들이 뛰어와서 엄마 품에 안긴다. 닭들이 지나다니고 개들이 뛰어다닌다. 라오스의 시골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여행 초기에 이곳에 둥지를 텄다면 내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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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노여사와 잠시 얘기를 나눈다. 권태기가 온듯 하다고 하니 안내키면 돌아오란다. 정말 그럴까. 다낭을 포기하고 베트남 북부 도시만 돈다면 7일에서 10일이면 충분할거 같다. 사실 그래봤자 15일 비자제한기간에서 큰 차이는 아니긴 하지만 이동은 확실히 줄어든다.
내가 여행을 온 이유를 되새겨본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 5년을 정리하며, 향후 10년을 어찌 살아갈지를 정하고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쩍 떠나왔다. 지금의 한달, 두달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시기는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행 다니면서 하루하루에 억지로 무슨 의미를 담으려는건 더욱더 안좋지만, 만성적으로 그냥 하루를 보내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정답을 찾았나? 아직 시간이 남긴 했지만 정답이 없다는 정답은 찾은 것도 같다. 정답을 찾으려 하는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정답도 찾은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자신을 되새기려는 노력을 멈추는건 어리석다. 인생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고민의 연속이다.
책을 좀 바꿔볼까 싶다. 지금 읽는 펄벅의 책이 문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철학'을 하기에 적합한 책은 아닌거 같다. 내 마음가짐이 준비가 되어 있을때라면 이런 책도 괜찮지만 지금은 시동을 걸만한 책이 필요하다. 꼬리뻬에서 만났던 말레이시아 여자애가 여행다니면서 읽기 좋다던 'Tuesday with Morrie'를 볼까 싶다. 물론 예전에 본 책이지만 지금 보는건 또 다르겠지. 근데 그러면 킨들을 와이파이에 연결해야 하고, 그러면 론리플래닛이 모두 사라질텐데... 뭐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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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값으로 3만킵을 내고 길을 나서본다. 아까 비가 한바탕 왔는데도 먹구름이 끼여있다. 설마 또 비가 올까? 한번 뿌렸으면 됐지 뭘 또 뿌릴려고 하니. 안오겠지.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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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가깝다는 3키로 떨어진 동굴을 향해본다. 이길은 저번에 형님들하고 잠깐 왔던 길이기도 하다. 자그마한 길을 지나가면 평야가 열리며 소들이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먹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들이 열심히 허기를 채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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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들은 왜 이리 겁이 많을까? 가까이 가면 모두 한결같이 도망간다. 덩치는 커가지고 뭐 이리 순박한지. 눈빛을 보면 순수함이 보인다. 개고기 먹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은 소고기도 절대 먹으면 안된다. 얘네 왜 이리 귀엽지... 죄책감 느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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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구름이 좀 무섭다. 소들하고 놀고 있는데 커다란 먹구름이 산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무슨 UFO가 하나 나타나는 광경 같다. 제국의 역습인가. 이거 아무래도 위험해보인다. 날을 잡아도 정말 잘못 잡았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습기도 장난이 아니다.
오늘은 아닌거 같다. 돌아서자. 동네로 가기는 그렇고 킨들 책도 받으려면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부두에 있는 카페로 향해본다. 먹구름이 더 짙어지며, 볼에 빗방울이 한방울 떨어진다.
큰일이다. 여기에 비가 오는 속도는 선형이 아닌 기하급수적이다. 한방울이 떨어졌다면 5분 안에 폭풍우가 온다. 서둘러 맨 끝에 카페로 간다. 그 와중에도 이쪽이 전망이 좋다던 형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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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서 자리에 앉고 커피 한잔을 주문하니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비가 오기 바로 직전에 한 커플이 더 들어온다. 보니 내 옆방의 이웃이다. 나를 바라보며 비온다고 했지,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나도 동굴로 안떠난거 보면 이제 동남아 우기의 날씨를 조금은 읽게 된것 같다.
이 비는 지금까지 비와는 좀 다르다. 하긴 아까 구름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진짜 우주선이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비가 들이닥쳐서 어쩌나 하는데 사장님이 대나무 장막을 내려서 비로부터 막아준다. 아 저게 저런 용도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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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좀 진정되면서 사장님이 대나무 장막을 조금 걷어올린다. 아직도 성이 안풀린듯 하늘은 계속해서 천둥소리를 울부짖지만 비가 좀 잦아들은 강에는 뭔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쌓여있던 울분을 토해놓은 후에 찾아오는 마음의 안정을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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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때문에 내 이웃 커플은 다른 커플들과 합석을 해서 스페인어로 얘기를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독일 사람들이 있다. 모두 강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떤 생각들을 가슴에 담고 있을까.
비가 멈춰서 3시쯤 동굴을 가볼까 했는데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냥 포기구먼. 헌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앉아서 비를 보는거 자체가 기분이 편안하다. 어릴때부터 항상 비를 좋아했다. 나는 전생에 비였을까. 모든 것을 정화해주는 비, 전생이 아닌 현생에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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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양인들이 얘기하는걸 우연히 듣다가 끼어들어서 내 정보를 좀 알려준다. 루앙프라방으로 간다기에 폭포에 대해서도 좀 알려주고, 루앙프라방에서 올라오는 배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원래 예전에는 루앙프라방에서 농키아우로 배로 이동이 가능했다는데 지금은 댐이 생겨서 안된단다. 형님들한테 듣기로는 라오스는 전기 생산에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지라 지속적으로 댐을 늘리고 있단다. 여기서 위쪽에도 댐을 하나 짓고 있어서 몇년 후면 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는건 쉽지 않을듯 하다.
강가에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전화? 전화?! 뭐지? 보니 카톡으로 온 전화다. 항상 나한테 연애상담을 하는 친구놈이다. 이놈 내가 지금 어디 있는건지 알고 있는거겠지? 근데 카톡 전화가 되나?
받아보니 생각보다 잘 된다. 여기 3G 꽤나 괜찮다. 어차피 무제한이니 한번 얘기를 들어본다. 역시 연애상담이다. 정말 긴급상황인거냐. 철학을 하다가 갑자기 연애상담을 하게 되었다.
20분이나 통화를 한다. 라오스 산골의 시골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애상담이라니, 진귀한 경험이다. 음질도 꽤나 괜찮다. 이따 저녁에 노여사와도 통화를 오랜만에 한번 해야겠다 싶다. 무제한이 좋긴 좋다. 그나저나 내 '단절'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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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적당히 멈춘것 같아서 숙소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보니 바닥이 너무 질퍽해서 어차피 오늘 트레킹은 물 건너갔다. 다른 마을에도 식당이 있다고 하니 내일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해서 한 마을에서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오는 코스를 계획해본다. 가는 길, 혹은 오는 길에 이곳에 있다는 동굴도 보면 되겠다.
숙소 베란다에 앉아서 책을 본다. 'Tuesday with Morrie'는 카드가 막혀서 아직 준비가 안되었고, 오기 전에 혹시 몰라서 받아온 '왕좌의 게임'을 펼쳐본다. 딱히 볼게 없어서 펼쳤는데 이거 흡입력이 장난아니다. 이미 드라마를 열성적으로 다 봤고 꽤나 팬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태라는걸 감안하면 대단한 필력이다. 더불어 드라마가 정말 대단히 잘 만들었다는것을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책에 묘사되는 인물과 배경이 그대로 드라마와 일치된다. 주인공들의 나이만 뺀다면 말이다. 'Tuesday with Morrie'와 이 책을 번갈아가며 보면 좋겠다.
여행에서 책이 중요한게 책을 바꾸고 베란다 해먹에서 보고 있으니 또 낮에 그 권태기가 사라진다. 책이 재미없어서 권태기가 온거였나보다. 책으로 인하여 생각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재미가 있는 책이 여행에는 필요하다. 왕좌의 게임이 뭐 엄청나게 자기 성찰을 하게 하는 책은 아니지만 운무를 바라보며 책에 빠져 있으니 뭔가 힐링 되는 기분이다. 그래, 어떻게 두달 동안 내리 철학하며 여행을 다닐 수 있을소냐. 즐기기도 하고, 액티비티도 하고, 또 아무런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것도 다 여행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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