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014년 7월 여행기--태국어 이야기
남편과 제가 미국 남동부에 살고 있을 때에,
우리 교회에는 성품과 외모가 둘 다 아름다우신 현지인(그러니까 미국인) 전도사님께서 한 분 계셨습니다.
이 분의 어머니께서 중국인이신지라, 이 분은 늘 자기가 Asian이라고 하시긴 했지만요.
그 당시에도 교회에서 youth group을 맡고(라기보다는 그냥 보조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어느 날 이 전도사님 덕분에 굉장히 많이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를 하셔서가 아니라, 그 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Are you coming to the retreat, too? 쑤련회?"
[수련회]는 결코 쉬운 단어도 아니었는데, 어디에서 들으신 건지
한국어는 전혀 못 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하니 정말 귀엽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련회]의 앞과 뒤에 [오빠]와 [가자]를 더 붙여서
[오빠, 수련회 가자]라는 문장을 구사하도록 도와 드렸습니다.
(이 분이 발음하는 '오빠'도 정말 살인적으로 귀여웠어요)
아...... 그랬던 분이 벌써 만삭이라서, 이제 행복한 출산을 앞두고 있네요.
바로 어제 그 분의 만삭 사진을 보니 우리의 추억과 함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부디 예쁜 아기를 순산하시기를~
태국 기행문에 이렇게 쓸데없는 추억팔이가 길었던 이유는, 제가 가진 이 추억이 바로
태국인들이 태국어를 할 줄 아는, 또는 적어도 하려고 노력하는 외국인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아주 좋은 예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제가 만났던 많은 태국인들과 별다를 게 없더라고요.
우리나라 말을 못 하는 외국인이, 우리말로 한 단어라도 말하려고 할 때에
제가 그 사람의 노력을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었던 것처럼
외국인이 잘 못 하더라도 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태국인들에게
그가 태국 문화를 이해하려 하고 태국인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시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태국에서는 웬만해선 태국어를 말해야 하겠다는 제 결심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들 때문이었습니다.
1. 이번 여행에서는 제가 이전의 남 마나오 빤, 마무앙 빤에 이어
마프라오 빤에 단단히 꽂혀 버렸습니다.
어디엘 가도 목이 마르면 일단 마프라오 빤, 그게 없으면 병풀 주스를 마시는 것이 제 일상이었습니다.
(참, 이번에 처음 맛을 본 것이지만 옥수수 우유도 맛있더라고요)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의 마을에서 마프라오 빤을 주문하면 대개 반응이 이랬습니다.
[오, 하하하하하! 지금 당신, 코코넛 말하는 거여요?
(다른 태국인들을 향해서)
하하하하, 이 사람이 지금 마프라오 빤이라고 하는 거, 들었어요?
(코코넛 과육을 들어 보이면서) 이거 맞죠? 맞죠?]
간단한 말뿐인데도 이렇게까지 좋아하니, 못 하는 태국어더라도 태국어로 주문한 것을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 MBK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제가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이 넓디넓은 쇼핑몰에서 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경비원께 [탕 카야]가 어디에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 분의 표정을 보니, 혹시 그 분을 웃게 할 오늘의 암호가 [탕 카야]였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나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시던지, 그 분의 설명만을 따라서 가 봤더니
쓰레기통이 정확히 그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3. 카오만까이(닭고기밥)를 먹을 때에, 저는 언제나 국물이 넉넉한 것을 선호합니다.
구시가지의 어떤 닭고기밥집에서 포장을 1인분 해 오는데
[커 남 쑵 여여 너이 카(사실 이게 맞는 말인지 확신이 없지만, 이렇게 말하면 언제나 많이 주시더라고요)]라고 제가 말하니, 포장해 주시는 할머니께서는 물론이고 옆에 기다리시는 고객 할머니까지
[오냐, 오냐, 많이 주마!]라고 하시고 실제로 한강수를 만들어 주셔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도 있었어요.
메가방나에 다녀오던 어느 날, 제 옆에 앉아 있던 Pare(이게 옷감의 한 종류라네요)라는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그 아가씨는 토요타에 다니는지라, 영어를 정말 청산유수로 잘 했습니다)
그 아가씨가 저에게 묻더군요.
[당신이 영어를 하는 거야, 당신이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현재의 미국이 대국이니까 당연한 것이지만
당신은 왜 별로 힘도 없는 변방 나라의 언어를 하려고 하나요?
우리 태국인들은, 외국인이라면 영어를 하는 것을 진짜 당연하게 생각해요]
이 말을 듣고,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에게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정상회담]의 인기를 생각하면, 그들의 한국어 실력이 그 인기에 상당히 보탬이 된 것이긴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라도 꺼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도 태국을 대표하는 생각이 아니라, 이 아가씨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믿고 싶었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셔요?
저는 그냥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태국에 와서 태국어를 하는 것은, 제가 이 나라에 표시하는 예의(politeness)입니다]
Pare도 제가 그렇게 대답한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 때에 정말 기뻤던 것은
제가 더 이상 태국어 까막눈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던 일입니다.
언어를 배울 때에는 그 언어에 대한 일정량의 자연스러운 노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던데,
제게는 이번 여행 때에 태국어 문맹을 벗어날 양이 조금은 달성된 것인가 봅니다.
제가 가장 처음 읽었던 태국어는 나나(BTS 나나역. 많은 분들이 그러시지 않을까요?)였고,
[오, 태국어는 이런 식으로 씌어지는 거구나!]라는
[유레카!]적 깨달음을 얻게 했던 단어는 [방짝]이었습니다.
(BTS에게 감사해야 하겠네요!)
이 정도 말씀드렸으니 눈치채셨겠지만, 제게는 아직 태국어 모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지금까지는 다만 [아]가 대부분 어떻게 표시되는지를 알 따름입니다.
아, 하나 더 있기는 하네요.
버스나 광고판의 [ws(물론 w가 아니긴 하지만, 흔히 장난스럽게 이렇게들 표시하는)]가 왜 [프리]가 되는지
그것도 이제는 압니다.
지금까지의 제 태국어 읽기에 진보가 그리 더뎠던 매우 큰 이유는
책 속의 태국어와, 간판의 태국어와, 흘려 쓰는 태국어가 모두 글씨체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흘려 쓴 우리나라말도 문제 없이 알아보듯,
서로 다른 태국어 글씨체도 조금은 연관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칙을 전혀 찾아낼 수 없어서 저를 절망하게 만들었던 언어에서
어렴풋하긴 하지만 이제는 일정한 법칙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렐루야입니다.
아는 것이 힘, 더욱 더 정진해야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네요.
푸아키에서 제가 포장 주문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음에는 나도 태국어로 주문 한 번 해 볼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대화를 나누고 계셨던 두 남자분들,
얼굴도 잘 생기신 분들께서 그렇게 훈훈한 대화를 나누시는 게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했던 주문에 필요했던 말도 진짜 별 말 아니었어요.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푸아키는 정말 믿고 먹는 푸아킵니다.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