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우연히 들은 저자 직강
저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여행의 마지막 날인 이 날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시암 지역에는 들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온전히 시암에서만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국립 미술관을 시작으로(그런데 요즘 전시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MBK에 가려고 나와 보니 그 사이에 비가 왔더군요.
그것을 시작으로 그 날에는 정말 비가 많이 왔습니다.
다행히도 한 방울도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었지만요.
재미있는 일은 젠 백화점 앞에서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근처에서 하는 사진전은 꽤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사진전 하나를 하고 있는 중이더군요.
제목이 [Very Thai]이길래, 가까이에서 구경하려고 스카이워크를 내려갔습니다.
색감도 좋고, 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이 엿보이는 사진들이더군요.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들은 제 사진기에도 담으면서 구경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제 옆쪽에서 사진을 구경하고 있던 세 분의 서양인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이 곳? 이 곳은 치앙마이야]
저도 시선을 돌려서 그 분들이 보고 있던 사진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아, 그러네요. 이 곳은 치앙마이의 랏차담넌 로드이네요. 타마린드 호텔이 바로 여기 있고요]
저의 말에 그 분들은 반가워했습니다.
[당신도 이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네요!]
[아, 그럼요. 저도 이 곳에 있었으니까요]
[사실 이 사진들, 내가 찍었어요]
그 중 한 남자분이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처음에는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에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는 이렇게 태국의 애정어린 사진을 찍은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궁금했는데, 그 사람이 당신이군요]
대신에 제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정말요? 세상에, 믿을 수가 없네요! 이 사진들의 Author를 만나다니 정말 영광이어요. 죄송하지만 당신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그 분께서 승낙해 주셔서 찍은 사진은 이 게시물의 맨 밑에 있습니다)
생김새만 보고는 독일인인 줄 알았던 이 분은 영국인이랍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강남스타일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파라곤 광장에 싸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느냡니다.
덧붙여서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지를 해 주시더군요.
[유튜브에 강남스타일 패러디를 가장 먼저 올린 나라가 태국인데요,
한국에서는 '강남'이 부유한 거주지의 명칭이라면서요?
태국어로는 '케난(그 분의 발음이 그랬는데, 태국어로는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이라고
한 마을의 촌장과 같은 존재가 있어요.
태국에서 만든 패러디는, 바로 그 '케난 스타일'이었죠]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 채 이런 문화적 이야기만 하다 헤어지게 된 이 분의 사진전은
12월 6일까지 젠 백화점 앞에서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직접 그 저자를 만나고, 그 분의 품성이나 태국에 대한,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동하지 않았더라도
다시 말해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그 사진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 사진전은 상당히 좋아요.
젠 백화점을 들러가시는 분들은 한 번쯤 구경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안 사람들 중 반이 했던만큼
분명히 태국에 한류가 있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거센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여행 중 제가 가장 강하게 느꼈던 한류는. 단어 하나였답니다.
다름 아닌 [파이팅]이라는 말이었어요.
TV에도 그렇고, 티셔츠의 문구로도 그렇고
태국인들이 [파이팅]이라는 말을 갑자기 많이 쓰더라고요.
예전에는 분명히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이건 제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가요?
그 동안 그렇게 태국에 자주 드나들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여행기를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번 여행은 하나도 더하거나 뺄 것도 없는 너무나 완벽한 여행이었고
제가 미처 바라지도 않았던 것까지 제게 듬뿍 주어졌었는데
거기에 제 계획이나 노력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게 공짜로 받은 것은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누군가의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여행기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분의 뒤에 있는 사진이, 이 분과 말을 튼 계기가 된 바로 그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