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뜻하지 않은 퍼레이드와, 나쁘지 않은 팬룸 열차
언제인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져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섯 시,
다시 잠들고 일어나니 여섯 시 반이었습니다.
사실 이 때에는 삼왕상 근처의 닭고기밥집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부터 겸사겸사 랏차담넌 거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랏차담넌에서 시작해서 왓 프라씽까지 갔다가 랏차담넌으로 돌아오려고 했었는데
호텔에 돌아올 때에는 랏차담넌 로드가 아니라 바로 그 윗길을 선택하여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의 제 개인적인 목표였던 삼왕상 앞 닭고기밥집을 지났을 때에
저는 그 곳이 일종의 닭고기밥 광장임을 알았습니다.
닭고기밥을 하는 세 집이 연이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예전부터 제가 알던 집을 선택했습니다.
그 아침에 먹기 딱 적당할 정도로 가벼운 한 끼였습니다.
그런 후에 삼왕상 앞에서 사진도 찍으면서 다시 호텔을 향하여 오는데, 어디에선가 힘찬 브라스밴드의 소리가 들려서 저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예전부터 그 곳에 있던 것을 제가 알고 있던 학교 하나가 있는데(유파랏 스쿨)
그 학교에서 고적대가 행진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것을 그냥 [아, 고적대가 행진을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대대적인 학생들의 퍼레이드의 시작이었습니다.
재미있게, 또는 화려하게 잘 차려 입은 학생들이 끝도 없이 교문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을 정도였습니다.
어떤 팀은 [리사이클]이나 [ASEAN]처럼, 꽤나 무거운 주제의 분장을 했고
어떤 팀은 헐리우드나 태국의 연예인과 같은 분장을,
어떤 팀은 그냥 평상복이나 잠옷에 풍선이나 다른 장식을 붙이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맘먹고 하는 모든 일은 다 좋아하는 제가 뜻하지 않게 받은 선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잠옷 입은 팀이 지나갈 때까지 저는 끝까지 그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조금의 어떤 타이밍만 맞지 않았더라도 그 퍼레이드를 처음부터 볼 수는 없었을 터인데, 치앙마이가 주는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퍼레이드 중 가장 웃겼던 것은 흰 코끼리를 끄는 팀이었을 터인데
코끼리가 끄는 동안 자꾸 넘어져서 모두들 애를 먹더군요.
아마도 삼왕상을 상징하는 퍼레이드를 한 팀도 웃겼습니다.
한 왕이 너무 무거웠는지, 한참을 이고 가다가 내려놓고 학생들이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서 떠났거든요.
그렇게 아침에 산보를 하고 온 다음에는, 계속 방에서 할 일을 하고 쉬다가
9시 30분에 호텔의 조식을 먹기 위해 카페로 내려갔습니다.
그 때에 저는 이 호텔의 음식에 상당히 감탄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화려한 메뉴가 아닌데, 참 기본에 충실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더군요.
혹시 이 호텔은 숙박보다는, 이 탁월한 입지를 이용해서 카페를 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조식을 먹고 온 다음에는 또 방에서 편히 쉬었습니다.
이 날은 긴 여행을 하는 날이므로, 체력을 아껴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날인 이 날에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내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안 가면 섭섭할 것 같은 에카팁 촉디로 향했습니다.
우산을 들고 햇볕을 가리며 갔는데도 너무나 더워서 만나는 모든 세븐일레븐에 일단 들어가서 더위를 피해야 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그 때에 머릿속에서, 오늘 치앙마이대에 가 볼까 하는 희망은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에카팁 촉디를 간 것은 참 잘 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센야이 팟키마오 꿍을 먹는 순간, 역시 이래서 제가 이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 기억해 버렸습니다.
너무나 근사한 점심 식사였습니다.
그 후에는, 치앙마이대 방문 계획이 삭제되어 버렸으니 그 다음 계획이었던 마사지를 받을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두 군데를 미리 알아 놓았었는데, 둘 다 솜펫 시장 근처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찾고 싶었던 곳은 못 찾았고, 두 번째의 곳을 찾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번째의 곳이 맹인분들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원체 마사지를 좋아하지도 않고, 마사지는 단지 일시적인 효능을 갖는 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는 두 시간 내내 마사지도 성심성의껏 잘 해 주시고
에어컨도 시원했고, 몸도 개운하게 풀렸습니다.
팁까지 300밧이라는 가격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었습니다.
타이 마사지는 왓 포에서만 진지하게 받아 보았는데, 그렇다고 이제부터 마사지를 자주 할 생각은 없지만 이 곳이 참 좋더군요.
또 생각보다 마사지가 정말 오래 걸리기도 했습니다.
2시간인데, 2시간을 못 채워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넘겨서 끝내 주시더군요.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서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곳에서 나와서는 솜펫 시장에서, 기차에서 먹고 싶은 도시락 거리를 사 모았습니다.
그런 후에 호텔에서 짐을 찾고, 아침을 먹은 카페에서 천 밧을 브레이크한 다음 썽태우를 잡았는데
감사하게도 경비 아저씨가 손수 썽태우를 잡아 주셨습니다.
아저씨께서 잡으시는데도 철도역까지 40바트라는 데에 기사분이 좀 못마땅해하는 것을 보니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꽤 힘든 상황에 처해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썽태우를 잡고, 짐까지 손수 실어주시고, 정말 아저씨는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같이 썽태우에 탄 사람들은 다행히도 모두 와롤롯까지 가는 사람들이더군요.
제가 가는 길에 내리는 사람들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서 짐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었는데, 경찰서에서 아저씨들께서 잠시 제 짐을 맡아 주신 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세븐일레븐도, 제가 탈 기차에도 미리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차의 상태에는 너무나 실망을 했습니다.
제가 방콕에서 타고 온 기차보다 300바트가 싼가 한데, 역시 싼 것이 싼 값을 하네요.
현재의 이 일기는, 바로 그 기차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저희 칸의 일행은 스페인에서 온 청년 하나, 호주에서 온 부부 한 쌍인데
호주 부인 크리스탈이 밥을 주문한 덕에 탁자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쁜 기차를 타게 된 것은 여행 중 가장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타 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나 좋습니다.
이제 곧 침대로 차를 바꿀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상태도 좋지만, 침대로 바꾼 다음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삼왕의 퍼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