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2 - 설레는 여행의 시작은 안전에 대한 고민과 함께
크고 작은 여러 문제를 헤치고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한 후
pp카드를 주는 신용카드 발급도 완료했고, 일정도 짰고, 환전도 했다.
출발 하루 전까지 동생은 계속 바빴고, 틈틈히 쉴 때 마다 우리의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아빠도, 엄마도 안전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를 한다.
나 방콕 한 번 가본 적 있는데..
방콕은 자유여행 하기에 안전한 편인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옆에서 그렇게 진심으로 진지하게 걱정을 하고 신신당부를 하면
나도 덩달아 걱정이 생기게 된다.
생각해보니 무서웠다.
여자 둘, 태국말도 모르고 태국에 아는 사람도 없으며, 여차하면 우릴 위해 부모님께 연락해 줄 사람도 없다.
엄마아빠는 영어도, 인터넷도 못하니 연락이 닿는다 해도 별 수가 없다.
우린 누가 봐도 확 튀는 외국인 관광객일 뿐이고,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우린 그 순간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수영도 할 줄 모르고, 호신술은 커녕 운동신경도 별로 안좋아서 달리기조차 느린데..
게다가 동생은 태국에 대한 사전지식조차 별로 없다.
내가 책임지고 쟤도 지켜야 하는데 난 나조차 지키기 힘든데 어쩌지..
불안은 나 자신에 대한 것에 더해서 동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과 부담감 때문에 더 커졌다.
걱정은 깊어가는 밤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나는 그것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조차 구분이 안될 정도가 되었다.
말도 안통하고, 전화도 안되고.. 아, 괜히 여행 급하게 준비했나? 하는 여행계획에 대한 부정에 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핸드폰 로밍에 대해 뒤늦게 검색을 시작하고, 내가 타국 공항에 내리면 내가 지정한 사람(최대5명)에게 타국에 갔다는 문자를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일단 엄마, 아빠, 거기에 이번에 힘이 많이 되어준 친구 둘이랑, 내 친구들 중에 가장 정보력이 빠르고 빠릿빠릿한 친구까지 총 5명을 꽉 채워서 신청을 해두었다.
그 와중에 태사랑에 걱정근심 가득한 뻘글도 많이 올리고 말이다.
그렇게 설레고 기뻐야할 여행의 시작은 안전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어두워지게 된다.
그렇게 나는 밤을 꼬박 새게 되었고,
컨디션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수면이 사람의 판단력에 미치는 영향력을 굳이 최신 학술지를 들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익히 아는 바,
엄마, 아빠의 과도한 겁주기가 원인이라고 화살을 돌려보지만 여튼 이렇게 삽질은 시작되었다.
잠을 자지 않았으니 아침 일찍부터 일과를 시작할 수는 있었다.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을 찰밥과 야무지게 한 그릇 먹고
준비를 하고 나섰다.
엄마는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예산의 압박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또 다시 삽질 선택을 한다.
ㄴㄴ 버스 탈거임! 택시 비쌈. 차에서 자면 되니까 괜찮음.
아침이지만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난 후에 바퀴가 달렸지만 만만치 않은 캐리어의 무게와 더위 때문에 내 선택에 대해 바로 후회했지만 (역시 사람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미 버스를 탔기 때문에 택시로 갈아타는건 좀 아니었다.
힘들게 부산역 도착.
KTX를 처음 타는 촌스러운 부산너인 나는 KTX를 두어번 타 본 경험이 있지만 역시 나와 같은 수준으로 길을 못찾는 동생과 함께 역사 안에서 약간 헤매게 된다.
앞에 보이는 역무원 아저씨에게 차표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서 타야 하느냐고 묻자,
아저씨가 바로 옆에 있는 LED(맞나?)전광판에 나오는 안내를 가리키며 몇 번 플랫폼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셨다.
순진하고 어리버리하게 생긴 두 여자애(애는 아니지만)가 부산에서 외국 간다는데
부산역 안에서 KTX 플랫폼도 못찾는게 많이 걱정스러우셨는지
상당히 따뜻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아, 부끄러워 ㅠㅠ 부산에서 평생 살았긴 하지만 내가 기차탈 일이 있었어야 알지;;
부산역에 KTX 지나간 지 10년도 훨 씬 넘은 지금에서야 첨으로 KTX를 타봤다.
부산에서 울산까지 15분 밖에 안걸리는 그 속도에 다시 한 번 놀랬다.
고속도로로 내 실력으로 운전해서 가면 2시간은 걸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밤새 잠도 못잤던 나는 기차에서 좀 자려고 했는데
이노무 번개같은 KTX 안에서는 잠이 잘 안왔다.
너무 빨라서 귀가 아프더라구.
그렇게 잠이 안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동생과 수다를 떨다가 도착지에 거의 다 와 갈 때 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한 30분 정도 잔 것 같다.
비몽사몽간에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공항철도 예약시간 때문에 재빨리 맥도날드에서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를 사고 공항철도 대기실로 향했다.
물론 이것도 바로 못찾고 안내센터 가서 물어보고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찾아갔다.
(자신감있고 멋지게 슉슉 인파를 헤치고 가고 싶었는데, 원.. 어딜 다녀 봤어야 길을 알지;)
공항철도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햄버거까지 들고 공항으로 가기엔 짐이 부담스러워서
대기실에서 게 눈 감추듯 햄버거를 흡입했다.
햄버거 흡입 후 5분 정도 지나니까 우리 차편 승객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 대합실에서 안 사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은 공항철도 직통을 탈 경우 무료 체크인 해준단다.
우린 티웨이 ㅠㅠ
제주항공은 티웨이보다 10만원 이상 비싸더라 ㅠㅠ
힘들게 짐을 끌고 또 철도 대합실로 내려간다.
인천공항행 직통철도를 기다리며 아직 손대지 못한 감자튀김을 입에 우겨넣었다.
동생은 배부르지 않냐며 한심하게 쳐다보던데
임뫄, 난 걱정하느라 밤을 샜단 말이다. 배가 고픈게 당연하지; 니가 자는 동안 깨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데!!!!
그렇게 homeless처럼 대기실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감자튀김을 먹다보니 곧 기차가 도착한다는 메세지가 떴다.
재빨리 입 주변을 정리하고 정상인의 모습으로 다시 변신해서 우아하게 기차에 탔다.
어, 근데 사람이 아무도 없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네.
이 기차 가는거 맞아? 이런 생각에 또 주저주저하며 어리버리하게 머뭇대고 있으니
아줌마가 이거 가는거 맞다면서 타라고 하신다.
나도 좀 우아하고 고상하게 다니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 ㅠㅠ
나긋나긋한 서울말씨를 쓰는 아줌마는 '얘들 공항 첨 가나봐' 라는 표정인 듯한 알들 모를듯한 비웃음을 흘리며 볼일을 보셨다.
인천공항은 두 번째지만 공항철도는 첨 타는거긴 하지.
아줌만 직업이라 맨날 타니까 잘아는거잖아요 ㅠㅠ
공항가는 직통철도 안에서 본, 도저히 한국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풍경
그렇게 공항에서 내린 우리는 아직 다 먹지 못한 감자튀김과 콜라가 든 가방이 짐이되어 부담스러웠다.
평소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나지만,
그 날은 우리에게 갖가지 먹거리를 갖춘 라운지 스낵바가 있었으므로 과감하게 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이게 삽질의 시작이 될 줄이야..
(아니, 삽질은 전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었긴 하구나)
일단 티켓팅을 하려고 했는데,
티켓팅은 수화물 체크인 하는 곳에서 바로 하면 되는데, 그 창구가 출발 3시간 전에 열린단다.
라운지 가서 쉬다가 가려고 넉넉하게 일찍 출발한건데-_- 일정이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티켓이 없으니 들어갈 수가 없잖아 ㅠㅠ
아, 현대카드 라운지!!
거기서 트래블백 교환받고 쉬다가 체크인을 하기로 하고 2층 라운지로 향했다.
온통 항공사 사무실이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나 싶을 그런 분위기인 2층에서 또 어리버리하게 헤매다가 찾은 라운지에서는 내 카드 등급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ㅠㅠ
내건 카드 등급이 낮아서 현대카드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단다-_-
트래블백도 작년까진 공짜로 줬던건데 올해부턴 3만원에 교환이다 ㅠㅠ 포인트 교환이긴 하지만.
지방시민은 이래서 서럽다.
인천공항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엉엉
오랫동안 써줬는데 현대카드 나한테 해준게 뭐냐!!
(아.. 삼국지 디비디 셋트 살 때 좀 싸게 살 수 있게 해주긴 했구나.. 그래도 뭔가 윽을한 이 늑힘;)
순식간에 갈 곳 없는 신세.
티켓팅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어디에 있나 싶어 공항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다가
4층에 자리잡고 앉아서 넷북을 꺼냈다.
일자리 공고가 날 기간이라서 매일 체크하다가 이력서 보내려고 들고온건데 맨날 태사랑하는 데만 썼다.
공고는 정작 아직도 안났음;
여튼, 지난 밤 안전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싸질러놓은 글에 정성스런 댓글이 달려있어서
민베드로님이 알려주신 외교부의 해외여행 등록제를 신청했다.
이것도 외교부 사무실(?)쪽에 가서 신청하려고 하니까
여기서 하는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하는거라면서 안내책자를 주셔서 그거보고 신청했다.
(대체 어디까지 어리버리인지.. 스스로도 한심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잡무를 보고 태사랑 댓글 체크해서 새로운 정보 업데이트하고 하다보니 어느새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 가기에
또 짐을 챙겨서 공항을 좀 돌아다니다가 줄 서려고 갔던 곳에 창구가 열려있고 줄이 있기에
동생을 세워두고 나는 발권창구를 찾아 헤매었다.
진짜로 발권이랑 체크인을 같은 곳에서 하는줄 몰랐다 ㅠㅠ
가까워 보였지만 꽤 거리가 있는 안내창구로 가서 다시 한 번 물어본 후에 동생에게 돌아가서 같이 줄을 섰다.
티웨이 발권창구 승무원은 외모만큼 친절하고 따뜻했다.
어디서 비행기 타는지, 언제까지 탑승해야 하는지 줄쳐서 다 설명해주고 너무 좋았다.
여기서 잠깐, 티웨이 항공의 좋은 점.
수화물 1인당 20키로 까지인데, 수화물의 갯수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너무 좋은 제도인 듯!!
(다른 항공사도 그런건가? 비행기를 자주 타봤어야 알지;)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출국장으로 가서
셔틀 트레인을 타야한다기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문이 열려있는 트레인을 놓치기 전에 타려고 뛰었다.
그렇게 우리의 라운지는 멀어져갔던 것을 당시엔 몰랐다.
탑승동 지도를 아무리 봐도 마티나 라운지가 안보이기에 안내센터에서 물었더니 여긴 그런거 없다는 대답 ㅠㅠ
열차 타고 오기 전에 갔어야지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동생이 아쉬워하기에 그럼 우리 되돌아갈까? 이러면서 트레인 층으로 다시 내려갔는데
아, 맞다! 이거 일방통행. 되돌아가지는 못하는데;;
(pf13님 여행기의 쿠웨이트 노동자가 삽질한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탑승동 면세점은 규모가 작았다.
첨으로 인천공항에 온 동생은 나때문에 본관에 있는 거대한 면세점은 구경도 못하고
라운지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그건 나도 마찬가지 ㅠㅠ)
그렇게 탑승 게이트로 터덜터덜 향했다.
라운지에 가지 못해서 배가 고파진 우리는 겁나게 비싼 백작부인 초콜렛을 구입했고,
탑승 게이트에서 겨우 하룻밤을 못잤을 뿐이지만 상거지의 몰골로 초콜렛을 뜯어먹으며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하고 이륙의 설레임으로 들뜬 시점에서!!!
출발이 지연되었다.
10분이 20분이 되고.. 급기야 40분이나 지나서야 출발 ㅠㅠ
이게 뭐냐 싶었는데 성질나려던 찰나에 딱딱 맞춰서 물이며 쥬스며 갖다주셔서 또 막 괜찮아지고..ㅋㅋ
(짐승도 아니고 왤케 먹는거에 약한건지;;)
이륙하고 좀 지나니까 기내식도 줬다.
배가 넘 고파서 부끄럽지만 남는거 있음 하나 더 먹을 수 없겠냐 했는데 남는게 없단다 ㅠㅠ
타이항공과 저가항공의 차이인가?
동생과 함께가는 첫 비행기 여행이라 기념하려고
티웨이에서 해주는 기내 사진서비스도 신청했는데
내 상태가 말이 아니라 잠에 곯아떨어지는 통에 서비스 받지 못했던 것은 초큼 아쉽기는 하다.
근데 사진 찍혔어도 결과물이 맘에 안들어서 기분 안좋았을 듯 ㅋㅋ
(얼짱각도는 물론이고, 사진 찍을 때의 시선처리며 포즈며 등등 사진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그래도 밤하늘은 예뻤다.
이게 인천인지 방콕인지는 가물가물;
의외로 비행기는 만석이 아니어서 조금 편하게 갔지만 착륙하기 조금 전 부터 해서
또 나의 어리버리함 때문에 의심스런 일에 말려들게 된다.
그건 다음 편에!
(아직 방콕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여행기는 벌써 2편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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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사진은 방콕의 밤풍경이라고 동생이 말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