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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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바기오 플락산>새해맞이

네버스탑맘 0 765

산이라면 오르고부터 보는 내게, 관리가 잘 안되고 위험한 필리핀 산악환경은 낭패였다. 그런 내 처지를 알고 영어튜터인 밴이 안전한 플락산 인터넷 사이트(노바 : 0910-798-7005)를 소개해준다.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2922M)이라 사고가 종종 있어서인지 악천후에는 입산을 금지하여 쉽게 등산하기는 어려웠지만 사이트에 올라온 풍광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았다. 우기에는 등산객을 모으지 않는 터에, 그저 기회만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극적으로 12월 31일, 1월1일 해맞이 등산이 가능한 걸 알았다. 숙원이 이루어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얼마나 기대가 큰지 별이 쏟아지는 텐트를 상상하며 7시간의 밤 버스여행도 피곤한 줄 몰랐다. 무려 약속시간 세 시간 전인 새벽 2시에 도착할 정도로.
 버스터미널 이층에 올라가보니 여기저기 등산객차림의 현지인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얼기  설기 서로의 체온을 나눈 채 자고 있었다. 털모자 차림에 슬리퍼신발은 어울리지 않아서 실소가 터졌다.  SM몰 사장은 신발가게에서 시작해 아직도 초심을 잃지 않아 Shoe Mart의 약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데 도대체 어떤 신발을 팔아 이문을 남겼을지 궁금하다. 다들 슬리퍼 하나로 사시사철을 보내고 심지어 산행도 슬리퍼로 오르는데....
 버스터미널은 한산하다. 와플, 커피, 만두 값이 기껏해야 500원, 천원에 불과하다. 그것을 팔기 위해 새벽에도 꾸벅거리며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기념품 가게에는 open이란 말이 무색하게 문을 닫았는지 열었는지 인적이 뜸하다. 주인은 두 팔에 머리를 묻고서는 곤히 잠들어 있다. 이 와중에 무엇을 산다고 깨우는 것이 도리어 민폐가 될 듯하다. 와플이 45페소(1100원)길래 50페소를 주며 거스름돈은 그냥 두라고 했더니 아가씨가 해맑게 웃는다. 5페소로 저렇게 순수한 미소를 얻을 수 있다니, 5페소란 돈이 염치없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벤치에 진회색 얇은 등산복이 하나 구겨져 있다. 톡톡하니 재질이 따듯하고 가볍다. 누가 놓고 갔나 주위를 돌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는 길바닥에 돈이 떨어져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던데... 하지만, 주인이 아닌 남이 주워간다면, 최초 발견자인 내가 손해인 것만 같아, 그 벤치를 떠나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안절부절못했다. 더운 나라에 오면서 따듯한 옷이 필요할 거라곤 미처 생각을 못해서, 오늘 같은 날, 더욱 그 옷이 탐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차마, 남의 옷을 챙기지는 못하고 의자에 가지런히 올려둔 채 옷 주인이 오나 안 오나 기웃거리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 아가씨가 내 뒷자리에서 뭔가를 찾는 낌새다. 그러더니 의자위의 옷을 발견하고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가져가버린다. 잠시나마 남의 것을 탐냈던 속맘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에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홧홧해졌다.
 이제 홀가분하게 벤치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두 시간 동안 회오리치던 감정을 추스르고 나자 이젠 바깥구경이 하고 싶었다. 바기오의 밤하늘은 달도 별도 또렷했다. 날마다 뜨는 데도 볼 때마다 흐뭇함을 안겨주는 천상의 존재들에게 나 역시 그 아가씨처럼 미소로 답했다.
 드디어 필리핀 가이드를 만나 일행과 함께 플락산으로 향했다. 댐도 구경하고 아슬아슬하게 매달아놓은 그물 같은 장장 브리지도 건너보았다. 아침식사를 위해 들른 레스토랑의 주인아가씨는 시골사람 같지 않게 피부가 맑고 눈망울도 검고 크다. 우즈베키스탄쪽으로 여행을 가면 김태희가 소를 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다들 미인이라는데 이곳도 만만치 않다. 들통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불랄로(갈비탕)’냐고 물으니 ‘치킨’이라 해놓고 입을 막으며 깔깔거린다. ‘치킨’이 아니고 ‘돼지족발’인데 말을 잘못했다며 참을 수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합해서 1000원이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가격이 저렴한 메뉴를 만날 때는, 내가 마닐라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비를 하고 사는지 반성이 저절로 된다.
 운전사는 또다시 시동을 건다. 햇살도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새로 솟은 해는 막 세수를 마친 얼굴처럼 말갛다. 산등성이를 가만가만 어루만질 때마다 초록빛 산은 연둣빛으로 뽀얗게 피어난다. 청신한 햇볕이 조금씩 그림자들을 잠식해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온천지에 쏟아진다. 그러면 이제 새벽은 걷히고 낮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국립공원에 도착하기 전 간단한 메디컬 체크를 받고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다.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가까워진다. 직원은 우리에게 2016년 최초의 산행을 단행한 사람들이라며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메킨리 산을 현장체험학습으로 다녀왔을 때,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안내원의 어줍은 설명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과는 달리, 이곳의 관계자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외국인을 압도하는 아우라를 갖췄다. 찰나에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처럼 3월 첫날 학생들도 교사를 그렇게 판단한다. 그러니 늘 자신감과 사랑을 품고 있지 않으면 바로 학생들에게 간파 당해, 신뢰를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우선 가이드 노바의 집에서 여장을 풀기 위해 깎아지르는 듯한 산길을 오르는데, 외국인 한 명이 포터를 앞세우고 땡볕에 걸어 올라간다. 밴으로 올라가도 클러치에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여정인데 저렇게 걸어 올라가, 어느 세월에 당도할지 처량한 마음이 다 들었다. 노바는 날씨가 좋지 않으니 앞마당에서 텐트를 치거나 자신의 집에서 자고 새벽 1시에 산을 오르자고 제안한다. 야영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던 터라 텐트에서 자겠다고 우리 일행은 잔뜩 고집을 세웠다. 1월 1일, 내일이 되면 7살, 12살, 14살이 되는 꼬마들을 대동한 가족임에도 씩씩하고 용감하다. 수런수런 거리다가 올라가자는 결의를 다졌다. 우비와 렌턴, 포터, 가이드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오르려는 차, 아까 봤던 외국인이 도착했다.
 헬기를 타고 베이스 캠프에서 베이스 캠프로 이동해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의 구설수가 갑자기 생각났다. 저 외국인에 비하면 우리의 등정은 설령 정상에 도착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의 등정은 아니란 자괴감이 들면서 그를 처량해 했던 스스로가 도리어 한심해졌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 뒤 1시에 출발하려는데 그는 오늘 편히 여기서 쉬고 새벽 1시부터 오르겠다며 땀을 닦는다. 말은 안했지만 차를 타고 올라온 우리가 걸어온 그보다 늦게 오르는 건 어쩐지 약이 올라서 다들 가방을 메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포터 아주머니는 침낭과 텐트, 저녁거리가 든 자루를 걸머지고 성큼성큼 앞서간다. 길은 미끄럽고 질척거렸다. 신발을 버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면서 걸었는지 풍광은 못보고 바닥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잠깐 잠깐 눈을 들어 살펴볼 때마다 억새풀이 물결친다. 운해를 보러 왔다가 막상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무색 무미 무취의 습기의 집합일 뿐 솜사탕이 아니었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직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소리 없이 우리 몸을 적실 뿐이었다.
 서 너 시간 동안 묵묵히 걷고 난 뒤 캠프 1에 도착하니 바람은 더욱 강해졌다.  텐트를 치고 침낭 하나씩을 배분 받은 뒤 시니강에 밥을 먹었다. 필리핀 현지식임에도 어떻게 요리를 한 건지 입맛에 꼭 맞았다. 새콤한 맛에 적당히 익은 야채와 풍미가 퍼지는 돼지고기가 일품이다. 등산은 모름지기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제격인데 포터가 져 온 텐트에 몸을 뉘이고 가이드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하는 반쪽 짜리 등산을 하면서 성취를 느끼려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바깥은 점점 바람이 세차게 분다. 별은커녕 텐트가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열악했다. 바닥에서 냉기가 솟아오르고 아이는 젖은 몸을 덜덜 떤다. 가이드 아가씨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웠던 선택에 후회가 일면서 배낭 속에 든 옷이란 옷은 다 꺼내 아이를 덮어주었다. 빗줄기는 점점 심해지고 잠은 한숨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곳은 보통 텐트가 아니라 해발 2000미터의 수많은 봉우리를 발아래 둔 절대공간이라고 상상해도 우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던 아이가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 숨소리가 안온하다. 새벽 세시쯤 바깥에서 분주하게 음식준비를 하더니 따끈한 커피를 건넨다. 몸이 사르르 풀린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정상에 올라가도 해돋이도 볼 수 없으니 그냥 내려가야겠단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떠밀리듯 정상을 향했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겨울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신발도 옷도 진흙투성이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무도 말 한 마디 없다. 저기 어디서 검은 물체가 보인다. 낮의 그 외국인이었다. 도대체 그는 왜 우리 시야에 계속 나타나는가? 결국 그가 먼저 산을 밟았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정상에서는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강풍에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가 이런 말을 내뱉는다.
“비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정상에 온 게 뿌듯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 한마디가 뭉쳤던 내 마음을 확 풀어놓는다.
“Challenging hiking is more important than good weather."(노바 : 0910-798-7005)
라고 가이드도 덧붙인다.
 “모름지기 오늘 같은 날은 따듯한 방에서 귤 까먹으며 연예대상을 아빠랑 보는 게 최고지만 말야.”
 아이가 이렇게 훌쩍 컸구나. 3.7 킬로그램의 작은 아기로 내게 와서 어느새 힘겨움도 묵묵히 이겨내는 아이로 커 줬다.
 산에서 맞이한 2016년 첫 날,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알아채는 아이로 키워 준 플락산의 산신령에게도 감사를 올렸다. 하산 길을 선선히 내디디며 잠시 잊었던 콧노래도 흥얼거려진다. 노랗게 물결치는 갈대밭 한 가운데를 점처럼 소실되는 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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