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6편 라카포시 뷰 포인트와 가네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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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6편 라카포시 뷰 포인트와 가네쉬 마을

Lucky 0 2526

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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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25일

 

훈자에서의 둘째날 - 라카포시 뷰 포인트와 가네시 마을.




늦게 일어나 복마니한테 가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라카포시가 잘 보이는 두란 게스트하우스까지 가서 라카포시를 구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내 처음 보는 눈 덮인 산의 빙하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마니는 라카포시 등반이 아니라면 구태여 두란GT까지 갈 필요 없고,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름마저도 ‘라카포시 뷰포인트’라고. 아마 파키스탄인들 사이에 불려지는 마을 이름은 있겠지만 외국인이 많이 찾으니 영어로 이름을 붙이게 된 것 같다.

 

스즈키를 타고 카리마바드로 와서 길깃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운전수에게 ‘라카포시 뷰포인트’에 내려달라고 신신당부 여러 번 부탁을 했다. 어떤 때는 잘 알려주다가도, 잘 잊어버리는 파키스탄인의 특징 때문에 버스에 타서도 옆 사람에게 ‘라카포시 뷰포인트’를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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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의 설산 라카포시. 정상부근에는 바람이 세게 부는지 눈이 휘날린다. 산 중턱까지 빙하가 밀려와 있다. 뷰포인트 앞을 흐르는 계곡물은 이 빙하가 녹은 물로 엄청 차겁다.





버스는 한 시간 조금 못가서 나를 내려 주었다. 바로 훈자 오던 버스에서 경치가 무척 좋다고 생각했던 그곳이었다. 두란 GT 갈림길 조금 못 가서였다. 라카포시에서 흘러내려오는 빙하천을 끼고, 몇 개의 상점과 식당? 그리고 호텔이 - 아주 저급하거나 중급 - 자리 잡고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지 10대 정도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되어있다.

 

이미 호텔의 간판에는 최고의 라카포시 경치를 볼 수 있다고 선전되어있다. 길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가니 서비스하는 사람이 재빨리 눈치를 챈다.

 

“라카포시 뷰?”

“OK!"

"이리로”

 

그가 앉으라고 데려간 곳은 앞마당 한쪽으로 정말 한가하게 라카포시를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라카포시 빙하천이 옆으로 흐르고, 앞쪽으로는 하나의 막힘도 없이 바로 라카포시 빙하가 정면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빙하 끝에 올라붙어서 라카포시의 뾰족한 봉우리가 있다. 정상에는 바람이 부는지, 아니면 눈이 내리는지 흩어지는 구름에 뿌연 안개가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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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포시 뷰 포이트에서, 셀카는 정말 찍기 어려워.





해를 가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마실 것을 주문했다. 햇살은 명랑(明朗)하나 덥지는 않고, 계곡을 통해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라카포시의 봉우리는 해가 뜸에 따라 기온이 올라가고, 기온에 따라 눈에 보이는 빙하의 차이가 느껴진다. 싫도록 2시간여를 한가한 공상을 하며 쉬다 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무지 무엇이라도 먹을 것이 없었다. 이 집은 식당이 아닌지 아니면 식당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료수만 죽도록 먹다가 카리마바드 가는 버스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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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라카포시 뷰 포이트에 호텔도 있다. 물론 GH 수준이지만.





카리마바드에서 가네시 마을에 가는 스즈키를 탔다. 복마니가 훈자의 모습을 잘 가지고 있는 가네시 마을을 보라고 추천했기 때문이다.

 

“가네시 마을을 꼭 가 보세요, 훈자만 해도 관광객 때문에 이제 훈자의 원래 모습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가네시 마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예정이고 그렇게 된다면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네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과연? 하지만 파키스탄 오지(奧地) 마을이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가네시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늘어서있는 스스키 사이에서 가네시 마을로 가는 차를 찾았다.

 

“너 이차 가네시 마을가는 거냐?"

"그래"

 

체구에 맞지 않는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가네시 마을로 갔다. 어? 그런데 이것 잘못된 것 아닌가?

 

“hey! stop! I am going to ganeshi!"

가네시와 훈자 가는 삼거리에서 스즈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다급하게 소리치니 그때서야 운전수 나를 의식한 듯 차를 세운다.

 

“깜빡 잊었다. 가네시 가는 사람이 너 하나다. 모두 훈자로 간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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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마을 가는 길. 이 길은 KKH구간으로 계속가면 소스트를 지나 중국으로 이어진다.





참 시스템 묘하다. 가네시 가는 차면 가네시 가는 사람을 태워 그리로 가야지 훈자는 뭔가? 물론 가네시를 들렸다 마을길로 해서 훈자로 올라가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한게 매우 나쁘다. 그래서 여기서 바로 훈자로 가겠다는 것이다. 나 하나만 조금 고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훈자 시스템인지, 아니면 파키스탄 시스템인지 모르겠다.

 

뜨거운 햇빛아래 그 조금은 족히 1키로가 넘는 듯한 거리였다. 게다가 라카포시 뷰포인트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으로 적당히 넘어갔기 때문에 조금은 시장기를 느끼는 지금 그 거리는 피곤하고 힘들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가네시 마을로 가는데 원래 그런 건지 오늘만 그런 건지 지나가는 차도 없다. 인심이 좋아 빈자리만 있으면 태워준다고 하는데,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어야 히치하이킹을 하든지 말든지…….

 

조금 내려가니 길가에 성황당 같은 건물이 있다. 정확하게 성황당인지는 모르는데 크기가 우리나라의 성황당만 하고, 위치나 지어진 품새가 그렇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비어있는 것 같다. 문화적 동질성(同質性) 같은 것을 찾아보고 싶어 흔적을 찾았지만 딱히 이거다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산 밑으로 사과나무가 있는데 새빨간 것이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시장기에 못 이겨 하나를 따 가지고 나무 그늘아래서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칼이 닫는 순간부터 느낌이 별 신통치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칼이 사과를 파고드는 순간 ‘사각’하는 느낌과 과즙이 튀어나오며 새콤한 사과향이 나야 할 텐데 그렇지가 못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입 베어 무니 ‘이건 아니다.’ 사과즙이 없이 퍽퍽하고 떫은맛이 입안에 퍼진다. 아직 덜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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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마을 앞의 다리를 파키스탄 육군 공병대가 건설했다는 기념탑.





사과를 던져 버리고 살구를 땄다. 살구는 딸 필요가 없다. 살구나무아래 가면 땅이 노랗게 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맛있어 보이는 놈을 주워 손으로 대강 문질러 먹었다. 살구는 역시 제철이라 그런지 맛있다. 대강 요기를 하고 가네시 마을로 들어갔다.

 

길깃에서 카리마바드를 거쳐 달려온 2차선 포장도로가 가네시 마을을 통과한다. 이 길은 내처 달려 소스트를 지나 중파국경으로 이어진다. 즉 KKH가 통과하는 마을이다. 마을 한 옆으로는 훈자 강이 탁한 빙하천으로 흐르고, 그 물속에 섞여있는 빙퇴석들이 강 양안을 깎아내려 강은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아래를 흐르고 있다. 가네시 마을을 지나면서 KKH는 높은 다리로 훈자 강을 넘는다. 마을에는 이 다리를 파키스탄 육군 공병대가 건설했다는 표석과 함께 작은 기념물이 있다.

 

길가에는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번듯하다고 할 만한 집이 있다. 가게도 있으며, 레스토랑이란 간판이 걸린 깨진 유리창의 건물도 있고, 또 'paka poshi paradise' 호텔 간판도 있으나, 이 호텔이 가네시 마을에 있는 지 ‘gulmit굴믿'에 있는데 여기에 안내판을 세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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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에 널려있는 흙벽돌, 새 집을 짓기위해 스스로 벽돌을 만들고 있다.






큰길에서 들어간 바로 뒷집부터는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도시계획이란 것은 생각이 없이 골목길은 구불거리고 별안간 끝이 나는가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어지곤 한다. 담이 없이 바로 건물의 벽인데 거친 돌을 거칠게 쌓아 벽을 만들었다. 사실 거친 돌이라는 게 바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들이다. 이것을 회색이 짖은 진흙 같은 것을 몰탈로 하여 쌓아 올라갔는데, 이것이 진흙인지 아니면 회색의 고운 빙퇴석가루 - 수로 주변에는 군데군데 쌓여있다. - 에 짐승의 배설물을 섞어 만든 것인지 확인해 보지는 못하였다.

 

대부분의 집들은 도로보다 약간 낮은 것 같은데, 문을 들어가면 먼저 염소 등 가축들이 있는 외양간이 있다. 그 옆으로는 땔감용 나무 같은 것이 쌓여있는 창고 같은것 위에 우리가 ‘미니이층’이라고 부르는 형식으로 그 위에 사람 사는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이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식의 미니이층이며 조금 높은 집이 있다 하면 그것은 역시 짐승이 있는 곳이 조금 높을 뿐이다. 사람의 주거공간이 2층으로 된 집은 몇 되지 않는다. 지붕은 평지붕으로 철근 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가로질러 놓고 지붕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붕은 무엇을 널어놓든가 하는 식으로 이용한다. 저 거친 벽 뒤에 어떤 벽이 있을까? 창문도 거의 없는 주거공간은 채광과 환기를 어떤 식으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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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마을의 골목길. 흔하고 흔한 것이 돌이라서 돌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쌓은 솜씨가 매우 거칠다.





파키스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읽은 김원장의 기행문에는 현지인의 집에 우연찮게 초대도 받았다고 한다. 또 TV 같은 데서 봐도, 계획 없이 초대받아 남의 집을 들어가기도 한다. 집안을 구경하고 싶어 동네아이에게 들어가 보자고하니 얼른 뛰어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지붕에 올라가 신기한 듯 나를 구경하며 웃는다. 거 - 참.

 

마을의 외곽으로 있는 몇 집은 마당 같은 것이 있는 집도 있다. 그러나 가옥의 형태는 단순한 일자형이다. 특히 마을의 끝집은 마당의 한쪽이 깎아지른 높은 벼랑이다. 한 50-60미터 아래 흙탕물이 무섭게 흘러가고 있다. 훈자 강이다. 아찔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한데 이런 상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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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걱정도 없는 듯한 가네쉬 마을 아이들.





마을의 어느 곳에선가 ‘왁짜-’ 하는 소리가 있어 골목골목을 돌아 찾아가니, 그곳은 마을의 중간 정도 되는 곳 같은데 유수지(遊水池)가 있다. 한 변의 길이가 한 15-30미터 정도 될까 하는 직사각형의 유수지에 물이 차 있다. 돌아가며 나무가 서 있는데 그 굵기로 짐작컨대 매우 오래된 유수지 같았다. 지하수로로 해서 빙하천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빠져 나간다. 마을의 샘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식수부터 생활용수 까지 모든 물을 여기서 가져다 쓴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빙하천의 물은 매우 차가운데 까만 물속에서 까만 아이들이 꼬질꼬질한 반바지를 걸치고 노는 모습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불러 사진을 몇 장 찍고 가지고 있던 사탕을 나눠주니 어느 골목에서 튀어 나왔는지 아이들이 거의 20여명이나 된다. 결국 늦게 나온 아이들은 사탕을 줄 수 없었다. 유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은 마을의 다른 곳의 집 보다 그래도 조금 사정이 나아 보이는 집이다. 지붕에 베란다 같은 것을 들이고 나름대로 나무를 조각하여 아름답게 꾸민 집도 있다.

 

가네시 마을을 나가려고 하는데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물탱크와 그 아래 파키스탄표가 아닌 건물이 보인다. 호기심에 문을 열어보니 타일을 깔아 깨끗한 실내에 반짝이는 수도꼭지가 쭉- 늘어서 있다. 건물에 붙어있는 화려한 간판을 보니 2006년 'NAPWD'라고 하는 곳에서 설치해준 정수시설이다. 그러나 사용한 흔적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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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 그러나 사용한 흔적은 없다. 대를 이어 내려온 이들의 생활습관을 외국인의 눈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방인의 눈에 아이들이 텀벙거리고 나온 유수지의 빙퇴석(氷堆石)이 섞인 물을 그냥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위생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해가 간다. 나도 훈자마을에서 길옆에 흐르는 빙하천(氷河川) 탁한 물을 그냥 퍼 마시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저 물을 아이에게 먹이나.” 했으니까. 그들은 이 마을 사람에게 깨끗한 물을 먹여 건강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훈자 사람들이 빙하천의 물을 먹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100세대가 넘은 먼 옛날부터다. 그리고 빙하천의 흐린 물속에 타지인들이 돈 주고 사먹는 천연 미네랄이 잔뜩 들어있을 수 도 있다. 훈자가 세계적인 장수마을인 것을 보면…

 

가네시 마을의 골목길을 누비며 비탈진 길을 한 삼십분 걸어 훈자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은 늦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문득 보니 훈자에 오면 꼭 먹어야 된다는 호두파이 파는 집이 있다. 호두파이 한 조각을 커피 한잔과 같이 먹었다. 창가에 앉아 멀리 훈자계곡을 바라보니 세상의 근심이 여기서는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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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마을 건너편 산허리에 이웃마을로 가는 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이러한 길은 수시로 보수하며 위에서부터 산사태가 내려와 순식간에 끈어지면 마을은 고립된다.





훈자에서 보는 경치는 모두 아름답다. 눈길을 어디로 돌리든지 세상에 처음 보는 신비한 풍경이다. 그러나 훈자 안에 있으니 이 풍경의 소중함을 모르고 당연히 보여야 하는 풍경으로만 생각된다.

 

호두도 훈자지방에서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살구와 함께 훈자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장수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훈자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대표식품으로 꼽히는 살구는, 살구 그자체도 건강식임은 틀림없겠지만, 훈자 사람들이 즐겨 먹고 그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살구씨’다. 그들은 살구를 말려서 저장하거나 판매하는데, 이때 살구씨를 모두 뺀다. 그리고 버리지 않고 쪼개서 그 속에 있는 진짜 살구씨 - 살구 배아 - 를 즐겨 먹는다. 어찌되었건 말려서 팔건, 잼을 만들어 팔건 씨는 모두 훈자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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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롬 산맥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가네쉬 마을, 멀리 흰눈을 머리에 인 파수피크가 있다.





복마니네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영월고등학교의 ‘이 선생님’이 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아래인데 활달한 성격이어서 금세 친해졌다. 모래 (7월 27일)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복마니에게 버스표를 구해달라고 했다. 원래 국경을 넘는 버스는 소스트에서 떠난다. 하루 전에 소스트 버스정류장에 가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소스트에서 자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9시에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복마니가 새로이 길깃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생겼다고 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스를 증차했다고 한다. 특히 길깃 출발 버스는 탁스쿠르간에서 1박을 하지 않고 밤새 달려서 새벽에 카슈가르에 도착한다고 한다. 일정이 훨씬 빨라진 것이다. 기존의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소스트에서 1박, 그리고 중국으로 넘어가 탁스쿠르간에서 1박을 하고 아침에 떠나 오후에 카슈가르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오기 전에 읽은 김원장의 여행기에서도 카슈가르에서 출발한 버스는 탁스쿠르간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국경을 넘어 오후에 소스트에 도착을 한다. 이때는 이미 교통편이 끊어져 여기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길깃이나 훈자로 떠나도록 시간표가 짜여 있다.

 

더구나 길깃 출발 버스의 가장 좋은 점은 버스표는 길깃에서 발권(發券)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카리마바드에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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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던 염소도 안녕.






이 선생은 며칠 더 있다가 중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복마니가 추천하는 ‘지프투어’를 하기로 했다. 이 선생 부녀도 둘이서 지프 한 대를 대절하기엔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셋에다 복마니네 있는 학생, 이렇게 하면 네 명은 되니까. 그런데 이 녀석이 문제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겠지, 지금 짐이 오지 않았으니 나중에 돈을 내겠다고 하지 않고, 돈이 없어서 못 내겠단다. 할 수 없이 둘이 반반씩 내기로 하고 복마니 투어를 하자고 하니, 이 선생이 셋으로 나누어서 내자고 한다. 복마니에게 내일 저녁에 닭백숙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멀베리 호텔로 내려왔다. 오늘 피곤한 정도로는 약간의 알코올이 피로회복에 좋을 듯한데, 파키스탄은 금주국가라 술을 구할 수가 없다. 훈자에 오면 ‘창’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막걸리 같은 것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복마니 왈 ‘못 구합니다’였다. 대신 뭐라고 하는 ‘오디주’가 있는데 뒤에 머리가 아플 수 있다고 한다. 나나 이 선생이나 머리 아픈 것은 싫다고 손사래을 쳤다.

 





*다음은 훈자의 비경 인디아나 죤스 다리와 보리스 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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