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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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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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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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16일

 

라호르에서의 첫날 - 라호르 포트에서 더위에 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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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호르 포트의 ‘다이완 이 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로비로 되어있다. 특히 줄지어 늘어선 붉은색 사암의 기둥은 간결하면서도 장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라호르 포트’는 무굴제국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악바르’ 황제가 1566년에 세웠다. ‘자항기르 정원’을 비롯하여 ‘거울의 궁전’, 90만 개의 보석으로 수놓은 ‘나울라카의 방’, 은으로 만든 문 등의 화려함이 눈길을 끄는데, 1981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파키스탄의 20루피 지폐 뒷면에 있다.

 

‘라호르 포트’는 100루피의 입장료가 있다. 성을 구경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기에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통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양쪽이 높은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적군이 성문을 통과한다 해도 성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의 일부 구간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계단의 폭이 한걸음에 딪기는 너무 넓었다. 이 계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코끼리들이 쉽게 계단을 올라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어떻게 이런 것이’ 라고 할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얕은 산언덕을 중심으로 성을 쌓은 것인지, 인공적으로 흙을 모아 만든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라호르’ 자체가 넓은 평야에 만들어진 도시이니 이곳에 특별히 산이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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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다이완 이 아암의 기둥들. 바닥은 벽돌을 깔고 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 여러 가지 다목적 행사에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잔디광장 왼쪽으로 흰색 단층의 건물이 있다. 앞으로는 고풍스런 대포를 몇 문 멋들어지게 거느리고 있으며, 길게 나온 천장에 넓은 홀을 가지고 있다. 홀에서는 넓은 정원을 한눈에 조망(眺望)할 수 있다. 아마 이 성(城)에서 군사적인 어떤 일이 있다면, 이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리고, 홀에서 볼 수 있도록 1.2미터 정도 되는 대(臺)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이다. 홀은 40개의 16면 붉은색 사암기둥으로 밭쳐진 높은 지붕으로 되어있어 더위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안내판에 보니 이곳을 ‘다이완 이 아암(Dewan-e-aam)’이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국민광장’ 또는 ‘민중의 홀’ 정도가 되겠다. 1631-33년에 ‘샤자 한’ 황제가 세웠다고 한다. 홀의 바닥은 벽돌을 견고하게 깔아 놓았는데 이 정도라면 처음 건물을 지을 때의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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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완 이 아암에서 안쪽 궁전을 통하는 작은 베란다. 베란다의 크기가 작은 것은 이 문을 통해서 다닐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홀의 뒤쪽으로 작은 베란다 같은 것이 달려있고 그리로 계단이 이어져 있다. 베란다는 작지만 매우 견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어 바닥은 붉은색 사암이며 기둥은 흰색 16면체 대리석으로 되어있다. 난간은 대리석 투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투각창의 모서리가 매끈한게 꽤 오래된 물건인 것 같았다. 추측컨대, 홀에서 어떤 행사를 할 때, 주인공이 이 베란다를 통하여 얼굴을 보이는 장소가 아닌가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성(城)의 안쪽이 나타난다. 이 ‘라호르 포트’는 군사적인 목적만 가지고 있는 성(城)이 아니라 왕궁(王宮-palace)의 역할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본 광장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소라면 ‘다이완 이 아암(Dewan-e-aam)’을 통해 들어온 이곳은 왕궁(王宮)지역이 되는 것 같았다. 앞부분에 비해서 훨씬 더 아름다운 벽과 천장 기둥은 보통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장식된 무늬들은 역시 무슬림 건축답게 꽃무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색깔로 보아 은(銀)이 아니면 적어도 은(銀)도금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곳을 ‘daulat khan-e-khas-o-aam’이라고 하는데 ‘다울라트 칸의 홀’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 나중에 론니 플래닛을 보니 이곳을 옥좌(玉座)라고 표시해 놓았다. 즉 왕의 집무실이 있었던 곳 같다. - 지금은 퇴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참모습을 복원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아직 보물(寶物)을 보물로 생각할 여유가 없는 ‘파키스탄’의 현재가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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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완 이 아암’의 안쪽 궁전 ‘다울라 칸트 홀’-황제의 집무실-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 낙서등으로 더럽혀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황제의 궁이었던 장소를 가슴아프게 한다.





홀(holl)에 서면 넓은 정원과 그 건너편에 몇 채의 건물이 보인다. 정원은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구성되었으며 무굴제국의 성(城) 답게 연못과 분수로 꾸며져 있다. 물을 이용하여 분수와 수로를 만들고, 그것으로 정원을 꾸미고, 그렇게 해서 남국(南國)의 더위를 식히는 슬기로운 건축술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특히 분수연못의 가운데에는 10여 평 정도 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꾸며져 있는데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황제와 그의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같이 아름답다.

 

정원의 건너편에는 역시 커다란 홀을 가진 평면지붕의 단층 건물이 있다. 일곱 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는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그 오른쪽으로는 특이한 모양의 지붕을 가진 작은 건물이 있는데, 외관상으로는 매우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그 오른쪽으로는 둥근 지붕의 망루를 포함하고 있는 건물이 있으며 그곳에 잇대어서 넓은 회랑과 같이 큰 건물이 이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건물의 오른편 지역이 ‘악바르 황제’가 거처하며 생활하던 지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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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울라트 칸’의 홀에서 보는 ‘자항기르 가든’. 무굴제국의 특징대로 사각형의 정원에 분수와 수로를 배치하여 남국의 열기를 식히는 아름답고 실용적인 정원이다.




건너편 큰 건물의 왼쪽으로도 망루를 포함하고 있는 건물과 역시 그곳에 잇대어 지어진 건물들이 이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커다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모양이 된다. 이곳을 ‘jhangir quadrangle’이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자항기르의 정원’ 정도가 되겠다.

 

정리하면 ‘라호르 포트’는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가 처음 세운 것이 되고 이 정원은 4대 황제 ‘자항기르’가 꾸민 것이 된다. 물론 앞서 본 ‘다이완 이 아암(Dewan-e-aam)’은 5대 ‘샤자한’이 만든 것이다. ‘샤자한’은 ‘건축왕’이란 별명이 붙은 황제로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만들었으며 그 절정은 ‘타지마할’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대 옆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건너가니 큰 건물과 작은 건물 사이에 안내팻말이 서 있다. 이곳이 ‘자항기르의 침실’이 되겠다. 그러나 그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지붕을 갖고 있는 작은 건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안에 들어가 보아도 역시 이렇다 할 특징이 없이 대리석 투각 창문에서 밖으로 내다보이는 경치만 좋을 뿐이었다. 또 한 가지 투각창(透刻窓)을 통하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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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항기르의 침실과 그 옆의 건물. 황제의 침실치고는 소박한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직 복원공사를 하지 않아 낡은 모습이다. 그러나 내부에는 하나하나 정성을 다한 모습이다. 작은 분수대가 침실의 앞에 있는데, 건물 내부를 식힌 물이 모이게 된 곳이다.




작은 건물 오른편으로 있는 또 하나의 건물은 ‘자항기르의 침실’과는 90도의 각을 가지고 세워졌는데, 세 개의 아치를 가지고 있는 전면 좌우측에 아름다운 창이 하나씩 있어 이 건물도 중요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창문은 다락방에 있는 것으로 약간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굴제국의 궁궐들은 ‘자항기르의 침실’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도무지 이것이 침실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벽(壁)이란 것이 없이 기둥만 늘어서 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한 번에 보일 뿐 아니라 홀(holl)과 방(room)을 구분할 수 없다. 이곳에 여러 가지 집기를 놓거나 커튼을 들이거나 해서 구획을 나누기야 했겠지만 아무리해도 우리의 생각으로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라이니 벽(壁)을 세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조각의 바람도 최대한도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배치가 이들 생활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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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항기르의 침실 기둥위의 장식-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아름답게 꾸민것을 볼 수 있다.





‘자항기르의 침실’에서 보면 역시 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도 작은 연못을 두어 열기를 식히고 있을 뿐 아니라, 건물의 한쪽에서 벽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건물 바닥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어 정원의 연못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우리는 구들을 놓아 따뜻한 열기를 흘려보내 방을 덥혔는데, 이들은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 방을 식혔다. 덥히고 식히는 차이는 있을 지언정 ‘구들’을 이용한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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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진 분수-무굴제국은 물을 다루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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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대리석에 조각을 하고 검은색 돌로 상감을 넣어 무늬를 꾸민 분수대의 모습





‘자항기르 정원’에서 왼쪽으로 넘어가면 - 회랑(回廊)과 같이 서있는 건물을 통과해서 - 다시 사방이 건물로 둘러진 정원이 나온다. 크기는 ‘자항기르’ 정원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이곳을 ‘샤자한의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의 모양이나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구성은 ‘자항기르 정원’과 비슷하다. 그러나 침실과 집무실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자항기르의 침실이 있던 해자(垓字)쪽으로는 ‘샤자한’의 개인적 접견실이 있다. 대리석으로 지은 깨끗한 건물로 역시 빈 공간과 같아 보일 뿐 이다.

 

‘샤자한의 정원’은 ‘자항기르 정원’보다는 작기 때문에 분수대와 연못을 만들지 않았다. 대리석으로 1미터 정도 높이의 대를 만들고, 그 가운데 작은 분수를 두어 보고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작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정원을 가운데 두고 그 건너편으로 ‘샤자한의 침실’이 있다. 흰색으로 꾸며진 벽과 아치형의 천장에는 꽃이 새겨져 있는데, 역시 은(銀)으로 추측되는 물질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문양의 사이사이에 거울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이곳도 깨끗하게 복원하게 되면 무척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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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자한의 정원과 집무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아담한 분수대가 아름답다. 데이트 나온 듯한 파키스탄 남녀들이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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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쟈한의 정원에 있는 분수대, 여인의 살결과 같다고 비유되는 흰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장식을 꾸몄다.





다시 그 왼쪽으로 담을 넘어가니 또 새로운 정원이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는 아직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파손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물론 청소도 되어있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가 숨겨져 있다. 여기까지 왔을 때 내 몸은 파김치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기진맥진 힘이 빠져 있었다. 엄청난 더위도 더위이지만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쉼 없이 다그친 덕분이다. 이번에는 천천히 해야지 하고 천 번을 생각했지만 꼭 현장에 오게 되면 욕심이 앞선다. 가방에 넣어둔 샌드위치를 꺼내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자리를 잡고 잠시 누웠다.

 

‘이번 여행은 꼭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다녀야지, 열린 생각을 가지고 현지인들과 더 많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여행을 떠나기 전 백번은 더 되뇌었던 말이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여 새로운 문물과 마주치게 되면 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었던가 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빨리 한 가지라도 더 보고, 경험하고 싶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왜 그럴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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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만의 공간 쉬시마할로 들어가는 문. 문의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파키스탄은 여행하기가 좋다.’ ‘파키스탄인 들의 친절함에 놀랐다.’는 등의 말들이 인터넷에 꽤 올라와 있다. 어떤 여행기에서는 어려울 때마다 적재적소에서 친절한 파키스탄 사람을 만나서 어렵지 않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개해 놓았다. 또 파키스탄 인에게서 대접을 잘 받았다는 등의 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 그것이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상황인지를….

 

잠시 쉬고 있자니 그래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관광객들이 지나쳐 간다. 열에 아홉 이상이 파키스탄인 이고 하나의 비율이 안 되게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현지인들은 입장료가 없는지 - 알아보지 않았다. - 남녀가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 온 사람들도 꽤 있다. 이들은 세계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좀 으슥한 곳을 선호한다. 또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늘진 장소를 찾아 아주 편하게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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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함의 끝이라고 표현할 쉬시마할의 거울의 방. 벽면장식이 모두 반짝이는 거울이다. 촛불 하나에도 방안이 밝혀질 수 있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만 몇 명씩 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큰 소리로 웃으며 아무 곳이나 함부로 간다. 또 외국인 관광객한테 말을 거는 부류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 ‘언제 왔냐?’ ‘사진 좀 찍어 달라.’라고 하는 것이다. 좋아 앞의 두 마디는 백번 양보해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또는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에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도대체 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요즈음은 디지털카메라가 많으니 찍은 것을 볼 수 있어 그 재미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아니다, 찍은 사진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보여주면 호기심과 탄성으로 들여다본다.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양의 사진을 찍어 주어야 한다.

 

또 결정적인 것은 같이 찍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들 카메라가 아니라 내 카메라로 - 처음부터 그들의 카메라는 없었으니까 - 찍자는 것이다. 싫도록 사진을 찍혔으면 그 다음은 아무 미련 없이 악수를 하고 바이바이다. 사진을 보내줄 수 없느냐? 이메일이라도 교환하자. 이런 대화는 없다. 왜 그럴까? 파키스탄인과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해도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파키스탄인 들은 천성적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지만 파키스탄 가족이나 여성을 잘못 찍으면 몰매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파키스탄 여행자들에게 주어지는 주의 사항이다. - 사실 파키스탄 여자들은 매우 위험한 폭탄과 같아서 멀리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내가 잠시 쉬고 있는 중에도 이런 파키스탄 젊은이들이 몇 패 지나갔다. 몇 번은 그들의 요구대로 사진도 찍어주었고, 몇 번은 ‘필름이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별 토(吐)를 달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때는 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때도 있다. 배낭여행의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고, 나이도 지긋한 나도 이런데, 아직 배낭여행 경험이 일천(日淺)한 젊은이거나, 여자들만 같이 온 경우라면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파키스탄인 들은 친절하다.’ ‘파키스탄인들 한데 이런 도움을 받았다.’라는 것만을 믿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래 쉴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치고 시간도 많이 지나갔다. 이쪽 부분은 여성들의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궁궐에서 내전(內殿)에 해당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정원이나 건물 또 방(Room)들은 보수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 붉은색의 벽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가하면, 구경하는 사람들도 일정한 길이 없이 제멋대로 얕은 담을 뛰어 넘어 다니고 한다. 그러나 황제의 힘이 살아있던 그 옛날에는, 정원의 한쪽 편에 있는 건물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거닐고 있는 황제(皇帝)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곳은 ‘여성들만의 공간(women’s quarters - harem)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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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복구되지 않았는데도 아름다운 색채가 그대로 살아있는 쉬시마할의 방





이곳에서도 복구의 연장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쉬시마할(Shish Mahal -거울궁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건축황제’라고 불리는 ‘샤자한’이 지은 것이다. 수백만 개의 거울을 가지고 벽면과 천장을 모자이크하였는데,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니 당시의 사치가 어떠했을까? 뿐만 아니라 거울이 아닌 곳에는 흰색 대리석에 옥, 마노, 사파이어, 루비 등으로 상감(象嵌)하여 꽃그림을 그렸는데 이러한 방(room)치장은 무굴제국의 특징이며 황제 ‘샤자한’의 특기이기도 하다. 라호르포트 높직한 곳에 대리석 투각한 벽으로 자기의 영지(領地)를 내려다보며 온갖 영화를 누리고 있었던 무굴제국의 황제들, 촛불 한 개만 켜도 수백만 개의 거울과 보석에 비치는 불빛 때문에 방안이 환했다고 하는데, 투각(透刻)된 대리석 벽을 통해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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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시마할의 아름다운 투각창(透刻窓). 질 좋은 대리석을 정교하게 파내어 만든 장인들의 솜씨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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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시마할의 아름다운 벽장식-대리석에 홈을 파고 색색의 보석을 상감해 넣어 만든 꽃그림. 호화스러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쉬시마할’은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여기저기 받침대와 사다리 등이 널려있어 그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카메라 밭데리가 끝나버리고 내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직도 황제의 부엌과 몇 개의 방, 그리고 성안에 남은 유물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남았는데 한발자국 재껴 디딜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끝을 내야 했다. 아마 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경사(傾斜)로를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성을 벗어나지 도 못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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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호트 포트에서 본 성 밖의 모습. 왕궁의 아래에는 방어공간이 있고, 밖에도 방어를 위한 진지(陣地)시설이 있다.





라호르 성 앞에서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지쳤으므로 오토릭샤를 흥정했다. 그런데 릭샤 요금이 처음 계획하거나 정보를 구했을 때보다 훨씬 비쌌다. 아직 파키스탄물을 덜 먹어서 그런지 릭샤 운전수들이 제멋대로 나를 가지고 논다. 숙소가 있는 ‘디펜스 G'블록까지 3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첫날 공항에서 숙소 갈 때도 300루피나 주었는데 외국인과의 흥정은 모두 300루피로 시작하나보다. 흥정이 안 되어 보내고 다른 릭샤를 기다리는데 이것 참 큰일 났다. 릭샤는 많은데 연료를 LNG로 쓰는 릭샤는 많지 않은 것이다. 아마 10대중에 1-2대 정도 될까. 디펜스 지역은 LNG릭샤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릭샤 운전수도 이것을 알아 나는 약점이 꽉 잡혔다. 몸이 너무 피곤해 할 수 없이 250루피에 흥정해 릭샤를 타고 코리아나 민박집으로 왔다.

 

민박집에 오니 사장도 없고 아무도 없다. 게다가 전기가 나가 세상천지가 모두 깜깜하다. 아래층 PC방으로 가니 파키스탄 직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겠다고 한다. 그보다도 우선 밥을 먹어야 하겠기에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하며 나왔다. 온통 깜깜한데 자가발전 하는 집에만 조그만 전구 한 개씩 켜져 있다. 현지인들이 가는 몇 식당을 가 봐도 ‘전기가 나가서 또는 시간이 늦어서’ 식사가 안 된다고 한다. - 식사가 아니라 내가 먹을 만한 음식 - 할 수 없이 제과점에 들어가 샌드위치 한 개를 사고, 건너편 과일 집에서 망고 쥬스를 사서 저녁을 때웠다. 보통이라면 쉽게 넘어가는 이 음식도 오늘은 참 힘들게 먹었다.

 

민박집에 돌아오니 그새 사장이 와 있었다. 근처에 선교활동 하시는 분집에 갔었다고 한다. 나하고 같이 나간 팀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겠다고 말해놓고 샤워한 다음 침대에 누웠는데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었다. 그래서 하루를 정리하는 녹음도 해 두지 못했다.

 

 

*다음은 자항기르 톰입니다.

 

1 Comments
시골길 2012.01.19 02:57  
자신의 1회성 경험을 일반화시키려 애쓰거나, 떠벌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요즈음 매체의 다양성과 광범위로 인하여....단순히'가본 곳' '한번 먹어 본 곳'이 어느 순간에 명소가 되고 소위 맛집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덜 알려진 곳을 여행한 경험담이라면 좀더 신중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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