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1편 칠라스로 가는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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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1편 칠라스로 가는길 2

Lucky 0 2512

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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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22일

 

칠라스에서의 첫째날 - KKH(Karakoram Highway)를 따라 칠라스로 가는 길 2

 

 

어느 곳에 버스를 세워 놓는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다. 억지로 정신을 차려 구르듯 버스를 내려가 보니 찬 기운이 엄습한다. 아직은 여명(黎明)이라 맑은 하늘엔 몇 개의 별이 보이고, 산등성이 스카이라인이 밝아오는 하늘아래 뚜렷이 보인다.

 

눈길을 발밑으로 두니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까마아득 계곡이 보이는데 흰 줄기 한 선이 뚜렷하다. 계곡물이다. 물이 얼마나 무섭게 흐르는지 아니면 파키스탄의 강물은 언제나 저렇게 흰 모양으로 보이는지, 구불구불 구비치는 강이 산 너머에서부터 이어져 와 눈에 보이는 곳까지 구불거려 다시 산 뒤로 숨는다. 내가 있는 곳은 해발 몇 미터인지 모르는 높은 산의 중허리쯤 되나본데, 아래를 보아도 나무 한그루 없는 모래와 돌의 산이요, 위를 보아도 역시 모래와 돌 뿐이다. 누가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 했는가? 모래를 가지고 탑을 쌓을 수 없다고 누가 그랬는가. 여기 파키스탄 칠라스에 와 봐라, 나무 한그루 없이 모래와 돌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이 얼마나 높게 솟아있는지를.

 

파키스탄에 와서도 이런 지형은 처음이다. 아니 내가 구경한 곳 중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이런 곳에 길을 어떻게 내었을까 불가사의란 이런 것인가 보다.

 

제법 시멘트를 사용하여 지은 그럴듯한 집 한 채와 거기에 붙여서 처 놓은 천막으로 보아 이곳은 군 검문소인 것 같았다. 파키스탄은 지역이 바뀌는 곳에 군 검문소가 있고, 외국인 여행자는 그곳에서 여권을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것은 비교적 통행량이 많고, 나름대로 여행자를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 서북변경주는 항상 불안하다. - 군 검문을 받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군인들은 보이지 않고, 건물에서 사람이 나올 기척도 없다. 운전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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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있던 간이식당. 매캐한 연기 속에서 오른쪽에 앉은 아이가 짜파티를 만들면 왼쪽의 청년이 굽는다.





여기서 옆에 앉은 파키스타니가 자리를 바꿔준다. 이들 일행은 네명 인데, 내가 가운데 보조의자를 놓고 앉는 바람에 두 패로 갈라져 있었다. 그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넷이 한군데로 모이더니 떠들고 장난질이다. 녀석들 그러면 진작 바꿔 줄 것이지 가운데서 얼마나 불편했는데, 그러나 그때는 그들도 잠을 자야 하니까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단지 자리가 편하니까 조금은 살 것 같다.

 

버스는 산굽이를 내려가는데 마치 한계령 구비 길을 한 대여섯 배로 크게 뻥튀기한 것 같은 스케일이다. 그러나 노폭(路幅)은 좁고, 길의 반은 포장이 되어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파손되었고, 나머지는 틀림없는 비포장 길이다. 여기 저기 파인 것은 이제 지적할 것도 못되고, 한 5분전쯤 떨어진 듯한 돌멩이가 군데군데 널려있다. 크기는 사람 머리통만 한 것도 있고, - 이게 제일 많다. 이것보다 작은 것은 아예 낙석으로 칠 수가 없다. - 그보다 큰 것도 굴러있다. 사실 설명을 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으므로, 그런데 내가 왜 사진을 찍어 두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물론 사진을 찍지 않은 이유도 알고 있다. 그것은 너무 긴장돼서 사진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거의 기어가는 속도로 지루하게 산을 내려간다.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 없다. 조용히 침묵으로 - 아니면 다시 잠들은 것인가? - 운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곳에서 운전수의 작은 실수는 곧 죽음이다. 버스가 길을 벗어난다면 천길 아래 계곡으로 처박히는 수밖에 없다. 계곡까지 100미터의 높이면 100미터를 1000미터의 높이 였다면 1000미터를 조금도 쉬지 않고 구를 수 있다. - 안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버스가 도로를 벗어나 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나무 등에 걸려서 그렇게 높은 높이를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곳이 한계령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여기서는 구르는 버스를 중간에 세워줄 아무런 것도 없다. 그냥 한 70도정도의 모래 경사면이다.

 

얼마큼 왔나. 한 구비를 돌아가니 그곳은 나무가 있다. 물이 호탕(浩蕩)하게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굵은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곳에 버스를 세우는데 파키스타니들은 당연히 그러하다는 듯이 줄줄이 내린다. 먹은 게 없으니 소변도 보고 싶지가 않아 따라 내리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한곳에 화덕을 걸어놓고 짜파티를 굽고 있다. 파키스타니가 여기서 아침을 먹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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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스쳐가는 트럭. 현대판 대상(隊商) 이랄 수 있는 트럭들은 운전사의 취향에 따라 기기묘묘하게 치장이 된다. 20-30대가 같이 움직이기도 하는 이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수출의 역군’이 되는 셈이다.





탄두리라고 하는 곳에 밀가루 반죽을 넣어 구어 낸 짜파티에다, 밀크티, 그리고 계란 후라이 한 개씩을 놓고 아침이라고 먹는다. 따로 테이블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으면 바구니에 짜파티을 가득 담아 가져다 놓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 조각씩 집어 들고 먹으면 되는 것이다. 밤새 시달린 탓에 정신이 몽롱하고, 엊저녁을 먹지 못했지만 도대체 배가 고픈 것인지 안고픈 것인지, 식욕을 알 수 없다. 물도 없어 밀크티 한잔에 미숫가루를 조금 타먹고 넘기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약간의 식욕이 동한다. 자리에 앉아 짜파티 한 조각을 집어 들고 계란 후라이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찌그러진 스텐 접시에 담겨온 계란은 후라이가 아니라 튀김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 했다. 성분을 알 수없는 기름이 줄줄 흐르고 있다. 짜파티로 계란을 잘라서 밀크티하고 억지로 먹었다. 그러고 나니 속이 거북한 게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났다.

 

처음 탄 버스에는 여자가 한명도 없었다. 파키스탄의 여자는 이런 장거리 여행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버스에는 여자가 한명 타고 있는데 서양애다. 역시 서양 남자애와 동행하고 있는데, 둘 다 파키스탄 고유의 의상인 펀자비를 입고 있다. 아마 커플로 해 입은 것 같은데, 파키스타니의 옷들이 단조로운 흰색이나 옅은 하늘색 비슷한데 비해 얘네들 옷은 벽돌색 계통으로 제법 어울리며 맵시가 났다.

 

버스에서 둘이 꼭 붙어있고, 짙은 애정표현도 서슴지 않고 해서 - 서양 애들은 이런 것에 버릇이 없다. 도대체 남의 문화를 존중할 줄 모른다. 파키스탄에서는 여자가 남자와 같이 타는 것조차 꺼리는데, 별짓을 다한다. - 친밀한 사이인 줄 알았다. 아침 먹는데, 남자애는 버스에 남아서 자고 있고, 여자만 내려서 혼자 앉아 있기에 같은 외국인으로서 말을 걸었다. 여자는 호주인 이고 남자애는 덴마크인 이다. 인도에서 국경을 넘을 때 만나서 지금까지 같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헤어질 때 까지 같이 다닐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먼 훗날 우리도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성풍속으로 그들의 성풍속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부럽기도 했다?

 

정말 휴게소 같지 않은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또 깜짝 놀랄 만한 가격을 -20루피 - 내고 버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여기서 버스운전수가 바뀌었다. 어제부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운전수 전통의 복장을 입고 있던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그 옆에 앉아있던 얼굴이 동그스름한 친구가 운전대를 잡는다.

 

한곳에 이르렀는데, 버스가 어느 트럭 뒤에 자리를 잡고 선다. 이상하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내리려 하지 않는다. 이런 때는 눈치 빠르게 현지인을 따라야 한다.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니 길이 엉망진창이다. 버스는 벌써 시동을 끄고 장기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참 뒤에 반대편에서 트럭들이 오기 시작한다. 호화스럽게 치장한 높직한 파키스탄 트럭의 행렬이다. 짐을 잔뜩 실었는지 바퀴 구르는 소리가 묵직하고, 속도 또한 묵직하게 지나간다. 한 대, 두 대, 세대… 트럭의 행렬은 끝이 없는 듯이 이어져 20대는 분명히 넘었을 것 같았다. 현대판 카라반-대상(隊商)―들이다. 옛날엔 이 길을 낙타나 말 등에 짐을 싣고 이동하던 카라반들이 똑같은 길을 트럭으로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 파키스탄과 중국을 있는 트럭 대상들은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나 길깃에서 중국의 카슈가르나 탁스쿠르간을 왕복하며 무역을 한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주로 농산물을 싣고 중국으로 가며, 중국에서는 공산품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 국경무역은 철저한 물물교환으로 가져간 물건의 값어치만큼 물건을 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항상 공산품이 부족해서 물건이 모자란다고 한다. 작게는 10여대, 크게는 30-40대 까지 행렬을 이어서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을 한다고 한다. 정말 현대판 카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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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가 나고 있는 현장을 빠져 나가는 장면, 오른쪽으로는 자갈더미 같은 흙이 밀려내려오고 있고, 머리만한 돌이 계속 굴러 떨어지고 있다. 실감나게 나왔을려나?





운전사는 군데군데 트럭운전수에게 정보를 얻는다. 그러더니 트럭의 행렬이 지나가자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빠져 앞으로 나간다. 큰 차, 작은 차, 버스, 트럭, 승용차까지 엄청난 숫자의 차들이 주차해 있다. 품새로 보아 앞쪽에 주차한 차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앞쪽에 교통을 통제하는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니 그 사람이 길을 비켜준다. 한 200미터 정도의 길이 계곡 위쪽에서 쓸려온 모래와 자갈로 덮여있다. 10여명의 사람이 삽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뭐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도로위의 자갈들을 피하거나 바퀴로 깔아 넘어가면서 전진하던 운전사는 순간 심각한 결정을 하는 듯싶더니 버스를 모래더미위로 돌진 시킨다. 그곳은 아직 산사태가 끝나지 않아 물과 반죽이 된 모래가 도로를 휩쓸며 흘러가고 있었다. 차안은 조용하며 알게 모르게 부여잡을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같았다. 바퀴를 집어삼키는 모래와 싸우며 악전고투 운전대를 기가 막히게 좌우로 돌리며 가장 위험한 지역을 빠져나오는 순간 차 안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정말 환호와 섞인 우레와 같은 박수였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으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되! 어쩌면 운전수는 쓸데없는 치기(稚氣)로 여러분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었다고. - 아마 선진국이라는 서양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에 뛰어들어 멋지게 헤쳐 나온 운전수는 차안에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의기양양했다. 생각건대 아까 아침을 먹은 후 부터가 정작 뱃장이 필요한 운전구간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베테랑인 운전사가 교대를 한 것인 듯.

 

버스는 비슷한 산사태 지역을 두 번 더 지나고, - 그러나 앞엣것에 비하면 이것은 어린애들 모래장난 같았다. - 두 번, 세 명의 외국인은 검문소에 내려서 여권을 등록하고 10시쯤 칠라스에 도착했다. 버스는 칠라스행이 아니라 나만 내려주고 휑하니 가 버렸다.

 

여기가 칠라스다. 그러나 지도상에도 동그라미로 나와 있는 칠라스 마을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KKH도로를 따라서 집 몇 채가 있는 정도다. 내가 잘못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흙먼지 일어나는 길가에 배낭을 깔고 앉아 지도를 찾아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지금 버스가 지나온 쪽으로 카라코람인(Karakuram inn)이 보인다. 론니에 ‘칠라스에서 중급의 호텔’로 나와 있는 곳이다. 아까 외국인 등록을 한 검문소 부근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KKH를 따라 이어져 지금 내가 내린 곳이고, 한 갈래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된다. 그러니 칠라스 마을은 언덕 위쪽으로 한 300미터 내지는 5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 저렴한 GH가 몇 개 있다.

 

길은 가방을 끌고 갈 수 없는 곳으로, 이 가방을 메고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힘들어 조금 비싸다해도 ‘카라코룸 인’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버스 정거장을 돌아보니 썰렁하기 그지없는 곳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있다. 음료수를 한 병 사 마시며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저기 군인들이 둘 셋씩 짝지어 있다. 나이가 좀 들지 않았나 하는 얼굴도 있고, 아주 앳된 얼굴도 있는데 모두 총들은 소지하고 있다. 엉성하게 서 있는 모양이 무슨 작전 때문에 근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쉬는 것은 정녕 아니고, 이동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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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라스 카라코롬 인, 노선버스가 지나가는 간선도로에 있어 위치가 좋다. 다른 사람의 기행문을 보니 거의가 이 호텔에서 묵었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에서 였을 거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눈의 아이들을 이끌고 조금 걸어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마당에는 군인 두 명이 의자를 놓고 앉아있다. 그러나 무료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올려다보았을 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배인을 찾아 방을 달라고 하여 들어갔다. 방값은 250루피, 비싸다고 하니 자기네는 호텔이라고 한다. 1층에 있는 방으로 뒤쪽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언덕 아래로 흐르는 인더스 강이 보인다.

 

식당에 가니 언제 손님을 받아 요리를 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시스템이 죽어있다. 주방장이 나와서 주문을 받는데 전기가 나가서 되는 요리가 없다. 할 수 없이 밥과 야채를 - 오이 토마토 양파하고 이름을 말해서 - 주문하여 가져간 고추장에 비벼서 억지로 먹고 침대에 쓸어져 잤다. 도저히 제대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생각은 밤새 버스에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일단 한잠 자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괜히 델리케이트한 생각이 떠오른다. 정말 먼 파키스탄 오지(奧地)에서 몸이 아프니 서럽다.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사람 없으니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럴 때 느끼는 것이 객수(客愁)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어 한잠 자고 일어나니 2시가 넘었다.




* 다음은 칠라스의 암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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