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13편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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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13편 히치하이킹으로 돌아오다

Lucky 0 1980

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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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 전편 로터스 요새의 뒷부분 일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업데이트가 안됩니다. 부득이하게 13편의 앞 부분에 덛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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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와리 게이트(Chandwali Gate)’ 성문 너머로 보이는 ‘샤히 모스크(Shahi Mosque)’ 이 모스크는 높은 축대위에 건축되어 있어 모스크의 기능 외에도 다른 기능도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찾아본 기록에는 이곳에는 12개의 성문과 58개의 보루(堡壘)를 쌓았으며, ‘라니 마할(Rani Mahal)’등 몇 개의 기록할 만 한 방이 있다고 하는데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소홀게이트’ 부근 말고는 ‘마할(Mahal)’이라고 불릴 만한 방(room)이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성의 대부분이 비어있는 상태이고, 현재 민간인의 촌락이 있는 곳은 처음부터 왕실의 거주처가 아닐진대, 이 성에는 처음부터 왕궁으로 사용될 영구적인 건물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즉 팔레스의 기능이 제한되었던 성(fort)이 아니였을까 생각 한다.

 

이 요새는 ‘슈리왕’이 건축을 시작했으나 왕은 진정한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훗날 이 요새는 왕과는 그렇게 앙숙관계였던 무굴제국의 ‘후마윤’이 다시 이 지역을 아우르며 황제에 재(再) 복권되자, 무굴제국에 의해 계속 완성되어 갔다. ‘후마윤’ 이후 ‘악바르’나 ‘자항기르’도 이 요새에 머물며 정치를 하며, 페샤와르와 라호르 사이의 중요한 군사적 기지로 계속 보강을 해 갔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Chandwali Gate, Talaqi Gate, Gatali Gate, Sohail Gate와 Sher Shah Suri Museum등 요새 전반에 대해 복원공사가 있었다. 또 로터스성 주민 삶의 질 개선(Rohtas Fort village 의 quality of life) 사업을 착수하여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과 같이 많은 주택을 현대식으로 개량하고,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성안에서 농사를 짓고 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혹시 구글등에서 로터스 성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인터넷에서 구한 로터스성의 좌표를 적어 놓는다. 좌표 : N32 57 45 E73 35 20

 

 

* 다음은 히치하이킹으로 라왈핀디로 돌아 오다입니다.










 

2007년 7월 20일

 

라왈핀디에서의 둘째날 - 파키스탄에서 히치 하이킹-라왈핀디로 돌아오기

 

‘찬드와리 게이트(Chandwali Gate)’에서 로터스성 관광을 마치고 주차장 쪽으로 내려왔다. 다행이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길이 있어서 쉽게 내려왔는다. 내려 오는 길가에 한 개의 무덤있는데, 무덤의 관곽(棺槨)을 이불 같은 천으로 덮어 놓은 것이 눈길을 끌다. 이슬람식으로 해석하여 높은 지위의 사람이거나 아니면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이려니 생각했다.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 성문의 이름 ‘샤 찬드와리 게이트(Shah Chandwali Gate)’는 성자 ‘샤 찬드와리(Saint Shah Chandwali)’를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성인은 성문이 완성되기 전 사망하여 성문 옆에 묻혔다고 한다. 아마도 이 무덤이 그의 무덤이 아닌가 한다. 또한 12개의 성문(Gate)은 각각 성문(城門)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모스크, 회의장소 등 각각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쓰였고, 각 성문마다 볼거리가 있는데, 미처 정보를 확보하지 않고 로터스성을 가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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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찬드와리(Saint Shah Chandwali)’의 무덤이 아닐까 추측한 포스가 느껴지는 무덤. 무슬림의 무덤은 모두 머리가 메카를 향하여 있다.





주차장으로 왔다. 다시 음료수를 한 병 사 마시며 눈치를 보았다. ‘디나’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에 있다고 하였고, 아까 성문에서 보았을 때 오토릭샤 한 대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내려와 보니 어디를 갔는지 없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주차장에는 몇 대의 자동차가 서 있었는데 잘 하면 얻어 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눈치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남자 세 명이 내려와 자동차 시동을 건다. 조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디나까지 태워다 줄 수 없겠냐?’니까 흔쾌하게 타라고 한다.

 

파키스타니의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국식 눈짐작으로 보아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세 사람 중 뒷좌석에 탄 사람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다. 그러나 신분은 그렇지가 않은 듯 앞에 탄 두 사람은 옷이나 피부 등이 깨끗하고, 뒤에 탄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눈치로 보아도 확실히 뒤에 탄 사람이 꿀리는 듯 했다.

 

그들은 주도로로 나가서 오른쪽 그러니 ‘디나’의 반대방향으로 갈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몇 키로를 돌아 ‘디나’에 그것도 버스가 서는 장소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서 갔다. 나에게 진짜 물질적 도움을 준 최초의 파키스타니였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별로 기분이 좋았을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매우 거드름을 피웠고, 또한 내가 여자였다면 아마 수작을 걸어왔거나, 아니면 또 다른 흑심(黑心)을 품었을 만 했다. 아니 꼭 여자가 아니라, 젊고 싱싱한 남자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니 파키스탄에서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자가용을 얻어 타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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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완벽한 요새였지만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무너지고 있는 성벽.





로터스 요새는 처음부터 외국인이 혼자서 갈만한 곳이 못 되었다. 성곽의 길이가 4킬로미터나 된다는 넓은 지역을, 12개나 된다는 성문(城門)을 특별한 목적이 없이 잠시 훑어보기 위해 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꼭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디나에서 뚝뚝을 타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했다. 나올 때의 교통편과 시간의 낭비를 생각하면 이편이 경제적이다. 또한 뚝뚝 대절비를 많이 깍기보다는 로터스요새에서 충분한 시간과, 중요한 성문까지의 이동을 옵션에 넣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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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쁜 추억을 만들어준 운전수와 그의 버스, 차장녀석의 사진은 어디 갔지?





‘디나’에서 라왈핀디 쪽으로 가는 버스는 많았다. 그러나 교통망을 잘 몰라 ‘스완 버스스톱’으로 가는 교통편을 찾으니 그것은 쉽지 않았다. 한 차장이 스완을 간다고 타라고 하기에 캐묻지 않고 타고 보니 올 때의 모습과는 다른 도로로 가고 있다. 차장 녀석이나 운전수가 실실거리며 웃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차장 녀석이 외국인은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고 한다. 까불지 말라고 일축하고 여권은 꺼내지도 않았다.

 

장거리 버스표를 살 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기도 한다. - 내 경우에는 치트랄 표를 살 때 매표소에서 여권 번호를 적었다. - 그러나 없어도 표를 사지 못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런 버스에서 여권요구는 무시해도 된다고 한다.

 

‘스완’이라고 내려주는 곳은 올 때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여기는 ‘스완’이 아니라고 해도, 맞는다고 주장한다. 조금 말다툼을 하며 옥신각신 하다가 운전수와 차장의 사진을 찍고, 버스번호도 찍고 폴리스한테 이른다고 소리를 치며 내렸다. 여기도 ‘스’이란 곳은 맞다. 그러나 아침에 버스를 탄 ‘스완’이란 곳은 여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할 수 없이 다른 버스에 ‘스완 버스스톱’가느냐고 묻고 있는데 나무아래 있던 한 파키스타니가 나의 위기를 도와주려고 나타났다.

 

“어디 가려고 하니, 내가 도와줄게.”

“고맙다. 나쁜 차장 때문에 내가 갈 곳을 못 갔다. 스완 캠프를 찾아가는 중이다.”

“저쪽으로 걸어가면 되는데, 거기는 왜 가려고 하냐?”

“거기에 가서 ‘파퓰러 인’이란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다. 나는 거기에 묵고 있다.”

 

‘파퓰러 인’의 명함을 보여주니 그는 자기가 다른 차를 잡아 주겠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뒤 미니버스를 태워주며 운전수가 내려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운전수에게 어디 어디 위치를 알려주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에 보다 더 빨리 ‘파퓰러 인’ 들어가는 로타리에 내려준다. 게다가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며 ‘저리로 곧장 가면 파퓰러 인이 된다.’고 알려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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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낮익은 파퓰러 인 골목길 도착.





인터넷 정보에서 로터스요새 갈 때 ‘어떻게 가야하는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쓰여 있다. 그것은 ‘디나’가는 버스를 어떤 것을 타는가에 따라 다르게 갔다 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버스터미널에서 디나행을 탔는지, 아니면 간선도로 정류소에서 디나행을 탔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다음에 갈 사람은 이 점을 생각해서 계획을 세워야 겠다. 나중에 여행기를 보니 이곳은 ‘파자바드(Fajabad)’ 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기에서도 많은 버스가 디나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더운물이지만 샤워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페샤워르로 강행하여 처음의 계획대로 스왓 계곡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슬그머니 후퇴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정말 쥐죽은 듯 조용하였다. 조용하다가 아니라 ‘괴괴(怪怪)하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지난번 인도에 갔을 때,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아요디아’를 결국은 가지 못했다. ‘아요디아’는 힌두계와 이슬람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역으로 수시로 총격전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복수극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도로 떠나기 직전에도 아요디아에서 총격전 끝에 2명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때로는 용감한 듯 흰소리를 늘어놓아도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고, 죽고 싶지 않은 것은 남들과 같다. 그래서 결국 아요디아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돌아와 시간이 지난 후엔 또 후회를 하였다. 언제 다시 인도를 갈 수 있다고 기회를 버렸을까 하고. 오늘 파키스탄에서 다시 그런 고민에 쌓였다. 다시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라왈핀디 파퓰러 인에 있습니다.”

“네 무사하신 거죠.”

“나는 아무일 없이 잘 있는데 아프가니스탄 일은 무사히 해결이 되었습니까?”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는 것이고, 하여튼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페사와르나 스왓 쪽으로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꼭 안 된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매우 위험합니다. 그리고 대사관에서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판단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지만 다른 쪽으로 가시기를 권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칠라스’를 갔다가 ‘길깃’쪽으로 가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참 그런데 선생님 ‘중국인’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칠라스 쪽으로는 지금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이점 유념하십시오.”

 

대사관은 항상 사고가 없었으면 하며 안전위주로 말할 것이란 걸 알지만, 나는 또 용기를 잃고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말았다.

 

“그래 둘이라면 그래도 해볼 만하지만, 달랑 혼자서 위험에 맞선다는 것은 좀 그렇지…….”

 

사장에게 길을 물어 버스터미널에 갔다. 내일 ‘칠라스’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길깃’은 오히려 버스가 많아도 중간도시인 ‘칠라스’는 적었다. 파키스탄의 시외버스 체계는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인가보다. ‘길깃’가는 버스에 중간인 ‘칠라스’가는 사람이 타도되련만 그렇게 안 된다. ‘칠라스’가는 사람들은 한 버스를 타고 모두 칠라스 까지 가야한다.

 

“칠라스! 내일 오후 몇 시에 있냐?”

“엉! 칠라스는 내일 오후 5시에 있다.”

“또 다음 버스는 몇 시냐?”

“아니 그것 하나다. 더 이상 없다.”

“버스는 어떤 거냐? 빅 버스냐?”

“그래 빅 버스다 편안하다. 다음날 아침 9시에 도착한다.”

 

칠라스 까지 16시간. 버스가 불편하다면 죽음의 시간이다. 좋은 자리를 부탁해서 받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내일 아침에 탁실라 가는 교통편을 물어보았다. 역시 우르드어로 메모를 해 주며 자세히 알려 주었다. 내일 오후에 체크아웃 하겠다고 하였다.

 




*다음은 탁실라 뮤지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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