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바가지
착한 바가지 <by 첫 휴가, 동남아시아>
루앙프라방<라오스>에 밤이 내리면 메인 도로인 시사방봉 거리에는 차량이 통제되고 야시장이 펼쳐진다. 뭔가 살 것이 없더라도 시장에서 느끼는 사람 사는 냄새가 좋아 자주 기웃거린다. 그곳에서 나는 물건 파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군것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에는 활기보다는 한가로움이 흐른다. 긴 세월 흥정이라고는 못 해봤을 것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고산족 할머니,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여인, 잠든 아이에게 부채질을 하는 어린 누이. 누구도 물건 하나 더 팔아보겠다고 달려들지 않는다. 물건에 가격표를 붙여 놓지 않았지만 그들이 불러주는 가격은 왠지 수긍이 간다. 속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정직한 가격 같기도 하고, 좀 속여도 괜찮을 텐데 싶은 착한 가격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모로코를 여행할 때가 떠오른다. 모로코의 상점에서도 가격표 따위는 구경도 못 해본 건 마찬가지이지만, 상인들이 가격을 부를 때면 매번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슈퍼마켓에 세 번이나 들러 같은 과자를 샀는데, 갈 때마다 매번 가격이 달랐다. 불안한 정세에 출렁이는 환율이나 유가보다 더 높게 널뛰기하는 과자 값에 매번 어이가 없었다.
그와 달리 루앙프라방의 시장에서는 웬지 속아주고 싶을 만큼 착한 얼굴로 그럴 법한 가격을 부른다. 그럴 때면 사지도 않을거면서 물어본 게 괜히 미안해진다. 혹시라도 무언가 사야 할 때는 그들이 처음 부른 가격에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얕은 흥정 따위 하지 않고 그들의 ‘착한’ 바가지에 착하게 속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