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기 - 절반의 성공
드디어 별볼일 없는 저의 3700키로 라오스 남쪽 오토바이 여행기가 끝났습니다.
북쪽 오토바이 여행을 한 지 2년만입니다.
여행기를 재미나게 써보고자 속어나 말장난을 섞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저는 몽상가이자 은둔자입니다.
혼자 조용히 숨어사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거의 사람도 안 만나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물론 라오스생활 몇년 동안 교류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생존을 할려니 여행업을 하게되었고, 제 업을 알리자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손님 맞이를 소흘히 하진 않습니다. 성격과 업은 별개니까요.
그동안 혹시나 제 글이 눈에 거슬린 분이 계시면 사과드리고
미천한 제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이 계시면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구도자의 길' '월든 호수'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스콧 니어링과 헨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타샤 튜더의 '나의 정원' 등을 읽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살리라...
그래서 은둔의 땅 라오스에 오게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하지만 여기도 산업화에 물들어가고 있고
먹고살려니 은둔자가 은둔의 나라에 왔지만 은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입니다.
오래된 미래 출판사에서 출간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 있는 운둔의 마을
혹독한 기후와 농사짓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동하고 검소하게 살며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실천했던 라다크인들은 1000년 넘게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들은 빈부와 탐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축에게도 노래를 불러주는 순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독일의 칼 막스가 주창한 공산주의 이론
즉 공평한 분배를 통한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이루자는 이론을
이미 1000년 전부터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고 서구식 개발이 진행되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인플레이션과 실업자가 생기고
서구문화에 대한 맹목적 선망이 생기면서 사회적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라오스 또한 라다크와 마찬가지로 급속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라오스가 발전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고 라오스인들도 잘살아야되겠지만
지금의 순수함이 퇴색되어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라오스를 좋아하는 것은 때묻지 않은 '오래된 미래'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라오스가 제2의 라다크가 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저는 다시 라오스를 떠나 또다른 '오래된 미래'로 떠날 것입니다.
<그대의 미래를 알려면 현재 그대의 모습을 보라> - 파드마 삼바바
라오스인들의 상품은 그들만큼이나 소박하다.
메뚜기 몇다발, 오리알 몇개, 산에서 따 온 버섯 몇접시, 땅에서 캐온 이구아나 알 한꾸러미
거기에 개구리 한다발
차에다 불상을 모시고 불전함을 싣고 마을마다 다닌다.
그러면 불심이 깊은 라오스인들은 경건히 두 손을 모은 후 불전함에 시주금을 넣는다.
비엔티엔을 향해 마지막 박차를 올린다.
라오스의 찻길은 한적해서 좋다.
남늠댐에 가까워지자 물고기 훈제나 건어물이 보인다.
아이스박스에 라오스어로 빠(생선)숟(훈제, 익힌) 이라고 쓰여있다.
여행중일 땐 몰랐는데 집에 도착해 긴장이 풀려서인지 손바닥이 무지 아팠다.
그래서 보니 굳은살이 박히고 물집이 잡혔다.
겨우 오토바이 몇천키로 몰고 이지경이면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할 계획인데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내 계획은
태국 오토바이 일주
베트남 오토바이 일주
미얀마 오토바이 일주
캄보디아 오토바이 일주
인도대륙 오토바이 일주다.
누군가 그곳에 산이 있어 오른다 했던가
나는 그곳에 길이 있어 떠난다.
인생은 곧 여행이니까.
Written from dream over flow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