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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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3> '콰이강의 다리',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한국인

연윤정 0 2771
<동남아여행기3> '콰이강의 다리',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한국인

난 오래전부터 이상하게도 수상시장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냥 참 매력적인 것 같았다. 배를 타며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밥도 먹고, 수다도 떤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TV에서 소개되거나 친구들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서 그곳을 동경하곤 했다.
비단 수상시장만이 아니었다. 영화 '애나 앤 킹'(왕과 나)을 보면서 뭉쿳왕의 그 타일랜드에 얼마나 가고 싶어했던가. 뭉쿳왕이 황금빛 왕좌에서 신하들에게 호령하거나, 그곳에서 성큼걸어내려와 애나와 멋드러진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설레었지.
그냥 태국은 늘 신비한 모습으로 가슴속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은 늘 뒤로 미뤄왔었다. 귀한 만큼 나중에 꺼내먹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그래서 늘 이런 마음을 먹곤 했다. "언젠가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꼭 태국으로 갈테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느덧 나이 서른. 내가 언제 결혼할 지 어떻게 알아? 아니, 어쩌면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태국엔 언제 가보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선택한 루트였다. 히히 ^^
모터보트를 타고 수상시장이 열리는 지역으로 일단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물 위에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노 젓는 배로 옮겨 타 본격적인 수상시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각종 기념품, 모자, 과일을 파는 것은 물론, 국수나 밥을 팔기도 한다.
배 위의 여행자가 어느 상점의 물건에 관심을 보이면 노 젓는 이가 그곳에 배를 댄다. 그러면 가게 주인과 흥정을 하고 물건을 사면 되는 거다. 나도 수상시장을 상징하는 수상시장 배 모형을 2개나 샀다. 2개 사면 깎아준다길래... (하지만 이 것 역시 바가지였어. 아, 태국에서의 바가지는 진짜 심하다. 다들 조심하시길!)
다음 코스는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영화에서 보던 그 다리를 눈 앞에서 보니 느낌이 남다르다.
콰이강의 다리란 게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와 인도를 침략하기 위해 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연합군 포로와 태국인들을 동원해서 만든 다리가 아닌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연합군 포로들이 죽어갔는가.(태국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 철도를 '죽음의 철도'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런데 참 이상했다. 태국인들이 그 콰이강의 다리 근처에 세워놓은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좀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일본군은 침략자고 포로들을 가혹하게 죽였다. 그 과정에서 태국 사람들도 숱하게 동원됐고. 그렇다면 적어도 박물관은 그런 관계를 분명히 보여줘야 할텐데, 뭐랄까, 그냥 당시 있었던 사건에 대해 평면적으로 늘어놨다는 느낌? 예컨대 당시 다녔던 기관차를 전시해놓으며 연합군 각국의 국기와 일본기가 나란히 매달려 있는 것 하며, 또는 일본기가 내걸려진 '박물관'이 따로 조그맣게 마련돼있는 것 하며... 일본을 특별히 비방하지도 추켜세우지도 않는 모습...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은 일본군 편이었다! 당시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아래서 태국은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고자 했던 것이다. 식민지가 되지 않는 대신 그들에게 길을 빌려줬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버마, 인도 침략의 발판으로 죽음의 철도가 놓여졌으며, 태국은 거기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태국은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력했던 것은 아니다. 뭐랄까, 가급적이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할까? 이런 이유로 일본이 패전해서도 태국은 패전국이란 이미지가 남지 않았던 것이다. 태국의 '중립외교'의 전통이 2차 세계대전에서도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콰이강의 다리를 바라보는 태국인의 심정이 특별히 누구의 편도 적도 아니라고 웅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콰이강의 다리에서 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말았다.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를 적어놓은 기념비가 있다. 뭐 이런 식이다. 미국 0만명, 오스트레일리아 0만명, ... 일본... 어쩌구... 등 연합군과 일본군 사망자 수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분명 우리 '한국'이란 표시가 눈에 띄는게 아닌가! 이렇게 말이다. "JAPAN·KOREA 5만명"
당시 한국인들, 일본군으로 그 멀리 동남아시아까지 와서 죽음의 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그렇게 사망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한국'으로 묶여있는 이상 정확히 한국인 사망자가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 난 참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인'을 따로 표시해 주어서 말이다. 어쩌면 영원히 묻혀버릴지도 모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 한국인들에 대해 말이다. 남모르게 그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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