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뜨거워야 한다
뜨겁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것 조차 즐거울 일이다.
간혹 뜨거워지기 위해 서두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사고도 겪게 된다.
그러함에도 물은 뜨거워야 한다.
뜨거움은 팍송 시장에도 고스란히 묻어있어서
모처럼 장만하는 새옷을 사면서도
좌판 아주머니들의 가락에도
아침부터 서둘러 몇시간을 달려온 고단함에도 남아있다.
물은 더 뜨거워야 한다.
그래야만 녹일 수 있다.
사람 사이의 벽을 녹일 수 있다.
온갖 구분으로 쌓여져 있던 벽을 녹일 수 있다.
뜨거운 물 만큼은 사람이 만든 사람의 벽이 무의미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인 이유로 평등하다는 것을 물은 이미 알고 있다.
새해가 시작하는 지금 만큼은 벽이 녹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물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녹고 남은 잔재는 물이 깔끔하게 처리해 줄 것이다.
열기는 이곳 특설무대에서도 타오르고 있다.
비록 자본의 논리가 만든 장이기는 하지만
이날의 물은 논리마저 녹여버린다.
물은 감탄사만 남기고 언어마저 녹여버린다.
물은 본능만 남기고 작위스러운 모든 것 마저 녹인다.
그러함에도 물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본능만 남겨두고 모두 태워야 한다.
아직 태워야하고 태울 것이 남았으니 물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4월 한낮의 무더운 햇살보다 물이 더 뜨거워야만
아직 남아있는 사람사이의 벽을 녹일 수 있다.
해마다 이 무렵에 이렇게 만큼 이라도 벽을 모조리 녹여야 한다.
물의 열기는 한 밤까지 이어진다.
거리 점령은 낮보다 더욱 진지해져서
오가는 차량을 막고 함께 물을 맞으며
어쩌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를 벽을 녹인다.
그 밤이 아무리 길고 어둡더라도
그 벽이 아무리 높고 두껍더라도
물은 모조리 녹여낸다.
이제 남은 것은 본능 뿐
벽이 없는 세상을 즐기는 유희뿐
물이 뜨거워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이 밤이 지나면 되돌아 가겠지만
또 벽이 쌓이고 구분이 지어지겠지만
오늘 만큼은 물이 뜨거워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밤을 끝으로 다시 벽이 쌓이고 구분이 지어지겠지만 물은 뜨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