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북부여행(므앙응오이,반나)
루앙프라방에서 13번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2시간~2시간30분쯤 달리면 빡몽 삼거리가 나오고 빡몽에서 우회전 해서 1시간쯤 달리면 농키아우에 도착 합니다. 농키아우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남우강을 거슬러 한시간여를 더 달리면 제가 늘~ 그리워 하는 므앙응오이가 있습니다.
루앙프라방 남부터미널에서는 오전9시30분, 북부터미널에서는 오전9시에 농키아우행 버스가 출발 합니다. 농키아우 선착장에서는 오전11시, 오후2시에 므앙응오이 가는 보트가 출발 하구요. 2017년 올해만 네번째 므앙응오이를 찾아 갑니다. 작년 2월~3월 인도차이나 반도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들렸던 므앙응오이,반나를 이렇게 자주? 갈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그냥 마음이 편 해 지면서 저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희미해진 기억속 깊은곳을 건드리는 라오스의 작은? 시골 마을 입니다.
농키아우에서 므앙응오이로 가는 남우강 뱃길 좌,우로 작은 마을 7~8개가 산재 해 있습니다. 보트 안에서 만난 10세 소녀 분미는 반호이호이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엄마와 농키아우에 일 보러 나왔다가 돌아 가는 길 이라고 합니다. 나 므앙응오이에 오래 있을건데 시간내서 한번 찾아 갈께~~ 했습니다.
남우강 뱃길은 다시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저기 보이는 므앙응오이는 늘 그리웠구요..
오랜만에 만나는 므앙응오이 아이들도 여전히 신나게 놀고 있구요.^^
하룻밤 편안하게 잘 쉬고 다음날 므앙응오이 아이들과 함께 반나로 갑니다. 므앙응오이 마을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탐깡동굴 매표소(1인 1만낍)를 지나서 한시간 조금 안돼게 걸어가면 반나가 나옵니다. 반나 가기 전 두번째 개울 건너서 좌측으로 가면 반호이센, 반나마을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가면 반호이버도 있습니다.
큰길? 을 따라서 쭈욱~ 걸어가는게 편 하지만 탐깡동굴을 지나서 우측으로 샛길이 하나 있습니다. 말이 샛길이지 그냥 논두렁으로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합니다. 길을 잘 아는 아이들 덕분에 샛길을 이용 하기는 하지만 큰길과의 시간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아저씨 혼자 가시려면 심심 하다고 한명,두명 함께 나선 길이 10여명이 되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속정이 깊은건 이사람들의 천성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반나 입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집이 있긴 하지만 마을 옆을 흐르는 응오이강의 물살을 이용 한 수력 발전으로 작은 등 한,두개 정도만 사용 할 정도 입니다. 식당,게스트하우스가 있긴 하지만 도시의 그런 시설을 기대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을 분들께 인사 드리면서 가장 먼저 학교에 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들과 이야기 하고 있는데 OB 게스트하우스 아줌마가 간판이 낡았다며 새로 만들어 달 랍니다. 영어 1도 못 하는데.. 그림 그리려면 많이 힘들텐데..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밖에 외국인 지나 갑니다. 영국에서 오신 중년의 부부 여행자 입니다. 사정을 말씀 드리고 도와 주세요. 했더니 선뜻 OK 하십니다. 작업을 마치신 후 고맙고 죄송 하다고 했더니 아니다. 너 때문에 좋은 경험을 했고 우리의 여행에 좋은 추억이 만들어 졌다. 하시면서 저녁에 맥주 한잔 하자고 하십니다. 제가 사 드릴께요. 영어 공부 좀 시켜 주세요. 했습니다.ㅎㅎ
늘 그리웠던 반나의 모습 입니다. 이와 같은 기억이 있는 제게 반나는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마을 입니다. 작년 2월에 처음 왔을 때 는 열악한 환경과 시설에 어렵게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한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2017년 대한민국 서울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라오스의 시골 마을 입니다. 이들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 가고 있고 후손들에게 더 낳은 삶을 살게 해 주기 위해서 오늘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반나학교 입니다. 선생님 네분에 아이들은 50여명 됩니다. 마침 월요일 이라 십한 교장님이 일장 연설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관심 있는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떠드세요. 나는 내일을 하렵니다. 40여년전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이 떠 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됩니다.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오빠 그리고 남동생 네명.. 다 합쳐서 열명의 대가족이 살고 있는 분의 집니다. 이제 겨우 10세 소녀인데 이 집안의 살림을 분 혼자서 해 나가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60살이 안돼는 라오에서 분의 할아버지(100세), 할머니(91세)는 장수 정도가 아니라 기록에 가깝습니다. 노동을 하실 수 는 없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빠,엄마는 날이 밝으면 산으로 들로 식량과 땔감을 구하러 나가서 해가 질 무렵에나 돌아 옵니다.
동이 틀 무렵 가장 먼저 일어나서 대가족의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건 분의 몫 입니다. 10세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 인데.. 라오 시골마을의 10세는 철부지가 아닙니다. 하는 생각과 행동이 어쩌면 애가 이럴까? 할 정도 입니다.
비엔티안 K마트에서 사간 신라면으로 한국 라면의 참맛을 보여 줬습니다. 장작불에 끓여 먹는 신라면은 신세계 였습니다. 분의 형제가 맛 있게 먹어 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 옵니다.^^
반나의 아침은 평화 롭습니다. 우기의 눈 부신 초록은 볼 수 없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아침 입니다.
그러나 그건 나 같은 여행자의 시선이고 반나 사람들은 아침부터 오늘 하루를 위해서 또 열심히 하루를 시작 합니다.
아이들이 고기 잡으러 가잡니다. 나에겐 놀이로만 보이지만 이 아이들 에게는 놀이가 아니라 삶 입니다. 카오니야우 한봉지씩 챙겨서 마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물고기 잡으러 갑니다. 반나에서 조금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룬니네 별장? 이 있는 곳 입니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인공적으로 만든 양어장 시설에 풀어 놓고 마을잔치 등 물고기가 필요 할 때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설치 운영하고 있는 시설 옆에 작은 오두막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준비를 하고 응오이강으로 물고기 잡으러 갑니다.
물안경과 작살을 이용해서 물속의 물고기를 잡습니다. 저도 시도를 해 봤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확실히 잘 잡습니다. 한시간 동안에 10여명이 한끼 식사를 할 정도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시간여를 함께 하면서 아무 계획이 없이 물고기를 잡는게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효율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여름에도 물놀이를 오래 하면 추위를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가만히 보니까 2개조로 나뉘어서 작업을 합니다. 한조가 고기잡이를 할 때 다른조는 햇살이 잘 드는 양지 바른 곳에 머물면서 체온을 유지 하면서 숲속에 널린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채취 합니다. 고기 잡는 아이들이 추위를 느끼면 교대를 하면서 서로의 역활도 바꾸네요. 10세 이상만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답니다.
9세 아이는 함께 물속으로 들어는 가지만 보기만 할 뿐 물고기 잡이에 참여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9세 미만의 아이들은 육지에서 언니들의 작업을 지켜 볼 수는 있지만 물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 한다고 합니다.
한시간 여만에 제법 많이 잡았습니다. 맏 언니 닛이 물고기 손질을 하고 룬니는 식사 준비를 합니다. 동생들도 마냥 놀지는 않고 각자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움직 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1학년 아이들 인데.. 아이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뭔가를 배웁니다.
물고기 잡이를 마치고 돌아 오면서 나무에 열린 과일도 채취 해 옵니다. 저기 무척 많은데 했더니 이거면 충분 하답니다. 저건 나중에 따 먹으면 된 답니다. 머쓱해진 저는 또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먹지도 못 할거 많이 따 놓으면 냉장 시설이 없는 이곳 에서는 쉽게 상 합니다. 나무에 그냥 있는게 최상의 보관? 방법 입니다. 저건 나중에 따 먹으면 돼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합니다. 나중에 오면 없습니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보이면 무조건 따 갈 겁니다.
아이들의 노력으로 점심 밥상이 차려 졌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카오니야우와 물고기 그리고 채취한 채소? 로 만든.. 라오 명칭으로 깽빠가 만들어 졌습니다. 매운 고추를 다진 간단한 반찬도 챙겨 왔습니다. 그 어떤 음식보다 정성이 가득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한끼 였습니다. 막폭 이라는 과일로 후식까지 할 수 있었던 반나 아이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맛 있을 수 밖에 없는 최고의 식사 였습니다.
마침 반나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새신랑 뚠은 므앙응오이 병원의 닥터 입니다. 신부 노이가 반나에 살고 있어서 반나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합니다. 뚠의 초청으로 라오의 소박한 결혼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 원로들이 입회하고 마을의 이장(라이반)이 결혼식을 주관 하면서 결혼 증명서? 에 도장을 찍어서 건네 주네요. 마을에 행사(결혼식,장례식,제사)가 있는날은 하루종일 잔치날 입니다. 경운기로 발전을 해서 음악도 틀어 놓고 마을 대로에 천막을 쳐 놓고 지칠 때 까지 먹고 마십니다. 그런데.. 라오 사람들 절대로 지치지 않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 져도 지치지 않습니다. 술이 떨어져야만 오늘 잔치가 끝납니다. 그런데 술도 안 떨어 집니다.ㅎㅎ
므앙응오이의 아침 탁밧 입니다. 17~8명의 승려들이 마을을 한바퀴 도는 조촐? 한 탁밧 이지만 경건함은 제가 본 라오의 탁밧중에 최고 인 것 같습니다. 탁밧을 마친 후 마을 아낙네들이 국,반찬? 을 들고 승려의 뒤를 따라 동네 유일의 사원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실 수 있게 준비를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몇일전 반나 에서는 아이들과 물고기 잡아서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므앙응오이 주민들이 물고기 잡아서 라오라오,비어라오 한잔 하잡니다. 뭐?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저야 감사하죠~ 콜~~ 하고 따라 나섭니다. 므앙응오이 선착장 건너편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양어장이 있습니다. 남우강 물고기 잡아서 풀어 놓고 키워 먹습니다.ㅎㅎ 오랜친구 홈판이 들려 주는 라오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는 라오라오와 비어라오는 언제? 부턴가 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습니다.
커다란 나뭇잎이 식탁이 되고 조개 껍질이 그릇이 되는 이곳 므앙응오이는 한번 들어 오면 나가기 싫은 마법 같은 동네 입니다. 11박의 므앙응오이,반나 생활이 짧게만 느껴 지는건 어쩌면 당연 할지도 모릅니다. 여행자에게 듬뿍 정을 주는 순수한 므앙응오이,반나 사람들의 미소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아니 거짓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 같습니다.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숙박업소,식당등 돈의 맛? 을 본 라오 사람들은 순수함이 조금은 변형이 되었지만 여행자와 상관 없는 삶을 살아 가고 있는 라오 사람들은 아직은 정이 넘칩니다. 한,두번의 만남 으로는 이들의 정 전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문화와 생활이 전혀 다른 민족 입니다. 이들의 문화와 생활을 존중 하면서 다가서면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네요.
므앙응오이,반나에서 신나게 놀다가 반호이호이에 살고 있는 분미가 생각 났습니다. 아! 한번 간다고 했지.. 므앙응오이에서 홈스테이 하고 있는 집 쥔장 애 는 자기 소유의 작은 보트가 있습니다. 나 호이호이에 가고 싶은데 될까? 당근이지~~ 통역이 필요 합니다. 여행자를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홈판은 영어가 유창 합니다. 홈판아~ 나 라오말 못 하는거 알지? 난 니가 필요해~~ 그래서 애,홈판과 므앙응오이에서 작은 보트로 30분쯤 걸리는 반호이호이를 찾아 갑니다.
호이호이에 학교가 있니? 있답니다. 아이들이 몇명이나 되니? 40명쯤 된 답니다. 그냥 가긴 쫌 그래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넉넉하게 50명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과자,음료수를 준비해서 갔더니 헐~~ 전교생이 24명 입니다. 한명당 과자,음료수 두개씩 줘도 남습니다.ㅎㅎ
호이호이는 선착장도 없는 마을 입니다. 그냥 강가에 배 세워 놓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됩니다. 게스트하우스,식당도 없고 가끔 여행사 오지마을 체험 투어로 단체 여행자가 잠깐 들렸다 가는 그런 마을 입니다. 오래전 부터 호이호이를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만날 아이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학교로 찾아 갑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방문 이유를 말씀 드렸더니 환 하게 웃으 시면서 분미를 만나게 해 주세요. 분미가 벙? 찐 표정으로 어라? 이 아저씨 진짜로 왔네~~ 하는 것 같습니다. 분미를 잠깐 만나서 작은 선물을 전 해 주고 선생님들께 가져간 아이들 간식을 드린 후 마을을 한바퀴 둘러 돕니다. 총 길이가 200여M 남짓한 마을에 30여 가구 쯤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네 한바퀴 둘러 보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습니다. 분미의 어머니 입니다. 농키아우에서 므앙응오이로 올 때 보트 안에서 분미와 함께 잠깐 대화를 나눈적이 있는데 저를 알아 보시면서 어? 너? 진짜로 왔네~~ 일루와 냉수 한잔 줄께~~ 하시면서 반겨 주시네요. 할 일 없는 여행자는 죽치고 앉아서 어설픈 라오말로 잠시나마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라오의 시골 학교는 급식이 없습니다. 오전11시쯤 각자의 집으로 귀가해서 점시식사를 한 후 다시 학교로 갑니다. 분미도 점심 먹으러 집으로 왔습니다. 아저씨가 진짜 올지는 몰랐답니다. 그래? 나 할 일이 별로 없거든 다음에 다시 오면 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고 싶은데 재워줄래? 했더니 콜~ 합니다.
므앙응오이에 살고 있는 애,홈판도 호이호이에 친척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일가와 담소를 나누고 마을분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닌 이유가 있는 방문을 해 준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시면서 시간을 함께 해 주십니다. 라오 아주머님들과의 수다가 재미 있었습니다.ㅋ
므앙응오이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32세 라오청년 홈판 입니다.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라오 노래는 이 실력으로 여기에 있기는 아까울 정도로 훌륭하고 영어도 수준급 입니다. 라오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건데 두뇌가 상당히 뛰어 난 것 같습니다. 홈판도 그중 한명 입니다. 영어로 듣고 말 하는게 가능 합니다. 하지만 읽고 쓰는건 못 합니다. 너 어디서? 어떻게? 영어를 배웠니? 하니까 므앙응오이에 놀러 온 여행자들에게 영어를 배웠답니다. 우리로 치면 Hello 를 들으면 헬로우로 써 놓고 이건 안녕이야 하는 그런 방법으로 영어를 배웠다는데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과 범위가 상당 합니다. 저도 모르는 처음 들어 보는 단어를 홈판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영어를 배웁니다.ㅎㅎ
므앙응오이에서 홈스테이 6박을 했던 집 쥔장 애 입니다. 부인은 10개월 전 까지 반나 초등학교 교사 였는데 세째 아이들 가지게 되어서 오토바이 출,퇴근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질 수 있기에 지금은 므앙응오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 하고 있습니다. 애는 팔자가 부러울 정도로 좋은 사람 입니다. 남우강에 주낙 여러개 걸어 놓고 하루에 한번씩 물고기 수확하러 다니는게 일의 전부 입니다. 큰 물고기는 팔아서 현금을 만들고 작은 물고기는 그냥 반찬으로 먹습니다. 애의 집에서 있었던 6박7일 동안 제가 먹은 남우강 물고기가 수십마리는 될 겁니다. 물고기 요리도 다양 합니다. 깽빠,삥빠,쯘빠.. 국 끓여서 먹고, 구워 먹고, 쪄 먹고 라오라오와 함께 물고기만 먹고 살았습니다.
므앙응오이,반나에서 11박을 하고 떠나기 하루 전 날 입니다. 점심 무렵부터 애의 집에 마을 아낙네 들이 모여서 뭔가를 준비 합니다. 오늘 무슨날 인가? 했는데 내일 떠나는 저를 위해서 므앙응오이 지인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황송하고 고마울 수가.. 정말이지 이 사람들의 정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6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가지마~ 그냥 여기서 살어~~ 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오후6시에 시작 된 저녁식사가 오후10시쯤 끝났는데 친한 친구들 대,여섯명은 아직 끝낼 마음이 없습니다. 자정이 넘을 때 까지 라오라오와 홈판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마지막 밤을 즐겼습니다. 이쯤이면 끝내겠지? 했는데.. 밤을 세울 분위기 입니다. 얘들아~ 나 힘들어 이제 자고 싶어...ㅠㅠ
반나에서 2박을 했던 분의 집 입니다. 라오의 시골 마을에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 라오의 가정중에서도 힘들게 사는 집 입니다. 오래전 부터 분에게 나 너네집에서 자면 안돼? 하고 얘기를 했는데 번번히 거절을 당 했습니다. 우리집은 먹고 자는게 불편해요. 다른집에서 주무세요.
반나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 하지만 가장 먼저 제손을 잡아준 분'에겐 특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아이들 선물을 챙겨 줄 때도 분의 몫은 항상 두배 이상 이였습니다. 어렵게 살아 온 어린 시절이 생각 나면서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안 재워 주면 나 다시는 여기 안 올꺼야 하면서 협박? 했더니 이틀밤 숙박을 허락 해 주네요. 각오했던 잠자리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추운거 빼고는 견딜만 했습니다. 좋았던 것 도 있습니다. 두살,네살,다섯살 먹은 분의 남동생들과 함께 뒹굴며 놀던 시간들은 지금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반나학교 교무실 입니다.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반나 이장님들과 반나학교 발전을 위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우연한 방문이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의 끝이 어딘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반나를 찾을 것 이고 반나 아이들이 조금 이라도 행복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 입니다.^^
므앙응오이를 떠나는 날 입니다. 오전9시30분 므앙응오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농키아우로 가서 터미널로 이동 한 후 농키아우 버스터미널에서 오전11시에 출발하는 루앙프라방행 버스를 타야 합니다. 농키아우 버스터미널에는 지난 봄 부터 루앙남타로 운행하는 정기편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용객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비용이 추가가 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운행이 취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전9시30분 보트를 타지 않았습니다. 므앙응오이 최대의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페앙이 오늘 루앙프라방으로 일 보러 간 답니다. 어이~ 친구 짐칸에 나 좀 태워줘~~ 므앙응오이에서 농키아우까지 육로가 있습니다. 비포장 산길이 험로 일 뿐 아인라 개울을 서,너개 건너야 합니다. 마지막 개울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 많은 정도로 험 합니다. 그러나 페앙의 운전 솜씨와 응급상황 대처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생각이 나왔을까? 할 정도로 뛰어 납니다. 10개월 전에도 페앙의 현대 포터를 타고 농키아우 버스터미널 까지 간적이 있습니다. 여행자가 접 하기 힘든 므앙응오이~농키아우 육로를 두번째 달리면서 이번에는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까지 직행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