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가는 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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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가는 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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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다시 말해서 한 단계 더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어느 날 아침 눈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 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들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잇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

 

 

그랬다.

 

늘 같은 일상의 어느 날 아침..

 

아무런 느낌 없이 기계적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맘 속 깊은 곳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먼 북소리를 들었다.

 

20대 초반.. 충격처럼 다가왔던 '상실시대'이후 하루끼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다작 작가인 그의 모든 책을 빠짐없이 읽었었는데.. 처음의 신선했던 충격이 실체없는 공허한 이미지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이  하루끼다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 이후 하루끼에 대한 동경은 바람처럼 사라져 갔지만...그래도 여전히 늘 내게 울림을 주는 글이 '먼 북소리'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북소리는 목갱 죽해의 사진 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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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갱 죽해는 홍춘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관광지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아직은 관광객이 극히 드물고 목갱죽해로 가는 교통수단은 홍춘 마을 앞에서 삼륜차가 유일하다.

 

하지만 트래킹 코스 중간 중간 관광객용 리프트를 만들고 있었고 트래킹  정상 즈음엔 여관과 음식점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보여지던 죽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시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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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을 팔고 있는 마을 앞 다리를 건너면 미니봉고 정류장이 있고 그 앞에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있다.

 

혹시 홍춘에서 기념품을 사려 한다면 마을 안보다는 다리 건너에 있는 가게들이 가격이 더 저렴하니 참고하시길.

 

( 기본적으로 기념품은 몽땅 짐이다~~! 를 주장하는 1인이라 기념품 보기는 돌같이가 신조 )

 

어쨌던지 목갱죽해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다리 건너편에 있는 삼륜차 2대이다.

 

호객 행위 전혀없이 나몰라라 주무시는 분위기의 아저씨께 목항죽해를 외쳤다.

 

가격은 왕복 20원이고 목갱죽해를 둘러볼 동안 아저씨가 기다려 주신다.

 

목갱죽해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lonely planet의 thorntree branch 였는데.. 왕복 20원에 너무나 선선히 응하시는

아저씨를 보고 살짝 값을 깍을걸 그랬나 싶긴했지만...

대부분 2시간이면 끝나는 목갱죽해 관광을 3시간 넘게 나올 생각을 안했더니 살짝 삐치신 아저씨를 보니 20원도


살짝 죄송했음..  ^.^

달래드리는 차원에서 사진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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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점심시간을 살짝 넘겨 홍춘을 출발했다.

 

전세계 관광객으로 버글대는 홍춘이 아닌 목갱죽해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고.. 이건 이번 여행 최대 잘한 짓이었다.

 

8분 정도 삼륜차를 달려 목갱죽해에 도착했다.  입장료 30원을 내고 걸어 들어가면 곧장 호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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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수 바로 앞에 음식점 겸 찻집이 있다.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피크타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오로지 나 한 명.

 

내가 지나가자 - 트레킹 코스 입구가 가게 - 할머니부터 주인 아저씨까지 모두 어찌나 반기던지...

 

트레킹 후 밥 먹으러 오겠다고 하자 그러라며 모두 관심 끝...

 

어쨌든 밥보다 더 고팠던 대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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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갱죽해의 트레킹 코스는 천천히 걸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사실.. 트레킹 코스라기도 민망한.. 그냥 동네 약수터

정도의 산책길이다.

그래서 나처럼 대나무 숲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방문을 권하기도 뭣한..


어찌보면 볼 것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홍춘보다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다음 번 홍춘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목갱죽해는 아마 가지 않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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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목갱죽해는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소리 처럼 바람을 타고 움직이던 대나무 들..

 

바람이 불면 온몸을 흔들어 대던 대나무 들

 

산 전체가 온통 대나무들로 덮여 있고 ...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대나무 숲은 마치 어린 유치원 원생들 같아서..

 

동시에 허리 굽혀 인사하는 동그란 머리들 같이 보였다.

 

큰 산 하나에 객식구라곤 오로지 나 한명 뿐이었던...

 

풀숲에서 뛰어 다니던  무언가도..

 

호수 위를 날아다니던 무언가도..

 

모두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던 그 고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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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대나무 숲의 풍경은.. 허리굽혀 인사하는 유치원 꼬마들 같았다.

 

머리만 숙이는게 아니라 허리까지 깊이 숙이며 인사하는 유치원 아이들...

 

머리를 토닥토닥거리며 '안녕'하고 살갑게 말 걸어 주고 싶은 그런 티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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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코스 끝 부분이 영화'와호장룡'의 대나무 씬을 찍었던 장소이다.

 

내가 갔을 때 그 장소는 관광용 스팟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건축 자재들이 쌓여 있어서 정말 볼 것이 없었다.

 

영화 촬영지 바로 옆이 위의 식당 겸 매점, 숙박지이다.

 

이 곳에 도착했을 즈음 너무 목이 말라 찬물을 하나 사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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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가 너무 좋아서 -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 전체가 한 눈에 보임.-  물을 마시며 한 숨 돌리고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가
 

다가오셔서 숙소는 정했냐고 물으신다.   사실 홍춘에서 1박을 하고 싶었는데 외국인은 숙박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만 듣고 - 이 또한 lonely planet의 잘못된 정보가 문제였다. thorne tree 정보는 빠르기는 하지만 그 또한 매일

 
매일 바뀌는 중국의 여행정책에는 못미치나 보다. -


툰시 라오지에 유스호스텔에 예약을 했었는데... 막상 홍춘에 도착해 보니 사방 천지가 민박집이었다.. 외국인이 안되기는... ㅡ.ㅜ


여튼.. 관광객 모시기 쟁탈전은 바로 이 첩첩산중 목갱죽해에 까지 전염되고 있었다.


그저 물 한통 사서 마실 뿐이었는데도 굳이 자기네 방을 보고 가라며 권유하신다.


오이까지 깍아주시며 말 붙이시는 할아버지꼐 분위기 맞추어 드리느라 사진도 찍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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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툰시 유스호스텔에 숙박을 정하고 오지 않았었더라면.. 목갱죽해에서 1박 정도 해보고 싶기는 했다.

 

이유인 즉슨 이 곳이 진짜 때묻기 전의 중국 농촌이라 한국에서 요즘 한창 유행중인 ' 농장체험' 같은 느낌이 들었기 떄문이다.

 

여관 앞 마당에선 닭을 키우고 본인이 직접 재배한 땅콩을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내가 벌컥거리며 찬물을 마시는걸 보시고는 오이를 뚝 따서는 통째로 깍아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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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붕위엔 직접 짜서 만든 소쿠리와 광주리를 말리고 계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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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는 겨울 내 떌감용으로 모아 놓은 나뭇가지들을 차곡 차곡 쌓아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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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옆에 피어있는 들꽃마저  맑아보였다.

 

세상 때 묻기 전의 이 곳에서 마지막 순수함을 느껴보고 싶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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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 방이 너무 좋고 전망도 너무 좋다고.. 그저 지나가는 인삿말이었는데도 크게 기뻐하시며 손녀딸까지


리고 나와 인사를 시켜 주신다..  다음 번에 꼭 친구들과 오라고.. 자신이 직접 기른 가지와 오이로 반찬을 만들어


주시겠다며 활짝 웃던 할아버지.

 

이런 순수하신 모습들이 변한 것을 보게 될까봐.. 그래서 목갱죽해는 내게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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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코스가 끝나면 다시 호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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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식당에 손님은 나 혼자다..

 

밥을 먹겠다고 하니 아저씨가 냉장고로 날 데려가셔서 야채를 고르라신다..  버섯과 두부, 시금치를 골랐다. 

 

야채볶음에 밥. 그리고 녹차..  식사를 하면 차는 무료로 제공된다.

 

밥을 먹고 있는 사이..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학생들 수십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라진다.

 

아마도 여름방학을 맞아 수련회 비슷한걸 온 모양이다. 다들 덥고 힘들다며 칭얼댔지만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자


그래도 모두 트레킹 코스로 향했다..

 

하하..

 

짜식들.. 난 여기 오고 싶어 몇달을 몸살나게 기다렸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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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밥을 먹긴 했는데.. 사실 맛은 기억이 안난다.

 

그저 바람따라 파도소리 처럼 들려오던 대나무 숲의 소리와 고요한 호수위를 날아다니던 잠자리 떼..

 

내가 대만 사람이냐 아니냐를 두고 분분하던 할머니와 아저씨.. - 결국 아저씨가 물어보셨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역시 내 중국어는 뭔가 한참 모자른가 보다... 광동에서 왔냐더니 결국 대만까지.. ㅠ.ㅠ

 

북경어를 배웠는데 왜 광동인, 대만인 오해를 받는걸까.. 하하.. ㅠ.ㅠ ;;

 

여하튼.. 나올 생각을 않는 나를 잡으러 오신 삼륜차 아저씨의 모습을 발견..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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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음식점엔 다시 주인 아저씨 내외만 남으시고...

 

아마 다시 오긴 힘들겠지.. 싶어 아쉽기만 했던 목갱죽해..

 

내 여행의 하일라이트와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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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놀고먹자 2011.07.14 02:14  
이 글 작성한 여자분이신듯한데 진짜 궁금하네요..여자 혼자서 어케....남자인 저도 가이드랑 운전기사랑
같이 다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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