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기 #1, #2, #3
작년 홀로 여행을 하며 약속을 했었어. 기억나?
' 이제 한해에 한번씩 꼭 이런 여행하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하기. 약속해. 꼭 기억한다고. '
11월 29일 오후 2시쯤에,
' 음.. 뭐지뭐지.. 음.. 이거이거.. 아씨.. 다됐나?.. 아씨.. 몰라.. 아씨.. '
못 갈줄 알았거든. 항공권이 없다 해서.. 그래서 여행준비를 소홀히 했거든.. 그런데 가게됐어. 급해.
" 야야, 깻잎 싸줄께 가져가. 남들 보니까 고추장도 싸 간다던데 어디 챙겼어? 라면은? "
" 엄마, 그냥 가면 안 될까?... 나 이것도 무거운데.. 응?? 응?? "
" 알았어. 이 새끼 어디 나가서 엄마 말 안듣고 후회해봐. 어서가. "
" 엄마. 나 가. 나중에 보자구. "
" 알았어. 잘 다녀와 아들 "
가끔씩이지만 생뚱맞게 여행을 떠나곤 하는 아들이기에 매번 그러려니 하며 길을 막지 않는 오마니다. 티격태격해도 난 오마니의 아들. 오마니는 나의 오마니. 그래서 우린 같이 살아간다.
3시 10분전쯤에,
" 아빠. 나 다녀올게요. "
" 어디?... "
" 거기요 "
" 거기? 가 어디냐. "
" 거기. 캄보디아 "
" 어? 표 없어 못간다며? 지금? 지금 간다고? "
" 예. 지금. ... 가요 "
" 누구랑? 너 영어도 못 하잖아? "
" 혼자가요. 영어... 음... 다 된다던데.. "
" 오... 일단 알았어. 지금은 가고 꼭 전화해. 알았지? "
" 네. 다녀올게요 "
3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 안녕. 나 가 '
공항에서 비행기까지.. #2
예전에 제주도 갈 때 비행기 타려고 김포공항을 가 본 적은 있는데...
인천공항은 참 크다. 그리고 사람들이 참 많다.
' 저 사람들도 나처럼 외국에 가는 거겠지? 와.... 영어도 다 할 줄 알겠지?.. 음.. '
사전에 가이드북에서 네댓번은 봤다.
첫째, 항공권을 갖고 체크인을 한다. 이때 부칠 짐은 부치고 좌석 선택을 하며 보딩패스를 받는다. 좌석 선택시 날개 주변은 좀 시끄러울수 있으니 다른 좌석을 요구한다.
둘째, 환전 및 여행자보험을 아직 안 했을경우 이때 한다. 그리고 출입국신청서 작성은 물론 탑승 전까지 면세점을 노닐며 쇼핑을 한다. (출입국신청서 작성법은 가이드북 참고)
셋째, 탑승 시간을 재확인하고 늦지 않도록 주의한다.
체크인하려 줄을 서 있다. 한사람 한사람.. 이쁘장한 여직원들과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나도 저 앞에 가면 저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야하나.. 음.. 쉬운게 없군.
" 안녕하세요~^^ "
" 아.. 예.. 안녕하세요.. "
" 창문쪽 좌석과 복도쪽 좌석이 있습니다. 어느쪽으로 드릴까요? ~ ^^ "
" 네.. 복도쪽으로 주세요. "
" 부칠짐은 있으신가요? ~ ^^ "
" 아.. 네. 이거... " (배낭 하나를 올려놓는다. 남들처럼. 태연하게)
" 네~ 됐습니다. 좌석은 복도쪽이고요. 몇번 게이트에 몇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 ^^ "
" 네.. 고맙습니다 "
끝이다. 몇 마디 나눴지... 뭐지.. 뭔가 잘못했나. 왜 내 대화는 짧은거지....ㅡㅡa
창밖으로 비행기들이 보인다. ' 와... TV에서 보던 그대로네.. 와.. 다음엔 낮에 와야겠다.. '
멀리 보이는 비행기는 제법 작아 보인다. 손으로 살짝 짚어다가 주머니에 넣어 가져가고 싶을만큼.
40분쯤 후면 탑승이다. 오마니랑 통화는 하고 가야지.
" 엄마! 나야 아들. 지금 공항이고 곧 차 탈거야 "
" 그래. 근데 밥 먹었어? 안 먹었어? "
" 어? 안 먹었는데. 그냥 타지 뭐. "
" 이 새끼! 밥 안 먹어? 빨랑 먹고 타. 가뜩이나 삐쩍 마른게. 밥먹어! "
" 어? 그냥 타면 안 될까. 밥 준다던데? ... "
" 이 새끼... 맘대로 해. 하튼 잘 다녀와. "
" 응. 그럼 다녀올게 "
음.. 이렇게 전화를 끊고 오마니가 자꾸 생각나 바삐 주위 식당으로 들어갔다.
" <장터우거지해장국> 주세요 "
오마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 오마니한테 전해라. 작은형 장터우거지해장국 한그릇 다먹고 차 탄다고 "
밤 9시쯤에,
드디어 탑승이다. 과거 제주도행 비행기 경험을 되살려 좌석을 자연스럽게 찾아 앉는다.
' 아... 별거 아니야. 잘 해냈어. 이제 좀 쉬자.. ' 하며 창 밖을 내다봤는데...
ㅋㅋㅋ 내 옆구리에서 막 뽑아낸 것처럼 비행기의 양날개가 '짠!' 하니 매달려있다. 제대로 앉았다.
가이드북의 문구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날개주변은 좀 시끄러울수 있으니..")
비행기에서.. #3
옆 자리에 노부부가 앉았다.
원래 내 자리가 복도쪽인데,
" 혹시 괜찮다면 창쪽자리와 바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내가 복도쪽을 편해해서.. "
" 네? 아, 물론 되죠. 어르신들이 편하셔야죠. 제가 창가쪽에 앉겠습니다. "
그래서 비행기 날개는 정말 내 옆구리에 붙은 것과 다름없게 됐다. 그리고 ' 저거 혹시 날다가 떨어지고 하는 그런 일은 없겠지...?... 만약 떨어지면 내 잘못인가... ' 하는 괜한 걱정도 하게됐다.
극성스런 오마니의 아들 사랑 덕분에 비행기 타기전 근처 식당에서 <장터우거지해장국>을 한그릇 먹고왔는데 그렇게 속이 든든 할 수가 없다. 맛도 있고. 역시 오마니다........ 고 고마워 할 즈음에,
' 어.. 뭐야.. 왜 벌써 주지?.. 어라.. '
기내식이다. 아마 저거 다 먹으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 기내식 거절을 하고 싶은데 스튜어디스가 외국인이다. 그리고 영어가 생각안난다. 아... 생존영어.....
곧이어 마실것을 묻는다. 듣기는 되는데 말하기가 안된다. 이 때 노부부가 화이트 와인을 주문한다.
' 아... 기내에서 술도 주는구나... ' 생각을 하고 있을때 그녀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순간, ' 와인.. '. 잘 못 들었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 다시 한번 살짝 웃으며 ' 와.인. '
또 무슨 와인으로 할거냐고 묻는 그녀. 다시 한번 살짝 웃으며 ' 화.이.트. '
옆 노부부가 화이트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 살기 위해 영어를 해야하는 절박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 물이.. 영어로 [워터]인지 [워러]인지.. 아씨.. 그냥 물이라고 하면 알아들을려나.. '
목이 마르다. 화이트 와인 한잔을 더 마셨다.
오늘내일 일정이 매우 중요하다.
공항에 도착하면 짐을 찾고 택시 정류장으로 가 '꼰쏭 머칫 마이' 라고 말하거나 'northern bus terminal' 이라고 말하고 <북부터미널>로 간다. <아란>행 창고를 찾아 기다렸다가 3:30 첫차를 탄다.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해 비자를 받고 바로 택시를 섭외해 <씨엠립>까지 간다.
첫번째 중요 일정이다.
벌써 여러번 체크한 내용을 정말 물샐틈없이 재차 체크한다. 그리고 <씨엠립>에 가 있는 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이내 양날개에 힘을 바짝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