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꿈 앙코르와트 - 씨엠립으로 (now editing..)
12월 근무 스케쥴이 정해진 후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휴가가 6일이 나온 것이다. 작년부터 꿈꾸어 오던 앙코르와트가 내 시간 속으로 서서히 실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날 문득 인터넷 검색중 발견한 앙코르와트의 여행사진이 내게 설레임을 준 순간부터 거의 2년이 지난 시점에 나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준비는 철저했다. 인터넷 검색에서 알게된 태사랑과 트레블 게릴라 사이트에서 시작하여 나의 PDA에는 여행에 대한 준비물과 일정 등의 내용이 하루하루 생각날 때마다 검색할 때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 관련된 정보가 하나하나 늘어갈 때마다 마음속의 긴장감도 그 무게를 더해가는 것이 예전 오직 록키산맥이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여행을 준비할 때의 그 긴장감, 설레임이 다시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얼마나 행복한 긴장감인가.
밤샘 비행 후 퇴근한지 2시간 만에 목록에 넣어두었던 모든 준비물을 챙겨들고 항상 보고싶은 아이들과 집사람에게 다시 작별을 고하며 집을 나섰다. 집사람의 마지막 한마디가 뒤통수를 찌른다. "살아 돌아와!" 아무리 오지라지만 그 정도의 말을.. 하지만 집사람의 심정을 생각하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에 미소만 흘러나온다. 승객은 만석, 갈 수 있을까. 다행히 마지막 비행기에 자리가 생겼다. 비행기에 올라 절친한 사무장님과 지인들에게 인사하고 나니 역시 예전과 같이 긴장감은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찾아온다. 이제 시작이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때운 후 방콕공항에서 바로 머칫마이 (북부터미널) 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니 아직도 2시간 가량이 남는다. 옆 터미널에 문을 연 식당에서 간단히 꿰떼오 (쌀국수) 를 먹고 아직 다 보지 못한 앙코르와트 관련 서적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창구는 새벽 3시에 문을 여는데 벌써부터 여행자들의 짐들이 창구 앞에 줄을 서길래 얼른 내 배낭도 줄에 붙이고 나니 아직 한참 어려보이는 아가씨 두명이 두리번 거리며 서로 한국말을 내 뱉는다. "거기에 짐 놓으시면 돼요!" 한마디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해대는 두사람이 생경스럽다. 좋을 때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흐른다.
버스에 오르니 아직 새벽시간이라 방콕시내의 traffic zam은 없는 상태, 버스는 날개를 달았는지 미친듯이 날아간다. 흔들림 속에서도 연속이틀의 밤샘이 무리였는지 잠은 잘도 온다. 중간중간 깨어보니 어느덧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며 동남아의 이국적인 시골모습을 차창 너머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15분 정도만 가면 될 것 같은데요." 자신을 가이드라고 소개한 옆자리 아가씨의 말대로 버스는 곧 국경도시 아란야프라텟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는 사람들 앞에 툭툭기사들이 연신 40바트를 외치며 탑승을 종용한다. 그래. 정가가 40바트구먼. 하고 툭툭을 타니 쏜살같은 툭툭의 속도에 반바지만 걸친 하반신이 춥다고 비명을 지른다. 태국도 추울 때가 있구나. ㅠㅠ 낮에 도착하면 길게 줄을 서야 하며 통과하는 데만 두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국경을 1시간 만에 넘고 가이드 아가씨는 친구와 가버리고 어린 두 학생과 일행이 되어버린 내 앞에 나타난 삐끼(?)의 안내에 따라 비자를 받고, 국경을 통과했다. 번호판도 없는 승용차를 타고 출발하니 중간에 기사가 바뀐다. 분석해보니 삐끼-돈받은 운전자-실제 운전자 순인 것이 역시나 아직 삶이 고단한 나라들이 늘 그렇듯이 이권이 걸린 사업에는 여러명이 붙어먹고 사는 것은 똑같다는 진리 아닌 진리가 떠오른다.
캄보디아로 넘어가기 전 아란야쁘라텟의 국경 시작부분
캄보디아 뽀이펫에서 장사를 위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
국경 통과후 뽀이펫으로 입국 전 한컷
길은 비포장 도로, 앞차가 뿌리고 간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우리 일행이 탄 차도 덜컹거리는 흙바닥을 시속 80km의 경이로운 속도를 내며 달린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 속에 잠도 안오는데 뒤에 앉은 두사람은 천하태평이다. 역시 여자들은 겁이 없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면 남자들은 무서움에 비명을 지르지만 여자들은 비명이 아니라 환호성을 지른다. 덧없는 생각속에 응시하는 전방은 끝없이 이어진 흙길과 그 옆에 끝없이 이어지는 논바닥, 평야, 풀을 뜯고 있는 소들, 농업이 주업인지 어업이 주업인지를 알 수 없도록 논바닥 옆 웅덩이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인생이 즐거운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길의 상태가 좋아져서 3시간 정도이고 상태가 좋지 않았던 작년까지는 4시간 이상이 걸렸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길은 험한데 기사는 속도를 줄일줄을 모른다. 좋아. 이 상태면 오전중으로 도착하겠군.
중간 중간 갈라지는 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국경도시인 뽀이펫과 씨엠립은 오직 외길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중간중간 개천을 지나는 다리는 철골 다리 위에 판자때기를 엎어놓은 수준이고 왕복차량이 동시에 지나갈 수 없는 정도의 폭을 가지고 있다. 결국 사단은 다리위에서 난다고 원수들이 그랬던가. 목적지를 1시간 반 정도 남겨놓은 곳에서 차들이 줄을 서있다. 기사 말로는 다리위에서 픽업트럭 하나가 퍼졌다는데 통과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처음보는 한국사람도 아닐텐데 온동네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며 차안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를 보고 사진까지 찍어대는 현지인들에게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있는 두사람을 쳐다보니 역시 모든 것이 즐거운 나이구나 하는 생각에 덧없이 보내버린 내 청춘이 아쉬워진다.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데 끝없이 이어진 정체속에서도 이나라 사람들은 짜증 낼 줄을 모른다. 인생이 바쁜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조급함이 없다. 사람들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들이 외려 사람들을 더 몰아부친다는 역사적 사실이 다시 확인되는 순간이다. 조급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웃고 떠들며 놀고 있다. 놀고 있네 정말.. 바빠 죽겠구만.. 다행히 1시간 만에 다리위에 퍼진 차를 끌어내고 차들은 이동을 시작, 이젠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익숙해진 긴장감 속에 슬며시 뒤로 넘어가는 고개는 피곤함에 의식을 놓아버릴 것을 종용하며 흔들림에 적응해 간다.
다리 양쪽으로 길이 막혀 늘어서 있는 차들
지루해 하며 차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다리 위에서 퍼진 도요타 픽업. 양쪽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주유소. 주로 병에 넣은 것을 차에 부어준다.
논바닥 만을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씨엠립은 의외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큼직큼직한 호텔들을 지나며 기사는 저 호텔은 1000불, 이 호텔은 500불 짜리라며 연신 떠들어 대지만 결국 우리는 하룻밤에 6불하는 우리의 목적지 브라보 빌라에 내릴 수 있었다. 방콕 북부터미널에서부터 무려 9시간이 걸린 대장정에 마음이 뿌듯할 만도 하건만 역시 급한 건 화장실과 식사다. 1시간만 자고 일몰을 보려던 우리의 무모한 계획은 말 그대로 무모하게 실패로 끝났다. 깨어보니 저녁 6시 밖은 이미 일몰을 지나 어둠의 그림자가 곳곳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게스트하우스도 이 시간 부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해 투어를 다녀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현지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은 꼭 일출을 보리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벌써 자정이다. 얼른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