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포이펫에서의 교통사고, 고마운 교민회 분들
우리 둘은 캄보디아 씨엠립에서의 4박5일 일정을
11월 22일 씨엠립에서 포이펫으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마무리짓고 있었습니다. 택시 안에는 택시비를 나눠
내기로 한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도 타고 계셨습니다.
택시 기사는 4일 전 포이펫에서 시엠립으로 들어올 때
타고 왔던 택시를 운전했던 기사로, 그때 우리가 했던
"안전하게 몰아달라"는 말을 성실하게 잘 지켜주었기에
택시에서 내리면서 다시 예약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황토 먼지 날리는 흙자갈길을 택시는 들어올 때와는 달리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며 달리더니 포이펫에 도착하기
1시간쯤 남긴 상태에서, 추월을 위해 중앙선을 넘더니
결국 마주오던 덤프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이마가 찢어지는 경상에 그쳤지만
친구는 오른쪽 상완골이 여러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고
앞자리에 타고 계셨던 아주머니는 걷지 못하셨습니다.
포이펫 방향으로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라는
세레이소폰 병원으로, 곁을 지나가던 트럭을 얻어 타고
20분여를 달려갔습니다. 상완골이 부러진 친구는 팔이
고정되지 않아 자갈길에서 트럭이 튀어오를 때마다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겨우 도착한 세레이소폰 병원에서, 친구는 엑스레이를 찍고
부목을 댔습니다. 급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절룩거리는 다리와 이마에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
주 캄보디아 한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대사관에 전화를 걸자, 대사관이 있는
프놈펜과 씨엠립은 너무 멀다며 가르쳐주신 씨엠립 한국
교민회장님의 전화번호...
머리 속이 정말 복잡했습니다. 저 흙자갈길을 조금이라도
덜 달리도록 포이펫으로 가서 방콕으로 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얼른 씨엠립으로 돌아가 한국으로 가는 직항기를
타는 것이 나을까. 어떻게 해야 내 친구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느끼고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
한국인 아주머니는 방콕에 모든 짐을 두고 와서 방콕으로
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걷지는 못하겠다 하셨지만
골절은 없고, 또 간호사이신지라.. 우리 둘은 교민회장님의
충고를 따라 씨엠립으로 돌아오고 아주머니는 포이펫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살리SARI"라는 이름의 그 택시 기사는 병원비와 씨엠립까지
가는 택시비를 계산하고, 아주머니를 모셔드린다며 포이펫으로
갔습니다.
원래 속도로도 2시간 30분은 넘게 걸릴 씨엠립가는 길.
택시를 최대한 천천히 부드럽게 몰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괴로워했습니다.
대사관에 부탁한 한국편 직항기가 과연 구해질까,
씨엠립에 가면 지금보다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대체 경찰 조사서라는 건 어디서 받아야 하는 걸까...
씨엠립에 있는 나가 국립병원에 도착하자 곧
한국 교민회 분들께서 나와주셨습니다.
김덕희 교민회장님, 부회장님 부부, 사무국장님, 그리고 경숙 언니까지...
마치 자기 일처럼 달려와 주셨습니다.
병원으로 경찰을 불러 주시고, 한국 직항기를 알아봐주시고
심지어는 회장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호박죽에 김치까지
싸오셔서는 먹여 주시고, 경숙 언닌 갈 곳 없으면 자기 집에서
쉬다가 가라고 하시고...
정말 씨엠립 교민회 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요...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면 연락달라고 회장님께서 명함을
주셔서 연락을 드리기는 했지만, 이제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 다시 고마운 마음이 솟구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씨엠립 교민회 분들 건강하세요. 그리고 다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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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아직 캄보디아에서 했던 부목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레이소폰의 의사 선생님이 도수 정복한 상태가 좋아서
혹시 수술하지 않고도 골절이 회복될 지 지켜보자고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뭐... 이제 다리도 절지 않고 이마의 상처도 흉터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 병간호를 하면서 여행자
보험의 한도 내에서 치료비가 나올지 어떨지를 계산하고
있는 중입니다. 환전하면서 공짜로 가입해주는 걸로 들었더니
보장성이 너무 작아서 걱정입니다;;;
우리 둘의 여행은 원래 예정의 절반도 못 채운 상태에서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만, 그 택시 기사 살리를 원망하진 않습니다.
막말로 그 사고로 가장 적게 다쳤던 택시 기사는
현장에 우리를 버려놓고 도망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병원비와 씨엠립까지의 택시비도 내고, 포이펫까지 아주머니를
모셔다드리고, 경찰 조사 때문에 씨엠립에 돌아오지 못할
상황이 되자 나가 병원으로 친구를 보내 대신 사과하기도 하는 등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야 보장성이 작은대로
여행자보험이라도 가입해 놓았지만, 유일한 생계 수단인 택시가
다 망가진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으... 친구가 다 나으면 얼른 다시 여행 가렵니다. 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