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앙코르 여행 - 1일
2007년 우리 가족 앙코르 여행기
출발 준비
올해는 앙코르를 가기로 결정했다.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고로 불안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안전을 신경쓰지 않겠느냐면서 우리의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앙코르 유적 답사는 제대로 모르면 돌덩이만 보고 올 것 같아서 책과 여행기를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 트래블게릴라에서 나온 앙코르 유적이라는 책과 도올 김용옥의 책, 그리고 트래블게릴라와 태사랑 홈페이지에 있는 여행기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앙코르제국은 크메르 민족이 세운 고대 왕조이다. 우리나라 통일신라 후기부터 조선 초기 까지 정도의 시기에 씨엠리업 근처에 존재했다. 앙코르는 당시 인도차이나 지역의 강대국이었다. 약 700년 정도 존재했던 앙코르제국은 처음에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가 강했는데, 후기에 불교도 도입되었다. 지금 캄보디아는 95% 정도의 국민이 불교도인 소승불교 국가이다. 그래서 앙코르 왓 등 대부분의 유적지는 힌두교이지만, 앙코르톰의 바이온 등 일부는 불교 유적이다. 때로는 양자가 혼합되기도 해서 상당히 흥미로운 양식을 보인다.
당시 베트남 중부에 살던 참족과의 오랜 전투 속에 성장한 앙코르제국은 결국 태국의 샴족에게 씨엠리업을 뺏기고 프놈펜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앙코르제국은 오랜세월 동안 적어도 서양세계에는 알려지지 않는 밀림속의 유적으로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앙코르를 멸망시킨 샴족도 곧이어 미얀마에게 망하게 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비정함과 무상함이 느껴진다.
2007년 7월 20일 (금) - 첫째날
원래는 20일 08시 45분 로열크메르 항공으로 대만을 경유해서 캄보디아 씨엠리업으로 갈 예정이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공항에 도착했더니, 엄청난 사태가 발생해 있었다. 캄보디아 현지의 00 여행사가 국내 여러 여행사로 신청한 사람들의 수속을 총괄해서 대행해주는데, 그 담당 여행사가 항공사로 돈을 입금하지 않고 잠적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원체 연착으로 유명한 항공사라서 처음에는 항공기 수리 중인 줄 알았는데, 그것 보다 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계약한 여행사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애를 태우다가, 결국 2시간 늦은 11시에 출발하게 되었다. 원래는 승객이 105명이었다는데, 취소하거나 다른 비행기로 가고 단지 11명만 출발했다. 승객 수보다 승무원 수가 더 많은 초특급기로 여행을 한 것이다.
돌아오는 일정도 변경되었다. 원래는 24일 오후 11시 10분에 로열 크메르 항공으로 씨엠리업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11명만 태우고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2일 연장된 26일 오후 1시 20분에 PMT 항공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로열 크메르 항공도 안전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으나, PMT는 최근에 사고난 항공사라서 걱정이 조금 되었다. 앞으로는 가격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여행비가 조금 올라가더라도 안전도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 15분에 대만 타이베이에서 항공기의 급유를 위해서 40분 정도 머물다 다시 시엠리업으로 출발했다. 이 시간 동안에는 기내에 머물러야 한다.
비행시간은 인천에서 대만까지 2시간 10분, 대만에서 씨엠리업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드디어 오후 5시(한국시간으로는 3시)에 씨엠리업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훅 느껴지는 더위는 열대지방임을 실감케 했다.
우리의 숙소는 드래곤 로열 호텔이다. 항공사와 관계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4성급 호텔인데, 비행기에 손님들이 타지 않은 관계로 여행기간 내내 호텔도 거의 비어있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 4명을 포함하여 10여명이 호텔을 전세 내다시피 했다(우리가 캄보디아에 간 이후로 로열 크메르 항공은 한국 운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현지 여행사가 여름 내내의 계약을 전담했는데 잠적했기 때문에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 기간 동안 틈 나는 대로 우리가족끼리만의 수영장 사용이 가능했다(처음에는 왜 이렇게 사람이 없나 우리도 의아해하다가 귀국하면서 항공사 직원에게 듣고 알게 되었다).
호텔에 짐 풀고, 6시 30분경 일몰을 보러 쁘레 룹으로 출발했다. 이곳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서 택시 등을 대절해야 한다. 사람 수가 2명 정도면 오토바이를 개조한 뚝뚝을 대절해도 되지만, 우리 일행은 4명이라서 하루 20달러를 내고 택시를 대절했다(식사 시간에 호텔과 시내를 이동할 경우에는 뚝뚝을 2달러 내고 이용했다).
택시는 하루 20달러가 기본인데, 일출은 5달러, 반띠아이 쓰레이는 15달러, 똔레 쌉은 10달러, 룰루오스는 5달러를 더 줘야 한다.
이곳은 낮에는 더운 관계로 2시간 정도 쉰다. 우리는 점심 포함해서 3시간 정도 쉬면서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자고 조금 편하게 움직였다. 너무 바쁘게 움직이면 피곤하니깐...
쁘레 룹은 10세기 후반에 힌두교의 3신중 하나인 파괴의 신 시바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사원 앞에 도착하자 여러 여행수기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물건 파는 현지 어린이들이 다가왔다. 어린 아이들이 옷도 제대로 못입은 채 관광객에게 물건 팔려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와이프와 큰 딸애도 마음이 아픈지, 많은 양의 과자와 사탕을 집어주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약간의 과자와 사탕을 준비했다. 돈을 주자니 그것이 애들 차지가 될 것 같지도 않고, 학용품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아예 먹을 것을 주자고 작정했다. 그런데 다른 여행객이 사탕을 많이 주는 것 같아서 우리는 과자를 같이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과자 부피 때문에 가져갈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어서 여행 끝까지 분배해서 주어야했다.
밀림으로 저무는 태양. 언제나 똑같은 태양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서있다.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공허하지만 궁극적 질문에 더 숙연해지는 석양. 우기라서 매일 비가 온다고 하더니, 우리 있는 동안에는 비를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여행 동안에 여러 차례의 일몰과 일출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즐거운 저녁식사. 여행 가면 고생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음식이다. 나는 아직도 처음 외국여행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비교적 토속적이지 않은 입맛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음식 때문에 고생하면서 '아하 여행은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어느 나라를 가든 현지음식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빠른 시일 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오늘 식당은 태국식 음식점인 데드피쉬 타워라는 곳이다. 간단한 공연도 곁들이는 곳으로 마치 해적선 처럼 내부를 치장해놓았다. 식사 후 몇가지 공연을 보다가 도중에 나오면서 계산서를 보니 25달러 내외. 우리나라 물가로 치면 4명이 25달러면 비싸지 않지만, 기사 포함한 하루 택시 대절비가 2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음식값이 다른 물가보다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공연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첫날이라서 피곤해서 그러기도 했지만, 또다른 이유는 모기 때문이다. 식당이 야외라서 그런지 모기가 자꾸 물어대는 것 같았는데, 말라리아를 조심해라, 댕기열이 유행이다 등등 험악한 보도를 자주 보았던지라 걱정이 되어서 일찍 나오게 되었다. 이후에도 가는 곳곳 열심히 모기 안물리는 약을 바르고 다녔는데, 그 덕분에 조금 덜 물렸는지는 몰라도, 안물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다행히 씨엠리업 지역은 말라리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