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지매의 여행기-8,9일째-다시 방콕으로
프놈펜으로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방콕으로 향했다. 본래는 시하누크빌을 거칠 생각이었는데 설(저녁먹은 식당서 직원이 우리더러 Happy Chinese new year! 라고 했는데 우린 못알아 듣고 Korean이라 했다^^)이라 교통편이 불편할 거 같기도 하고(시하누크빌가는 버스값이 하룻밤새 1.5$이 오르고 픽업도 안된다고 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바닷가에서 멍하니 ‘여기 왜 왔지 왜왔지’만 하고 있을 거 같아 바로 방콕으로 향하기로 했다.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다리를 한번 걸어서 넘고 하는 그 엄청난 고생을 경험해보지 못하는게 아쉽긴 했지만.
아침 6시 45분에 출발한 버스는 거의 15시간쯤 걸렸다. 중간 중간 쉬고, 국경에선 하염없이 쉬고. 여기서 엄청난 일이 있었다. 버스표에도 여권번호랑 썼던가? 하여튼 그걸 여권이랑 같이 손에 들고 있다가 그만 둘 다 출국장에 내버린 거다(순간 출국카드로 착각하고서). 태국 입국장에 도착해서 정말 18.5$에 방콕까지 가는거 맞냐며(차장도 안보이고 우리만 남겨져서 혹 사기당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차안에서 만난 한국학생이랑 얘기하다 그게 차표인걸 안 순간 얼마나 아찔하던지. 혼자서 그 먼(?)길을 뛰어서갔다. 말이 안통하는데 이를 어쩌나, 차표가 없으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갔는데.... 다행히 차표가 그대로 있는거다. 정말 십년감수하는 줄 알았다.
씨엠립에 있을 때 셋이서 식당 고를 때 정한 원칙이 있었다. 무조건 캄보디아음식, 싼 거. 그래서 심지어는 frog라고 쓰여진 음식을 시키기도 했다(찾는 사람이 없어서 안한단다). 프놈펜에서도 그 원칙을 지켰으나 보기만 보고 도저히 못먹겠다고 고개를 저은게 하나 있다. 바로 병아리 되려다 만 썩은 달걀. 예전에 TV에서 보고 저걸 어떻게 먹나 싶었던 바로 그 문제의 달걀! 근데 이걸 점심때 먹은 거다. 캄보디아 음식도 조금 지치고 배는 고프고, 빵은 안보이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달걀 먹는 사람들 사이에 앉았는데 아차! 바로 그 달걀이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맛있게 먹길래 일단 찻숟가락으로 위를 조금 깨어보니 털이 별로 안보인다. 그냥 노른자있고, 까만 부분 좀 있고. 소금 뿌려서 맛있게 두개를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음 진작 먹을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근데 나중에 그 대학생 얘길 들어보니 세 번째 달걀은 포기했다고 한다. 털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고ㅡㅡ;;
대학생 동생(아쉽게도 통성명을 못했다. 아주 귀여운 학생이었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대학생은 날더러 어머니라 부르는 바람에 얼마나 놀랬는지! 내가 지 과외하는 애 학부모도 아닌데 어머니가 뭐냐. 근데 이 학생은 날더러 누나라 부르는 바람에 또 한번 놀랬다. 누나라니! 아지매가 귀에 익숙해진지도 십여년인데 ‘누나’라니!)은 경비도 아낄 겸 도미토리로 가겠단다. 외국인들과 대화도 나누고 친구도 사귈 수 있대서(그래서 한비야도 도미토리에 머문다고 한다) 일본인 도미토리로 따라갔다. 나도 초급수준이지만 일본어를 한번 써먹어야봐야지 했는데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말도 안통하는데다 소심한 탓에 말을 걸어보지도 못했다 ㅡㅡ;;
이 학생은 대만항공을 타고 왔는데 갈때도 대만을 들른단다. 하루(더 늘릴 수도 있다는데)를 거기 머물면서 고궁박물관을 가겠단다. 경유지에선 공항안에만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돈없는 배낭여행객들이 그런 식으로 한두 국가를 더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방콕의 하루는 아주 우아하게 보내는게 목적이었다. 본래 목적(캄보디아)은 달성했고 시간 여유도 많으니 우아한 곳에서 분위기있게 먹어보자였는데.... 일단 맛집들이 아침에는 문을 안연다. 저녁에 가리라 생각하고 일단 걸어서 미술관으로 갔다. 아무래도 관광객이 적어서 좋다. 다시 박물관. 캄보디아보다 훨씬 크다. 온통 앙코르와트 일색이던 프놈펜박물관과 달리 여기는 온통 왕들 이야기다. 국왕에 대한 찬사, 국왕이 그린 그림, 국왕이 타던 마차, 국왕이 쓰던 그릇, 물건들.... 심지어 왕비가 갖고 놀던 인형의 집도 있다. 그런데 왕조역사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프랑스에 땅을 빼앗겼다, 어디에 빼앗겼다, 영토를 잃었다....’ 똑같은 사실이 캄보디아선 ‘태국으로부터 독립했다’로 되어있었다(물론 프랑스를 거쳤지만). 인도차이나반도의 고만고만한 세나라(태국,캄보디아,베트남)가 서로 물고 물리는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도 일본과 우리 비슷한 감정 아닐까 싶기도 하고.
비를 피한다고 박물관에 머물다 가랑비로 바뀐 뒤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 앞 광장에서 천막을 쳐놓고 밥을 나눠준다. 얼마 전에 국왕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곳곳에서 밥을 주더란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밥값도 아낄 겸 들어갔는데 한숟갈 떠자마자 폭우가 퍼붓는다. 옆 천막이 날라가고, 우리네 천막도 날라갈까봐 장정 서너명씩 버팀목을 잡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어떤 아저씨는 밥먹다 천막이 날라가는 바람에 밥이 국밥이 되어버렸다. 비바람을 맞으며 억지로 먹고있는데 어떤 태국인이 얘기를 걸어온다. 알아듣다 말다 한참 얘기를 했는데 결론이 2$였다(생각도 못했기 땜에 서너번이나 다시 물었다). 떨어진 슬리퍼를 보이며 달란다. 좀 씁쓸했지만 없다니 바로 포기한다.
운동화는 새고(많이 걸을거라고 하필이면 운동화를 신었다ㅠㅠ), 도로는 물바다고.... 한참을 주저하다 결국 운동화를 벗어들고 건넜는데(사상공단의 시커먼, 기름까지 둥둥 떠다니는 물에 허벅지까지 적신 적이 있는 나한테는 이곳 도로 물바다는 사실 깨끗해서 신기했다) 왕궁 문을 닫는다. 이런! 맨발로 신을 신었더니만 물집이 잡혀 아프고. 여기서 포기하고 숙소로 갔어야 했는데.... 혹시나 볼게 있을까하여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설이라서 용춤이라도 추지 않을까하는 기대에다 거기서 저녁을 먹어볼까 싶기도 하여). 일단 배를 타고 사톤에서 내리니 바로 앞이 sky train(우리랑 달리 여기 전철을 공중으로 달린다) 정거장이다. 전철종점서 내리니 백화점. 한참을 구경하다(고급 백화점인지 우리네 물가랑 별 차이없다) 버스로 차이나타운. 오히려 카오산보다 컴컴하다. 다들 설이라 쉬는건지. 입구의 사원에만 사람들이 몰려 절하고 복을 빌고 있을뿐. 황비홍서 보던 용춤은 낮에 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건만 이제 기름에 튀기고 볶은 음식은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다. 백화점서 먹은 타코야키로 저녁을 건너뛰기로 했다.
사실은 배고픈 건 생각이 안날 정도로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낮인가부터 이곳 저곳이 가렵기 시작하더만(침대맡에 둔 옷탓이라고 하기에는 옷이 닿지 않는 팔뚝에도 난게 현재까지 원인 불명이다) 저녁이 되니 장난이 아니다. 연고를 하나 사서 밤새 발라도 해결이 안된다(덕분에 도미토리에 쌓인 일본만화는 근처에도 못가봤다). 갑자기 손톱만한 크기로 빨갛게 붓고 가운데는 물집이 잡히고 가렵고(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씨엠립에서 물린 불개미는 상대도 안된다. 여러명이 잤는데 혼자만 그렇다. 팔, 다리, 발목, 등, 가슴.....나중엔 얼굴만 피해갔으면 할 정도로 거의 온몸이 절단이 났다. 그나마 마지막에 이랬기에 망정이지 중간에 그랬으면 그만두고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왜 혼자만 유난을 떠는지. 나쁘게 해석하면, 동남아 벌레와 상극이니 두 번 다시 발걸음 하지 말란 징조고. 좋게 해석하면 이걸 계기로 면역이 생겼으니 앞으론 걱정하지 말고 오란 징조같기도 하고. 어느 쪽인지ㅡㅡ;; 어쨌거나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 정말 마지막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ㅠㅠ(이 글을 쓰는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여름에 반소매를 입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고. 이 글 읽고서 벌레땜에 포기하지는 마시길. 정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너무 유별난 탓으로ㅡㅡ;;)
마지막까지 초보 티를 낸 게 또 있다. 싱가포르 유학생이 남겨놓으라 한 700바트에서 200바트를 써 버린거다. 아침에 카오산 거리 여기저기를 환전소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다들 문을 안열어서 포기하고 공항서 바꿔야지 했는데 공항서 마침 김양을 만났다. 필요없단다. 이미 비행기 티켓에 다 포함되었다나. ‘tax포함’할때의 tax가 바로 그 700바트-출국세라는 걸 처음 알았다ㅡㅡ;;(500바트는 면세품점에서 물건 살 때 유용했다)
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후련합니다. 사진이 없어서 아쉬운데....모든 사진을 책임지기로 한 우리의 장군이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새학기라 바쁜 듯^^
나이들면서 가장 두드러지는게 용기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이렇게 갔다오니 정말 뿌듯합니다. 물론 태사랑 덕분에 가능했던 여행입니다.(씨엠립에서 만난 늘근 총각 왈, “태사랑 정말 위대해, 우리 국민 정말 대단해. 이런 대단한 국민들을 데리고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건 우리 탓이 아니야!”) 저처럼 처음 여행을 하실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