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레이 - 안쓰러운 유적
초보 배낭여행 7일째/11월 6일
오늘이 시엠립지역의 두번째 날이다.
오늘의 일정을 살펴보자.
간밤에 천둥 번개에 많은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에는 옅은 구름만 끼었다.
일출을 유적에 가서 보지 않더라도 동트는 아침 하늘만 바라 보아도 좋다.
아침을 6시 30분에 먹기로 했는데 5시 부터 밖에 나와 어정거리며 근처를 산보하고 다니다 6시에 다시
와 봐도..... 7시 넘어서 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7시 넘어 나타나서 국수를 끓여주는데 생쌀 씹듯 익지도 않았다.
툭툭기사도 안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이것도 여행의 일부다.
여기서는 이곳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내 돈 내고 내가 열 받을 필요가 없다.
그건 바보짓이다.
오늘은 롤루스 지역부터 시작이다.
롤루스는 롤레이와 프레아 꼬와 바콩을 묶어서 말한단다.
숙소를 7시 30분이 넘어 출발했다.
어젯밤 내린 비로 이곳의 재래시장 입구는 물에 잠겼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잠옷만 입고 시장보러 온 아낙도 있다.
이것은 동남아시아의 일상이며 이들의 삶의 방법이다.
그래도 아침 시장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달리는 툭툭 위에서도 카메라 셧터를 누른다.
그래서 촛점이 명확하지 않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면 물에 잠긴 모습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달리는 6번 도로는 1.000년 전에 만들어진 도로다.
당시에 주위에 있는 국가들과 지방 호족에게 조공을 받았고 또 쉽고 빠르게 운반하려고 만든 도로다.
그러나 앙코르제국은 수많은 사원과 능력에 넘치는 건설 공사로 결국 태국 샴족의 침입을 받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시엠립이란 샴을 물리쳤다는 말이라는데 그게 아닌가벼~~.
영광의 도로가 오히려 아유타야의 샴족이 이곳으로 침공하는 지름길이 되었으며 그들은 거침없이 이곳을
유린하였다.
한 때의 영광이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게 역사의 한 교훈이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 펜으로 연결된다.
뒤로는 태국 국경으로 연결이 되고....
이제 롤루스군 중에서 제일 먼저 롤레이라는 곳에 8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붉은 흙 위에 붉은 벽돌....
초기의 유적은 대체로 벽돌을 많이 사용했나 보다.
아~ 오늘도 맑은 하늘이다.
그래도 佳人은 믿지 않는다.
이곳은 원래 저수지 가운데 세워진 유적이라는데 지금은 물은 없고 그냥 마을 안에 있는 작은 유적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시원을 우리는 어제 동 메본에서 보았다.
속은 붉은 벽돌로 쌓고 그 위에 사암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 형식이다.
프놈 꿀렌이라는 산에서 시작한 앙코르의 탄생은 농지의 필요성으로 롤루스 강을 끼고 있으며 넓고 비옥한
평야인 이곳에 터를 잡으며 새 앙코르의 문을 열며 번영의 기틀을 닦는다.
그러니 이전 신장개업을 했다는 말인가 보다.
하긴 국가가 힘좀 쓰려면 첫째 인구수가 많아야 한다.
지금도 원칙이다.
현재 세계에서 목소리 큰 나라들을 보라.
아무리 부국이라도 인구수가 작으면 별 볼일이 없다.
이웃에 있는 어느 나라는 아직 부국은 아니지만 인구수로만 큰 소리친다.
그러다 보니 산속에서는 좁은 농지로 많은 입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
그래서 농경사회의 기본인 쌀 농사가 잘되는 큰 강을 끼고 넓고 비옥한 땅을 찾아 다닌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도 강 유역이고 지금도 융성한 세계 모든 도시는 모두 큰 강을 끼고 있다.
양변의 길이가 800m, 380m인 대형 저수지의 한가운데 있는 사원으로, 지금은 저수지가 물길이 바뀌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공중에서 보면 아직 저수지의 형태는 남아있다.
붉은 벽돌로 탑을 쌓고 그 앞면에다 부조를 붙였다.
무슨 풀을 써서 붙였길래 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저리도 붙어 있을까?
이곳처럼 더운 지방에 사는 개미들의 집을 매우 크고 단단하다.
그래서 그것과 식물에서 채취한 성분에....
더이상 이야기 하면 특허권에 침해를 한단다.
초기의 데바타스나 압사라는 주름치마를 입었으며 투박한 옷을 거의 발목까지 덥고 있다.
표현 방식이 앏은 옷으로 다리 선까지 표현하며 멋을 낸 중기나 후기 유적지와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일상에서 입었던 의상의 변화가 부조에 그대로 나타난게 아닐까?
데바타스가 있으면 여성을 위한 사원이다.
우연히 오후에 앙코르 왓에서 발견한 개미집이다.
이 집은 큰게 아니다.
이게 굳어지면 엄청 단단해 진다고 한다.
이곳이 최초로 물 위에 지어진 신전이라는데 의미를 둔다.
어제 본 메본 사원등이 있었지만 여기 보다는 늦게 세워졌다.
서 바라이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물이 채워져 있는 저수지는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앙코르 제국 멸망의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탑 안에는 고대 인도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을 남겼나 보다.
동쪽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런 가짜문이다.
가짜문이 더 견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다.
이런 문의 형태가 왕궁이나 귀족들의 집에 사용된 형태일 것이다.
문 양쪽으로는 드바라팔라스신이 지키고 있다.
그러면 이 신전은 남자를 위한 신전이다.
사방으로 모두 4개의 문이 있으나 열려진 문은 동쪽 문 밖에는 없다.
힌두교에서 동쪽의 의미는 현재의 세상을 의미한다.
동쪽은 동시에 따뜻함이며, 봄이며, 생명의 탄생이며, 시작이며, 밝음이다.
서쪽은 죽은자들의 세계이고...
서쪽은 동시에 차거움이며, 가을이며, 죽음이며, 끝이며, 어둠이다.
문틀 위의 부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힌두 신화에 나오는 깔라라는 바보이면서 충직한 신이 지키고 있다.
나가.... 너는 그 밑에 왜 있는겨~
여기도 물 위에 지은 신전이고 홈 그라운드라고 머리를 내밀고 있는겨?
나가도 가끔 카메라를 의식하고 머리를 내 민다.
네개의 탑이 있고 각 탑들에도 의미가 있어 앞의 탑들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뒤의 탑들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바쳐진 것이다.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다.
워낙 초기에 건립이 되었고 전탑의 특징이 세월이 지나면 허물어지기가 쉽다.
이곳의 탑의 배치는 다른곳 처럼 균형있게 배치되지 않았다.
초기에 만들어 그럴수도 있겠지만 혹시 세월의 흐름에 다른 탑들이 무너져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저수지가 아니라 논 한 가운데가 되어버렸다.
물길이 바뀌면서 지금은 저수지가 아니다.
물길이 바뀜으로 앙코르의 주민들은 농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점차 쇠락의 길을 걷다가 샴 족이 슬쩍
건드리자 제풀에 프놈 펜으로 야반도주하며 시엠 립의 앙코르 제국은 폐업하고 만다.
이곳은 현상태에서는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초기에 건립된 유적이라는것 외에는....
이제 프레아 꼬로 간다.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시험 문제에서도 오답이 정답보다 더 그럴 듯 하다.
이곳의 문도 가짜문이 더 멋있다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