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티아이 쌈레...그곳은 수상 신전이다.
반티아이 스레이를 출발한지 50분만인 10시 35분 반티아이 쌈레 도착
오늘 들리는 두번째 유적이다.
입구에서 툭툭을 내려 이런 길을 한참 걸어간다.
방문하는 사람은 우리 부부외에는 별로 없다.
우리는 원래 출입문인 동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북문으로 진입한다.
동문은 보호차원에서 폐쇄를 했다고 한다.
입구의 고푸라 문이 보인다.
아무도 없다.
왜 이곳은 반티아이 스레이처럼 사람들이 없을까?
정답은 단체관광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단체 관광은 거의 1일권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시간상 제약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일률적으로 앙코르 왓과 따프롬 그리고 앙코르 톰 정도이고 혹 반티아이 스레이 정도...
고푸라 문 위의 조각은 사암으로 만들어 세월의 흐름에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말과 마차 바퀴의 섬세한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마차 위에서 화살의 시위를 당기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화살이 활 시위를 튕겨나갈 것 같은 긴장감이 든다.
랑카의 전투장면이다.
오른쪽이 하누만 장군과 원숭이 군단이고 왼쪽이 라바나(손이 여러개)와 악마 군단이다.
고푸라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오니 라테라이트로 만든 벽이 붉게 빛난다.
이곳은 복원이 거의 끝났는지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으나 아직 저기 있는 저 돌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중앙 성소탑 까지는 일직선으로 여러개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다.
그러나 그냥 들어갈 수가 없다.
내려갔다 올라가며 옛날 해자로 만든 바닥을 오르 내리며 가야한다.
이곳은 외벽과 내벽이 연이어 붙어있다시피 가까이 있다.
내벽을 통과하니 다시 탑문이 나타난다.
내벽과 성소와의 사이에는 사각형의 해자로 되어 있다.
앙코르 왓을 건축한 수리야바르만 2세는 이 사원이 준공되기도 전에 사망을 하였다고 하니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비쉬누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이곳도 비쉬누에게 바쳤겠지.....
우리는 이 시기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라는 위대한 역사를 남겼는데 수리야바르만 2세는 사원만 남겼다.
우리의 문화는 기록과 인문학적인데 반해 이들은 신화와 신전건축의 문화다.
차도르를 쓴 이슬람 신자는 이곳에 오면 안 되는디?
중앙 성소탑으로 들어가는 고푸라 문 위의 조각은 용맹스러운 하누만 장군의 부하들인 원숭이 군단이다.
그런데 얼핏보면 가루다 군단으로도 보인다.
가운데 부분은 훼손이 되어......
중앙 성소탑과 성소 사이에는 다시 해자로 되어 있어 들어가려면 물도 없는 해자로 내려갔다 올라온다.
예전의 초기 모습은 이곳 해자에 물이 채워졌을 것이다.
그때 물위에 비친 이 탑들의 모습을 연상하면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탑들은 해자로 격리되어 있다.
장서각으로 추정되는 건물 문틀 위에는 힌두신화에 나오는 우주탄생 설화가 멋지게 조각으로 남아있다.
우주 창조를 마친 비쉬누신이 너무 힘이 들어 물 위에 떠 있는 아난타라는 뱀 등어리에 비스듬히 기댄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쉬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의미하는 황금연꽃(?)이 비쉬누신의 배꼽에서 자라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 비쉬누와 아난타는 둘이서 사귀는거 아녀?
그 후로는 아이들이 애기가 태어나는 곳을 물으면 배꼽에서 태어난다고 했나보다.
역시 비쉬누를 제일 좋아하는 수리야바르만 2세라 이곳에 만들어 놓은 비쉬누의 모습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비쉬누신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온 사람이다.
아마도 그는 평생을 데자뷰 현상을 느끼고 살지 않았을까?
반티아이 쌈레란 쌈레족의 성채라는 뜻이란다.
쌈레족은 초기 크메르 제국이 탄생할 때 프놈 꿀렌에 살았다고 한다.
그곳의 소수 민족이 쌈레라는 민족이이라서 나중에 이곳의 이름을 정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도 연자로 생각되는 주판 알 같은 창문 장식이 있다.
중앙 성소탑에서 남문 방향을 본 모습이다.
이곳의 부조도 많이 훼손되었다.
이곳에서 처음 사람의 자취를 발견했다.
관광객은 아니고 이곳 부근에 거주하는 원주민이 아닐까?
설마 유령은 아니겠지?
하누만 장군이 멧돼지 하고 한판 승부에 들어 갔다.
멧돼지의 뒷다리를 손으로 잡고 허리를 호미걸이 한판으로 제압했다.
돼지의 주둥이가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며 멧돼지의 혓바닥이 쑥 나와 버렸다.
이 정도면 온벽한 한판 승이 아닐까?
하누만에게는 멧돼지 정도는 깜도 안 된다.
멧돼지는 비쉬누신의 3번째 화신이라는데 그럼 비쉬누신도 하누만 장군에게는?
중앙 성소탑을 보고 있노라니 저 편에 서양 단체 관광객이 보인다.
반티아이 쌈레는 비쉬누신께 바친 신전으로 이 중앙탑이 앙코르 왓의 천상계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앙코르 왓의 천상계는 출입이 되지 않으니 이곳에서 대리만족이나 하자.
같은 건설회사에다 공사 발주를 했는지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사원 내부는 마치 4등분 하듯 해자형식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물은 없다.
여기다 물 채워라...
태환이 수영하게...
그런데 태환이가 수영하기에는 너무 좁다.
이곳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곳이다.
크지않은 내벽 안쪽에 물이 채워졌고 그곳을 지나면 성소 내부도 또 물로 채워진 중앙성소가 있다.
디른 사원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특이한 모습의 멋진 곳이다.
그러니 큰사각형 안에 물이 채워져 있고 그 물 안에 다시 사각형의 성소를 만들어 물을 채우고 그리고
제일 안쪽에 중앙성소를 만들어 놓은 그런 곳이다.
저수지 가운데에 인공으로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사원을 만들어 놓은 곳은 다른 곳에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신전 내부를 물로 채워 마치 물 속에다 사원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가운데가 훼손되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세월의 흔적이 아니고 사람이 일부러 긁어 낸듯 하다.
아마 힌두교와 불교 사이에서 새우등 터졌나 보다.
좌대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졸고있는 쉬바의 형상이 있지 않았을까?
나가의 날씬한 허리 모습에서 왜 여인의 허리가 연상이 되지?
1.000여년을 쉬지도 못하고 저리도 고개를 쳐 들고 있으면 아프지 않을까?
이곳이 나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의미는 바로 아래에는 물이 채워졌을거라는 의미다.
나가는 물의 정령이고 주로 해자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기를 막아준다는 조형물이 해태상이다.
후기에 만들어진 나가상은 배를 땅에 붙이지 않고 있다는게 초기와는 다른 점이다.
이제는 무섭지 않다.
서양 사람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앙코르 왓 천상계를 닮았다는 중앙 성소탑...
중앙 성소탑은 동서방향을 길게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이 사원을 지은 수리야바르만 2세는 그때까지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졌던 크메르족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강력한 통치력을 가진 왕이었다.
비록 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일으켜 하룻만에 왕권을 탈취하고 선왕을 백수로 만든 하극상의
왕이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수리야바르만 2세에게 한번 물어 볼까요?
지금은 여론이니 시대적 사명이니 하지만 그때는 비쉬누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했겠지요 뭐~~
"쿠륵세투라" 전투에서도 싸우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판두바의 아들인 아르주나를 비쉬누가 꼬드겼잖아요.
힌두설화의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는 바로 수리야바르만 2세 자신을 위한 내용이라고 뻥치면서...
그래서 비쉬누의 집요한 스토커인 수리야바르만 2세는 죽어라고 비쉬누만 추종하고 자신을 비쉬누라고
착각하고 산 MC몽이 아닌 예지몽 현상에 빠져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눈에 가시처럼 껄끄러웠던 베트남 중남부에 근거를 둔 참파왕국을 정벌하고 그곳까지 통치한
캄보디아 역사상 당시까지는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대국이었다.
이로인해 지금까지 베트남 남부의 영토문제가 양국간에 생기는 것이다.
베트남 중남부는 사실상 가을의 전설로 사라진 참족의 참파왕국의 땅이었으니까...
지금의 베트남 비엣족은 당시에는 북부의 하노이를 중심으로한 작은 국가에 불과했다.
이제 반티아이 쌈레의 내부는 어느정도 보았다.
내일은 멋진 테라스가 있는 동문으로 나가 보자.
큰 사진으로 보시려면 : http://blog.daum.net/nhk2375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천지 창조.... 배꼽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이 애기가 어디서 태어나느냐고 물으면 배꼽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