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톰에는 살아 움직이는 부조가 있다.
이제 우리는 앙코르 톰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북문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작게 돌아오는 코스로 별로 힘도 들지 않고 하이킹 하는 기분으로 돌았다.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여 이곳 승리의 문으로 다시 들어온 시간이 오후 2시 30분....
놀며, 쉬며, 즐기며, 마시면서 천천히 그들처럼 생각하고 돌아보며 걸린 시간이 고작 3시간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숲이 우거진 이런 길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 본다는 것....
여행중에 느끼는 줄거움의 하나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다.
佳人이 하면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병사들과 함께 승리의 문을 佳人도 같이 통과를 한다.
승리의 문 안밖으로는 환영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버지를 부르고 지아비를 찾고 아들을 찾는 노모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전사지의 가족들은 저멀리 뒷편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군사들의 행진 뒤로는 적군의 포로들이 포승줄에 묶여 지친 몸을 끌며 힘없이 뒤를 따른다.
장엄한 군악대의 행진곡에 발 맞추어 지금 승리의 문을 통과하고 있다.
승리의 문을 들어서니 저 멀리 개님이 앞장서서 인도 한다.
역시 佳人의 상상은 확실히 개꿈이었다.
이곳 앙코르 톰내에는 무수히 많은 개들이 산책을 하며 다닌다.
왕의 광장 안으로 들어와 잠시 곧게 뻗은 이런 숲길을 달려 왕의 광장이라는 곳에 이르르면 이렇게 쁘라삿
수오르 쁘랏이라는 탑이 길 양쪽에 6개씩 모두 12개가 있다.
쁘라삿이란 크메르어로 탑이라는 말이란다.
이곳의 용도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때 탑을 연결하여 차양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고....
바로 위의 사진 왼편에 보이는 탑의 꼭대기를 보면 옛날에 친 차양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또 탑사이로 줄을 연결하여 줄타기를 했다는 말도 들리고.....
조공품들이나 진상품들이 도착하면 이곳에서 검사를 하는 용도라고도 하고....
얼마나 많이 들어 왔으면 12군데에서나 검사를 했을까.....
동서남북으로 문이 모두 열려있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고 "첸라 풍토기"라는 방문기를 남긴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은 재판정으로 일단 소가 제기 되거나 죄를 심판할 때 원고와 피고를 각각의 탑에 감금하고
친척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여 며칠을 가두어 두고 며칠이 지난뒤 그들이 이 탑에서 나왔을 때
만약 아픈 기색을 보이면 유죄라고 했다고 써 있단다.
이러한 재판 방법은 하늘의 심판(天獄)이라 여겼다고 하니 체력 달리는 사람은 꼼짝없이 죄인이 되는
재미있는 재판이었던가 보다.
또 협의자를 붙잡아 기름이 끊는 냄비에 손을 넣게하여 손이 아무렇지 않으면 무죄고, 벗겨지거나
문드러지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끓는 기름솥에 손을 넣어 온전한 사람이 있었을까?
이런 방법은 무조건 죄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런 형벌에 무사할 자 그 누구이런가?
이런 법을 만든 자가 한 번 끓는 기름 솥에 자기 손이라도 넣어보고 만들었나?
그러면 6개가 재판이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佳人이 내부로 들어가 보았을 때는 왕의 광장 앞에 균형을 고려한 조형물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그들은 건축을 할 때 모든 구조물에 좌우 대칭과 전후 균형을 고려하여 건축하였으니까.....
아침에 북 끌리앙에 가 보았다.
이곳은 남 끌리앙이다.
끌리앙이란 이곳 말로 창고라는 뜻이란다.
이곳도 남북으로 각각 하나씩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남 끌리앙이 북 끌리앙보다는 조금 더 온전히 남아있으나 무너질까봐 무서워 내부를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쁘라삿 수오르 쁘랏으로 들어가는 물 웅덩이 위에 임시로 만든 널판지 위에 아이들이 있다.
오누이로 보이는데 누나는 물 속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잡고 있다.
아이들이 물웅덩이에서 무엇을 잡고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 보자.
여행중에 현지인들을 만난다는 일....
그것은 음식에 맛을 더하는 조미료와 같은 일이다.
여행중 유적만 둘러보고 온다는 것은 그냥 차려놓은 음식만 먹는 일이다.
나만의 맛을 더 맛보기 위해서는 이렇게 아이들도 만나보자.
울 마눌 : "너 몇살이니?"
아이 : "12살"
울 마눌 : "그럼 동생은?"
아이 : "두 살"하며 손가락 두 개를 편다.
누나는 12살이라는데 체격은 믿지 못할 정도로 왜소했다.
울 마눌님이 가방에서 과자 두개를 꺼내어 큰 아이에게 건네준다.
아이는 머리를 긇적이며 고맙다고 받아든다.
관광지에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면 거의 삐끼들이다.
우리가 먼저 다다가면 좋은 인상을 받고 오래 기억에 남는 일들이 생긴다.
아이들이 물 웅덩이에서 잡은 것들은 무엇일까?
게와 고동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오늘 저녁 반찬을 위하여 이곳에 왔나 보다.
길거리나 시장을 다녀보면 고동같은 것들을 삶아 파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잡은 고동인 모양이다.
그런데 큰 아이가 받은 과자 두 개를 모두 동생에게 주고 말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누나는 과자도 먹어보지 못하나 보다......
아......
아이들이 모두 맨발이다.
그리고 동생의 발등에 보이는 종기.....
저건 틀림없이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때 오는 모습이다.
이곳처럼 얕은 물에서도 게가 사나보다...
그런데 저 게를 어디서 본 듯 하다.
그렇다 !!!!!
바로 이 사진....
아까 문둥이왕 테라스 미로 속에서 찍었던 게 모습의 사진....
이들의 부조에 있는 조각은 바로 이곳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석벽에 만들어 놓은 부조는 바로 이들의 실생활이었다.
그럼 코가 셋 달린 아이라바타나, 나가, 가루다도 모두 어딘가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
살아 움직이는 부조....
거대한 신들의 고향....
바로 佳人은 눈으로 보고 왔다.
만약 가루다가 살아 있다면 ....
다음에 이곳을 가시는 분들은 가루다와 머리 셋 달린 아이라바타를 꼭 찾아 보셔야 한다.
佳人의 능력으로는 게만 확인을 했다.
바로 아래 있는 사진에 보이는 저 녀석들도 분명히 어디엔가에 살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벌 서고 있는 가루다.....
신라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바로 인도의 아유타국이라고 추정되는 아요디아에서 왔다.
그녀는 아유타국의 공주였다.
바로 그곳이 비쉬누의 7번째 화신인 라마왕자가 태어난 나라이고 비쉬누의 9번째 화신인 부처가 처음으로
출가하여 공부한 유서 깊은 도시가 아요디아이다.
만약 라마와 부처가 같은 비쉬누신의 화신이라면 그 나라인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도 분명 연관이 있다.
허황옥은 배를 타고 주포촌이라는 지금의 창원지방에 상륙했다는데 만약 가루다를 타고 왔다면....
그리고 타고온 가루다를 어디엔가 감추어 두었다면....
김 수로왕의 신화에 얽힌 구지봉이나 구지가등을 보면 유난히 거북이와 관련이 깊다.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만드신 거북선은 입에서 불을 뿜는다.
마치 가루다가 입에서 불을 뿜듯이....
혹시 거북선을 건져보면 그 안에는 가루다가 한 마리씩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신화도 허황된 이야기지만 佳人의 상상도 허황된 이야기고 허황옥도 허황된 이야기일까?
그 이유는 날이 더워 머리가 점점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길
이제 우리는 마지막 들려 볼 곳인 바이욘으로 간다.
바이욘도 이곳에서는 꼭 보아야 할 유적이다.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큰 사진은 : http://blog.daum.net/nhk2375
오늘의 佳人 생각 : 살아있는 부조를 잡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허황옥과 라마와 부처와 가루다와 거북선과.....
날씨가 무척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