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의 1박 2일
10분 안에 하얀 팔이 갈색으로 변하는 작렬하는 앙코르왓에서 (필수품: 우산)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나머지 1박 2일을 위해 프놈펜으로 갔다. 원래 마음먹었던 일정은 프롬펜에 도착해서 앙코르왓으로 가려 했지만 그 놈의 추석연휴는 나의 마음만을 움직였던 것이 아니였나 보다. 6월에 벌써 예약이 끝났으니 정말 너도나도 “해외로” 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앙코르왓에서 함께했던 동행자들과 헤어진 뒤, 초면부지의 푸른향기님의 권유와 채공님의 선전으로 선타투님집에서의 추석파티초대를 위해 프놈펜으로 향하기로 했다. 전날 버스 차표를 호텔에 예약하니 $ 3,50 이라고 한다. 서울 부산정도의 거리인데 고작 3.50 달러라니? 그것도 VIP 어쩌고인데? 잘못 된것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트렁크를 호텔에 맡기고 아침 7시 30분까지 필요한 짐만 챙겨서 기다리고 있으니 봉고차가 앞에 선다. 그럼 그렇치, 3.50달러...
10분 가량을 달리더니 정류소에 멈추고 다시 큰 버스로 갈아타라고 한다. 어쭈.. 제법.. 15명 정도가 승차를 하는데 외국인이 반이다. “이 버스가 프놈펜에 가나요?” 외국인 왈, 그렇단다. 다시 출발해서 10분을 더 달렸다. 이번에는 더 큰 차로 갈아타라고 한다. 이번에는 "VIP" transfer...라는 대문짝 만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1시간 이나 지체한 8시 반에 승객 대부분이 탈 때 까지 기다리다가 드디어 차가 출발했다. 버스 안은 나이트장을 방불케 하는 큰 음악소리가 나의 귀를 울리기에 휴지를 감아 돌려 귀구멍을 막았다 (필수품: 귀마게).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농촌길보다 조금 넓고 길을 따라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차가 멈추기에 보니 소들이 지나가고 강아지들이 중앙길에 있다가 황급히 피한다. 넓게 펼쳐진 평지를 보니 마음마저 시원하다. 자다가 말다가 문득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을 떠보니 차가 멈추어 서서 모두 내리라고 한다. 어리둥절 일단은 내려고 보니 차가 고장이다. 옆의 외국인들은 비행기 시간이 촉박한 듯 택시를 외치고 있고 이곳의 주민들은 당연하듯 느긋하다. 기술자의 손에 의해 차가 움직인뒤 나는 무사히 프놈펜에 도착했다.
오후 2시 반, 전화기를 빌려 도착했음을 알리고 일단은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왕궁으로 가기위해 1인용 뚝뚝이를 탔는데 지붕의 모습으로 봐서는 아닌 것 같아 멈추게 하니 이분 영어를 모른다. 그래서 다시 타고 달리니 이번에는 박물관앞에 세운다. 아니예요.. 다시 타고 드디어 왕궁으로 입장했다. 왕궁과 실버파고다 (왕궁전속인 불교사원)을 보고 스님들과 기념촬영을 마친 후,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니 여행자인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앙코르왓은 볼거리로 가득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 같은데 프놈펜은 혼자여서 그런지 사뭇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주변 환경 때문인가? 아니면 여행의 끝자락이라 그런가? 아이들이 몰려와서 무엇인가를 사라고 아우성이고 몸은 피곤하고 목도 말랐다.
다시 전화연결해서 선타투님집으로 향했다. 마중 나온 프놈펜난민님의 400cc 오토바이는 스릴만점이다. 좁은 골목길에서의 용감은 필수이고 곡예는 선택이다. 깊은 골목길을 지나니 "SUN TATTOO" 라는 조그마한 상점이 나온다. 삼층으로 올라가니 3명의 남자와 개가 (럭키) 한 마리 있는데, 순간 “윽” 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니, 모두 다 젊은 세대 이잖아, 내가 잘못 온 것 아냐? 너무 어린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괜히 분위기 깨는 것은 아닐지... 기타등등의 염려와 초면에서 오는 어색함이 온통 후회를 일으켰다. 그러나 샤워후의 상쾌함과 그곳에서 준비한 고추장돼지 불고기는 꿀맛 같았고 선타투님의 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영광도 얻을 수 있었다.
다음날, 킬링필드와 뚜엘슬랭 (Tuol Sleng) 박물관을 선타투님의 가이드하에 반나절 동안 뚝뚝이를 대절해서 역사탐방에 나섰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웬지 나는 잘 이해할 것이라는 미사여구 (?)는 나이보다는 젊어 보이는 얼굴에서 인생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뚜엘슬랭 (Tuol Sleng) 박물관은 원래 고등학교인데 이를 개조해서 보안소-21 (Security office-21) 이라는 감옥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반 정부인 크메르루스라는 무장단체가 당시 1만 7천명 가량의 국민들을 대량 학살 하였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공산주의에 반항할 것 같은 모든 지식인과 승려, 간부들, 단지 안경을 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을 했다. 이곳에서 고문을 한 뒤 학살은 킬링필드에서 행해졌고 다행히 몇몇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공개가 되었는데 그 배후에는 같은 민족인 폴포트 (본명: 살로트사)도 한몫 했다고 한다.
난 킬링필드 영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캄보디아에 대한 역사도 잘 몰랐고 동남아의 여행은 처음이다. 수 많은 해골을 모아놓은 위령탑과 총알마저 아까워 아이들을 나무에 쳐서 죽인 현장을 보고나니 젊은층에는 “비추” 라는 선타투님의 설명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해 후회를 하고 다시는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기위해서이다. 난 오히려 젊은 세대가 더 많이 와서 보고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에 대해 느낄 것인가? 본인이 그 당시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데 대한 감사함에 대해?, 세월이 흘렀지만 이러한 흔적을 보고 인자함에 포장되어 보이지 않는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또는 이러한 잔인성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언제든지 돌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점심을 먹은 뒤 느긋함을 즐기기 위해 투어를 접고 카페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 푸르스트) 라고 하였던가, 앙코르왓에서 동행한 분들과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가 초면이고 세대도 다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참으로 대견하다고 느꼈다. 6개월 전부터 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절약하고 절약해서 오늘을 맞이하고 타국에서 기반을 잡기위해 온 전력을 기울이는 열정은 앙코르왓의 풍경에 버금가는 멋진 장면을 나의 내면에 각인시켜주었다.
한국행 비행기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후 2시 시엠립행 버스를 탔다. $ 11에서 $ 7.5까지 흥정을 마친 선타투님의 입씸에 앉아서도 다리를 모두 뻗을수 있는 최고의 VIP 1번 좌석에 앉아서 어제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되 세기면서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달리고 있었다. 프놈펜은 앙코르왓 만큼 볼걸이가 풍부하지 않아서 새벽에 도착해서 무박을 하고 떠나도 좋지만 저녁 강변의 선선한 강변을 따라 걸어가는 정취를 맛보고 싶거나 강변에서의 조금 여유있는 아침식사를 원한다면 1박 2일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이렇게 나의 첫 아시아 여행은 가식없고 순박한 아름다운 한 장의 엽서로 나의 앨범을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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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에 기꺼이 동반해주신 선타투님께 감사 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