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2. 그녀와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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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2. 그녀와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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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반대어로서 작용하는 여행에 있어, 리얼리티의 대척점을 이루는 환타지를 구성하는 필수요소란?
어렵지 않타. 당근 로멘스다. 로멘스야말로 나날이 황폐해져만 가는 21세기를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일 터, 하루 세 끼 식후 삼십 분 마다 목을 메달고 싶어지는 현실이라는 지옥도를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임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은, 당최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에서가 아닌 시시각각 웃고 우는 환희와 슬픔을 녹여낸 사연과 곡절이 난무하는 여행. 정신, 육체적 감각의 레이더가 최고조로 달해있을 때 던져지는 노도와 같은 파문. 이 극적인 맛은 달콤한 향기를 동반하며 살아 숨쉬는 내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뒤따를 일이다.

비단 선남선녀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사랑은 한다. 심지어 악마마져도.

허나, 나...

세상 모든 사내들이 그렇듯, 역시 미녀를 사랑한다. 그 정도가 타인에 비해 지나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종종 있으나, 이는 드러내놓고 하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 본질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뒤에 숨어 수를 꾸미는 짓은 '사내다움' 이란 진즉에 용도폐기시켜버린 막장의 쫑팽이들이나 하는 짓, 이는 내 취향이 아니다.

"미녀에 대한 올바른 예의는 마음을 다한 백 번의 감탄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몸소 실행에 옮기는 필살의 추근덕에 있다" 믿는 나, 많치 않은 여행에 비해 적지 않은 로멘스를 간직한 것은 불문가지. 밀도의 촘촘함과 농도의 차이별로 두루두루 가지각색이다. 미욱한 인간인 내가 비루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으뜸의 힘.

초장부터 이야기의 김을 뺄 생각은 아니지만, 루이스와의 만남이란 별 게 없다고 보면 별 게 없을 정도로 촘촘한 밀도와 짙은 농도가 배제된 단백한 만남(그리고 이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그리워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설명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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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미녀 셋. 아, 김은아. 오, 리향해. 캬, 백광숙)
 
 
이르지도 늦지도 않는 아침, 화창하기가 짝을 찾기 어렵다는 인도차이나의 건기를 제대로 인용해주는 씨엠립의 풍광과는 사뭇 대조적으로다가... 침어낙안, 폐월수화, 화용월태의 미모가 실존하는 평양랭면관에서 행복에 겨워가며 나흘 연속, 주야불문, 쾌속질주, 파죽지세, 권토중래, 거침 없이 들이부은 40도 짜리 화주 들죽술과 향긋한 목넘김이 일품인 들죽소주로 인해(대략 400불 이상 썻지, 아마. 하하)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를 얼르고 달래어 이끌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닿은 시각은 약 오후 세 시.

고가에 고품질을 자랑하는 유럽택시의 뺨을 두어 번즘 후려칠만한 돈을 지불하고 올라탄 뚝뚝으로 미리 예약해둔(예약을 미리 안 하는 방법도 있나?) 호스텔에 도착. 웹싸이트 사진에서처럼 1층의 레스토랑과 그럴싸한 앙상블을 이루는 실내수영장이 제법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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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수를 이루는 배낭여행자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체크인 하는 것을 기다리며, 백인 아이들 셋과 쌍쌍을 이루는 프놈펜 창녀들과 희희낙낙 노가리 풀고, 씨엠립에서 만났던 아가씨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어렵싸리 체크인을 마친 후, 미로를 방불케하는 호스텔의 내부를 여기저기 헤매가며 내 낡은 몸을 뉘여야 할 6인실 믹스드 룸을 찾기까지,

이미 제 역량을 훌쩍 넘겨버린 채 마음껏 부플어 오른 방광이 60Kg의 나를 공중에 띄워도 무방하리만치 일촉즉발의 사태를 예고하고 있었을 때,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냥 복도 아무데나 싸버릴까, 아니면 화장실의 존재유무는 알 수 없지만 일단 1층으로 내려가볼까, 과연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눈 앞이 노래지며 긴박감이 최절정에 달할 무렵 눈 앞에 놓여진 객실 A4는 정말이지... 이별을 통보한 후 유학길에 올랐던 옛 연인이 그 짐 보따리를 그대로 들고 내 허름한 자취방으로 돌아와 용서를 빌 때 만큼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오른쪽 어깨를 짓누루는 가방 둘을 내 팽겨치듯 바닥에 떨구고 화장실이라 확실시되는 문을 힘껏 열어제꼇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 는 배부른 소리는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우리삶에 적중한다. 화끈하게 열어제낀 화장실 문 안쪽에선 하얀 수건으로 황급히 몸을 가리는 금발의 소녀가 토해내는 단발마의 외침이 있었다. 웁스~.

새하얀 피부에 황금빛 머리결과 더 없이 훌륭한 커플을 이루는 파란 눈동자가 일순간 커다래지는 광경을 목도하고선(아, 그 짧은 시간에 자세히도 봤다) 생리적 문제를 제외하고도 안절부절 좌불안석 전전긍긍해야하는 사태가 하나 더 늘었다.

이래저래 길다랗게 늘어지는 고무줄같은 시간이 흐른 후, 폭삭 젖은 머리카락을 큼지막한 타올로 어루만지며 샤워를 끝마치고 나오는 그녀에게, 정말이지 니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배를 가르고 소장, 대장을 엮어 줄넘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단 삼단 뛰기는 물론 X자 꺽어뛰기까지 감수하겠다는 듯, 결연하고도 결연한 결연하다 못해 결연한 태도와 음성으로 미안하며 미안하다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허무하리만치 간결하다. 쿨 했다. "It's OK. Don't worry."

그런 거다. 저토록 대담한 관용, 그 폭넓은 용서와 이해(또는 베품과 나눔! 좀 본다고 어디 닳는다더냐!!)야 말로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지구평화를 가시적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일 터, 그녀 아름다웠다.

비단 그 마음씀만이 아니였다. 눈이 달린 자 그 누구라도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미녀. 하여 더더욱 아름다웠다. 호주에서 온 91년생 소녀, 루이스. 참고로 나는 남한에서 온 78년생 아저씨 진(Jin)이다.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보내고 화장실에 입성, 인간에게 있어 생리의 기쁨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생생히 느끼고 선, 허술한 문고리의 튀어나온 못(내가 땡길 때 고장났던)을 두툼한 외관을 지닌 버버리 에프터 쉐이브로 후려치고, 고양이 세수가 무색할 정도로 간명한 샤워를 마친 후, 다시 그녀 앞에 섰을 땐...

아, 정말로다가 나는 그저 감사하고 다시 감사하며 마냥 감사해야 하는 치명적인 매혹을 지닌 풍경과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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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내며 말라가는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짧고 단촐한 원피스 차림으로 무장한 그녀는 앙증맞은 기타와 함께 어디 빗데기 어려운 목소리를 더해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튕겼다. 내 비록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자는 아니나(사실 좀 깊다. 믿거나 말거나) 짧은 식견으로 가늠하건데, 그 선율에는 짐 모리슨이 노래하던 사랑과 평화가 담겨있었고, 그 음색에는 제임스 더글라스 모리슨이 써내려간 자유에의 갈망이 고스란했다(누가 뭐라던 내겐 그랬다).

완고한 무신론자인 내게, 여행의 신이 돌봤다느니... 여기로 안내했다느니, 하는 소리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고 부끄러웠으며 그 진정성에 있어선 개미 콧구녕에 우담바라 피는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감사하고 싶었다. 부처건 알라건 평소 개X으로 생각하던 예수에게까지.

이 대목에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 '믹스드 룸' 이란 정말이지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던가(어디선가 밝은 햇살이 비추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메일 룸' 이란 진정한 악의 축, 미국과 함께 지구상에서 용도폐기되어야 옳타.

언제나 예고없이 다가와 때론 뒷통수를 후려치는 강인한 한 방을 선사하고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하는 우연이라는 이름의 열차. 그 열차를 잡아타느냐, 마느냐는 우연과 인연, 혹은 필연과 악연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순간인 것.

미녀를 가만 두는 것은 사내의 예의가 아님을 아는 나, 오늘 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데이트를 선사해야 응당 올바른 것인가를 고민하며 여행에 투신된 본전의 뽕을 이 기회에 뿌리 채 뽑아버리겠노라, 야무진 각오와 함께 몸을 단장하는 사이, 그녀 "이따 봐~" 라는 환장할 인사를 남기고 방문을 나선다.

우린 동시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우린?? 그렇타, 객실 A4엔 나 말고 잉글랜드라던가 스코틀랜드라던가 여하간 미서부 몬태나에서 왔다거나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겠는 비트겐슈타인에서 왔다고 한들 하등 나하고 상관이 없을 젊은 백인 녀석이 하나 더 있었다. 더불어 방은 풀이었고, 나머지 인간들은 어떠한 구성을 지닌 인종들인지, 이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니는 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여하간 방은 풀이었다.

여행에 나선 일주일 가량 단 한 번도 감지 않은 길다랗고 길다란 머리카락을 풀어놓으니 그야말로 '쑥대머리 귀신형용' 이다. 그 머리를 갈기갈기 풀어 나누고 있을 무렵, 나간다던 그녀가 금새 다시 들어왔다. 뭘 놓고 간 모양. 하여 물었다.

"왜? 내가 보고 싶었어?

그녀 답사하길... "응, 너무 보고 싶었어."

미모에 농담까지 되는 이 여자....... 아, 루이스(이 대목에서 벌건 대낮임에도 소주한잔 크게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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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하면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고 한다(북치기 박치기? 에라이, 이게 언제적...). 바로 동양 최대, 최고의 관광지 앙코르와트, 그리고 수도 프놈펜의 뚤 슬랭이 그것이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로 20세기 최악의 학살 현장인 뚤 슬랭에 다녀오는 것은 이튿날 아침이 적기, 시간상으로도 스토리상으로도 당장에 다녀오는 것은 옳지 않았다.

시간상이라는 건, 노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간이기에 그렇고, 스토리상이라는 건, 저녁 평양랭면관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 그 참상을 마주보도고 웃고 즐기며 마신다는 건, 아무래도 앞뒤 구성에 어긋난다. 그렇타고 평양랭면관 북조선 동무들 앞에서 죽을 상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킬링필드만 다녀오기로 했다.
 
킬링필드가지 7불에 합의를 봤으나 뚝뚝 기사는 오는 길에서 멀지 않으니 3불을 추가해 뚤 슬랭도 함께 다녀오자고 제안했고 싫타, 시간상 안 된다, 는 나를 구슬려 10불로 재합의를 성사시켰다. 3불이야 푼돈, 오는 길이라니 슬쩍 맛보기만 할까 하는 마음에 승낙이 있었으나, 예상처럼 시간은 늦었고 예상처럼 뚤 슬랭에 야간개장은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3불만 날린 셈이었으나 총체적으로 보자면 아침에 마주할 뚤 슬랭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킨 것이니 잘 된 일이었다.
 
베트남의 프로파겐다로 완성된 뚤 슬랭의 예고편과도 같은 킬링필드. 유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위령탑을 둘러본 후 오욕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관에 들어섰다. 당시의 만행을 설명하는 사진과 당시의 만행에 동원된 고문 기구들. 지식으로 저장된 역사가 실체의 조각에 끼워 맞춰지며 서늘한 바람을 일으켰다. 30도를 웃도는 프놈펜의 열기와 무관하게.

바느질 하는 여인 뒤론 역사의 슬픔을 말 없이 포용했을 석양이 무심한 듯 내려앉았다. 장중하고도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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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강진아, 우 이미향)
 
 
까무룩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평양랭면관으로 향할 단장을 마치니 시간이 7시에 닿았다. 씨엠립의 평양랭면관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어쩌한 과장도 미사여구도 필요 없으리만치 온전한 즐거움이었던 바, 프놈펜 평양랭면관에 대한 기대와 예의(?)는 고스란히 옷차림으로 이어졌다. 반듯한 블랙수트와 그 사이를 가르며 과감하게 자리잡은 행거칲.

(배낭 여행자의 신분으로 왜 그 따위 차림을 하고 다니는지에 대해선 본격적인 여행기가 시작되었을 때 그 진상과 실체를 규명하기로 한다. 더불어 미국이 키운 똘아이 마오주의자 폴 포트와 학살에 대한 소문과 진실에 대한 장문의 이야기들 또한 후로 미루겠다)

루이스는 없었다. 그 부재가 던져준 아쉬움과 평양랭면관으로 향하는 기대감이 미묘하게 뒤엉키는 가운데, 식당의 문을 힘있게 열어제꼈다. 행색의 기기묘묘함에 북조선 동무들의 눈길이 일제히 쏟아졌다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서로 간의 눈길에서 오가는 대화를 추측이 아닌 사실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씨엠립에서의 경험에서 근거한 것. 후의 대화에 의하면 역시나 그랬단다.

씨엠립과 비교하자면 내부의 사이즈가 절반에 절반도 못 되는 정도, 이는 씨엠립이 워낙에 스팩터클한 크기를 지닌 탓이다. 감사하게도 간소한 사이즈에 발 맞추어 몇몇 내가 사랑하는 주류의 가격도 절반이었다. 전망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들죽소주 한 병과 타이거 맥주 한 병에 평양랭면을 주문한 뒤 두어잔 마시던 중, 용기있는 한 동무가 나섰다. 아담한 사이즈에 예쁘장한 얼굴과 의례 가득한 미소. 헌데 내가 이름을 알겠다. 아, 강진아 동무!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십니까?" 예의 당연한 질문에, "강진아 동무 남조선에서 유명하십니다. 춤이 평양산업대 제일이시라고."

처음 보는 이상한 사내가 자신의 이름은 물론 특기와 출신학교 학과까지 알고 있었으니,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고 당연하다는 듯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당연하게도 몹시 즐거웠다.

(여기서 잠깐, 이 날의 이야기 역시 짧지 않음으로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합당하다. 오늘의 주된 스토리는 루이스. 귀뜸하자면, 뚝뚝 기사와의 약속을 1시간 30분 후로 잡았을 만큼 나는 당최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이었으나, 약속을 번복, 번복에 번복하며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식당문을 떠날 수 있었고 그 즐거움에 관해선 또한 적지 않은 지면이 필요하다)

불콰하게 취한 걸음으로 A4의 방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몹시 여행자적인 풍경이 제법 산뜻하다. 잠시 스쳣던 녀석, 그러니까 잉글랜드라던가 스코틀랜드라던가 하여간 미서부 몬태나에서 왔거나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겠는 비트겐슈타인에서 왔다고 한들 하등 나하고 상관이 없을 젊은 백인 녀석과 더불어 어떠한 구성을 지닌 인종들인지,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전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던 나머지 인간들은 모두는 사내였고 녀석들은 루이스를 중앙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루이스는 여전히 그 고운 선율과 음색으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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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엠립 펍 스트리트에서)
 
 
루이스의 푸른 눈이 놀라 커다래진다. 그럴밖에.

상대적으로 적은 동양여행자, 거기에 스커트를 입은 거동이 수상한 사내. 헌데 돌아온 모습은 더욱이 가관이라. 당최 넌 뭐하는 인간이야? 묻고 싶어지는 예상불가의 행색. 그 푸른 눈에게 나는 물었다.

"만족해?"

"끝내줘. 진짜 끝내줘."

"몇 시야?"

"거의 열한 시."

"오케이. 나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기에 가장 완벽한 시간이야. 나가자, 루이스."

역시나 루이스의 대답은 간명하다. 남은 맥주를 단번에 비우고 팔장을 끼는 루이스. 그 루이스와 나를 쳐다보는 눈길들이 정말이지... 가관이다.

그럴밖에.

우리 모두는 안다. 세상에서 미녀란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 존재하며 자신의 가치와 입지를 증명한다. 그 입지와 가치를 논하는 기준은 저마다 각각일 터이나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결론적으로 귀결되는 답이란 언제나 같다. 거기에, 아시아를 혼자 여행하는 여자 여행자는 생각외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겁을 낼만 한 것이다. 자, 그럼...

아시아를 혼자 여행하는 미녀란?

이심전심! 교외별전!! 염화미소!!!

산다는 것은 당최 예측이 불가한 수많은 우연과 인연의 합집합, 모험과 체념이 창궐하는 혼돈의 길을 그저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자아의 거대한 시뮬레이션' 과도 같은 일. 그 갈림길의 연속에서 선택과 포기의 교차반복 끝에 놓은 바로 지금이라는 순간. 그 순간에 남한에서 대여섯 시간을 날아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에 닿은 내가 저기 멀리 호주에서 삼만오천 피트 상공을 가르고 라오스 베트남을 거쳐 프놈펜에 닿은 그녀와 내가... 그것도 같은 날 같은 호스텔의 같은 방에 묶게 될 확률이란?

여행에 있어 환타지란, 이런 것이다. 살아야 하기에 일해야 하는 이유가 제공하는 비본래적이고 비본질적이 하루, 그 부조리한 실존에 부여되는 가장 근사한 질서.

내게 있어 그러한 환타지가 나 아닌 다른 녀석들 그러니까... 잉글랜드던 스코틀랜드던 몬태나던 비트겐슈타인이건 어디서 왔던지 상관없는 그 녀석을 필두로 어떻게 구성된 인종인지 관심 없는 외의 다른 녀석들에게도 다를 수 없다.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녀석, 똥 씹은 데다가 오줌까지 삼킨 듯한 쌍판을 하고 있는 녀석,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한 판 뜨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녀석,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묵묵히 안녕을 고하는 녀석에까지. 하하하. 그 가관의 형상 앞에 수직상승하던 기분이 천정을 뚫고 미쳐 날뛰기에 이른다.

태극기가 그닥 자랑스럽지 않는 내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하고 싶은 마음이 단 하나도 없는 그런 내가,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하는 길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미녀는 용기있는 자의 몫이라 했다. 물론 개뻥이다. 용기만으로 (현대는 물론 근대 고대에까지) 미녀를 차지하는 일이란 쉽지 않타. 오늘날에는 더더욱. 허나 용기란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장해준다. 두 말하면 싸데기다.

여튼 그러나 저러나 그건 그렇고,
살벌하기 그지 없다는 프놈펜의 야심한 밤. 우린 어디로 가야하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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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하랴. 보라, 금발에 푸른 눈이 혼연일체의 경지에서 뿜어내는 광휘를).
2 Comments
허블과잠수함 2012.02.17 06:06  
에공 여기서 또 뵙네용...진정한 프리맨.....
세월은 가고,추억은 남는것!
학생의 본분이 공부이듯,여행자의 본분은 추억만들기!^^
또 모든 본분을 잊는것도 진짜 자유로움이겟네용.
부러울 따름임.ㅠ.ㅠ
다동 2012.02.17 08:13  
혼신의 힘을 다해 그저 즐길 뿐 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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