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립에서만 7박 8일. 간단한 여행 감상기.
( 저 헤나 때문에 아직도 고생이다. 아마 당시 지나가다 양 팔에 헤나를 하고 있는 동양여자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지않을까싶다. 나랑 눈 마주쳤던 사람들 중에 신기해하면서 이쁘다고 해주는 현지인들도 종종 있었다. 오른쪽에는 힌두문자로 내 이름을 새겼는데 레스토랑 옆 테이블에 있던 인도남자가 정확하게 내 이름을 읽으면서 이거 뭐냐고 묻기도 했었다. 지나가던 서양인은 왼쪽 팔 헤나보고 이거 안지워지는거냐고 물어봤었는데. 아니라고, 일주일도 안간다고했더니 뭔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정말.. ㅋㅋ 그런데 사실 헤나는 시엠립에 있는 동안 다 지워졌었다. 문제는 그 며칠 사이에 살이 너 무 타서 탄 자국때문에 하얀 문신이 되었다는거다. 물론 두달이 지난 지금도 연하게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아... 한달만 더 지나면 완전히 사라질듯.)
뭐 도착하고 숙소 알아보고 이런 일화는 뻔하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슷비슷하지. 캄보디아가 13번째로 여행하는 나라가 되겠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발리가 최고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캄보디아.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배낭여행과 가장 가깝지않았나싶다. 혼자서 자유로운 영혼 코스프레 하기 좋았다고나할까. 사실 여행하는 그 순간부더 나는 개고생이다. 길치에다가 실수가 잦은 나로서는 속으로는 긴장상태.
겉으로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즐기는 척하지만 나 혼자 이게 뭔 지랄인가 하고 속으로 한 두번 생각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다녀오면 좋은 추억밖에 남지않는다는 게 참 미스테리야.
앙코르 유적지는 3일 패스권을 끊어서 하루 걸러서 다녀왔다. 만약 내가 좀 더 어렸다면 결코 이 곳에 오지않았을거다. 아니 그냥 거점만 찍고 가는 나라 정도 됐겠지. 더 많은 도시, 더 많은 나라 돌아다닐려고 몸을 바쁘게 움직였을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캄보디아에서만 그것도 씨엠립이라는 한 도시에서만 7박 8일을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고싶지않았다. 천년전 시작된 앙코르 문화를 느긋하게 이해하고싶었다. 뭐가 그렇게 나를 이끌었는 지 모르겠지만.. 한참 때 이 곳에만 백만명의 도민이 살았고 매 년 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던데, 전생을 잊지못하고 본능적으로 이렇게 찾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좀 우습긴하지만; 하여간.
유럽여행 할 때도 보는 걸로는 모자라서 유명 건축물들은 만지고 다녔었다. 파리 에펠탑, 로마 콜로세움 등 등. 에펠탑은 차가운 철댕이느낌이였고, 콜로세움도 차가운 돌댕이였다. 만져보기는 했으나.. 그냥 그 유명한 이 곳에 내가 왔다는 느낌이 더 지배적이였다. 사실 뭐 크고 그럴듯한 느낌은 받지못했다. 아마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싶다.
이번에는 나름 공부하고 나이 좀 들어서 진심으로 대하는 여행을 추구했었기 때문에 확연히 그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유적지들을 만지고 다녔다. 손대지말라는 표지판을 보기전까지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신발을 벗고 다녔다. 발로 만지고 다닐려고.
전 날밤에 갈 유적지들 정리한 거 싹 읽어보고 가져간 책은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보고 읽고.
유적지에서 아이들의 브이짓은 상당히 안쓰럽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대는 브이같다. 이들은 물건을 파는 것도,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였지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게 해주면 돈이 나오는 걸 알고있는 아이들이였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마자 바로 자동반사 브이가 나왔다. 마음이 짠했다.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결과겠지.
유적지 아이들보다 그냥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이는 더 많을지라도 더 순수하다. 유적지 가지않는 날은 자전거 타고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정말 구멍가게.
미용실.
캄보디아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한국의 70,80년대를 느낄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돌아다니면서 내내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이 지방에서 사셨는 데.. 아부지,엄마의 어린 시절의 느낌은 이랬겠지라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있는 그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