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꼬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다 2 가을여행 이야기 (9)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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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1, 2, 3, 6, 7, 8 은 포스팅의 주제에 따라 각각 다른 방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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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처음 느꼈던 건 고등학교 2 학년 때였다. 어디선가 자산 정약전 이야기를 읽고 나서다.
유배지에서도 꿋꿋하게 이어지는 그의 부지런하고 학구적인 인생 스타일에 감동을 받았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전혀 아니었고, 그냥 비내리는 한적한 갯마을과 비린내, 생선들 뭐 소설 속의 이런 이야기들이 어린 sarnia 의 대책 없는 역마살을 또 자극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sarnia 는 햇빛이 짱짱한 해수욕장 같은 곳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특정한 분위기의 바닷가가 이상하게 끌릴 때가 있다. 인적이 드문 어촌마을. 포구, 잿빛 바다. 마치 옛날에 그런 곳에서 살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요새는 대한민국 어디에 그런 곳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남부의 해변, 그러니까 울진 삼척 영덕 평해…… 이런 곳에 가면 꿈에 그리던 고즈넉한 어촌마을을 볼 수 있었다.
2007 년 가을, 한국에 갔을 때 오랜만에 그 곳에 갔었다. 울진 삼척 영덕 평해 모두. 그러나 그 해 그 곳에선 sarnia 가 당초 기대했던 고즈넉한 정취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팬션’ 이라는 요상한 간판을 단 멋대가리 없는 건물들만 줄을 서 있었다. 팬션이 뭐지? Pension 이라는 말인가? 이 한적한 바닷가에 웬 ‘자취방들’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 놓은 걸까?
어느 해 여름,정약전의 유배지 가거도 (소흑산도)에 진짜 가려다가 포기하고 대신 홍도에 갔었는데, 오는 길에 하룻밤 묵어간 흑산도의 포구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 개의 작은 항구 이름이 아마 예리 와 진리였을 것이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
“못 견디~게 그~리운 머나~먼 저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미자라는 가수가 불렀다. 그 섬에서 그 노래를 들은 기억은 없는데 흑산도 아가씨들은 많이 봤다. 참, 그리고 해바라기 노래 그 해에 많이 유행했었다. 그래서 어울리지는 않지만 생각이 나서 깔아 보았으니 양해들 하시길......
꼬란 (Koh Larn) 도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고 한적한 섬일까?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섬은 애당초 sarnia 의 일정에서 제외돼 있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드물게 계시겠지만 sarnia 는 그날 아침 짜뚜짝 시장에 가기로 공약했었다. 그것도 아주 대대적으로.
근데…… 사계절여인숙 아침식사 시간이 여섯 시가 아닌 일곱 시에 시작하는 바람에 그날 일정을 좀 늦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핑계 김에 짜뚜짝 일정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파타야 왔으면 파타야에서 놀아야지 짜뚜짝은 무슨 얼어 죽을……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는데, 그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 겸 걸어걸어 도착한 곳이 워킹스트릿이요 그 워킹을 다시 관통해서 도착한 곳이 Bali Hai Pier 다. 거기서 방파제 길 따라 쪽 가니까 거기 배가 있길래 30 바트 내고 올라탔다. 타고나서 한 30 분 배 위에서 출렁거리니까 발동 걸고 떠났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Koh Larn 이다.
사전정보? 별로 없었다. 쌍둥이 자매 변사사건이 난 곳이라는 것, 열 개 정도되는 크고 작은 해변 모래사장이 있다는 것, Naul Beach 라는 곳에 가면 토플리스나 자연주의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sarnia 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오면 멋진 일몰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 해변과 해변 사이는 모터싸이클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그 정도 + 약간의 알파라고나 할까.
sarnia 는 예정에 없이 가게 된 섬에 대한 기대보다도 우선 다 쓰러져가는 저 고물배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은 저 고물배가 타 보고 싶어서 배에 오른 것이다. 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아마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발리 하이에서 꼬란의 타웬비치까지 약 8 km 거린데 50 분이나 걸린다니 아마 사람이 뛰는 속도로 가는 모양이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승객들이 많았다. 대충 짐작으로는 태국 현지인들이 약 70 % 정도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다국적 여행객들 같은데 한국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딱 보면 알 수 있는데, 아무튼 없었던 것 같다.
1 층 후미에는 광파는 사람 두 명 포함해서 다섯 명이 둘러 앉으면 적당할 것 같은 평상도 준비돼 있었고……
러시아에서 친구들끼리 놀러 온 듯
배는 보다시피 그렇고 그렇게 생겼지만 아무 이상없이 정시에 타웬 해변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한 타웬 포구에서 약 200 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타웬 해변이다. 뭐, 대충 이렇게 생겼다. 30 바트 주고 코코넛을 하나 깨 달라고 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물을 마신 다음 배회하는 시늉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역시 오전에는 단체투어팀 때문에 시끄럽고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 진짜 덥다.
타웬 해변에는 세븐일레븐도 없나? 에어컨 나오는 곳을 찾다가 적당한 곳을 하나 발견했다. 해변과 선착장 중간에 위치한 응급구조대 (Emergency & First Aid) 사무실. 거기 별 용무도 없으면서 들어가 간호사 한 명과 요새 CPR 매뉴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등 씨잘떼기 없는 말을 걸어가며 더위를 식히다가 나반 포구에서 배가 한 시간 일찍 출발한다는 정보를 얻어듣고 그 구급대 사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터싸이클을 타고 나반으로 고고씽~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는데 sarnia 가 그 모터싸이클 드라이버에게 돈을 준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요금이 얼마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라이버가 돈받는 거 잊어버리고 그냥 갔나?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나반 포구는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까지 비치네.
나반 선착장
저 30 바트 짜리 느림보 배는 파타야와 나반 사이를 하루 일곱차례 운항한다. 파타야 첫 배 오전 7 시 막배 오후 6 시 반. 나반 첫 배 오전 6 시 반 막배 오후 6 시.
파타야에서 타웬 가는 느림보 배는 0800 0900 1100 1300 하루 네 차례. 파타야로 돌아오는 배는 1300 1400 1500 1600 역시 네 차례다. 돌아오는 길에 일몰을 보려면 나반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반 포구 근처 마을
나반 선착장 주변 풍경은 그래도 서두에 이야기했던 sarnia 의 이른바 '갯마을 분위기'와 다소 접근해 있는 감이 있다.
파타야로 돌아오는 길은 바닷길이 좀 험했다. 갑작스런 폭풍우가 몰아닥친 것이다, 바람이 거세지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배 안으로 비가 들이닥치자 선원들이 천막을 내린다. 파도가 높아지면서 배가 가랑잎처럼 흔들린다. 이게 진짜 재밌는거야~
배가 속도를 높이는지 엔진소리가 더 요란스러워진다.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천막을 내리는 바람에 적당한 뷰 포인트가 없네…… 무엇보다 배가 흔들려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이 모습을 보니 유명한 시 한 수가 더 오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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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 빛에 물드는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이야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名詩 '해변의 여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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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사히 다시 파타야 발리 하이 선착장으로…… 밥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