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바라보았습니다.
너무 먼 하늘에 있었습니다.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에 가려 언듯 언듯 보였습니다.
해를 바라보았지만,
너무 밝아 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바람을 느껴보려고 하였지만,
그냥 佳人을 외면하듯 지나쳐버렸습니다.
구름마저 산허리를 돌아 나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금방 사라져버렸습니다.
다랑논을 돌아보는 모든 길에는 궂은 날에도 다니기 편하게
돌을 깔아 석판로(石板路)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석판로를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길옆으로 난 작은 계곡으로 물이 흐르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 용척 위를 타고 올라갑니다.
나 아직 괜찮습니다.
이제 용척을 딛고 올라섰습니다.
나 아직 힘들지 않습니다.
이제 용척을 뛰어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걸어가나 봅니다.
인간의 삶이란 사는 곳과 방법만 조금씩 다르지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사실 형체도 없는 행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진리가 모두 자기 손안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란 항상 내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저 모퉁이 돌아 말을 몰고 한 사람이 걸어옵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아니군요?
무서워 얼른 옆으로 피하고 말이 지나갈 길을 터줍니다.
마당에 놀던 닭들이 지나가는 우리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러나 닭들은 우리 부부가 관광객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지금 용의 허리에서 놀고 있는것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만들어지고 억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곳에도 하늘의 빛내림이 시작되었고 땅이 빛을 받아들임으로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다음 세상의 주인인 인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 핑안으로 쫭족이 하나 둘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도 비가 내리고 모든 식물이 용의 허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더 많은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천둥 번개가 몰아친 다음에야 비가 내렸고 드디어 아름다운 꽃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대나무는 더 푸르게 자랐고
핑안에 잠자던 용을 하나씩 깨우며 더 깊은 곳으로 몰아내며 인간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어언 600여 년...
이곳에 아홉 마리 용과 다섯 마리 호랑이는 핑안춴의 쫭족에 의해 하나둘씩 서서히 박제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용척이라는 다랑논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이곳의 구룡오호(九龍五虎)는 이렇게 만들어졌을 겁니다.
불을 뿜고 요란하게 꿈틀대던 용(龍)도...
포효하던 호랑이도 인간의 작은 손에 모두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겼습니다.
용을 몰아내고 호랑이를 쫓아버린 이곳의 핑안춴 사람들...
그런 인간도 이제 흙이 되어 이곳 용의 허리에 하나씩 묻혀 사라졌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이곳이 바로 평안(平安)촌이라는 마을입니다.
그동안 너무 힘든 삶을 보내셨습니다.
더는 흘릴 땀조차 없습니다.
눈물도 없습니다.
용의 비늘속에 쉼터를 마련하고 용의 비늘로 이불을 만들어 덮고 이제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이곳에 오르내리며 논을 일구는 일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하나둘 사라집니다.
마지막 남은 꼭대기에 남은 손바닥만 한 곳도 가족을 위해 곡식을 심으려 논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억척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
누구는 전쟁이 무서워 이곳으로 숨어들었고,
어떤 이는 자기만의 농토를 갖고 싶어 아무도 없는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굶기지 않으려고 더 많은 농토를 찾아 보따리를 이고 지고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한 줄이면 어떻고 두 줄이면 어떻습니까?
한 포기의 벼만 더 심을 수 있다면, 땅을 평평하게 하였지요.
핑안에서 가장 작은 논은 벼를 딱 세포기를 심는 논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핑안에서 가장 높은 관경대를 두 곳을 잇는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관광객 대부분은 칠성반월(七星伴月Seven stars accompanying the moon)만 오르고
그곳에서 부지런히 인증사진만 찍고 내려갑니다.
사실 문표에 인쇄된 모습이 바로 칠성반월의 모습이라 가장 아름답기는 하지요.
용이 떠난 빈들에는 말이 주인행세를 합니다.
용틀임인지 알았더니 말틀임이었습니다.
따식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억겁의 세월 속에 지금 佳人과 동행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누가 당신과 佳人을 짝을 이루게 하였고 이 모진 세상을 함께 힘을 합쳐 헤쳐가라 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를 그리도 바삐 가십니까?
억겁의 세월 중 이렇게 佳人을 만나 함께 걸어가는 당신은 어디를 가십니까?
하늘이 당신과 佳人을 맺어주며 늘 동행하라 하였습니까?
우리가 처음 만나 석 달 3일 만에 결혼하고 佳人은 지방에서 당신은 서울에서 따로 지내며 토요일마다 만났지요.
만났다 헤어질 때는 당신은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외면하곤 했지요?
이제 세월이 흘러 우리의 분신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려는 때가 되었네요.
그동안 佳人과 함께 지낸 세월이 행복하셨나요?
늘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佳人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는 것은 나는 압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척 작은 만족이라는 사실도 나는 압니다.
우리가 살아오며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요.
다시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당신과 다시 만나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佳人은 행복하겠습니다.
만약 당신.... 지금 조금만 행복하다면...
그때는 정말 당신을 많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르고 살았지만, 그때는 알아가며 살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즐겁지 않았고 함께한 세월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면,
천 년 뒤에 혹시 佳人을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일부러 외면하고 피해버리세요.
그냥 거절하면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많았기에 괴로운 시간이 되겠지만, 만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잖아요.
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처음 만난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31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佳人은 그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당신 또한 佳人을 모르고 만났겠지요.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여기 보이는군요.
여보! 이제 우리 인생 길에서도 두 사람이 가야할 길이 어렴풋이 보이잖아요?
우리 세대에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답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사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당신은 그 말이 무척 듣고 싶어했지요?
어떤 날은 해보라며 다그치며 묻기도 했지만, 佳人은 그마저도 얼버무리고 지나쳤습니다.
여보! 아마도 여태 佳人의 입에서 제대로 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거요.
지금도 듣고 싶으신 게요?
만약 지금도 듣고 싶다면 용의 허리 위에서 용기를 내어 당당히 말하리라.
"당신 정말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하리다~ 이곳에 용이 수천 번 허물을 벗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해도..."
정말 쑥스럽군요.
그러나 후련하군요.
오랜 세월 짊어진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시원하군요.
이제 용척에 사는 용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佳人이 한 말을 기억하고 증인이 되어 줄게요.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이지만, 우리 열심히 살아갑시다.
앞에서 끌면, 뒤에서 밀고 그렇게 살아가십시다.
당신 내게로 고개 돌려 미소 한 번 지어준다면,
천 년 후 다시 만난다는 약속으로 알고 살아갈게요.
상대를 위해 미소 한 번 지어주는 일 또한 이승에서 선업을 쌓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 조금은 쑥스럽지만, 사람도 없는 하늘길에서 손잡고 갈까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인데 어때요?
우리 세대에는 손잡고 걷는다는 일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요?
부부란 늘 서로 세 발자국 떨어져 걸어야 하는 거라고 알고 살았잖아요.
난 말이예요. 언제나 푸른 나무로 당신 옆에 든든하게 서있고 싶습니다.
아무때나 당신이 힘들어 할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나무 말입니다.
튼튼한 울타리로 당신의 정원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 정원 안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언제나 가득한 향기로 넘쳐나도록 하고 싶습니다.
꽃과 향기는 자신을 위해 단장하고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핑안의 하늘길에서 佳人과 한 약속을 잊지 마세요.
언제나 기억하세요.
핑안의 하늘길에서 佳人과 한 약속을..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정말 행복하죠?
佳人이 지금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것은 말이라도 다른 말입니다.
정상 부근에서 두 곳을 잇는 길은 참 아름다운 길입니다.
걷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아주 한적한 길입니다.
핑안에 가시면 칠성반월만 내려다보고 사진찍고 가시지 마시고 꼭 이길을 걸어 구룡오호까지 가시고 마을로 내려가세요,
우리 부부가 걷는 동안 그 많던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고 구룡오호 뷰 포인트에서도 서양인 몇 사람만 만났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 나는 누구입니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다.
"당신 왜 그래요? 당신은 내 남편이고 난 당신 아내이며 우리 지금 칠성반월에서 구룡오호로 가고 있잖아요."
"그렇군요..."
때로는 이런 간단한 일에 佳人은 바보처럼 고뇌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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