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시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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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시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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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용의 허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평생을 살며 아침에 눈을 뜨면, 산을 올라 논을 가꾸고

저녁에 땅거미가 내리면 산에서 내려가는 일이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 다랑논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산을 가꾸어 논을 만드는 게 아니고,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산이 사람을 불러 품 안에 보듬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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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야오족은 평생을 살며 이곳을 오르내리는 일이 사람이 하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습니다.

내 아들, 내 손자도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을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가족의 배를 불릴 생각에 입가에 미소마저 스칩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과 맞서지 않고 토닥거리며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곳은 사람이 자연입니다.

아니... 하늘입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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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리만큼 아픈 아름다움입니다.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모습이 어찌 이들만의 일이겠습니까?

비로 우리를 이만큼 키워주고 살아가게 해준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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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높은 곳에다도 또 집을 짓는군요.

중국을 다니다 보니 아무리 오지라도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광경을 계속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시골에 사는 사람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농촌에 나이 든 사람 외에는 모두 도회지로 나가 점점 빈집이 늘어나고 있는데... 

만약 엄니 심부를 하러 가게에 내려갔다가 올라와 엄니가 "이게 아닌가 벼~"라고 한다면,

까무러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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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바닥만 내려다보고 올라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말 한 마리가 우리 부부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겁니다.

말이 왜 올라오느냐고 묻는 것처럼 멀뚱거리며 바라봅니다.

"인마! 놀랬잖아~"

"저 말입니까? 인마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인마가 아니고 백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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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양이 나오는군요?

이상하게 생긴 논입니다.

소라처럼 생겼나요?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데 저곳에 논은 물이 어디서 흘러올까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기다리는 논일까요?

 

일본의 핵 발전소에 전기공급이 끊겨 지금 큰 재앙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발전소는 전기를 만드는 곳임에도 전기가 없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이렇게 생기고는 합니다.

더는 피해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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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법 많이 올라왔습니다.

다랑논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안개로 전망이 무척 나쁘군요.

날씨만 좋았더라면 좀 더 멋진 모습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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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억척스럽습니다.

산의 모양을 따라 가지런하게 논을 만들었습니다.

소라 모양입니까?

도토리처럼 생겼습니까?

가락국수 면발처럼 생겼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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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은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물이라도 논에 대놓으면, 마치 물 위에 뜬구름처럼도 보이겠습니다.

수백 년간 대를 이어 인간이 만든 자연의 예술작품입니다.

비록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이지만, 그 모습은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자연이란 캔버스 위에 오랜 세월 다듬고 조각하며 만든 작품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가며 만든 생활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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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용의 척추라 했습니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모습이 느껴지십니까?

아니... 다랑논은 용의 등짝에 붙은 비늘입니까?

이 산만 오르내리며 논을 가꾸어온 다랑논 전문작업가인 홍야오족의 나이 든 노인의 주름진 얼굴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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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시시합니까? 인간에 대하여 의문점이 생깁니까?

왜 살아가야 하냐고 고민되십니까?

그리 생각되시면, 표도르와 링 위에서 한 판 세게 붙어 보든지 아니면 이곳에 올라 보십시오.

그리하시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존재인가를 금방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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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까 앞장섰던 개마저도 여기에는 올라오지 않습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인간이 흘린 땀방울이 만든 예술작품입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오며 만든 가업의 결실입니다.

자연에 맞서지 않고 자연을 토닥거리며 만든 다랑논입니다.

눈길이 미치는 모든 산이 다랑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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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즐기며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이곳만 둘러보려고 계획했기에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약 한 시간 걸린 4시경에 정상에 올라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봅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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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용의 등어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체인을 감아놓은 듯하기도 하네요.

그러나 말이 좋아 용의 허리지 저게 용의 허리인지 이무기의 허리인지 누가 압니까?

중국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용(龍)을 빼면 중국은 없을 겁니다.

 

용척이라기 보다 차라리 수백 년 동안 이 산을 오르내리며 다랑논을 가꾸며 살아온

인간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이라 하고 싶습니다.

마치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손등을 바라보는 모습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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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 30분 정도 서서 바라보았나 봅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감탄사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부담스럽습니다.

발걸음 소리조차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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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동안 눈물과 땀이 방울방울 떨어져 이랑을 만들었고 층층이 한숨 소리가 깊이 배어들어 만들어진 다랑논입니다.

그래서 한숨 소리가 더 어울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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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때문에 맑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런다고 인간의 위대함이 감추어지는 게 아니지요.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또렷하게 각인되어 머릿속에 남는걸요.

 

이제 우리 부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디로 내려갈까를 고민합니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면 같은 모습을 다시 봐야 하기에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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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라갔던 길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곳으로도 내려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곳으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사람이라도 있다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그때 우리가 내려가려고 했던 건너편 언덕 아래에서 사람 소리가 들립니다.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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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앞장서서 올라오는 두 명의 남자에게 늘 하듯이 "니 하오!"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고

뒤이어 올라오는 여학생에게 영어를 하느냐고 물어봅니다.

이게 佳人의 모습입니다. 남자는 지나치고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게... 

 

된장국에 깊은 맛이 우러나오도록 끓인 영어로 물어보니, 젠장 버터를 잔뜩 바른 영어로 답을 하는군요.

순간 "오메~ 기죽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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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죽을 일이 있나요?

그럴러면 처음부터 여행 다니지 말아야죠.

지금 올라온 길로 내려가면 다짜이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는군요.

佳人에 어디에서 왔느냐 묻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여학생은 웃음을 터뜨리며 제일 앞장서서 가던 젊은이 두 명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국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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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나친 두 명의 젊은이에게 울 마눌님이 뭐라고 대화를 나눕니다.

헐....

이게 웬일입니까?

같은 한국사람끼리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눌님~ 한국사람이래요~"

 

여러분!

다랑논 꼭대기에서 같은 한국인끼리 영어로 말해보셨수?

우리 해 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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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골짜기 중에도 상골짜기인 다랑논 정상에서 한국인끼리 유창한 한국어를 숨기고 영어로 대화하다니...

바로 이렇게 잘생긴 한국의 젊은이들입니다.

함께 올라온 일행 중 제일 잘생기고 훤칠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세요?

 

베이징 칭화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공부 중인 데 그곳에 함께 공부하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

여러나라 다국적 학생들과 잠시 짬을 내 이곳에 구경 왔다 합니다.

어쩐지 영어발음이 다르다고 생각했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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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우리 부부는 반대로 내려가야 함에도 바로 우리 한국 젊은이들을 따라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기로 합니다.

이번 여행에 두 번째로 만나 한국말로 대화한 한국인인데요.

처음 만난 사람은 시지앙 공연장에서 만난 구이저우대 교환학생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주 유창한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길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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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우리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할 때 설마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자기들 얼굴이 한국사람으로 보여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랬겠지요.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 한국인일 거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할 겁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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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같은 한국인으로 좁은 한국땅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넓디넓은 중국땅 오지 중의 제일 정상인 금불정 꼭대기에서 만나다니...

여러분은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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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산을 시작합니다.

우리야 천천히 올라오며 모두 보았던 모습이지만, 같은 한국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시간이 아깝습니다.

왜 금방 시간이 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때로는 예상하지 못해도 인연이란 상상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옵니다.

그런 곳에서 만나게 되면 같은 한국인끼리 다른 언어로 대화하기도 합니다.

나 원 참!!!

그러기에 살아가는 도중 서로 스치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지금 佳人과 여러분의 인연 또한 소중한 인연입니다.

 

2 Comments
세일러 2011.07.22 11:19  
인연이란 참...
더구나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의 뜻밖의 만남, 그런게 여행의 또다른 묘미가 아닐까합니다...
佳人1 2011.07.23 09:12  
아무도 없는 곳에 올라 반데편에서 올라온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정말 대단한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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