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6편 아시프칸 톰과 누르자한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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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6편 아시프칸 톰과 누르자한 톰

Lucky 0 2203

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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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 5편의 끝 부분 입니다. 이상하게 인터넷에 올라가지 않아 6편의 앞부분에 덧붙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앙묘실의 둘레 군데군데 몇 개의 조명등을 밝혀 내부를 비추고 있다. 이렇게 가이드를 대동하고 있으면 사진 찍기가 매우 편리하다. 가이드가 없을 때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어쩐지 몰라 눈치를 많이 보았다. 또 찍고 싶은 장소에 사람들이 있거나 할 때는 난감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측의 세(勢)가 크다면 숫자로 밀어 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혼자서 다닐 때는 여러 가지로 불리하다.

 

그러나 가이드가 있으면 상황은 매우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 가이드는 사진을 잘 찍도록 해 주는 것이 자기 본연의 임무인 듯이 많은 편의를 봐 준다. ‘자항기르’의 관이 있는 묘역 중앙에 갔을 때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있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단지 시원하고 잠자기 알맞을 정도로 어두운 이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낮잠도 자고 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인 듯싶었다.

 

가이드를 자처한 이 친구는 이런 사람들을 모두 비키게 하고, 관의 특징적인 모습에서부터 하다못해 바닥의 무늬가 가지는 의미 있는 상징성까지 설명해 주며 사진을 찍도록 해 주었다. 나는 이 가이드를 둔 덕분에 마음껏 카메라를 휘두르며 사진을 찍었다.

 

내부를 구경한 다음 계속 쫓아오겠다는 가이드를 만류하고 적당한 수고비를 주었다. 비용이 많다 적다는 주는 사람의 생각인 듯, 항상 이 사람들은 금액이 적다고 크게 투덜대지 않는다. 또 불친절하게 끝내는 경우도 없는 것 같다 - 물론 파키스탄은 이 사람이 처음이어서 어떤지 잘 모른다. 이것은 인도의 경험이다. - 단 “가이드 비를 얼마 줄까?”하고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면 많이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자항기르’ 묘소 건물을 밖으로 한 바퀴 돌았다. 회랑을 따라 돌아가면 작은 방이 계속된다. 각 방들의 크기는 모두 같다고 할 정도이며, 내부의 구조도 모두 같다. 벽의 모양도 같고, 벽에 그려진 그림도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게 같다. 그리고 하나같이 복구가 되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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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항기르 묘실밖 회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키스타니들, 물담배를 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랑은 길게 연속되어 그늘진 쪽으로 가면 파키스탄의 여름 더위를 잊을 만하다. 좀 전에 묘실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는데, 밖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왔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몇몇이 된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물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있기도 하다. 과연 이런 것이 좋은 모습인지 아직 민도(民度)가 낮은 까닭인지 짐작할 수 없다.

 

‘자항기르’ 묘역을 나오며 아침에 보았던 매점을 찾았다. 커나란 나무 아래 둥근 테이블 몇 개와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있다. 음료수를 한 병 사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먹었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산 이유는 좀 더 시원하게 먹고 싶어서이었는데, 나를 만족시킬 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아마 냉장고가 있다고 해도 밤에는 꺼 두기 때문에 시원해질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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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항기르 톰 회랑에서




 

* 다음은 무굴제국 실권자 아시프칸 톰(Asif Khan Dom)과 자항기르의 부인 누르자한 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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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7월 17일

 

라호르에서의 둘째날 - 무굴제국 실권자 아시프칸 톰(Asif Khan Dom)과 자항기르의 부인 누르자한 톰

 

 

아시프 칸 - 자항기기르의 매부, 무굴제국 최고의 건축가 샤자한의 장인,

 

10시 25분 ‘자항기르’ 묘역을 나와 건너편에 있는 아시프 칸 묘역으로 갔다. 아시프칸 묘역의 문은 수리중이어서 비계(飛階)를 걸어 놓았으나 언제 수리를 하는 건지 수리 흔적은 없었다. 옆으로 난 문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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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자한의 묘역에 비해서 형편없이 초라한 아시프 칸의 묘역, 폐허가된 회랑과, 정원도 손질이 되어있지 않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아시프 칸 묘역은 폐허(廢墟) 그대로였다. 문의 앞쪽에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을 정도로 붉은색 사암에 조각도 조금은 남아있었는데 안쪽(뒤쪽)은 세상에 이럴 수가! 사암(砂巖)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회색의 벽돌이 파괴된채로 위태롭게 붙어있다. 담을 끼고 작은 방들이 이어지는 회랑도 왼쪽으로는 그래도 남아있는데 오른쪽으로는 모두 부셔져 흔적조차 없이 밖과 안을 구분하는 담벽만 남아있다.

 

정원은 잡초가 그득하며 말라죽은 고목이 흉하게 쓰러져 있다. 정원의 크기는 ‘자항기르’ 묘역에 비해 1/3 정도로 작은데 정원의 중앙에 묘실이 있는 형식이다. 묘실로 가는 길 한옆에 안내판이 서 있다.

 

“아시프 칸 톰, 뭐시기 뭐시기인데 흔히 아시프 칸이라고 한다.”

 

거기에 쓰여 있는 것은 아시프 칸은 ‘자항기르’의 부인인 당시 황후 ‘누르자 한’의 오빠이며 ‘아르주마나드 바노 베굼(Arjumanad Bano Begum)’의 아버지다. - 즉 ‘샤자한’의 장인이다. ‘샤자한’은 라호르에서 태어나 라호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다른 형제들을 물리치고 ‘자항기르’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때 장인과 처남의 도움이 무척 컸다한다. - 그러니 ‘아시프 칸’은 당시에 대대로 황실과 관계를 맺은 진짜 실력자였다. 아마 ‘자항기르’의 묘역을 그의 아들 ‘샤자한’이 만들었다면, 장인의 무덤을 이곳에 같이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항기르’의 부인 ‘누르자 한’은 자기의 아버지의 무덤 ‘이티마드 웃 다울라(Itmad ud Daulah)’를 아그라에 세웠다. 혼자의 힘이 아니라 오빠의 힘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자항기르’의 만년(晩年)을 ‘누르자 한’이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무상한 것인지 '아시프 칸'의 묘당(廟堂)은 ‘자항기르’의 묘에 비해서 너무 많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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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프 칸의 묘당(廟堂). 너무 많이 파괴되어 처참(悽慘)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시프 칸'의 묘당(廟堂)은 황제 급의 묘가 아니어서 그런지 묘당 자체가 작았다. 팔각형의 작은 건물로 되어있으며 한 개의 돔을 가지고 있다. 정원은 황제의 묘가 수로(水路)를 묘역의 중심에 둔 것에 비해 묘당이 정원의 중심에 있으며 동시에 묘당의 사방에는 각각 작은 분수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물이 흘러 정원을 적시게 되었다. 말하자면 황제 묘역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목련꽃 봉오리 모양의 돔을 가진 묘당은 팔각형으로 되어있으며 짧은 전실 뒤에 바로 묘실(墓室)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관이 안치된 묘실로 통하는 입구는 여덟 곳이 된다. 묘실의 중심에는 하얀 대리석에 보석으로 상감이 된 단정한 관이 있는데 대체로 ‘자항기르’의 관과 매우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묘실의 바닥이 황제의 묘실은 대리석에 상감을 넣었는데 이곳은 그냥 벽돌이다. 또한 황제는 대(臺)를 쌓고 그 위에 관을 안치한 것에 비하여, '아시프 칸'은 대(臺)를 준비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변형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황제와는 급(級)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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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프 칸’의 관(棺). 흰 대리석의 아름다운 관이나 관리가 되지 않아 파괴가 많이 되었다. 상감된 보석들도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드물다. 바닥을 깔았던 대리석의 박석은 모두 벗겨져 벽돌이 드러나 있다.




 

누르자한 톰

 

‘자항기르 톰’을 나와 마을을 향해 길을 걷는다. 더운 날씨에 땀은 줄줄 흘러 떨어지는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도로에 굴러다니던 흙먼지가 그대로 하늘로 자리를 옮기는지 온통 뿌옇다. 무슬림 여자들이 ‘사리’인지 ‘부부카’인지 얼굴을 덮고 다니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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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모습. 상설시장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5일장과 같은 가설시장인듯.





아침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시장터는 이제는 자리가 잡혔는지 한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린다. 사람들은 많아도 부산하기 보다는 천천히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시장의 모습 모두를 한눈에 조망(眺望)할 수 있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모르겠다. 어릴 때 내 자란 고향에서 장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시장상인과 시장에 나온 구매자들의 모두였던 그때를 제외하고는 시장 전체를 조망(眺望)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장은 그렇게 규모가 커져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마을의 시장을 보면 커다란 공터에 한두 줄기의 길과 몇 그루의 나무를 의지해서 상인들과 구매자들이 모여 있어 시장이 마치 한 덩어리의 소똥과 같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냥 한 덩어리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개미 쇠똥구리 파리 등등이 들썩들썩하는 - 묘사가 조금

 

시장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되어있는 듯 했다. 한쪽 골목은 옷가지를 주로 취급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농산물을 취급하고 있다. 옷가지라고 해야 내가 그들의 의류를 모르니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좌판대위에 여러 가지를 쌓아놓고 있는 듯 했다. 노점상도 정말 허름한 노점상인데 한쪽 귀퉁이에 세워놓은 자동차를 봐서 이들은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농산물 시장은 익히 눈에 익은 모습이다. 농산물을 다래끼 같은 것에 담아 놓기도 하고, 감자 같은 것은 땅에 쏟아 놓기도 하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라호르는 지금이 감자 수확 철이라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상인들은 거의 다가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여자도 몇 명 모습이 보이기는 하는데 팔려는 사람인지 사려는 사람인지 구분이가지 않았다. 여기에 비하여 옷가지를 파는 쪽에는 거의 여자들이 나와서 물건을 보고 있다. 남자들은 거의 없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기가 겁이 났다.

 

장터를 지나와 왼쪽으로 갔다. 풀숲에 나있는 작은 오솔길을 10여 미터 헤치고 가면 철로가 나온다. 근처에 기차역이 있다. 철길을 구분하는 작은 경계로 심어놓은 향나무 울타리를 그냥 넘어가면 건너편에 ‘누르자한 톰’이 있다.

 

오른 쪽으로 가면 정문이 있지만 어차피 정문으로 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벽돌담의 파손된 부분은 발길에 닳았다.

 

누르자한 톰은 ‘자항기르 톰’의 규모를 조금 줄인 것 같은 모습이다. 붉은 사암(砂巖)의 아름다운 외관이며 흰색의 대리석으로 무늬를 넣은 모습은 ‘자항기르 톰’의 모습과 같다. 그러나 네 귀퉁이에 서있던 미나르가 '누르자한 톰'에는 없다. 그냥 사각형의 건물로만 있다. 물론 돔(Dom)의 지붕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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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자한 톰. 미나르도 없고, 돔도 없다. 묘당 형식은 무굴제국의 전통대로 만들어 졌으나 대체적인 스케일이 조금씩 작다.





누르자한 톰은 입장료가 없다. 물론 묘역(墓域)을 꾸미거나 단장하고 있는 사람도 없고, 언제 손질했는지 모르는 정원은 '아시프칸 톰'과 같이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묘당(廟堂)앞에 가도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오는 사람이 없다. 아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곧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르자한 톰은 조금의 전기시설도 없다. 자연채광 그대로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모를 한줄 기 빛으로 어두컴컴한 묘실(墓室)이 겨우 눈에 익으려는 순간, 나를 집중하고 있는 수십 개의 눈동자를 인식하게 되었다.

 

 

몇 십 명인지 모를 파키스타니들이 묘실(墓室) 구석구석에서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불현듯 침입한 이방인을 귀찮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남루(襤褸)한 옷차림에 검은색 피부는 어둠과 한 덩어리로 녹아서 그들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전실의 바닥은 마치 벽돌을 깐 것 같은데 아마 처음부터 이런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장은 흰색 회벽에 채색 돌로 상감을 넣었고, 벽은 무굴제국 특유라고 하는 꽃무늬를 넣었다.

 

중앙에 묘실이 있는데, 묘실의 가운데쯤에는 바닥에 박석(薄石)이 깔려있으며 약 30센티 메타 정도 되는 기단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개의 관이 놓여 있다. 관은 크지도 높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흰색 대리석으로 단정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졌는데, 왜 그런지 대리석의 질감과 느낌이 매우 부드럽고 푸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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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자한 톰 묘실(墓室)의 관(棺), 두 개의 관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럴 때 가이드의 필요성이 배가된다. 관은 쑥색이 섞인 유백색의 대리석이며 아무런 문양이나 상감도없이 단순하게 되어있다.





‘자항기르’의 관이나 ‘아시프 칸’의 관에 사용된 대리석은 눈같이 흰색이었는데, 이 대리석은 좀 더 단단한 질감의 부드러운 아이보리색이 섟인 그러한 관(琯)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특색은 앞의 두 개의 관은 어느 정도 높이가 있으며, 대리석에 아름다운 꽃무늬 상감을 넣어 화려하게 치장하였는데, ‘누르자 한’의 관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의문점은 관이 두 개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기단(基壇)위에 두 개의 관이 놓여 있으니 마치 우리나라의 합장분(合葬墳)이나 쌍분(雙墳)같은 형식이 아닌가? 그러면 ‘누르자 한’과 나란히 누워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누르자한과 그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사이트의 신빙성이 확보되지 않아 그저 설(設)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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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자한 톰 묘실의 비명.





묘실의 한쪽에 비명(碑銘)이 있다. 그러나 한 개만 있고, 무굴제국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나에게는 눈뜬장님과 같은 신세이고, 아쉽게도 ‘누르자 한’의 묘역에는 영문안내판도 없으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둠속에 앉아서 말없이 나의 행동 한가지한가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파키스타니에게는 감히 말을 붙이기 두려웠다. 차라리 이때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반가웠을 터인데 필요할 때는 그런 인간도 귀했다.

 

여기저기 사진 찍는데 방해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진을 찍게 비켜달라고 하면 아주 게으르게 움직여 조금 비켜주곤 한다. 묘실안도 너무 어두워 사진도 잘 나오지 않을 것 같고 하여 많이 찍지는 않았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라호르 뮤지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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