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레(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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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레(Leh)

Soohwan 0 2985
삼일째가 되니 몸이 한결 낫다.
오전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여성센터같은곳에서 하는
레와 라닥지방의 환경과 문화에 관한
비디오를 보았는데 인상적이었다.
레의 교육에 대해 한 청년단체의 회장이
말을 한게 있었는데 요약하면
라닥 지방의 청년들의 정체성 상실로 이들은
구체제는 물론 신체제의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채 결국 도시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었다.
라닥의 교육내용 자체도 문제가 있었고-그의 말을 빌자면
'커피를 타는 법을 수년동안 배우지만 정작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게 문제다'라고 얘기했던것 같다- 환경도 급속도로
파괴되어 간다는 것이었다.

비디오 시청이 끝난뒤 토론이 뒤 따랐는데 서양애들 토론하는거
보는 것도 참 재밌었다. 근데 문제는 많이 못알아들었고
그리고 과연 이론 토론이 시기적절한 것이고 우선순위인지가
의문이었다.
먹을것이 부족하고 이제 갓 탈 농경사회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쓰레기의 재활용 및 분리수거등이 먹혀들어 갈까?
그리고 라닥지방에 변변한 종합대학이 하나도 없다는데
교육시설의 확충이 최우선이고-우리나라가 그랬지 않은가.
교육에 투자해서 결국 성장한 걸로 본다-그리고 경제적 자립이
필요한데 이를 건너뛰어 환경을 토론한다는게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고칼로리 음식의 폐해니 채식의 우월성을
얘기하는거나 진배없어 보였다.
그래도 모금함에 100루피 내는거에 위안을 삼았다.


레는 평화스러웠다.
그렇지만 중심가는 시끄러웠고 쓰레기며 소음으로부터의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리상 특성 때문인지
티벳사람들과 티벳 음식점들이 많았고 관련 책자도
꽤 됐다. 지금도 달라이라마 관련되 책을 한권정도 사서
보는 건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선 저녁식사를 신청하면 저녁 8시경
저녁을 신청한 사람들 모두가(한 8~10명정도)한 상에 둘러앉아
공동체적인 저녁 식사를 하는데 꽤 재밌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나와 독일인 2명을 빼고 전부 이스라엘애들이라
얘기가 히브리어로 오갈 때가 많지만 가끔 함꼐 토론을 하기도 한다.
한번은 내가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에 대해 얘기했더니(라빈 총리는
온건주의자로 이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이가 제일 좋았던
걸로 알고 있다.라빈총리는 1995년 이스라엘 극우 대학생에게 암살
당했다) 모두가 '그 좋았던 시절~~'하는 식의 말투였다.
어떤애가 샤론총리가 미쳤다고 했는데 여기서 부터 히브리어로
자기네들끼리 모라모라 했다.

저녁시간은 또 여행정보의 교환의 장이었다.
이스라엘 남매가 있었는데-첨엔 볼에 뽀뽀를 해서 애인사인줄
알았다-자기네들은 레에서 군용트럭이나 일반트럭을 히치하이크
해서 스리나가쪽으로 가겠다고 한다. 내가 위험하지 않냐고,
그리고 니네는 이스라엘 사람들인데 이슬람인들이 대부분인
카쉬미어쪽으로 가는건 좀 피해야 되지 않냐고 하니까
괜찮단다. 같이 있던 다른 이스라엘애는 한 술 더 떠 자기도
같이 가겠단다.
아무튼 좀 무모한 듯이 보이기는 해도 세계에서
제일 평이 않좋은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모험심이랄까,
아무튼 정상적 루트에서 벗어나는 걸 몇 번 봤다.

독일인들은 동독 베를린 출신들로 언제나 야채며 채소를 사와
직접 요리해 먹었는데 서로 얘기하다 얼만큼 인도문화에 접해
보았는가를 얘기했는데 자기도 첨에는 손으로 일을 처리했는데
미끌거리는 느낌이 너무 야릇(?)-strange라고 했다^^-해서 그만
두었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니까 친구라며 악수를 하자며
왼손(!)을 내미는데 표정이 하두 익살스러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레에서 마날리로 다시 갈때는 정말이지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었고 혹시 또 그 악몽의 고산증 증세가 오면 어떡하나하고
꽤 걱정을 했었다.
새벽 3시.
인적도 없고 가로등도 없이 달빛하고 휴대용 플래쉬를 들로
버스가 떠난다는 우체국으로 가는 길도 꽤 으스스했다.
도착하니 사람들이 꽤(그래봤자 4~5명)됐고 마날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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