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07 아우랑가바드와 엘로라
지난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21일(목) 아우랑가바드
아우랑가바드 가까이 가니 차장이 깨우러 왔다. 이것이 인도에서 받은 유일한 차장의 서비스였다. 기차에서 내리니 정말 연발 연착 없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이제 인도의 기차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아우랑가바드는 원래 카드키(Khadki - 암석지대)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무굴제국 마지막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의 이름을 따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쿨다바드’라는 무덤에 아우랑제브 황제가 묻혀 있다고 한다.
몰려드는 삐끼들이 귀찮아 우선 눈에 띄는 ‘웨이팅룸’으로 들어갔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아가는데 인도인 몇 사람 앉아있다. 아니 인도인들은 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기차에서 만난 서른 한 살 된 한국 여성은 첫차를 타고 아잔타로 가겠다고 한다. 우리는 아우랑가바드에서 하루 자면서 ‘엘로라’를 구경할 예정이라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5시 30분 까지 웨이팅룸에서 기다리다가 어느 정도 사방을 분간할 수 있을 것 같아 나가기로 했다.
배낭여행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SL2 스리퍼칸, 창문이 철창으로 되어있다.
웨이팅룸에서 나가니 그때까지 가지 않고 역에서 기다리던 삐끼들과 릭샤왈라들이 몰려든다. 대꾸하지 않고 역 앞의 큰길을 걸어 내려갔다. 지도상으로 그 길의 양쪽으로 게스트하우스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방을 구하기 쉬울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한 100여 미터 갔을까. 나트라즈 호텔(Hotel Natraj)이 보였다. 인터넷에 추천된 적이 있는 것 같아 일단 들어갔다. 한 사람이 호텔 로비에서 자고 있었다. 깨워서 방을 달라고 하니, 밖을 내다보며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물론 ‘밖에 있는 삐끼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자, 그래도 못미더운지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해 본다. 이때까지 괜히 따라온 릭샤왈라는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하룻밤에 300Rs, 2층에 있는 깨끗하게 생긴 방인데 작은 베란다 까지 있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쉬기로 했다.
공중전화에 가서 ‘장미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장미식당의 주인은 인도인인데도 우리말을 잘 했다. 너무 일찍 전화 걸어 미안하지만 아침을 먹으러 가겠다고 하니, 오라고 했다. 릭샤를 타고 가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 들은 다음 깜빡 아침잠이 들은 종민이를 깨워 아침을 먹으러 갔다. 어떤 릭샤왈라가 호텔 문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가 ‘장미식당을 알고 있으니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8시 30분 장미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호텔에서 10분 정도 릭샤를 타고 가는 거리로 땅 넓은 인도에서도 제대로 자리 차지를 못한 옹색한 식당이었다. 주인의 이름은 ‘프라카시 샤르마(sharma)’라고 하며, 한국 천안에서 3년 정도를 살았었다고 한다. 우리말을 잘 했을 뿐 아니라, 어려운 말도 꽤 이해했다. 반갑게 맞아주며 양배추 김치와 오이무침을 내왔다. 한국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정도의 것도 김치라고 인정하게 된 간사한 우리의 입맛이 원망스러웠다. 김치전과 닭도리탕을 주문했는데 단지 김치의 맛이 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감격하였다. 주인은 ‘아우랑가바드는 한국에서 재료를 가져오기에는 너무 멀어서 모두 인도 재료를 사용해서 한국적인 입맛을 내도록 해 보았다.’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밥을 내왔는데 인도 쌀을 한국식으로 밥을 해서 한국식 밥그릇에 퍼 주었다.
밥을 먹고 나니 아침에 호텔에서 우리를 태우고 온 릭샤왈라가 오늘의 관광을 맏겨 달라고 조른다. 이미 인터넷에서 아우랑가바드의 하루 관광비용이 얼마정도인가를 알고 왔는데 350Rs를 달라고 했다. 너무 비싸다고 깍자고 했더니, 사실 자기의 릭샤가 아니고 남의 것을 빌려 가지고 온 것이라서 ‘조금 비싸게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대신 최고의 서비스를 할 테니 서비스의 값만큼 달라고 했다. 어쩌며 이것이 가장 타당한 계약인지도 몰랐다. 때로는 기분 나쁜 경우를 당하고도 얼마에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가격을 주어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 자기가 한 서비스만큼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엘로라 석굴에서 종민이
릭샤왈라와 엘로라(Ellora)석굴, 다울라따바드(Daulatabad), 시바신을 모신 사원인 그리쉬세쉬와르의 세 가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의 생각에는 엘로라 가는 길에 다울라따바드가 있으므로 한 번에 구경을 하고, 시바신을 모신 사원을 그리 크지 않으니 간단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엘로라 석굴까지 그렇게 먼 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토릭샤로 거의 1시간은 달린 것 같다. 물론 오토릭샤의 속력이 빠르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오래 걸린 것이다. ‘알림(Ailm)’이란 이름의 릭샤왈라는 가는 중간에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중간에 다울라따바드(Daulatabad) 성(城)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엘로라를 보고 돌아올 때 보기로 하였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엘로라 까지는 30Km 다울라따바드( Daulatabad) 성 까지는 15Km의 거리였다.
조금 더 가니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오고, 허름한 성문을 통과하였다. 옛날엔 제법 큰 성곽이 있었던 흔적으로, 아직도 그 시대의 것으로 생각되는 돌을 깔은 길과, 돌로 쌓은 담, 그리고 돌로 이루어진 집이 눈에 띄었다. ‘알림’은 내가 관심을 가지자 ‘스톤 하우스’라고 말해준다. 그쪽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집은 사방이 모두 돌로 이루어진 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사를 해 봐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특히 알림이 여기는 자기의 고향이라고 하며, 어느 한 골목을 가리키며 ‘자기의 집이 있다.’고 말하며, 아직 아버지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성곽도시의 이름을 몇 번 물어보았는데, 그만 바로 기록하지 못해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긴 언덕을 내려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보니 엘로라 석굴들이 보였다. 릭샤, 자동차, 그리고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뒤범벅이 된 곳에 릭샤를 세우고 내렸다. 이때 시간이 10시 40분, 알림은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으며 석굴 앞으로 난 오른쪽 길을 가르쳤다. ‘오른쪽 끝이 1번 석굴, 거기에서 부터 구경을 해 오다가, 정면에 있는 것이 16번 석굴인데 이것을 보고서는 다시 이 장소로 와라.’ ‘그래 알겠다.’ ‘그 다음 석굴들은 걸어서 다니기가 힘들다, 릭샤를 타고 다녀야 한다.’ 우리는 물 한 병을 챙겨 들고 알림과 헤어져 오른쪽 끝으로 같다. 그리고는 1번 굴 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구경하여 16번 카알라쉬 사원(Kailash Temple) 까지 구경하고 나니 2시가 되었다.
엘로라에서, 멀리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보인다
밤기차를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와서, 잠깐 쉬는 둥 마는 둥 바로 아침 먹고, 엘로라로 와서 크고 작은 석굴들을 오르락 내리락 돌아다니다 보니, 16번 카알라쉬 사원(Kailash Temple)에 왔을 때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알림을 찾아 점심 먹을 깨끗한 식당으로 가자고 하니, 잠시 생각하더니 정말 깔끔하고 깨끗한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니 자기는 아버지한테 갔다가 먹었노라고 사양을 했다. 릭샤왈라는 식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지, 따라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린다. 대부분의 인도 업소들이 손님을 데리고 온 왈라들 한데 커미션을 주고 있으니 우리는 알림한테 차를 한잔 사 주는 것으로 대신 했다. 점심 먹고 차(茶)마시며 잠시 쉬니, 다시 조금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잔타 석굴의 특징적인 불상, - 많은 불상이 의자에 앉은 상을 택했으며 수인도 비슷한 수인을 하고 있다
릭샤를 타고 왼쪽 길로 조금 멀리 갔다. 그곳에는 엘로라 석굴군에 속해 있기는 하나 조금은 동떨어진 자인교 사원이 있다. 자인교 석굴은 30번부터 34번까지의 석굴이다. 다른 석굴들은 제외하고 32번 석굴을 구경했는데 체구가 작고 까뭇한 인도인이 시종일관 따라 다니면서 설명해 주었다. 3층으로 된 사원 곳곳을 어디서 준비했는지 전등까지 - 랜턴이 아니 전기로 켜는 전등 - 준비해 가지고 친절하고 자세하게 보여 주는데 엘로라 대부분의 석굴들과는 달리 벽화가 많이 남아있었다. 이 굴에서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가 신봉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자랑인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외따로 떨어져 찾는 사람 별로 없는 이곳까지 오랜만에 찾아준 손님에게 감사의 표시 인듯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끝까지 가이드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100배’에는 30번 자인교 석굴이 볼만하다고 쓰여져 있다. 그러나 거기 까지는 조금 걸어가야 한다는 말에 그만 포기하고 다시 릭샤를 타고 29번 굴로 갔다. 29번 석굴도 혼자 떨어져 있는 석굴로, 우리가 갔을 때는 역시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크고 웅장한 규모에 비하여 조각상들은 많지도 않고, 또 세밀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단지 무서울 정도로 큰 규모였다. 석굴을 오른쪽 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내려가면 절벽아래 작은 연못과, 그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경치였다. 우연히 연못가에 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등에 혹이 달린 소가 한 마리 한가롭게 물을 마시고 있는 정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엘로라 석굴의 신상, - 뭄바이 웨일즈왕자 박물관에서 이것과 같은 모양의 조각에 ‘가자 락쉬미’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절벽의 중간쯤에 작은 오솔길이 29번 석굴의 계단에서부터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28번, 27번 석굴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 같았다. 신비롭고 한적하며 조용히 떨어지는 폭포 아래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한번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29번 굴에서 28번 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 - 한번 걸어보고 싶다
다시 릭샤를 타고 22번 석굴로 갔다. 여기까지 왔을 때 검은 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던 하늘이 드디어 한 두방울씩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 석굴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설명을 해 준다. 다른 굴에 비하여 조각상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우리의 체력은 다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릭샤를 타고 ‘알림’에게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비는 세차게 내리는데 오토릭샤라는 것은 비에는 속수무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겨우 양 옆으로 차양(遮陽)을 내려서 직접 들이치는 비를 막기는 했지만 사이사이 틈틈이 바람과 함께 들이치는 것 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미끄러운 빗길에 조심조심하면서 다울라따바드(Daulatabad)성(城) 보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로 들어오니 6시가 넘었다. 정말 힘들고 힘든 하루였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쉬다가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되겠어서 7시 30분 장미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알림(Ailm)’이 내일 아침 6시 출발하는 아잔타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5시 30분 픽업을 해 주기로 했다. 아잔타행 버스가 출발하는 공영버스터미널은 걸어서 가기에는 먼 거리라고 했다. 호텔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카드놀이도 노래도 모두 필요 없이 바로 잠으로 빠져 들었다. 그래도 종민이도 나도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 다음은 엘로라 석굴 감상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