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36 여행기 끝 델리를 떠나며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8월 6일(토요일)
후마윤 묘를 보고서 빠하르간지로
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지로 돌아왔다. 스마일 인(smile inn)에 가서 ‘친따라’의 사장 ‘임충규’씨를 만났다. 그사이에 인도팀을 데리고 왔다. 이번에 데리고 온 팀도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구성된 팀이다. 일반 성인팀은 인도 가이드들이 인솔하고 어린이 팀은 꼭 임충규씨가 직접 인솔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어린이들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어린이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 같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인도(印度)’라는 데는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바나라시 바바게스트하우스의 ‘쁘리띠’도 남편 ‘제이’와 같이 와있었다. ‘친따라’팀의 가이드가 부족해서 인도에 있는 ‘쁘리띠’에게 몇 팀을 부탁했다고 한다.
스마일 인(smile inn) 옥상에 ‘인도 방랑기’가 식당을 열었다. 아직 정식으로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급한대로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인터넷 카페 ‘인도 방랑기’는 인도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시삽인 ‘가비’님은 전혀 상관이 없고, 부시삽으로 있던 ‘바람소리’님이 한국의 생활을 아주 청산하고 인도로 왔다고 한다. 일단 한국 사람이 많이 가는 호텔들이 몰려있는 곳이라 위치상으로는 아주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손님들이 많았다.
‘바람소리’님은 30대 초반으로 이미 인터넷에서 얼굴을 익힌 터라 스스럼이 없었다. 관계를 알 수 없는 20대 초반의 여자와 같이 서빙을 하며, 요리사를 한국에서 데려왔다고 한다. 식사는 잘 나오는 것 같았으나 값은 한국식당으로서는 비싼 편이었다. 종민이가 ‘갈비찜’을 먹겠다고 하여 300Rs 짜리를 주문했다.
1시간 반이 걸려서 갈비찜이 나왔다. 밥은 인도쌀이지만 김치는 인도에서 처음 보는 한국식 김치였다. 물론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두 가지나 나오다니! 그러나 잠시 뒤에 나온 갈비찜을 보고 정말 실망했다. 인도에서도 소고기를 구할 수 있다. 특히 델리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은 것은 갈비가 아니라 소뼈다귀에 어쩌다 고기가 한 점 붙은 것이었다. 마치 감자탕에서 돼지뼈를 발라먹듯. ‘바람소리’가 정말 이것이 갈비인줄 알았다면 도둑놈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공기밥을 40Rs나 받았다. 인도에 와서 인도인에게 바가지 쓴 것이 얼마나 되던가? 오늘 ‘인도 방랑기’ 식당에서 바가지 쓴 것이 더 가슴 아프다. 여행자를 등 처먹는 것이 바로 우리 동포라니, 카페 ‘인도 방랑기’마저 싫어진다. ‘바람소리’에게 ‘이렇게 장사하지 말라’고 말하고 나왔다.
인도쌀밥은 희고 길쭉하며 끈기가 없다. 우리 쌀은 짧고 끈기가 있다. 인도에 이런 쌀은 없다. 단지 쌀의 모양이 우리 쌀과 비슷한 것은 있는데 끈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쌀은 중저가의 살로 매우 저렴하다. 그래도 한국인은 이 쌀로 한 밥을 좋아한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비싸더라도 찹쌀을 조금 섞으면 훨씬 더 맛이 좋으련만, 그런 써비스를 할 식당이 있을까?
2005년 8월 7일(일요일)
빠하르 간지 구경과 쇼핑
어제로 인도여행계획을 모두 마쳤다. 오늘은 만약을 위해 마련해 둔 예비일이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 늦게 ‘쉼터’식당을 갔다. 종민이는 ‘계란알레르기’가 있어 음식을 주문할 때 꼭 ‘계란을 빼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몇 번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주문해서 계란이 섞여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할 수 없이 음식을 물리고 다시 주문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쉼터’에서도 깜빡 그렇게 되고 말았다. ‘신라면’을 주문했는데 서비스차원인지 계란을 넣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그러나 종민이는 다시 주문해야 했다. 이런 경우 여태까지의 모든 식당에서는 두개의 값을 다 받았다. 어제 저녁 ‘인도 방랑기’식당을 쓰고 바로 ‘쉼터’를 쓰자니 이상하지만 사실을 기록하자면, ‘쉼터’의 홍군은 라면 한개 값만 받았다. ‘음식인데 우리가 먹으면 되지요, 걱정마세요.’라고 하며, 한사코 싫다는 홍군에게 반값만 더 주기로 했다.
델리의 중심가, 델리의 압구정동이라는 ‘코넛플레이스’로 갔다. ‘리갈 시네마’앞에서 릭샤를 내리니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많은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이드북의 말과는 너무 틀렸다. 삐끼들만 잔뜩 따라붙어 휑한길을 헤메다가 왔다.
코넛플레이스에는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다. 아직 완전히 개통된 것은 아니고, 일부구간만 운행한다. 그래도 인도지하철은 어떨까? 지하철은 국가 중요시설이라서 검문을 받아야 탈 수 있다. 금속탐지 게이트를 지나고, 그 앞에 서 있는 보안요원의 요구에 따라 소지품을 열어 보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하철 표를 구입할 수 있다. 기본구간 요금은 6Rs 버스보다 약간 비싸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질수록 버스와 가격차는 커진다. 승차권은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플라스틱인데 그 속에 인식장치가 들은 것 같다. 사실 지하철 표만 사 가지고 타지 않고 나왔다.
너무 일찍 빠하르간지로 가도 특별하게 할 일이 없다. 릭샤를 타고 ‘찬드니 촉’으로 갔다. 가이드북에는 ‘보석상점’ ‘은세공상점’ ‘도둑시장’ 등등 흥미롭게 설명이 되어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찬드니 촉’은 책속의 세상과는 너무 틀렸다. ‘찬드니 촉’ 자체가 너무 넓어서 책에 소개된 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상인들과, 엄청나게 많은 삐기들이 서로 자기의 상품을 자랑하는데, 실상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힘들고 어지러워 가까이 있는 ‘레드포트’도 구경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쉼터’로 돌아왔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 종민이는 만화책을 섭렵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은 돈을 계산하여 기념품 살 것을 계획하였다. 종민이가 시계를 사고 싶다고 1500Rs를 요구하여 가지고 있는 달러를 모두 환전해야 했다. 골목에 있는 향(香)가게에서 약간의 향을 사고, 종민이는 ‘해나’를 하러 나가고, 나는 혼자 TV를 보며 쉬었다. 내일은 인도를 떠나는 날이다. ‘시원섭섭’이란 말이 이런때 어울리는 것 같다.
2005년 8월 8일(월요일)
인도를 떠나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에베레스트에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코넛플레이스로 갔다. 어제 저녁 생각해둔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다. 어제보다는 상점들이 문을 열어 그런지 그런대로 활기찼다. 주정부상점을 가서 기념품을 샀다. 물건을 잘 모르며 구입을 했다간 온통 사기꾼인 인도인들 틈에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주정부상점에서는 그만큼 비싸지만 상품의 질을 해당 주정부가 보증하고, 또 정찰제라서 흥정을 하는 피곤함도 없었다. 종민이는 시계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또는 마음에 드는 것은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하였다.
맥도널드에가서 점심을 먹었다. 인도의 맥도널드는 상류층 젊은이들의 외식장소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소위 ‘오렌지족’들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중 인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청바지나 원피스의 젊은이들이 많았다. 외대를 졸업하고 델리대학에 유학(遊學)온 학생 둘을 만나 인도의 신(神)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바타(Bata) 상점에 들러 종민이의 슬리퍼를 사가지고 빠하르간지로 돌아왔다.
빠하르간지의 골목을 누비며 마지막 쇼핑을 했다. 누구나 산다는 ‘히말라야 화장품’ 조금, 그리고 ‘낙타가죽 슬리퍼’ 몇 개, 집에 가서 한다고 ‘해나’물감 조금. 잡다한 보따리가 한 개가 만들어 졌다. 디센트호텔에 가서 짐을 찾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인사를 하고, 7시 ‘골든카페’로 갔다. 우리는 ‘골든카페’엣 공항픽업을 1인당 80Rs로 예약을 해두었다. ‘쉼터’식당에 같이 가자고 메모를 붙였는데 팀이 모아지지 않았다. 택시 한대를 대절하면 250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시간에 공항을 나가는 팀은 우리 밖에 없어서 둘이 편안하게 갔다. 델리 공항은 정말 작았다. 옛날 김포 국내선 공항정도 되는것 같았다. 보안은 철저해서 이것저것 하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소지품에 대한 검색도 철처해서 두 세번 계속했다. 공항 보세구역에서 가지고간 빵으로 요기를 하고 화장실에서 인도여행중 길렀던 수염을 깨끗하게 깎았다. 오랜만에 수염이 없은 얼굴을 보니 시원하기보다 허전했다. 이제 한 시간 뒤면 인도와도 이별이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인도여.
비행기는 돌아갈 때도 홍콩에서 잠시 멈췄다. 역시 홍콩까지는 많은 인도인들이 탑승했으나, 한국까지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홍콩에서 또다시 철저한 짐 검사가 이뤄졌고, 한번 착륙할 때마다 어김없이 기내식이 나왔다. 또 나이든 스튜어디스의 배꼽 보여주는 서비스도 어김없이 이뤄졌고…
후마윤 묘지에서 종민이와 서로 찍어준 사진
(위) 아버지 Ducky Lim (임덕규) 와 (아래) 믿음직한 막내 Boris Lim (임종민) 입니다.
감사합니다. 도배를 하다시피 한 글을 읽어 주셔서. 작년의 인도네시아편도 다시 읽어보니 생각이 짧아 제대로 쓰지 못한 오류가 참 많았습니다. 인도편도 오류가 발견되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또 본인의 무지로 인해 잘못 쓰고도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가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배워가는 자세로 여행을 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늘 마음 같게는 안됩니다. 다음 여행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는데 인도에서 본 불상의 얼굴을 좀 더 관찰하여 보고 목표를 정할 예정입니다.
아쉽게도 막내와 약속한 세 번의 배낭여행이 모두 끝나 다음은 혼자 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누군가 짝을 이루게 된다면 달라지겠지만요. 막내는 내년 여름 서유럽을 친구들과 같이 배낭으로 가겠다고 계획을 세운다고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니까요. 모험의 준비가 철저하면 잘 되겠지요.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분들 모두 즐거운 여행들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