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28 산위의 궁전 암베르트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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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의 인도로 가는 길-28 산위의 궁전 암베르트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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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8월 1일(월요일)

암베르 포트(Amber Fort)와 라시왈라집



시내를 벗어나 작은 고개를 넘어 가니 산 중턱과 위에 두개의 성(城)이 보인다. 작은 호수 곁에 차가 서는데 눈치로 보아 여기가 내려야 할 장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부탁했건만 ‘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내렸다. 길가에 작은 호수가 있고, 호수에서 부터 축대를 쌓은 위에 아름다운 정원이 기하학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호수의 하류 쪽으로 다리를 놓고 물이 빠져 나가게 하였으며 중간에 인공섬을 짓고 역시 나무를 심은 정원이 있다. 여기가 암베르 포트(Amber Fort)의 입구다.


여러 곳에서 암베르 포트(Amber Fort)입구에서 ‘코끼리를 타고 성을 올라간다.’ 또는 ‘지프를 타고 올라간다.’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에게는 코끼리를 타라는 삐끼도, 지프를 타라는 삐끼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반기는 것은 수많은 거지들 뿐 이었다. 할 수없이 거지들을 뿌리치기 위해서 가기 시작한 것이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정보를 교환할 때 ‘구태여 코끼리를 타지 않아도 된다. 걸어 올라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말을 들어 걷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잘 되어있었고, 경사도 심하지 않았다. 나무그늘 사이를 올라가는 길이어서 불과 10분여분 만에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와 보니 걸어오기를 잘했다. 코끼리는 왕복 400Rs이며 네 명이 타면 한사람이 100Rs가 된다. 그러나 1시간 뒤에 내려가기 위해 같이 온 사람들과 다시 만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코끼리가 다니는 길은 걷는 길과는 달리 많이 돌아온다.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인데 그 시간동안 코끼리등 위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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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르 포트의 궁전의 화려한 문, 멀리 뒤 산위에 자이가르 포트가 보인다.




앞쪽 산 중턱에 있는 성이 암베르 포트(Amber Fort), 1037부터 1726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 더 올라가서 있는 성이 ‘자이가르 포트(Jaigarh Fort)’, 암베르성이 지어지기 전까지 ‘마하라자’의 왕성이었다고 한다. 초기에 산꼭대기에 지었던 성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결국은 자이푸르로 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성(城)의 이름이 ‘암베르 팰리스(Amber Palace)’로 불리어야 했는데 포트(Fort)가 된 것은 이 시대의 왕들이 많은 군사들에 둘러 쌓여 살 수 밖에 없었을 만큼 불안했다는 것인가?


성은 아그라의 아그라 포트(Agra Fort) 보다는 조금 작은 듯 했고, 크게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듯 했다. 성문을 들어서면 간결하며 넓은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을 감싸고 회랑(回廊)이 둘러져 있는데, 입구에서 왼쪽으로 궁성의 정문이 있다. 붉은색 사암에 흰색 대리석을 상감해 넣은 이 문은 크고 아름답다. 문은 3문(三門) 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가운데 있는 큰 문 뿐이다. 문의 입구 상단에는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 ‘가네쉬’가 그려져 있다. 주위의 무늬는 상감(象嵌)기법을 사용했는데 ‘가네쉬’만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무언가 이유가 있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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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의 경치, 호수는 물을 저장하는 수원지도 되고, 적을 방비하는 해자의 역할도 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휴식 공간도 되는 다목적으로 꾸며져 있다.




관광객이 많이 머물고 있는 성의 앞부분은 화려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내려다보는 조망 또한 아주 훌륭했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앉으면 불어오는 바람이 인도의 더위를 깜박 잊게 해준다. 또한 큰 정원을 가운데 두고 아름다운 방들이 꾸며져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여러 가이드북에 소개된 ‘거울의 방’이다. 딱히 한 개의 방이 아니라 왕비가 거처했다는 공간 모두를 말하는데 ‘쉬시 마할(Sheesh Mahal)’이라고 불린다. 사방 벽에 거울로 만든 모자이크가 되어있는가 하면, 창문은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꾸몄다. 천장은 둥근 궁륭형(穹窿形)이 가미된 장방형인데 거기에도 거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들리는 말에는 촛불 한개만 켜면 방안이 온통 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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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보는 사람마다 극찬하는 ‘쉬시 마할(Sheesh Mahal)’ 거울의 방




그러나 ‘쉬시 마할(Sheesh Mahal)’에서 정작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은 모자이크화(畵)다. 마치 현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얇은 대리석판을 조각하여 투각(透刻)을 한 다음 그곳에 아름다운 색깔의 보석을 넣어 채운 것이다. 거의 완벽한 모양으로 남아있는 이것은 감히 암베르 포트(Amber Fort)의 백미(白眉)라고 말할 만하다. 특히 이 방에서는 내려다 보이는 풍광도 아름다워, 저 아래 호수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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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으로는 암베르 포트의 최고 보물 ‘스테인드 글라스’ 대리석 판을 투각(透刻)하여 무늬를 만들고, 그곳을 여러 가지 보석으로 채워 넣어 만든 것으로, 아름다움과 정밀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




‘환락의 궁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수크 니와스(Sukh Niwas)’는 정원을 사이에 두고 ‘쉬시 마할(Sheesh Mahal)’의 맞은편에 있다. 왕의 생활공간이었던 이곳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간결한 아름다움이 있는 장소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공간구성이 상당히 개방적으로 되어있다. 이런 개방성을 휘장(揮帳)을 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안보일 듯 보이는 묘미(妙味)가 있었을 것 같다. 홀의 뒤쪽 벽에, 물이 나오는 수구(水口)가 있는데, 마치 빨래판 같이 생긴 잔무늬가 있는 돌을 통하여 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게 되어있다. 물은 대리석의 바닥을 통해 홀의 중간에 있는 작은 수조(水槽)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은 수조에서 다시 바닥을 통해 정원으로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는데, 정원 쪽으로는 작은 폭포를 이뤄 떨어지도록 되어있다. 덥고 건조한 인도에서 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냉방과 습도조절을 해결한 뛰어난 설계이지만 이 높은 성(城)에서 그 물을 어떻게 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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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시 마할(Sheesh Mahal)’과 ‘수크 니와스(Sukh Niwas)’사이의 정원 이 높은 산위에서 이런 정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치의 극을 말해 주는 것이다. 보석의 사치는 한번으로 끝나지만, 이 정원은 끊임없는 손길을 필요로 한다.




정원을 중심으로 양쪽은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가기 버거울 정도의 넓이에 군데군데 등잔(燈盞)을 놓았음직한 장식 외에는 아주 간결하게 되어있는데, 이 통로의 군데군데에 작은 통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는 이미 폐허가 된 작은 공간들이 모여 있는데, 설명을 보면 후궁(後宮)들의 처소가 있었다고 한다.


왕이 거처한 주 공간에서 한 단계 높은 위치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은 가운데 정원 대신 넓은 공터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연회를 즐기거나 또는 많은 사람들을 접견하거나 할 수 있는 정자(亭子)같은 건물이 한 채 있을 뿐 매우 간결하게 되어 있다. 이곳도 이 공간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좁은 골목으로 된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회랑의 곳곳에서 작은 방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이곳은 무엇에 사용된 곳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우나 앞쪽 건물들과는 전혀 다르게 아무런 치장도 없고, 지붕도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층을 올라가면 어둡고 좁은 공간들이 몰려 있는데, 역시 아무런 장식도 없고, 벽을 칠한 페인트도 많이 퇴락하여 오랫동안 손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폐쇄되어 잠겨져 있는 공간이 많아 자칫 길을 잃고 미로(迷路)를 헤매게 된다.


암베르 포트(Amber Fort)에서 산 위에 있는 자이가르 포트(Jaigarh Fort)까지는 잘 다듬어진 길을 약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이 길에서 보는 경치는 매우 훌륭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그늘하나 없어 매우 힘들다고 한다. ‘구태여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먼저 다녀온 학생들의 정보에 따라 우리는 자이가르 포트(Jaigarh Fort)를 답사하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 중간에 만난 한 행상(行商)과 기념품을 흥정했다. 처음부터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 요구한 금액의 1/10의 아주 저렴한 값을 불렀는데 주차장 까지 따라오며 사라고 조른다. 아주 조금씩 값을 내리는데 그때마다 ‘Yes!'를 연발한다. 처음에는 그 값에 흥정을 하겠다는 뜻인줄 알았는데 인도인의 ’Yes'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의미와 달랐다. 결국 버스를 타고 나니 우리가 제시한 값에 팔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 물건에 대한 흥미가 이미 없어지고 난 후였다.


와하마할(Hawa Mahal)앞에서 내려 사이클릭샤를 20Rs에 흥정하여 ‘에버그린 G H’로 갔다. 어제는 문 앞에서 내려주었는데 오늘은 낮선 길가에 릭샤를 세운다. ‘어디가 에버그린이냐?’하니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그곳까지 들어가자고 하니 못 들어간다고 버틴다. 할 수 없이 내려 요금을 주니 ‘한사람에 20Rs’라고 시비를 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와하마할(Hawa Mahal)에서의 기분 나쁜 일도 있어 감정이 폭발했다. 왈라에게 큰 소리를 치자 옆의 상인이 릭샤왈라의 편을 든다. 아주 한판 크게 벌리려고 마음을 먹고 ××가 들어간 쌍소리를 치는데 한국 여학생 한 떼가 인사를 한다. 정말 ‘릭샤왈라’ 재수가 좋았다. 할 수 없이 분한 마음을 접고 돌아섰다.


에버그린 카운터에서 전화를 해서 비행기 리컨펌을 했다. 그런데 서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나대로, 수화기 저쪽의 남자는 그 사람대로 서로 상대방의 발음이 나쁘다는 탓만 하면서, 리컨펌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피자헛에 피자를 주문해 에어콘을 시원하게 켜 놓고 먹었다.


오늘의 일정은 좀 더 계획성 있게 다닐 수 있는 것을 그렇지 못했다. '에버그린 GH'에서 어차피 릭샤를 이용하여 구경할 것이라면 처음에 와하마할(Hawa Mahal)을 목표로 가는 것 보다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를 가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일단 일찍 간다면 심한 더위를 피할 수도 있다.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에서 시티팰리스(City Palace)쪽으로 내려가 와하마할(Hawa Mahal)을 구경하고 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암베르 포트(Amber Fort)로 가서 구경을 하고 돌아온다. 돌아올 때 211번 버스를 타고 와하마할(Hawa Mahal)이 있는 로터리를 세정거장 못가서 네거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 릭샤를 이용하면 에버그린까지 거리가 조금 줄어든다. 그렇다면 와하마할(Hawa Mahal)은 오고가는 중에 간단하게 구경할 수 있다. 또 버스가 출발하고 6정거장 정도 갔을 때 카메라를 준비해서 창밖을 주시(注視)하고 있으면 앞에서 말한 호수 속에 잠긴 여름궁전을 볼 수 있다. 그 앞에 정류장이 있어 버스가 잠시 정차하니 이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1층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이푸르에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라시왈라’를 찾아갔다. 많은 학생들이 ‘정말 맛있다’ ‘환상의 맛이다’하며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에버그린 뒷길로 나가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하염없이 간다. 몇 백미터를 갔을까 사거리가 나온다, 그 사거리 모퉁이에 ‘맥도널드’가 있고, 맥도널드 옆에 자이푸르에서 유명한 극장이 있다. 그러나 극장은 신경 쓰지 말고, 맥도널드를 지나 30m정도를 더 가다 길 건너편을 보면 서로 제일이라 우기는 ‘라시왈라’가 세집이 나란히 있다. 자세히 보면 세집이 아니라 네집이다. 추천하는 사람에 따라 몇 번째 집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 주었는데 현장에 가보니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은 한곳밖에 없었다. 길 건너서 보아 가장 오른쪽에 붉은 간판을 단 집이다. 쉽게 들어가 앉아 라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이 가게 밖에 없었다. 이 가게만은 몇 개의 테이블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다. ‘과일라시’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과연 소문대로 맛있었다. 초벌구이 한 흙잔에 담아 주는데 양도 꽤 많다. 이것이 진짜 ‘라시’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슈퍼100’에 과일을 넣어 기계로 휘저은 것 같다. 서울에 가서 라시를 먹고 싶을땐 ‘슈퍼100’을 가지고 만들어 먹으면 될 것 같았다.


인도 여행기를 보면 과거에는 이 초벌구이 흙잔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한잔의 짜이를 마시고 잔을 집어던져 깨트리는 재미’에 대해 많이 써져 있다. 이 집도 우리가 먹은 라씨 컵을 밖으로 집어던져 버린다. 왜 인도에서는 초벌구이 흙잔을 사용할까? 왜 그것을 밖으로 던져 버릴까?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니 ‘일회용품을 처음 사용한 나라는 인도다’라는 제목아래 인도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을 열거해 놓은 사이트가 있었다.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 초벌구이 흙잔, 나뭇가지 칫솔,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아주 자연친화적인 행위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나뭇잎을 사용한 적이 없을까? “연닢에 밥 싸두고, 반찬으란 장만마라” 이렇게 노래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거짓이란 말인가?


우리도 경제적으로 낙후했던 과거에는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했다. 이제 경제가 커지고 ‘소비가 미덕(美德)’인 시대에 접어들면서 같이 살기 위한 공생(共生)의 작업으로 현재와 같은 ‘일회용품’의 대량소비 시대가 된 것이다. 먼 후일 인도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시대가 올 것임은 틀림없다. 아직 그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몇 년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마더 테러사’수녀가 커피자판기에서 뽑은 종이컵을 ‘아! 이렇게 가볍고 좋은 것을’하며 며칠간 계속 사용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도 사람이 일회용품을 좋아하는 것에 종교적 이유를 단 사람도 있다. 종교적으로 힌두교도들은 ‘한번 사용한 것은 부정(不淨)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것도 타당한 말인 듯하다. 힌두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의 물 먹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다른 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은 그릇에 입을 대고 먹지 않고, 물을 입속에 부어 넣는다. 유리컵의 ‘짜이’도 이런 방법으로 마시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거나, 집에서부터 배달시켜 먹는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절대 그릇째 입에 대고 먹는 법이 없으며, 식당의 수저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손을 사용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인도인들은 다른 사람이 접촉했던 것을 불결하게 생각 한다’가 더 타당한 것 같다. 신분적으로 어떤 하찮은 놈이 사용했을지 모르는 그릇에 접촉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인도인이 흙잔 등 일회용품을 고집하는 것은 신분적인 문제, 위생적인 문제 등에서 나온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지금 인도의 인구를 10억으로 끌어 올리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인도같이 불결한 나라에서 10억이나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시왈라’의 라시 맛은 좋은데 두 번 찾아 갈 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찾아가기의 어려움도 있지만, 라시한잔 먹고 일어나야 하는 허전함, 가게를 밖에 죽 늘어서서 언제 나오나 기다리는 수많은 거지들의 부담스런 눈길, 그리고 가게를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거지들에 포위당하는 황당함, 이런 것이 ‘라시왈라’를 멀리하게 된다.


어둠이 깔린 길을 걸어 에버그린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지니 무질서는 더 극성을 부린다. 제 멋대로 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릭샤, 사이클릭샤는 사람정도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몰려다니는 인도의 젊은이들은 아주 뻔뻔스럽다. 아마 ‘어두워지면 나가지 말라’는 가이드북의 경고는 정말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누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그냥 방치되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




* 다음은 낙타 사파리의 도시 푸쉬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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