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23 아그라 타지마할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30일(토요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타지마할
아그라는 힌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기원전 3세기 경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도시‘아그라바나(Agrabana)’라고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도 아가라(Agara)라고 표기되어 있을 만큼 그 유래가 깊다. 그러나 아그라가 문화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무굴제국의 사랑을 받고서 부터다. 초대황제 바부르(Babur)는 처음에는 아그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그라를 무굴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구이에 아프간(Gui-e-Afghan)’이란 아름다운 정원을 건축하는 등 아그라를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3대 악바르 (Akbar the Great)에 와서는 아그라를 본격적으로 재정비하여 지금 도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밤새 잘 달리던 기차는 날이 밝자 속도가 신통치 않아졌다. 한번 정차하면 30분 정도는 기본으로 서있다. 결정적으로 아그라 바로 못미처 간이역에선 하염없이 기다리다 교행(交行)하는 기차를 보내고 출발한다. 바로 ‘야무나강’ 철교가 나타난다. 철교 너머로는 ‘아그라 포트성’이 멀리 강가에는 ‘마할의 왕관’이라는 ‘타지마할’이 보인다. 역시 인도의 기차는 연착(延着)이 정석인가?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중의 하나이며,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인 타지마할
어제 ‘아그라에 도착해서 신발을 사자’고 했지만 일단 역을 맨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게 여간 꺼림칙하지 않다. 아그라역도 틀림없이 똥밭 일 텐데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오렌지 인디아’ 팀에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해 보았다. ‘당장 신지 않는 신발을 빌려주면 타지마할 앞에 가서 돌려주겠다.’하니 의외로 한분이 가지고 있던 샌들을 주었다. 덕분에 ‘똥밭을 맨발로’를 면하게 되었다.
아그라역에 내려 ‘오렌지 인디아’팀과 헤어지고 나니 개별여행자는 우리와 어쩔 줄 모르는 여학생 두 명이었다. 넷이서 오토릭샤 한대에 끼어 타고 타즈간즈(Tajganj)로 갔다. 서문 근처에서 내려 호스트호텔(Hotel Host)에 들어갔다. 에어콘디션이 있는 방은 타지마할 근처에는 없고, 에어쿨러가 있는 방이 200Rs 그러나 지금은 방이 없어 일단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굴산로지’에 가서 불고기백반을 어거지로 먹었다. 종민이의 식사량이 점점 줄어든다. 뭄바이를 떠난 뒤로 식당다운 식당을 만나지 못했다. 여행은 ‘밥심(힘)’이 절반인데 걱정이 되었다. 근처에 주류판매점 간판이 보여 나는 맥주를 한 병 사다 먹었다.
붉은색 사암으로 균형있게 지은 타지마할의 정문, 묘역에 비해 남성적인 직선미가 돋보인다
11시 경 타지마할 남문으로 입장을 했다. 입장료는 인도 문화유적 중 가장 비싼 750Rs다. 검표하는데 종민이 나이 때문에 옥신각신 시비가 붙었다. 자꾸 20살은 넘었다고 한다. 여권을 꺼내 출생연도를 보여주어도 계산할 줄을 모른다. 한 여자를 데려와 물어보는데 이 여자는 한술 더 뜬다. 조금 뒤 조금 더 높은 듯한 남자가 왔다. 검표하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떠드는데, 이 남자 여권을 보더니 픽- 웃으며 들어가라고 한다. 그러는 와중(渦中)에 가방검사고, 소지품검사고 모두 생략하고 그냥 들어갔다.
남문 검표소를 지나가면 사방이 붉은색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온다. 왼쪽 오른쪽 모두 커다란 문으로 통하게 되어있는데, 이 광장에서 타지마할(Taj Maha)의 세 개의 문이 만나게 되어있다. 서문과 동문도 비슷한 크기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성문 크기의 기준은 옛날에 ‘코끼리를 타고 드나들 수 있는 크기’를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앞쪽으로 붉은색에 흰색을 상감(象嵌)한 커다란 성문이 있고 좌우는 회랑(回廊)으로 길게 연결되어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성문을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게 모든 탈것에서 사람을 내리게 하는 구실을 하였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공식적으로 하마비(下馬碑)를 세울 수 없을 때, 외나무다리 같은 것을 건너게 하여 탈것에서부터 내리도록 했던 방법과 같다. 결국 타지마할을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타고 들어갈 수 없게 배려한 것이다. 이 문을 들어가면 뭄타즈마할(Mumtaz Mahal)의 묘역이 되는 것이다.
뭄타의의 묘실(墓室)로 들어가는 문,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뭄타즈 묘실 문 위쪽의 상감(象嵌)무늬, 흰 대리석에 갖은 색의 돌과 보석을 이용하여 꽃무늬를 상감하였다.
문을 들어서면 타지마할이 모든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사각형의 정원은 수로(水路)에 의해 둘로 나누어지고, 그 좌우로 기하학적으로 나누어진 긴 화단이 수로를 따라 시선(視線)을 타지마할 까지 끌고 간다. 화단에는 타지마할의 단아(端雅)한 모습을 더욱 거대하게 보이도록 가늘고 작은 향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어 거리감을 더 느끼게 한다. 묘당(墓堂)은 좌우대칭의 대리석으로 기단(基壇)은 높이 5.5m, 종횡 94m, 기단상의 중앙 돔 높이 24.5m, 중앙 돔 직경 17.7m, 묘당(墓堂)의 크기 가로세로 57m, 네 귀퉁이의 첨탑의 높이는 42m라고 한다.
수로는 정원의 중간에서 작은 네모난 연못을 만들고, 연못 가운데 높이 1m, 가로세로 12m 정도의 단(壇)을 쌓아 타지마할을 관망(觀望)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아마 이 묘역을 설계한 사람은 황제 ‘샤자한’이 이곳에서 부인의 묘(墓)를 보며 흐믓해 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진을 찍으면 가장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며, 유명한 누구구구가 사진을 찍었다는 자리가 있다. 정면으로 수로가 계속 이어져 있고 그 앞에 높이 2m 정도의 단을 쌓고 그 단 위에 타지마할이 서 있다. 타지마할의 좌우편으로 붉은색에 흰색 상감을 한 모스크가 각각 서 있다. 여기서 보면 타지마할의 완벽한 좌우대칭의 구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수로(水路)는 정원을 남북으로 흐르고, 동서로는 가운데 화단이 있는 넓은 길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길의 끝에는 앞서 들어온 남쪽 문과 비슷하나 규모는 작은 문이 있으나 실제적으로 통행할 수는 없다고 한다.
뭄타즈의 묘실(墓室), 뭄타즈마할과 샤 자한의 두개의 관(棺)이 놓여져 있다.
관이 놓여진 곳을 둘러싸고 있는 투각(透刻)의 대리석 판, 모양도 아름답고, 무늬도 아름답고, 온갖 보석을 아낌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보석으로 상감된 무늬
계단을 통해 단위로 올라가면 눈이 부신 흰색의 연속이다. 바닥도 흰색이고, 건물도 흰색이고, 좌우 네 귀퉁이에 서있는 탑도 모두 흰색이다. 아름다움의 완성이고, 경이(驚異)의 극치(極値)라고 할 수 있다. 묘역 건물 한쪽에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놓았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냥 건물 주변에 벗어 놓는다. 뜨겁게 달구어진 대리석 바닥이 화상을 입을 정도이므로 꼭 양말을 신으라고 한다. 물론 묘당(墓堂)입구 까지는 엉성하지만 무엇인가 깔려 있어 그 위로 가도 된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앉아있다. 아주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 가뜩 관광객도 많은데 왜 이렇게 입구를 막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묘당 안은 조명시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가운데 대리석의 투광판(投光板)으로 둘레를 치고 그 안데 두개의 관(棺)이 모셔져 있다. 둘레를 돌아 넓이 2m정도의 통로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구경을 하고 있거나, 몇몇 단체를 앞에 두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타지마할을 들어갈 때 ‘전등’을 가지고 갈 수 있는가 없는가 이야기가 나올 때 ‘왜 전등이 필요할까?’했는데 이런 어둠속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어쩌다 한 가이드가 전등을 켜서 비추어 보면, 또 어디선가 호르라기 소리와 고함소리가 난다.
묘당(廟堂) 안에서는 주어진 빛 외에는 일체의 다른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카메라 촬영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보기만 해야 하는 엄숙하고 정숙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상은 혼란하고 혼잡함의 극치였다. 우리는 가방검사를 받지 않아 모든 도구가 다 있었다. 살그머니 조그만 후래쉬를 꺼내 들었다가 호루라기 소리에 그만 도로 넣고 말았다.
묘역을 둘러친 투광판은 흰 대리석을 오려 모양을 만들고, 그것에 홈을 파고 색깔이 다른 대리석을 넣어 그림을 그렸다. 꽃그림의 꽃에는 붉은색 옥돌을 박고, 수술과 암술에는 또 다른 색의 보석을 박았다. 화려함의 극치고, 아름다움의 최고봉이고, 또 이런 보석에 값을 매긴다는 것이 뭐한 일이지만, 그 값으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묘역 안에는 두개의 관(棺)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있다. 어느 것이 왕(王)이고 어느 것이 왕비(王妃)인지 당장에는 알 수 없었다.
타지마할 뒤쪽으로는 야무나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넓은 평원 저쪽에서 느릿느릿 흘러와서 또 역시 평원 저쪽으로 느릿느릿 흘러간다. 그 끝에 붉은색의 거대한 성채가 아스라니 있는데 ‘아그라 포트’다. 아들한테 왕위를 빼앗긴 울분의 왕이 저 성채(城砦)에 갇혀서 사랑하는 부인의 묘역(墓域)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고 하는데, 타지의 혼백(魂魄)도 멀리 ‘아그라 포트’를 바라보며 그곳에 갇혀 찾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네귀에 높게 서있는 네 개의 탑은 마치 타지마할 묘역을 옹위(擁衛)하고 있는 듯, 흰 몸체를 당당하게 세우고 있다. 크면서도 갸날프지 않고, 높으면서도 묘역(墓域)을 넘보지 않는, 타지마할의 둥근 돔 천정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타지마할 묘역의 뒤편, 유유히 흐르는 야무나강이 아무말 없이 타지마할을 지켜보고 있다.
* 다음은 아그라의 붉은 성 아그라 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