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배낭여행기-타지마할과 아그라성
10일 이내의 단기여행자라면 길잡이(배낭여행 안내자) 또는 패키지 상품의 가이드를 대동하자
인도는 넓다.
인도 실정에 어두운 초보 여행자가 기차에 대한 트러블이 생기면 낭패 당하기 일수다.
그만큼 인도 기차를 자유롭게 이용할려면
험난한 과정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단기 여행자에겐 그런 과정을 겪는건 무리다.
자이뿌르에서 아그라로 가기위해 다시한번 기차에 올랐다.
이번 기차는 그들의 전형적인 서민형 기차인데
난 이 기차가 아그라로 가는지 아님 다른곳으로 가는지 조차도 모르고 올라탔다.
길잡이가 타라고 해서 탔을뿐이다.
문구도 안내도 없다.
방식은 모두 아나로그다. 그 흔한 전자 계시판 조차도 없다.
그저 티켓에 적힌 기차 번호가 판단할 근거의 전부다.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또 내가 탈 기차가 언제 오는지
그걸 아는자가 이 역에서는 없다고 하니...그냥 티켓에 적힌 번호의 기차가 오기만 기다려야 한다.
지연된 기차가 언제 올지
또 왜 늦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풀랫폼에서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는게 이곳의 현실이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 기차 지연으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안개가 많이 피는 계절에는 연착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하지만 항의하거나 성질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냥 바닥에 퍼질러 있는게 이들의 할일이다.
역시 인도다.
문명의 시계는 이곳이 좀 늦다.
하지만
인간미 상실의 시계는 이곳이 훨씬 더 늦다.
늦으면 늦는대로 그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킬뿐이다.
인도의 매력이 이거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차다.
천정의 선풍기는 먼지가 앉을만큼 앉아 때가 몇 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쳐다보면 못 돌릴것 같지만 더위에 장사가 없다.
이미 두번의 탑승에 벌써 면역력이 길러졌다.
씩씩하게 선풍기를 돌리고 냅다 잠을 청해 본다.
자유석과 지정석이 있지만
빈자리는 어김없이 그들이 차지하고 있어 한바탕 소란이 있고나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무례하게 하면 안될것이다. 아무쪼록 정중하게 요청하자..
길잡이는 좀 드세게 나오더만
그래도 그들은 얼굴색 하나 안붉히고 잘 비켜준다.
순수한 인도인들이다.
지정석에서 비켜 달라고 하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지만 그래도 충돌없이 해결하는게 순리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나서야 차창 밖 풍경을 응시한다.
넓고 넓은 그들의 광활한 평야는 좁디 좁은 우리네 땅덩어리와는 많이 비교된다.
몇 해 전 태국의 정글에서 기차를 탄적이 있었다.
넓고 넓은 벌판이였지만 그들은 모두 경작하고 있었다.
한 뼘의 터라도 베트남이나 태국에서는 모두 농부의 손길이 다아 있었지만
인도에서는 그냥 헐헐 벌판으로 '잉여의 땅' 천지였다.
부와 빈
어찌보면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나 또는 활용 기술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네 동네 텃밭을 보자.
빼곡히 차려진 텃밭에서 한민족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의 기회다.
시커먼 선풍기는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잘도 돌아간다.
한차례 비가 오더니 또 금방 개인다.
빗물은 창틈을 타고 안으로 흐른다.
이것저것 동원해서 틈새를 막아보지만 실내로 흘러내린다.
불평은 말자
이곳은 인도다.
드디어 아그라에 도착하고
서둘러 식당을 찾는다. 이미 점심 시간을 한참을 지난뒤다.
어느 식당의 옥상에 올랐더니
저런 풍경이 보인다. 사실 난 저게 타지마할인지 몰랐다.
눈썰미도 참 없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건물이 보여
길잡이에게 물어보니 저게 바로 타지마할의 지붕 '듀라'라고 한다.
근처에 다람쥐도 새도 사람과 함께 어울러간다.
본격적으로 인도의 동물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던 인도였다.
하지만 아그라 이후 카주라호와 바라나시를 향하면서
이들의 무한대 동물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온갖 가축과 동물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원숭이도 씩씩하게 다닌다.
옥상에서 바라본 인도 학생들의 모습이다.
교복이 사뭇 남다르다.
옥상에서 멀찍히 있는 듀라를 줌으로 땡겨 보았다.
늦은 식사를 하곤 드디어
타지마할로 향한다. 정말 가고픈 꿈의 장소였다.
바가지가 사뭇 전율스럽다.
이미 바가지가 심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인도의 여행중 바가지 요금은 타지마할이 가장 심한듯 싶다.
요금표의 포스는
"너거들이 여기까지 와가꼬 이거 안보고 갈테냐.."라는 무언의 협박과도 같다.
외국인 750루피, 자국인 20루피
한마디로 욕 나온다.
하지만 어쩌랴 무언의 협박이 현실로 다가오니 말이다.
보기 싫으면 발걸음 돌리면된다.
아니면 협박을 인정하고 씩씩하게 들어가보자
타지마할은 내가 인도 여행을 하게끔 만든 모티브 제공의 건축물이다.
정면의 정원수가 보리수나무다.
사실 저게 보리수나무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일단 의심되서 촬영하고 난뒤
알고보니 역시나 보리수나무가 맞았다.
보리수나무는 정말 멋들어지게 생겼다.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입구다.
오!! 타지마할
불가사의 건축물이기도 한 타지마할을 드디어 내가 직접 눈으로 목도할 순간이다.
저 타원형의 입구를 통과하면
타지마할이 나타날것이다.
타지마할이 드디어....
위대한 신의 건축물 타지마할이다.
샤자한 황제가 그의 아내 뭄타즈마할을 위해 만든 무덤이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곡한 기념비가 되었다.
어디서나 네개의 기둥이 보인다.
정확하게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면 뒷부분의 기둥은 보이질 말아야 하지만
정중앙에서 바라봐도 모두 4기둥이 확연히 보인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며 완성하였다.
이 계기로 샤자한 황제는 그의 아들에 의해 아그라 성에 감금되게 된다.
한참을 이리저리 타지마할을 담고 또 담아본다.
마침 하늘 날씨도 너무 푸르고 이상적이어서 타지마할의 최고 풍경을 본듯하다.
행운이 깃든 날씨였다.
비가 오고 흐렸다면 저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불과 1시간 전만 하더라도 소나기가 줄곧 내렸던 아그라다.
무슨 강인지 몰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야무나 강이라 한다.
야무나강에서 보는 일출과 아침 풍경이 멋있어 건기 때 좋은 관광코스가 되기도 한다.
내가 갔을 땐 우기라서 그런지 강이 많이 범람한 상태였다.
실감나지 않았는데 나중 바라나시에 가니 갠지스강은 범람 직전일 정도로 찰랑대고 있었다.
기둥의 위엄이다. 모두 대리석으로 한땀한땀 붙혀 놓은 정성이 가히 세기의 건축물이라 하겠다.
그때 당시 인도인들을 괴롭혔던 타지마할은
후세 인도인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경제력의 힘이 되었다.
투자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것이다.
국고를 탕진한 죄로 감금된 샤자한 황제의 재해석이 필요할거다.
타지마할을 보기위해 전세계인들이
기꺼이 오늘도 내일도 그 악질적 '협의의 요금'을 내고 물밑듯이 들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요금을 내고 들어가도
전혀 후회되지 않을 건축물이다.
듀라의 모습이다.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 딴은 모르겠다만
웅장한 백색의 미가 정말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다.
모스크라고 하는데
이 건축물은 입구와 타지마할 좌.우측 두군데
총 3개가 설치되어 있다.
타지마할에 견주지 못할지라도 그 어떤 건축물에 비해 손색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이다.
타지마할 벽면을 보자
그리고 저 유연한 곡선미는 가히 절세 가인의 풍미마저 느끼게 해준다.
듀라에 붙혀진 대리석의 모습이다.
일일이 깍아내고 그 위로 대리석과 보석등을 박아 넣은 모습이다.
가히 장인의 노력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세세하고 정성들인 장면이다.
이건 양각한 장면이다.
새기고 붙히고 때론 파서 조각한 장식들이 타지마할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있다.
이게 무덤인지
궁전인지 의심될 정도다.
샤자한 황제의 왕비 뭄타즈마할의 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안은 더욱더 화려하다.
바깥에는 없는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는데 '사진촬영금지'라서 내부는 촬영하지 못했다.
바깥에 나와서 다시 찍은 타지마할이다.
어느 방향에서 찍던 모습은 같이 나온다.
사진만 보고서는 어느 방향인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타지마할에서 우측에 있던 건축물이다.
지붕의 무늬를 보라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는가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자라도 아름다움을 저울질 할 수 있는
미적인 감각은 다들 가지고 있을것이다.
결코 쉽게 바라보지 못할 미적인 건축물이다.
나오면서 다시 바라본 타지마할이다.
발걸음이 쉬이 떠나지 않는다.
동남아에서 릴리와디 또는 덕잠빠라 불리는 '풀루메리아'다.
라오스의 국화이기도 한데 동남아에서는 어딜가든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향기가 아주 좋아 스파의 용도로도 많이 활용한다.
실제 비누나 샴푸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데,
사찰에서는 매우 신성시 여겨 많이 심는다고 한다.
동남아 여행에서는 어디가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정원수다. 붉은빛 나는 풀루메리아도 있다.
라오스에서는 이 나무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아그라에 왔다면 타지마할과 더불어 아그라성은 관광 필수 코스다.
이번에 처음으로 사이클릭샤를 이용해봤다.
그리고 다시는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유일하게 인간의 근육과 땀으로 움직이는 이 탈거리는
측은지심에 대한 냉정함이 없다면 탈 자신이 별로 없다
힘이있어 보이지 않는 깡마른 사람이
오르막을 오르기란 쉬운일은 아닐터이다.
바라보는 동안 아니 타는내내 불편한 심정이였다.
팁은 넉넉히 주지못했지만
흥정했던 그 이상으로 지불하였다. 아마 한국인들이라면 다들 그럴것이다.
아니 어쩌면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해줘야 저들도 수입이 있을테니
마음잡고 타주는게 나을지도 모를일이다.
소떼가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여기가 아그라성이다.
1565년 무굴제국 제3대 악바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 자한길, 샤 자한에 의해 보강되어 증측되었다.
외측에 비해서는 견고함이 대조적인 내부의 궁전은 화려함의 극치로 지어져 있다.
샤자한 황제에 의해서 타지마할과 비슷하게 대리석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결국 샤자한 황제는 이곳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내부의 모습이다.
참고로 아그라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이것저것 세세하게 소개할게 많지만
사실 그리 세심한 성격이 아닌탓으로 굵직한 동선만 소개하겠다.
여기에 나온 모습만 전부가 아니다.
타지마할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건 샤자한이 다시 보강했다 한다. 샤자한은 원래 건축물 광이다.
무늬가 참 특이하다.
한 청년이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우리네 다람쥐와는 떼깔이 좀 다르다. 이놈들은 좀 무섭다.
아그라성 내부다.
이곳에서 야무나 강과 타지마할이 보이는 명소다. 대게는 이곳에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친다.
아그라성에서 바라본 타지마할과 야무나강 풍경이다.
아그라성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장소이다.
암베르성이나 아그라성이나
모두 문은 낮고 좁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인도인들이 왜소해서 그랬는지는 모를일이다.
그런데 체격이 그리 작지는 않다.
타지마할이 그림같이 다가온다.
샤자한이 이곳에서 감금되어 뭄타즈마할의 무덤을 보고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사실 무덤 만들자고 국고를 탕진한 참 무식한 인간이기도 하다.
아그라성은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샤자한이 1646년부터 1653년에 세운 대리석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부르고 있다.
완벽한 균형비를 이루고 있는 사원 페르시아의 명각은 완벽한 진주에 비유되고 있으며,
광할한 사원 뜰 중앙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다라고......책에 소개되어 있다.
탐론 랜즈로 타지마할을 쭈욱 댕겨봤다.
뭐라고 막 적어놨더라
사실 영어라서 뭔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좁은 방이 바로 샤자한 황제가 감금된 방이란다.
창 하나 있는 이 작은방은 2평도 채 안되어보이는 좁은 장소다.
앵무새를 야생으로 볼 수 있다니..
하기사 나중에 사라와트에 가니 야생 공작도 만났다.
다 걸어나온 아그라성이다.
꼼꼼하게 둘러보면 제법 시간 보낼게 많고 볼것도 많다.
성질급한 한국 거시기라면 대충 훑어보고 나오자...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