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와 망구의 묻지마 관광은 인도에서도 계속된다 -8
우리에게는 시계가 없다.
그냥, 아침에 눈떠서 해가 솟아있으면 날이 밝았구나...짐작하고 밥을 먹으러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 잘못 짚었다.
씻고 나가보니 아침 7시. -_-;;
문을 연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유일하게 문을 연 짜이집에서 기름범벅인 오믈렛과
속을 히떡 디집어주는 들쩍지근한 짜이를 마신다.
삼천포는 변비환자. -_-;;
가뜩이나 변비에 시달리고, 소화력도 약한데다 낯선 곳에 가면 온몸의 장기들이 초긴장들을 하는지
늘상 소화불량, 만성변비, 속 더부룩함, 가스팽창(심지어 바지가 안 맞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배 -_-)
등등의 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그런 뱃속에, 일주일 째 볼일을 못 본 뱃속에 아침부터 그 느글느글한 기름기를 집어넣으려니
괴로웠다. (배설을 못하면, 배도 안 고파야 할 것 같은데,변비와는 상관없이 배는 꼬박꼬박 고프다.
정말, 불가사의하다.-_-)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자두, 오이, 사과, 몽키 바나나 등등을 샀다.
그 많은 양의 과일과 야채를 억지로 억지로 다 먹고서야 간신히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_-'
자두와 오이를 와구와구 먹어주고, 잠시 후 화장실로 쪼르르~
바나나와 사과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변기에 얌전하게 앉아서 기다리기.(뭘 기다려?ㅋㅋ)
망구는 무심코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너무나 경건한 자세로 변기에 앉아서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먹고 있던 나의 조신한 자태에 홀딱 반해서 넋을 잃고 말았다. ^^;
내가 눈이 이상해진건가...
후광이 보였다.
저기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 남자, 친구와 둘이 얘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걸어오는
키가 아주 큰 낯선 남자.
그 남자가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보았다.
깎아논 밤톨마냥 동그랗고 예쁜 그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찬란한 후광을...
천포 : 망구야~ 저기..저 ..남자 좀 바바.....
망구 : 어머! 멋있네...
천포 : 그치그치...내 눈이 미친게 아니었어..와우~ 잘 생겼다. 멋지다!
망구 : 뭐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천포 : 너 안보여? 저 후광? 저 머리 뒤로 비치는 저 찬란한 빛이...
망구 : 뭔 후광? 대머리라서 번쩍거리는 거 아냐?? 캬캬..
천포 : -_-;; 대머리라니..ㅠ.ㅠ;; 걍, 빡빡 밀은 머리지....
점점 우리쪽으로 가까이 걸어오는 남자는 아주 큰 키에,
텔레토비 동산 위로 떠오르는 둥그런 햇님마냥 맨질맨질한 머리통을
더더욱 빛나게 해주는 아주 짧은 헤어스타일에,
민소매 티셔츠 밖으로 보이는 아주 길쭉하고 조금 가느다란 팔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나는 남자의 다리길이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팔은 반드시 길어야한다. 나의 이상형의 첫번째 조건, 길고 우아한 팔!)
천포 : (눈이 풀렸다.) 망구야~ 옹야옹야...나 홀딱 반했나봐...가슴이 벌렁벌렁~
심장이 미친녀 널뛰듯 쿵덕쿵덕해...
망구 : 캬캬...너 눈이 나빠서 그런 거 아냐???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천포 : 나 렌즈 똑바로 꼈어!!!!! 제대로 보고 있단 말이야!!!!!
천포가 렌즈도 안끼고 안경도 안쓰고 다니던 시절, 눈 뜬 장님 시절,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다 잘생겼다며 호들갑을 떨던 시절, 망구는 늘 그런 천포를 비웃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완벽한 천포의 이상형을 발견한 순간, 천포는 분명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있으며 덕분에 시력 1.0 이다.
몇년 전 라오스 여행 중.
지난밤에 라오비어를 10병이나 마시고 기절해서 잠든 천포.
술이 하나도 안 깬 상태로 간신히 일어나 욕실까지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서,
샤워기 봉을 부여잡고 봉춤을 추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_-'' 거리며
뇌쇄적인 샤워를 마치고 렌즈를 끼는데 , 렌즈 한 짝을 잃어버린거다.
2.0의 시력을 자랑하시는, 망구를 불러 욕실 바닥부터 변기뚜껑까지 샅샅이 훑었건만
결국 실패. 어쩔 수 없이 한 쪽 눈에만 렌즈를 낀 상태로 하루종일 있었는데
밤에,씻으려고 렌즈를 빼는데 빼고 나서도 느낌이 이상하다.
거울로 자세히 보니, 분명 렌즈를 뺐는데, 눈동자에는 렌즈가 껴 있는거다.-_-;;
나는 그때, 내 눈이 양파껍질인가 싶었다. 까도까도 또 나오는...ㅠ.ㅠ
알고보니, 술주정뱅이 천포양은 술기운에 너무 정신이 나간 상태라 오른쪽 눈에
렌즈를 끼고 , 또다시 그 눈위에 렌즈를 또 끼고 -_-;; 그러니 왼쪽 렌즈가 없지..
그것도 모르고 렌즈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며 망구와 함께 욕실조사에 들어갔던것.
그저, 허무개그라고 위안삼아야지요~ 헐헐~
암튼, 천포가 무려 3년여만에 발견한 이상형의 남자는 그렇게 우리곁을 스쳐지나가고..
천포는 그저 아쉬움에 먼 하늘만 바라보며 눈물 한방울을 쪼로록 흘려댄다.
탬플에 다녀오는 길에 지난밤 비어샵 앞에서 마주쳤던 티벳탄들을 우연히 만났다.
남자 둘, 여자 하나 요렇게 셋이서 맥주를 사러왔었던 그들은 비어 파티를 하는 중이라고
자기네 집에 놀러오라고 했었는데, 겁 많고 소심한 (과연?) 우리는 거절했었다.
그들이 반가워하며 차나 한 잔 하자길래 함께 루프탑 카페에 갔다.
함께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그들 중 23살짜리 총각이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우리는 애국심이 불끈불끈 솟는 마음으로 열성적으로 그에게 한국말을 가르쳤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열의와는 달리 학생놈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듯..-_-;;
우리의 제자가 주로 알고 싶어했던 말들은 ...
"아가씨, 아름다워요"
"오늘밤에 만나요"
"같이 밥 먹을래요?"
"나는 한국여자 사랑해요"
"나의 여자친구는 한국 사람입니다"
"몸매가 예뻐요"
"차 마실래? 술 마실래?" 뭐, 이런 정도의 고급(?) 문장.
그러나, 그런 작업 멘트를 노트에 받아 적어가며 열심히 외우고 또 외우는 그의 열정에
우리는 그저 혀만 내두를 뿐.
이제 그는 우리에게 배운 말을 우리에게 써먹기까지 한다.
그러나, 급히 배운 말은 체하는 법 -_-;; 이런 말이 있었냐고 묻지마시라!
이젠 숙소로 간다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영어도 티벳말도 아닌 한국어로, 우리에게 배운대로 또박또박.
티벳남 : 안녕! 내일 만나요!
우리 : 안녕~~!
티벳남 : 아가씨~ 몸매차 마실래?
우리 : -_-;;;
우리는 깔깔깔깔 웃어대며 계단을 내려왔다.
너무나 열심히 배웠던 탓에 뒤죽박죽 섞여버린 한국어여~!ㅠ,ㅠ
그날 밤, 우리는 언제나처럼 이른 저녁을 먹고 해지기 전에 집에 가려고 빨리 걷고 있었다.
지나치던 누군가가 나에게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길래 나도 무심코 같이 인사했다.
인사를 하고 보니 리끼와 까린 (지난 여행기에 쓴 우리를 찰거머리처럼 쫓아다니던 위험한 애들)
사람 얼굴도 안 보고 인사부터 덥석 한 내 눈을 그저 찔러버리고 싶을 뿐..ㅋㅋ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거리에 사람은 많았지만 아는 사람이라고는 망구와 나 둘 뿐.
우리는 너무 무서워져서 걸음을 더 빨리했다.
거의 나는듯이 빠른 걸음으로 가는 우리 뒤를 집요하게 쫓아오며 "알러뷰"를 속삭이는 그들.
막 버스 스탠드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심해요! 너무 위험한 남자들이에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내게 말을 건 남자는 낮에 봤던 밤톨같은 나의 이상형이었다.
올레~!!!!!!!!!!!!!!!!!!!!!!!!!!!!!!!!!!!!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건 순간,불량배고 위험이고 나발이고,
내 마음은너울너울 춤을 추며 밤하는 위로 두둥실 날아올라
불꽃놀이처럼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서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는 친구와 잠시 얘기를 주고받더니 우리에게 숙소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뻘쭘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리끼와 까린을
싸늘한 눈길로 한 번 스윽 쳐다보더니 걷기 시작했다.
그 : 쟤네들, 이 동네에서 유명한 애들이에요. 정말 위험해요.
나 : 네, 고마워요
그 : 숙소까지 바래다줄테니까 문 꼭 잠그고 있어요. 쟤네들 집요한 애들이니까 또 그럴지도 몰라요.
나 : 네..네....
나는 그저 네..네....만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조신한 여인, 나는 수줍은 여인, 나는 애처로운 여인..나란 여자~ 후후훗...-_-''
그 : 말이 참 없으시네요. 내성적이신가봐요.
나 : 네.......후후훗.....-_-'
그 : 내 이름은 티나에요. 나는 26살이고...어쩌고..(자기소개중)
나 : 저기 잠깐만요..
그 : 왜요? 그들이 아직도 쫓아와요???
나 : 아니..그게 아니라..(주저주저) 저어기...좀 잠깐 들렀다가요....
그 : 어디요?
나의 수줍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비어샵 -_-''
조신하고, 수줍고, 얌전한 여인 천포는 그를 세워두고 비어샵에서 맥주 3병을 사서 들고 온다.
사랑도 중요하고 이상형도 중요하지만 매일밤 마시는 성수와도 같은
천포의 맥주 두병, 망구의 맥주 한병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와 그의 친구는 우리를 숙소 앞까지 바래다주고 문 꼭꼭 잠그고 자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그들이 가고 난 몇 분 후 우리 테라스 앞까지 쫓아와 기웃기웃대는 리끼와 까린.
우리는 그들이 올라간 계단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티나~~~!!!!!!!! 도와줘요!!!!!!!!!!!!!!!"
우리가 소리치자마자 리끼와 까린은 순식간에 도망쳐버렸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아껴 마셨다.
그날따라 밤하늘의 달도 환하게 떴다.
두둥실 떠오른 그달 너머로 맨질맨질한 그의 머리통이 겹쳐진다.
천포 : 망구야, 내 눈이 노안이 왔나봐..저 달이 그이 머리통으로 보여.
망구 : 대머리라서 그런거 아냐?
천포 : (버럭) 대머리라니??? 그냥 민머리라구! 깔끔한 머리라고 표현해줘!!!
망구 : 에휴~ 니가 병이 났구나..큰 병이 났어...캬캬캬...
천포 : 아아~ 쥬뗌무~그이는 저 베르사이유 궁에 홀로 핀 아름다운 한떨기 장미~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그대 눈길은 나를 사로잡는 사랑의 묘약~ 아아아~~~쥬뗌무~
망구 : -_-;;
둥근 달이 그의 얼굴인지, 그의 얼굴이 달님같이 환한건지...
그날밤 내 꿈속엔 달님같이 환한 그의 미소가 두둥실 떠올라
나는 밤새도록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공주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꼬대를 연신 해대고 있었다.
"대머리 아니야~!!! 그냥 짧게 깎은 머리란 말이야~! 대머리 아냐~~~~"
* 여행기를 쓰면서, 그때 기억을 더듬어가며 추억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그리워지네요, 가을이라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