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 인도 여행기(3)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2009.2.11 (수) [제15일]<?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침에는 민속박물관인 바르띠야 록 깔라 박물관을 둘러보고(35Rs), 오토릭샤편으로 쉴프그람(SHILPGRAM : 라자스탄 등 인도 서부 각 주(州)의 문화와 풍습, 가옥 등을 재현해 놓은 일종의 민속촌: 25Rs)으로 이동했다. 일반 배낭여행자의 경우 인도 전통 공연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데 야외공연장에서는 입장객을 위해 한바탕 신명나는 잔치를 별여 주어, 이를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었다. 시내로 되돌아와서는 반팔 T-SHIRTS 를 쇼핑하고(3장 250Rs), 피촐라 호숫가 카페에서 오렌지 쥬스와 라씨(LASSI : 인도스타일 마시는 요구르트)를 마시며 나른한 오후의 망중한을 즐겼다.
우다이푸르 숙소는 POONAM HAVELI GUEST HOUSE 였는데, 영어간판을 힌두어 스타일로 꾸며 놓은 것이 상당히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으로 여겨졌다. [HAVELI 는 귀족/부호들이 지은 화려한 개인저택] 해질 무렵이 되자 시티팰리스 등 호숫가 건물들이 긴 그림자를 호수에 드리운다. 수면에 반사되는 황금빛 너울의 아른거림이 왜 우다이푸르가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인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밤9시30분. 인도에서 처음 타 보는 야간버스(조드푸르 행)의 침대칸이다. 1층은 좌석, 2층은 침대칸인데 좁은 캡슐처럼 한 사람이 구겨 누으면 딱 맞는 크기이다. [키 크고, 덩치 큰 외국인은 상당히 힘들겠다]
2009.2.12 (목) [제16일]
차창 밖 보름달을 보며, 어두운 라자스탄 시골길을 지나 새벽 4시30분 블루시티(BLUE CITY) 조드푸르(JODHPUR)에 도착했다.
마르와르(MARWAR) 왕조의 수도로 세워진, 중세풍의 고도(古都)이자 타르 사막의 관문인 조드푸르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메헤랑가르(MEHARANGAR) 성이다.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인 사다르 바자르(SADAR BAZAAR)를 거쳐, 바위산 위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높이 121M의 메헤랑가르 성으로 올라가니(입장료 250Rs) 평평한 조드푸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로하 폴(LOHA POLE)을 지나면 빨간 바탕에 은색 손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1843년에 마하라자 만 싱(MAN SINGH)의 장례식에 15명이나 되는 그의 아내들이 사띠(SATI : 남편을 따라 죽은 풍습)를 한 흔적이라고 한다.
인도판 열녀문! 사띠에 대해서는 지금도 상당한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데, 사띠를 행한 여성은 여신으로 승격돼 사원이 지어지고 이를 통해 막대한 기부금이 들어오기에 가족들은 부(富)를 챙기기 위해 자의적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조드푸르 최고의 명물은 샤프론 향과 색을 가미한 마카니아 라씨(MAKANIA LASSI)인데 라씨전문점 아그라 스위츠에서 17루피에 맛을 보았다. 아울러 사다르 시장 북문 앞에는 몇십년째 오믈렛만 팔고 있는 영감님의 노점(아말렛 숍[AMALATE SHOP], PLAIN OMELETTE 15루피)이 있는데 이 집은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2009.2.13 (금) [제17일]
버스편 (아침 8시30분 출발, 오후 2시 도착)으로 골든시티(GOLDEN CITY) 이자 낙타사파리(CAMEL SAFARI)의 원조도시인 자이살메르(JAISALMER)로 이동했다. 1156년에 지어진 자이살메르 성은 라자스탄 주에 남아 있는 성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자 해발 76M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고, 지금도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성이기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생활인으로서의 인도인들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는 특이하고 환상적인 곳이다.
성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SUNSET POINT 에서 낭만적인 석양을 감상하며 카메라에 사막도시의 황금빛 노을과 어울어지는 황량함도 함께 담았다.
오늘의 숙소인 파라다이스 호텔은 450년된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는데 손님의 천국이 아니라, 참새들의 천국이다. 수많은 참새떼들 지저귐은 차라리 심각한 소음에 가깝다. 다음날 아침 6시도 되지 않았는데도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성밖으로 밀어 내고야 말았다.
2009.2.14 (토) [제18일]
타르사막은 흔히 알고 있는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아니다. 모래언덕(SAND DUNE)과 함께 곳곳에 작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그리 황량하지 만은 않고, 척박하지만 유목민 등이 살고 있는 사람 사는 곳이다.
아침 10시. 1박 2일 낙타 사파리(CAMEL SAFARI)를 시작했다. 승용차로 일정 지점까지 사막을 가로 질러 가니, 낙타몰이꾼(어른과 아이: 2명)이 우리 일행(3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3시간 정도 낙타 타고, 중식후 1시간 정도 쉬고, 또 2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사막을 나아가니 낙타의 흔들거림으로 인해 사타구니가 다 아프다. 오늘 야영할 모래언덕에 도착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어느덧 뉘엇뉘엇 해가 지고, 짜이(CHAI)[인도를 대표하는 음료, 인도인들은 눈 뜨면 짜이부터 마시고, 수시로 마신다] 1잔으로 목을 축이라며, 낙타몰이꾼 마누(25세)가 나를 부른다.
그의 낙타 이름만 ‘마이클 잭슨’으로 독특할 뿐, 낙타 마다 다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 이름은 잊어 버리고 말았다.
모래언덕에 집시 같은 아이들이 나타나서는 한바탕 구걸을 하다가 돌아갔다. 이어서 맥주/음료수 장수도 나타나 맥주를 사란다. 1병에 100루피면 비싸지 않다. 사막에서 맥주도 사 먹게 되다니 진정한 오지에서의 사막야영을 꿈꾸던 것이 산산조각이 나고, 멀지 않은 모래언덕에서는 한국 단체여행객의 고성방가가 이어졌다. 상업화되고 번잡스러운 모래언덕! 한술 더 떠서 한 마리의 개가 내 주위를 맴돌며 거지같이 음식을 구걸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우리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미리 준비한 위스키 1병을 통 채 마시는데도 술도 취하지도 않는다. 쏟아지는 별을 맞으며 침상에 누웠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난생 처음으로 많은 별들을 선명하게 보는 것 같다. 별을 세며 보다가 지쳐 언제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녘이 되니 매우 춥다. 벌써 모포와 침낭은 축축하게 이슬에 다 젖었다. 따뜻한 한 잔의 짜이가 몹시도 그립다.
2009.2.15 (일) [제19일]
아침 8시. 낙타를 타고 2시간 동안 사막을 가로 질러 되돌아가니 PICK-UP POINT가 나타난다. 이어 우리를 태워갈 지프차가 도착, 자이살메르 성으로 귀환했다. 숙소의 배려로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모처럼 한국 음식을 포식하며, 오후 4시 델리행 열차 탑승시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자이살메르 역에 미리 도착 하여 열차를 기다리는데 예정시간보다 훨씬 이른 3시30분에 열차가 들어온다. 인도에서는 가끔은 예정보다 일찍 열차가 떠난다고 들었기에 이게 왠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열차 청소후 떠난다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오후 5시가 되어도 출발하지 않는다. 청소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고, 승객들은 플랫폼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세월아! 네월아! 이 사람들 시간관념이 전혀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법석이 나고도 남고, 환불이니 보상이니 복잡할 것을 여기서는 단지 ‘NO PROBLEM’ 한마디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지나친다.
오후 5시15분. 길고 긴 델리행 열차 여정이 시작되었다. 철로변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저녁무렵에도 열차는 여전히 타르사막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하염없이 달렸다.
2009.2.16 (월) [제20일]
정오가 가까운 11시45분. 전날 자이살메르를 출발한 기차는 무려 18시간30분 소요되어 올드 델리(OLD DELHI)역에 도착했다. 머리털 나고 가장 긴 기차여행을 경험한 셈이다. 만 하루동안 거의 먹지도 못하고 닭장 같은 좁은 객실에서 시간을 때웠으니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숙소가 있는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 간지까지는 지하철(METRO)로 이동(6Rs)했는데, 짐 검사를 하는 등 지하철 타기도 쉽지 않다. 아마 테러 대비 때문인 것 같지만 여행객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검문 검색이었다.
[탑승전 보안검색 필수, 역 구내 및 열차내 사진 촬영 엄금]
현대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뉴 델리(NEW DELHI)는 1911년 영국에 의해 조성된 계획도시인데 대통령 궁과 INDIA GATE 가 있는 ‘왕의 길’ 라즈 파트(RAJ PATH),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 등은 도시설계의 백미를 보여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꾸뜹 미나르(QUTB MINAR) 유적군[오토릭샤 100Rs, 입장료 250Rs]중 특히 이슬람의 힘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72M의 승전 탑 ‘꾸뜹 미나르’와 인도 최초의 모스크인 ‘쿠와트 알(QUWWAT_UL) 모스크 등이 폐허가 주는 묘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오파츠(OOPATTS: Out Of Place Artifacts 의 약자)는 현재의 과학으로도 해명이 불가한 고대 출토물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도 이런 오파츠가 있었다. 모스크 안뜰에 있는 높이 7M의 철기둥인데, 4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쇠기둥 철의 함량이 99.99%라는 사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1천5백여년간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고 서있는 이 철기둥에 어떠한 녹도 슬지 않는다는 사실! 현대과학기술로도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낮보다는 밤에 더 돋보이는 INDIA GATE 는 높이 42M의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군인들을 위한 위령탑이다. 은은한 조명과 조형물이 어우러져 델리 최고의 야경을 연출하는 가운데 데이트를 즐기는 등 수많은 현지인들이 그들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2009.2.17 (화) [제21일]
올드 델리는 200여년간 인도대륙을 호령했던 무굴제국의 옛 수도이다. 무굴의 도성이었던 붉은 성(RED FORT: = LAL QUILA)는 아그라 성을 자세히 보았기에 내부를 방문하지 않고 외부에서만 훑어 보았고,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MOSQUE)인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는 타즈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의 최후 걸작품인데 높이가 무려 40M나 되는 미나렛이란 뾰족탑 꼭대기에 오르면 올드델리 시내가 샅샅이 내려다 보일 정도라고 한다. 현재는 도깨비시장이 있는 찬드니 촉(CHANDNI CHOWK)은 혼잡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구역에 따라 은/꽃/향신료 시장 등으로 나뉘어 있는 이곳은 수많은 인파와 상인, 사이클릭샤 등이 여행객의 혼을 쏙 빼놓을 지경이다.
오후에는 티베탄 꼴로니(TIBETAN COLONY)를 방문했는데, 이곳은 중국에서 망명한 티베트인들의 보금자리로서 300여 가구의 실향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마을 어디에나 티베트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데, 한국 음식과 맛이 유사한 티베트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인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티베트 식으로 때우고 말았다.
바하이(BAHAI)교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로 시작된 신흥 종교로서, 나의 배낭여행 마지막 여정으로 뉴델리에 있는 바하이 사원(1986년 완공), 일명 연꽃(LOTUS) 사원을 방문했다. 27개의 꽃잎을 형상화해 신비감을 더한 이 곳은 2006년3월 내가 여행했었던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의 우아한 자태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면세점은 정말 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구멍가게 수준이다. 지난 3주간 여행해 왔던 인도의 모습과 이곳 면세점의 초라한 모습이 겹치면서 또 다른 인도여행을 계획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2009.2.18 (수) [제22일]
자정을 지난 0시5분. 인도항공 AI 853편은 4시간여의 비행 끝에 새벽 5시30분 태국 방콕(BANGKOK)에 나를 안착시켰다. [한국과의 시차는 2시간]
2009.2.18~2.23 [6일간 방콕 STOP OVER] :
자세한 여행기는 ‘주마간산(走馬看山) 태국 여행기’ 참조.
2009.2.24 (화) [제28일]
전날 밤 10시40분. 태국 방콕 쑤완나품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KE 652편은 5시간여 비행 끝에 오전 5시5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머지않은 장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인도를 기약하며 이번 배낭여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EPILOGUE(終)
류시화 시인은 인도 라자스탄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쿠리’ 라는 외딴 마을의 움막집과 같은 호텔(?)에서 부서지기 직전인 나무침대에 누워 천장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별과 하나 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인도 등지 여행기와 일화를 모은 책 제목을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라고 명명했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골 토담집에서 바라보는 하늘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해보아야 하겠다. ‘하늘 호수’는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도처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 하늘이 바로 그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배낭여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 인도의 유명, 중심 관광지 위주이었기에 수많은 호객꾼과 상인, 사기꾼, 거지들을 만났던 것이 아마 내가 만난 인도 사람의 거의 다 일 것이다.
단지 이것만을 보고 인도는 ‘거지와 호객꾼. 협잡꾼의 나라, 소음과 빈곤의 나라, 거짓말과 도덕불감증의 나라, 환경오염의 나라’ 라는 단편적인 선입견에 휘말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인도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 인도인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지역을 여행하느냐에 따라 인도인 11억명중 만나게 되는 사람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인도를 어떻게 보느냐는 초점(FOCUS), 개념(CONCEPT)의 차이 이다. 인도! 그곳은 인간의 숲이다.
나무를 건드리지 않고 숲을 빠져 나오지 못하듯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인도를 여행하기란 불가능하다.
3주동안 내가 보고, 느낀 인도는 ‘명상, 사두, 성자, 만트라, 철학, 종교’ 등 고매한 인도가 아니었다. 그저 ‘NO PROBLEM’ 으로 포장된 여행하기에 아주 불편한 정말로 문제가 많은 ‘MANY PROBLEMS’ 의 나라였었다.
다음 배낭여행은 초점을 종교와 철학 등 정신세계로 맞추면 보다 색다른 인도와 인도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 에서 시인 류시화는 그랬다.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으면,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라고….
세계일주를 꿈꾸는 나의 배낭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머무르면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없고, 떠남이 길면 그것 또한 다른 일상이 되어 버린다. 머무름과 떠남이 서로 잘 교차되는 그런 삶을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꿈은 이루어진다!
[자세한 여행사진은 http://blog.naver.com/ldg587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