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녀 삼천포의 나홀로 네팔 여행ㅡ18
(소소한 이야기)
우리 잉여 멤버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함께 모여 술을 마실때마다 순서를 정해서 번갈아가며
각자의 폰에 저장된 자신만의 훼이보릿 송을 틀어놓고 들으며
저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척 잘난척을 해댔다. ㅋㅋㅋ개뿔, 술꾼들 주제에 꼴값은ㅋㅋ
미미를 통해 나는 김일두라는 가수의 음울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고,
G군이 좋아하는 라디와 자이언티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재즈 음악도 많이 들었다.
미미가 추천해주는 노래들은 전부 다 내 취향을 저격했다.
그녀와 내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였다.
난 사실 팝음악엔 문외한이라,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사실 처음엔 유명한 와인 가게인 줄 알았을 정도로 잘 몰랐다.
어느 새벽에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 무심코 듣게 된 You know I'm no good 이라는
노래에 홀딱 빠지게 되었고, 그후로 그녀의 노래라면 닥치고 전부 다 들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내가 네팔에서 특히 자주 들었던 노래는
슈가볼의 오늘밤, 언니네 이발관의 나를 잊었나요, 클래지콰이의 애수, 주윤하의 지나간 얘기 등등..
우리는 그렇게 사이 좋게 순번대로 음악을 선곡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남의 노래는 안들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로지 내 순서가 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가
내 앞사람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내 노래 고르느라 바빠.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마치 노래방에서 남의 노래 안듣고 노래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꼴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ㅋㅋ
동동이는 파키스탄에서 샀다는 휴대용 오디오가 있었는데 콜라캔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았다.
usb를 연결하면 노래가 나오는데 음량이 어마어마해서 온동네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우리의 노래 배틀이 시작되면 어디에선가 급하게 뛰어오며
"나도 참가!!!!!!"를 외치던 동동이의 손에는 항상 그 콜라캔이 들려있었다.
그 콜라캔에서 나오는 노래라고는 달랑 몇 곡이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뭐라 씨부리는지 1도 알아들을 수 없는 파키스탄 노래였고,
나머지 두 곡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겨울의 찻집이었다.
노래 배틀때마다 그 똑같은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그렇게 지겨울수가 없어.ㅋㅋㅋㅋㅋㅋ
나중엔 조용필 목소리만 들어도 싫증이 날 정도로.ㅋㅋㅋㅋㅋ
특히 G군이 제일 흥분하며 화를 냈다.
정말 동동이 형때문에 용필이 형까지 싫어질 정도라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우리는 진짜 콜라캔과 바꿔놓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를 조용필과 펩시 콜라의 안티로 바꿔 놓은 동동이였지만
사실 그는 정말 닮고 싶은 여행자였다.
여행자로서의 마인드에서부터 여행하는 방식까지 전부 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현지에 철저히 융화되는 천상 여행자였다.
현지인들을 대하는 가식 없고 정겨운 태도, 누구에게나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오픈 마인드,
어린아이와 동물들을 대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눈길과 손길까지
모든게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여행 선배였다.
내가 만났던 여행자 중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가장 멋진 그런 사람이었다.
(히히, 고소 당할까봐 억지 칭찬하려니 힘들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날씨 좋은 오후.
페와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일 잔 때리다가 G군을 만났다.
G군은 레이크 사이드를 벗어나 댐 사이드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런 G군을 따라다니며 가이드를 자처하다가
계속 걷다 보니 티벳탄 빌리지까지 가게 되었다.
G군과 나의 공통점은 걷기를 좋아한다는 것과 24시간 다이어트 중이라는것(입으로만.ㅋㅋㅋ)
G군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참 많이 했는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이 아이는 참 속이 깊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불량 식품같은 아이스케키를 사먹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깜놀.
개맛있어. 라고 했더니 G군이 깜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예쁜 입에서 개맛있어가 뭐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응? 개맛있어, 개재밌어, 개웃겨 뭐 그런 말 몰라?
난 처음 들어봐요, 아 웃겨.
엥? 누구나 다 쓰는 말인데, 인터넷에서도 많이 쓰고.
난 처음인데..
너네집 PC 통신 개통 안했니? 천리안, 하이텔이 요즘 대유행인데..ㅋㅋㅋㅋㅋㅋ
우리는 티벳탄 빌리지에 있는 작은 템플에 갔다.
예전에 젠과 함께 갔었던 곳이다.
허리가 구부정하신 노스님이 우리를 반겨주시며 차를 대접해주셨다.
우리는 템플의 마당에 털썩 주저 앉아서 스님과 함께 차를 마셨다.
스님과 우리는 각자 나라의 말로 대화를 했고, 그래도 제법 길게 얘기를 했다.
스님은 계속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주셨고
우리는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누나 그거 알아요?
뭐?
누나 처음 봤을 때 동동이 형이랑 미미 누나 포스에 가려서 상대적으로 되게 멀쩡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런데 보다보니까 누나가 제일 이상한 사람같아요.
호호호호호, 무슨 그런 말을. 그럼 내가 돌아이란 말이야?
누나는 여성스럽고 상냥하니까 돌아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요.
도라희라면 몰라도...
참, 고오맙다. 이 (개)색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희자 돌림 남매?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원 쁘라스 원, 맥간 이야기)
맥간에서 살때.
망구는 몸살에 걸려 누워 있고, 나는 할일이 없어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남자 사람 진초를 만났다.
평소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반가운 척을 하더니
오늘밤에 시간 있으면 자기 친구의 결혼식에 오라고 초대를 했다.
티벳 남자와 일본 여자가 결혼을 한다고 조촐한 파티가 열릴 예정이니
와서 축하도 해주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라고.....
사실 나는 진초와도 별로 친분도 없고, 더군다나 신랑 산부와는 일면식도 없는데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어도 되나 싶어서 좀 망설였는데
축하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거라고,
꼭 참석해달라고 해서 그날밤 진초를 만나서 함께 결혼식장으로 갔다.
그런데 조촐한 결혼식과 파티라고 하더니 막상 가보니
뜻밖에도 맥간에서 제일 큰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결혼식 파티였다.
둥그런 연회 테이블이 곳곳에 놓여진 넓은 연회장안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로 북적북적 대고 있었고
그중에 내가 아는 얼굴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진초는 신랑의 들러리를 서느라 바빠서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넓디넓은 연회장에 홀로 남겨진 나는 몹시도 뻘쭘하게 서 있다가
그냥 아무 테이블에나 슬며시 앉았다.
티벳 전통 의상을 입은 신랑은 멋지고 늠름해보였고,
역시 티벳 전통 의상을 입은 신부는 오랜 맥간살이 때문인지
까맣게 탄 얼굴이 마치 티벳 여자처럼 보였다.
두사람은 무척이나 행복해보였고 하객들은 줄을 서서 부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축복의 하얀 스카프를 그들의 목에 걸어주었다.
나도 급조해서 사온 하얀 스카프를 신랑의 목에 걸어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일본 신부와도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했는데, 두사람이 너무나 잘 어울려보여서
그 분위기가 무척이나 행복해보여서 잠시 눈시울이 시큰해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친정 엄마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모노를 입고 신부 곁에 서있는 엄마도 웃고 계신데
난 왜 생판 모르는 남의 결혼식에서 눈물 바람하고 난리ㅋㅋㅋ
진초는 신랑의 들러리를 서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 와중에도 나를 신경 써주느라 또 바빴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심심하겠다고 자기 친구들이 앉은 테이블에 함께 앉으라고 권해줘서
히히. 하고 앉으려고 보니 마침 그 테이블에
다들 인상이 허덜덜한 사람들만 잔뜩 있어서 무서워서 뒷걸음질쳐서 피하다가
(저 자리는 테이블이 아니라 묫자리다. 라는 경고음이 삐용삐용.ㅋㅋㅋ)
그 테이블과 되도록이면 떨어져있는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앉고 보니 우리 테이블의 구성원들은 생뚱맞음 그 자체,
다들 멀뚱히 앉아 침묵의 사일런스가 흐르는 우리 테이블은 어색어색 열매만 잔뜩.
세계로 가는 장학퀴즈라고 한글로 써 있는 두꺼운 패딩을 입은 티벳 남자.
엘라스틴 한 듯 결이 고운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티벳 남자 2.
두꺼운 꺼벙이 안경을 쓴 웬지 페이트라는 여친이 있을 것만 같은 덕후삘이 나는 티벳 남자3.
떡 벌어진 어깨에 예쁘장한 얼굴의 서양 여자.
민망할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서양 아저씨.
그리고 (제일 멀쩡한)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시후 웨이터들이 코스 요리를 차례차례 들고나오기 시작했고
어색어색 열매를 잔뜩 먹어 헛배만 불렀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코스 요리를 차례대로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음식은 전부 맛깔스럽고 나름 고급졌다.
그리고 잠시후 술도 함께 나오기 시작해서 나는 맥주를 마셨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니
어색어색했던 테이블의 분위기가 조금씩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합석한 티벳탄들이 저마다 가방속에서 몰래(?) 숨겨온 독한 양주들을 꺼내놓고
술잔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독주에 약한 나는 사양하면서 겨우 팔십두잔만 마셨다.
농담이예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맥덕^^)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서양 여자와 대화를 했는데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두 유 노 히딩크? 박지성? 같은 식상한 질문을 시작으로 말을 트게 된 우리.ㅋㅋㅋ
오늘의 주인공인 일본 신부 얘기로 꽃을 피우다가 대화의 주제는 점점 일본으로 흐르고,
일본 신부는 예쁜데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싫어!!! 라고 했더니
어머!!! 나도 나도!!! 나도 일본이 싫어!!!. 라고 호들갑을 떨며 갑자기 내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절친이 되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절친 되기 참 쉽죠 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친해진 우리를 보더니 서양 아저씨도 우리의 대화에 슬슬 끼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그 아저씨도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걸걸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배꼽 빠지는 깔깔 유모어를 날리는데,
예를 들자면 한국의 부장님 개그, 내지는 아재 개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ㅋㅋㅋ
대충 한국식으로 예을 들어 바꿔보자면 뭐 대충 이런 느낌~?
라디오 작가가 제일 싫어하는 가수는 누구일까요?
글쎄요..글쎄요...
네!!! 정답은 노사연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 배꼽이 다 달아나셨죠?
왜냐하면 노사연은 사연이 없다, 즉 사연이 노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연을 구성해서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작가들이 젤 기피하는 연예인이죠, 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재치있게 웃기죠?
ㅡ,.ㅡ;;; 하...하....하.....(설명충 껒여.ㅜ.ㅜ)
착하고 마음 여린 나는 그래도 하하. 하고 웃어준다.
그러나 같은 나라 사람인 그녀는 얄짤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내 귀에다 대고 못들은 척 하라고, 무시하라고.ㅋㅋㅋㅋㅋㅋ
아저씨는 내가 (억지로) 웃어드리자 비슷한 시리즈의 유머를 몇 개 더 날린다.
이러다가는 최불암 시리즈까지 나올까봐 조마조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옆옆자리의 덕후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갑자기 춤을 추다가
술병을 들어 마이크처럼 입에다 대고 립씽크를 열창하며 머리를 털어댄다.
그리고는 갑자기 마이크(=술병)를 내게 떠넘기더니 내 등뒤에서
내 의자를 잡고 끈적끈적한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하는데
우웨에에엑~
섹시 댄스 안본 눈 삽니다!!!!ㅋㅋㅋㅋ
김간호사님, 여기예요, 여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위기가 이상하게 과열되자 마치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듯이
세계로 가는 장학 퀴즈라고 써있는 점퍼를 입은 티벳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테이블을 쾅! 하고 치더니 민요처럼 들리는 티벳 노래를 선창하고
그러자 연회장안의 모든 하객들이 전부 따라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는 다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일어나더니
마치 으쌰으쌰 하는것처럼 웨이브를 타면서 단체로 군무를 춘다.
젊은 티벳 남자들의 흥에 겨운 퍼포먼스에 연세가 지긋한 노인 분들은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 하시고
나같은 외국인 하객들은 전부 다 입을 벌리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나는 그 연회장에 앉아서 처음의 그 뻘쭘했던 기분은 잊고
결혼식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밤, 실컷 먹고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동경하던 사람의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을 실현하기 위해 멀리 떠나게 되었다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소식을 듣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하늘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커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테지, 아마도...
그런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한 스님과 마주쳤다.
나는 옆으로 비껴서서 스님이 지나가시기를 기다렸는데
스님은 지나쳐 가시지를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너는 지금 행복하니?
라는 엉뚱한 질문을 내게 던지셨다.
그 이상한 질문 한마디에 내 마음속의 작은 종들이 일제히 달랑거렸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무 잎사귀들처럼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저를 아세요?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지. 나는 너를 매일 본단다. 이 작은 동네에서.
너는 언제나 이동네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며 다니잖니.
그런데 오늘밤의 너는 다른 사람같아 보여, 혹시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거니?
그럼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실래요?
기꺼이....
그날밤 우리집으로 내려가는 작은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스님과 내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내가 다음날 아침 무척이나 개운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던 걸 보면
일렁일렁하던 마음의 파장을 잠재워주셨던 스님의 도움이 무척이나 컸었던 것 같다.
제게 먼저 말 걸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옴마니반매홈.
(아론과 나의 이야기)
내가 자주 가던 짜이집은 허름한 목조로 대충 지은 가게라 내일 당장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짜이맛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집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항상 친절하고 상냥했고, 좁은 가게 안은 늘 단골 손님들로 복닥복닥 거렸다.
주인 아저씨의 아들은 열살 정도 되어보였는데
학교를 마치고 나면 늘 가게에 나와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제 몸집의 반이나 되는 커다란 물통을 들고 공용 식수장에 가서
물을 떠서 낑낑대며 들고 오는 그 아이를 볼때마다 늘 감탄했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을텐데,
설거지도 척척 하고 잔심부름도 하며 아버지를 도와주던 착한 그 아이는
자주 보던 나에게 친근감을 느꼈는지 어느날부턴가는 인사도 하고 말도 걸기 시작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그래서 아버지를 편하게 모시고 싶다고 했다.
너의 개인적은 꿈은 뭐니? 하고 물어보니 없다고 했다.
축구공이나 뭐 게임기 같은거 가지고 싶은 건 없니? 하고 물어봐도
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애를 보며
철이 일찍 들어 애늙은이 같기도 하면서도 무척이나 대견스럽기도 했다.
어느날 짜이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그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 개인적인 꿈이 뭔지 생각났어요.
뭐야?
전 케잌이 먹고 싶어요. 혼자서 통째로 생크림 케잌을 한판 다 먹고싶어요. 동생들이랑 나눠먹지 않고.
그래? 하하하하하. 나 어렸을때 꿈이랑 똑같네.
내가 큰소리로 웃자 아이는 쑥스러운지 혀를 낼름 내밀었다.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메인 로드를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동네 형들이 그런 우리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는 히히덕대며 우리를 가리키며 쑥덕쑥덕거렸다.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잡았던 내손을 슬며시 놨다.
아, 이 아이는 어려도 남자구나...
내가 간과했었네, 미안^^''
우리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제과점으로 가서 작은 생크림 케잌 한통을 샀다.
아이에게 건네주자 신이 나서 쪼르르 달려가버렸다.
다시 집으로 가던 길에 짜이집을 지나쳐 가다보니
아이는 케잌 포장을 들고 아버지한테 자랑하고 있었다.
혼자서만 한통을 다 먹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그새를 못참고 아버지한테 드리러 갔구나..
요 이쁘고 기특한 효자 녀석아...
나를 발견한 그 아이는 길거리로 뛰쳐나와서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왜? 아까는 내손을 뿌리치더니, 호호호
그때는 동네 형아들이 놀리니까 싸나이 체면에 창피해서 그랬던거고
이제 형들 없는데서는 제가 손 잡아드릴게요...
어머나! 황송해라^^;; 정말 고맙습니다, 미스터 아론^^
그날 하루가 아론에게도 따뜻한 유년의 기억으로 남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