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만난 사람들 4: 世新대학교 여대생들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 중국대만
여행기

타이완에서 만난 사람들 4: 世新대학교 여대생들

왕소금 1 3242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에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난뒤, 아침 일찍부터 시내 관광에 나섰다. 우선 타이페이의 심장부인 총통부와 장개석기념관(中正記念堂, Chiang Kai-shek memorial Hall) 등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아직은 인적이 드문 타이페이 시내를 걸었다, 도중에, 문을 연 간단한 토스트점이 있어서 토스트 한쪽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난 뒤, 228 평화공원을 거쳐서 총통부까지 걸어갔다. 총통부는 바로 앞에 경비 병력이 상주하고 있기는 하지만 담장이 없이 바로 앞의 대로와 맞닿아있기 때문에, 도보로 자유룝게 구경할 수 있었다.
 
총통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장개석기념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시간이라서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내에 들어가 기념관 안에 전시된 기념물들을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넓은 경내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구경할 만했다.
 
타이페이 관청가를 대충 둘러본 후에,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고궁박물관(故宮博物館)을 구경하러 나섰다. 타이완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인 고궁박물관에 가려면 타이페이 지하철 스린(士林)역 1번 출구로 나가서 고궁박물관행 시내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고궁박물관행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았더니, 옆자리에 앉은 애기처럼 작고 귀엽게 생긴 여대생이 미소를 지으며 힐끔힐끔 눈길을 준다. 내 행색이 외국인 관광객 티가 났는지 호기심을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다 확인하고 탄 버스였지만, 나는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이거 고궁박물관 가는 버스 맞죠?"
 
이렇게 해서 Yenyo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타이페이에 있는 世新대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는데, 그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친구와 함께, 마침 자신도 고궁박물관에 가는 중이란다. 그럼 나도 초행길이니 박물관 구경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희 수락을 한다.
 
고궁박물관에 도착해서, 그녀들의 입장권도 사줄려고 매표소 앞에 줄을 섰더니 자신들은 이미 입장권이 있단다. 그러면서 사실은 자신들은 오늘 학교에서 현장 학습(field study)의 일환으로 단체로 온거란다. 처음에는 난 그 말을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말로 잘못 받아들였다. 그래서 약간 섭섭한 마음을 누르고, 그럼 구경들 잘 하라고 작별인사를 하려 했는데, 그녀들은 내게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신들이 자기들 인솔 교수님께 나도 그들과 함께 박물관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고 오겠단다.
 
그러더니, 그녀들은 이미 박물관에 와 계셨던 자기 학교 교수님을 발견하고는 쪼로로 달려가서 인사를 하고 뭐라고 말을 하더니, 다시 내게로 와서 나를 자기들 교수님께 데리고가서 인사를 시킨다. 그녀들의 교수님은 인상이 좋아보이는 키가 훤칠한 중년 남성이었는데, 내게 환영한다고 악수를 청한뒤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박물관 구경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현장 학습차 단체로 온 수십명의 대학생들 틈에 끼여 졸지에 그들의 일행이 되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헤드폰까지 하나 받아들고 그들의 행렬 맨 뒤에 섰다. 주변에 있던 그녀의 친한 친구들 여러명과도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입장을 기다렸다.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면서 박물관 견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단체로 온 팀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박물관 안은, 평일날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타이완의 각급 학교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물 앞에는 단체 관광객들의 줄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어서, 줄 뒤에 선 나는 전시물도 제대로 보기 힘든 상태가 계속되었다. 머리에 착용한 헤드폰에서는 알수없는 중국어 해설 방송만 흘러나오고, 줄은 마치 그자리에 정지해있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어서, 하나의 전시물을 구경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런 식으로 구경을 한다면 하루 종일 구경을 해도 모든 전시관을 다 둘러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달팽이 걸음보다도 더 느린 속도로 몇개의 전시관을 돈 후,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구경을 하면 이곳 고궁박물관에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어, 오후에 다른 곳 몇 곳을 둘러본 후 밤에 스린 야시장을 가볼려고 했던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후에 다른 곳도 여러 곳 둘러봐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나 혼자 먼저 빠른 속도로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Yenyo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대신 저녁때 스린 야시장에 갈 계획인데 시간이 되면 함께 가줄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박물관 견학후 일단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수업이 끝난 뒤 오후 5시쯤에 친한 친구 몇명이랑 같이 스린(士林)역으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난 혼자서 빠르게 박물관 구경을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단체 관람객들에게 치여서,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봤는지 지금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고궁박물관이 장개석이 중국 공산당에  밀려서 타이완으로 쫓겨올 때 중국 본토에서 가져온 진귀한 소장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소장품은 지하저장고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서 직접 볼 기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인파로 인해서 차분하게 전시물을 감상할 분위기도 되지 못해서,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하고 온게 너무나 아쉽다.
 
아무튼 고궁박물관 구경을 대충 마치고 난 뒤, 나는 어제밤 K & L 까페의 여주인인 Lin이 추천해준 MOCA (Museum of Contemporary Arts, 현대미술관)를 구경하러 떠났다. MOCA는 Zhosan역 뒤쪽으로 한 블럭 떨어진 거리에 있는 미술관인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1층에서는 외국 작품 특별 전시회가 있었고, 2층에서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계열의 전위적인 작품전시회가 있었는데, 워낙 미술에 대한 조예가 부족한데다 추상적인 작품들이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색적인 전시회였고 그런대로 흥미로와서 사진도 꽤 많이 찍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문제가 생겼는데, 간밤에 깜빡 잊고 카메라 충전을 하지 않아서 중간에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이날은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MOCA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미술관이었기에 구경을 마치고 나서도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나는 Longshan사(龍山寺)와 그 근처에 있는 화시지에 야시장을 구경하러 발길을 옮겼다.
 
Longshan사는 지하철 롱산스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절인데, 타이완 전국 각지에서 온 불교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사찰이다. 평일 낮에 들렀는데도 경내에는 향을 피우며 복을 기원하거나 불경을 읽고 있는 불심이 돈독한 신자들로 붐볐으며, 그중에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화시지에 야시장은 Longshan사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야시장인데, 외국인들을 위해 특화된 시장으로 세운 야시장이라고 하는데, 시장의 규모와 상품의 종류 등 모든 면에서 스린 야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은 낮 시간에 갔기 때문에, 아마도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약간 여유있게 스린역에 도착했다. 주위의 거리 모습과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기다렸더니, 드디어 Yenyo와 그녀의 친구 2명이 함께 나타났다. 우리는 반갑게 해후를 한 뒤, 스린 야시장 구경에 나섰다.
 
스린 야시장은 화시지에 야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시장이었다.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났으며,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골목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시장 전체에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구경도 하고 간식도 사먹으면서 시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때 한 여학생이 손바닥 크기만한 왕만두 비슷하게 생긴 음식을 하나 사서 내게 맛보라고 권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오묘한 맛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 수첩을 건네주면서 그 음식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는데, 수첩에 적혀있는 그 음식의 이름은 seon zjen pau(生煎包)였다.
 
시장 구경을 한참 한 뒤에 허기가 질 무렵, 나는 그녀들이 어린 학생 신분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내가 저녁을 사겠으니 가고 싶은 식당으로 안내하라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역시 순수했다. 외국인인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시장 안의 저렴한 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요금표를 보니 만만한(?) 생각이 들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했는데도 학생들은 모두 그중에서도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들을 선택했다.
 
저녁을 먹은 후, 후식 겸해서 과일도 사먹으면서 시장 구경을 더 하고 있는데, 다른 학생 2명이 뒤늦게 시장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와서, 우리와 합류했다. 나와 다섯명의 여학생은 시장 안의 빙수 가게로 장소를 옮겼다. 여기서 우리나라 빙수와 비슷한 음식을 주문을 하는데, 학생들은 1인분 양이 너무나 많아서, 자신들은 두개만 시켜서 다섯명이 함께 먹어도 충분하다고 하면서 내 것 포함해서 세개만 주문한다. 실제로 나온 음식을 보니까, 우리나라 빙수보다 높이가 세배쯤 되어 양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외국인인 내게 가능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들의 배려가 아마도  더 크게 작용을 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빙수를 먹으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화제로 오랫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한류의 영향은 이들에게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녀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대면서 그들에 대해 얘기하는걸 즐거워했다. 그녀들은 외국에서 활약하는 타이완 스포츠 스타들에 대해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 외국인인 내가 그들의 활약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이름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타이완이 야구 강국이어서 미국과 일본 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타이완 출신 투수들이 여럿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정도로 말해주었다.
 
그녀들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타이완과 타이완 사람들의 인상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해했다. 솔직히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받은 첫인상은 별로였다고 운을 떼자 그녀들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귀를 쫑긋 세우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서, 내가 타이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인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타이완은 정직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걸 알게되었다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얘기를 하자, 그들의 얼굴은 안도의 기색이 번지면서 환하게 밝아졌다.
 
오래간만에 순수하고 싱그러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우리는 달랑 빙수 세그릇만 시켜놓고 긴 시간 동안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은 후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카메라 배터리가 낮에 나가는 바람에 내 카메라로는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학생들이 그녀들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었고, 그 사진들을 나중에 이메일로 내게 보내줘서 몇 장이나마 그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장할 수 있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녀들과 스린 야시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면서 그때의 즐거웠던 추억에 잠시 잠겨본다.
 
1 Comments
나디아연대 2012.07.02 16:55  
참 좋은 추억이네요..부럽네요 ㅎㅎ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