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 만난 사람들 3: K & L 까페 여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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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만난 사람들 3: K & L 까페 여주인

왕소금 2 2850
나는 해외여행을 할때 대부분의 경우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현지에서 워크인(walk-in)으로 숙소를 구한다. 무엇보다도 방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숙소를 정한다는게 좀 께림찍한 면도 있고, 설마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노숙을 하는 일이야 벌어지겠냐 하는 다소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데다, 설령 숙소 구하는데 다소 애로가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도 여행의 일부로 즐기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도 있다. 첫째는 비용도 많이 들고 숙소 구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는 성수기는 가능한 피하고, 둘째로 낯선 도시를 여행할 경우에는 해가 떨어지기 훨씬 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하며, 세째로는 사전에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해서 숙소 후보로 몇곳을 마음속으로 미리 정해두고 떠난다.
 
이번(2010년 10월말) 타이완 여행때도 그랬다.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태사랑에 올라온 타이완에 관한 여행 정보들을 열독해서 몇곳의 후보지만을 마음속으로 선정해 놓은채 타이페이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리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이 몇가지 있어서 생각보다 숙소를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첫째는 타이완의 날씨가 숙소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둘째는 인터넷 정보의 허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며, 세째는 타이페이는 다른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의 도시들과는 달리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밀집되어있는 여행자거리가 별도로 형성된 곳이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타이완에 도착했을 때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내가 타이페이에 체재하는 2박3일 동안 줄곧 추적추적 내렸다. 그것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스콜처럼 한번에 왕창 쏟아붓고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해가 쨍쨍 내리쬐는게 아니고, 하루 종일 실금실금 내리면서 며칠씩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비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고생 자체를 여행의 일부로 즐긴다고 해도, 이런 조건하에서 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숙소를 알아보려고 낯선 도시를 헤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 정보의 허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나는 여행지에 대해 나름대로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한 다음에 여행을 하는 편이라 아무리 처음 가는 여행지라 해도 별 두려움 없이 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내가 수집했던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지극히 주관적일 경우 별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간과했는데, 이번에 내가 조사해 갖고 갔던 타이페이의 숙소 정보가 바로 그러했다. 
 
나의 타이완 여행이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고 비즈니스 여행도 아닌 개인 자유 여행이었기 때문에 좋은 숙소에 묵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인터넷에 올라온 타이페이의 숙소 정보 중에서 저렴하면서도 평이 좋은 숙소 3-4곳 정도만 메모해가면 성수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숙소 구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예상은 처음부터 보기좋게 빗나갔다.

Shinkong-Mitsukoshi 백화점에서 고장난 시계도 고칠 겸 줄기가 갑자기 굵어진 비를 좀 피하고 있다가,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백화점 밖으로 나와서 숙소를 구하러 처음으로 간 곳은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Kmall 빌딩이었다. 이 건물 24층에 있는 Taipei Kmall Traveler Hostel이 방값이 저렴하면서도 여주인이 매우 친절하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올린 여행기와 정보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그것은 이미 낡은 정보였다. 그 Hostel은 이사를 했는지 폐업을 했는지 찾을 수 없었고, 같은 건물 안에 다른 숙소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나는 또 다른 숙소를 구하러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차질이 생길 경우 다른 동남아시아 도시들에서는 대부분 여행자거리에 숙소가 밀집되어있기 때문에 바로 옆 건물의 다른 숙소로 가서 방을 알아볼 수 있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타이페이에는 그런 여행자거리가 따로 조성된 곳이 없어서, 나는 지하철을 타고 두번째 숙소 후보지가 있는 Zhonshan역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이 부근에 있는 Taiwanmex Guesthouse도 저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던 숙소였고, 나 자신이 특별히 까탈스러운 여행자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숙소일거라고 생각했었다. 
 
Zhonshan역은 타이페이역 바로 다음 역이기 때문에 거리상 먼 것은 아니었지만, 타이페이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처럼 짐을 갖고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큰 여행가방을 번쩍 들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느라고 약간 고생을 했다. Taiwanmex Guesthouse는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대로 Zhonshan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간은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고. 중간에 여러개의 샛길도 있고 비도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큰 여행가방을 끌고 비를 맞아가면서 무작정 찾아가기도 뭐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근처의 가게에 가서 물어보면 오히려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골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띈 것이 Zhonshan역 바로 뒷골목 안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K & L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아담하고 예쁜 까페였다.
 
까페 문을 열고 "Excuse me." 했더니 안에서 젊은 여인이 나타나는데 와 대단한 미인이다. 그녀가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이 까페의 여주인인 Lin이다. 내가 Taiwanmex Guesthouse가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나중에 알고보니 캐나다 대학교에서 2년동안 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어째튼 그녀 덕택에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문제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찾아간 Taiwanmex Guesthouse는 기대와는 딴판으로 전혀 마음에 드는 숙소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비만 오지 않았다면 밖으로 나와서 다른 숙소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우선 숙소 자체가 낡고 허름한 건물의 이층을 임대해서 그 안에 얇은 베니어판으로 칸을 막아서 우리나라 고시원처럼 여러개의 방을 만들어놓은 구조여서 상식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와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 숙소였다. 방의 크기도 내가 지금까지 자본 방 중에서 가장 작은 방이었다. 이보다 더 싼 숙소에서 자본적은 많지만, 이보다 더 작은 방에서 자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방안에는 작고 허접한 싱글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 내 여행가방을 세워놓으면 꽉차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여행가방을 열고 짐을 꺼낼 때에는 방바닥에 가방을 눕힌 상태로는 열 수 없어서 침대위에 올려놓고서야 겨우 열 수 있을 정도였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잘 수 없고, 우리같은 중년의 여행자가 적응하기에도 정말로 쉽지 않은 그런 방이었다. 이런 방에서 잘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방값이 저렴하기에 애시당초 그럴듯한 방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숙소라서 이 정도까지 마음에 안드는 그런 숙소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도 못했었다.
 
이런 곳을 어째서 많은 이들이 추천했을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보면, 시설과 서비스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절대적인 가격과 위치만 고려한다면 그런대로 이곳을 경쟁력이 있는 업소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숙소는 단지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되고,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가격과 위치라고 생각하는 여행자들이라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가격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시설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이곳은 확실히 비추업소에 가깝다는게 내 생각이다. 모든 판단이 실상 주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것을 통해서 인터넷 정보의 주관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밖에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있었고, 흐린 날이라서 이미 바깥은 어둑어둑해지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숙소를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이곳에 비즈니스로 출장온 것도 아니고, 오래 묵을 것도 아니라 단지 이틀만 때우면 되니까 싼맛에 그냥 이곳에 묵자하고 체념힌 후 나는 짐을 풀었다.
 
타이페이 체류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보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우산을 들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우선 타이페이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Ximending(西文店)과 젊음의 거리라는 Ximen(西門)역 부근을 대충 구경한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우리나라의 시청에 해당하는 市政府역 근처에 내려 주위를 좀 거닌 뒤,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당시만해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고 하던 Taipei 101 빌딩을 구경하러 가서, 이곳 지하 푸드코트에서 저녁도 먹고 쇼핑몰에서 윈도우 쇼핑도 한 다음에, 어둠이 짙게 깔렸을 때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Zhonshan역으로 되돌아갔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아까 낮에 들렀던 K & L 까페에 다시 들렀다. 숙소로 돌아가서 잠자는 일 이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낮에 보았던 까페의 여주인이 대단한 미인인데다 영어도 유창하고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기 때문에 차 한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면 즐거운 추억이 될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늦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까페 안은 한산했다. 전문직 여성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한명만이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뿐 다른 손님은 없었다. 까페 여주인인 Lin도 전혀 예상을 못했는지 내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잠시 기다렸더니, 그녀는 내가 주문한 커피 이외에도 홈메이드 케익이라면서 자신의 가게에서 직접 만든 케익 한접시를 먹으라고 내놓는다. 그 케익도 그 까페에서 파는 케익인데 값으로 치면 내가 주문한 커피보다 더 비쌀 것이니, 이거 완전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었다.
 
짐작했던 대로 그녀는 매우 친절했다. 아까 낮에 한번 본 인연만으로 그녀는 나를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마치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우리는 커피 한잔씩과 케익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서 오랫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이 Iwen Lin이라는 것, 그리고 키가 작고 아담해서 처녀인줄 알았더니 이미 결혼해서 다섯살 난 아들을 둔 당시 32세의 주부라는 것, 그리고 캐나다의 대학에서 2년간 유학을 했던 인텔리 여성이라는 것, 남편은 그 까페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요리사로서 자신의 까페 이름인 K & L은 각각 남편과 자신의 성의 이니셜(initial)을 따서 이름붙인 것이라는 것 등등...
 
우리는 개인적인 신상 이외에도 여러가지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로 한국과 타이완에 대해 서로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고,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를 통해서 MOCA, Taipei(=Museum of Contemporary Arts, 타이페이 현대 미술 박물관)에 대해서 알게된 점이다. 그녀가 내게 다음날 일정에 대해서 묻길래,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국립 고궁박물관(National Palace Museum)부터 보고 싶다고 하니까, Zhonsan역에서 뒷골목쪽으로 한 블럭 떨어진 거리에 MOCA가 있으며 마침 그곳에서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그곳도 꼭 보라고 추천을 한다. 그녀 덕택에, 수많은 타이완 여행기와 여행정보를 읽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MOCA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실제로 다음날 그곳을 관람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캐나다 유학 생활에서 돌아온 후 오래만에 영어를 사용해본다고 하면서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해서 우리의 대화는 그녀의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이 다 될때까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아름답고 친절하고 영어도 잘 통하는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워서 나는 2박3일이라는 짧은 타이페이 체재기간 동안 이곳에 3번이나 들렀었다. 하루에 한번씩은 빠지지 않고 개근한 셈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바람에 공교롭게 이곳에서 식사는 한번도 하지 못하고 커피만 마신게 고작이었지만, 가게 분위기로 봐서는 이곳은 음식도 꽤 맛있는 맛집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게의 위치가 비록 역부근이긴 하지만 뒷골목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은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대부분 단골손님이 찾아오는 곳인데도 식사 시간에는 그리 넓지 않은 가게지만 좌석의 대부분이 찬다는 점이 그렇다. 또 손님들도 젊은 학생들은 전혀 없고 대부분 여유가 있어보이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거나 주변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전문직 종사자들로 보였는데 이러한 손님 구성으로 볼때 주변의 싼 식당들보다는 다소 값이 비싸더라도 맛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손님들이 찾는 까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혹시 타이페이 Zhongshan역 부근에 가게 될 일이 있으면 아름답고 친절한 여주인 Lin이 반겨주는 아늑하고 예쁜 K & L 까페에 들러 식사나 차를 즐겨보실 것을 권하고 싶다.
2 Comments
세븐 2012.02.29 23:29  
내일 이사가는 관계로 오늘은 요기까지만 읽고 물러갑니다..
저도 왕소금님처럼 언어가 유창했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고..부럽기도 합니다..ㅎㅎ
나디아연대 2012.07.02 16:45  
영어를 잘하시나 보네요..저는 몇가지 물어보면 끝인데.. 확실히 세계를 다니려면 영어가 좀 되야 하는 거 절실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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