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웬모(元謀) " 만지면 부서지질 듯한 토림(土林) 왕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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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웬모(元謀) " 만지면 부서지질 듯한 토림(土林) 왕국(2)"

꺼벙이 3 2915
■ 06-03-26. 우모투린(物茂土林) 향하여.
 
 ‘차화빈관’두꺼운 커든 창에 아침이 밀려와 있다. 밤새 옆에 있었던 빈 더블침대의 공간이 너무 커 보인다. 작정하고 나선 배낭여행자의 형편에는 너무 과분한 첫날밤이었다. 그 휑한 공간에 꽉 찬 긴장은 피곤을 느낄 틈도 없다. 오직 먹고, 보고, 느끼는 것에만 충실하자. 15위엔 호텔 뷔페로 시작한다.

작은 정원에 차려진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본다. 제법 입에 붙는다. 작정한 고생길에 몸을 유지하는 방법은 먹거리가 원천일터이다. 기차표 한 장 제대로 구매할 수 없는 언어의 부재로 ‘해피쿤밍’으로 향했다. 여행 원칙 제1조 철저한 현지화’를 주장하는 내게 켜진 빨간 신호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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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북한 말투지만 문씨는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문씨의 도움으로 웬모(元謀)행 12시 기차표를 예매하고 몇 가지 이동에 관한 생존 중국어도 배운다. 그는 숙소의 열쇠까지 맡기며 오전11시 까지 시내 지리라도 익히라고 권했다. 언어소통은 정말 놀랍고 신기한 매개다.

따듯한 남쪽 운남의 거리는 그리 봄다운 기운이 보이질 않는다. 단색계열의 두툼한 옷차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민들의 얼굴에 씌여진 무표정은 타 문화권의 이질감이다. 큰 거리에 자전거와 많은 인파의 움직은 완만하다. 시장골목에서 처음 맛보는 닭국수는 제법 입에 붙는다. 쿤밍역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대합실에는 민초들의 보따리들이 즐비하다. 불러주는 이 없어도 갈 길 먼 누구의 배낭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웬모를 향한 열차는 정오를 넘어서 출발했다. 마주보는 3인석, 2인석 배열의 기차는 80년대 중앙선 열차와 흡사하다. 냉방을 위한 밀폐창에도 불구하고 뒤쪽에 열어놓은 창으로부터 거센 힘이 밀려들어온다. 터널을 지날 때면 굵은 모래바람이 안면에 부딪혀온다.

색 바랜 시절 첫 휴가 길이 문득 스쳐온다. 78년 봄 굴절과 통제된 군사문화의 병영의 틀을 벗어나 첫 휴가를 나오던 때. 충주에서 충북선, 제천에서 중앙선 열차를 갈아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열차에 마구 밀려들어 오던 바람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창밖의 모든 풍경이 마냥 신기하고 터널속의 매캐한 냄새조차도 가슴시리도록 달콤했던지.

세월은 가없이 흘러갔지만 추억의 굴레는 늘 반추되는 모양이다. 낯선 곳으로의 발길은 시린 추억을 들추고 그 한 페이지에 빗장을 지른다. 터널은 쉴새없이 기차를 집어삼키고 토해 내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떠질 듯 요란한 굉음이 뒤따라온다. 열어 논 책갈피에 묻어나는 흙먼지가 오랜 세월을 넘어온 인연처럼 서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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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 없는 높은 산과 구릉을 굴러온 오후의 태양은 황사 속에 뿌옇다. 민둥산의 나무는 어디로 출정 나가고 여린 풀과 밭의 푸성귀만 모진 바람을 몸으로 맞고 있는가. 무너질 듯 위태한 계곡에는 격정의 세월을 스쳐온 듯 골이 깊다. 절벽인가 산인가. 차장으로 스치는 산에는 높은 경사에 절개된 밭이 겹겹이 허리를 두르고 있다. 어느 개그맨의 입담이 떠오른다.

“우리 고향에서는 산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산이라고 불러줍니다.”

계곡을 버티고 있는 깡마른 미루나무, 색 바랜 검붉은 흙벽돌 담장은 세월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수에 지친 인민들의 얼굴은 태양에 그을렸는지. 손에 들고 다니며 줄기차게 마셔대는 찻(茶)물에 절었는지 태반이 구릿빛이다. 차츰 창밖의 풍광이 눈에 익어간다. 좁은 통로를 오가며 물건을 팔던 복무원 아가씨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다. 인민들은 아무 말 없이 발을 들어 바닥을 내준다.

맞은편 좌석 젊은 커플의 맥주 캔 터지는 동작에 거품이 안면과 옷을 더럽혀도 누구하나 나무람이 없다. 인민들의 시민의식은 관용인가. 실수에 대한 사과도 생략되고 권리에 대한 주장도 포기하는 기차안의 풍경이 이채롭다.

옆자리에 앉은 처자들과 필담을 나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웬모(元謀) 우모투린(物茂土林) 마을에 거주하는 처자들이었다. 책자에 나온 간단한 중국어를 배우고 가르쳐 주는 4시간의 여정은 무료하지 않았다. 역전에 내려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미련 없이 가 버렸다. 웬모(元謀)-황과웬(黃瓜園) 우모(物茂)-우모투린(物茂土林) 빵차를 갈아타며 土林(투린) 풍경구내에 도착한 시간은 6시가 다 되었다.

어렵게 필담으로 매표하고 경내의 숙소에 들었다. 흙먼지가 서걱거리는 방에 짐을 놓고 토림을 향했다. 스산한 바람은 아무도 없는 풍경구내를 이리저리 휩쓸고 다닌다. 아랑곳하지 않는 토림은 신비한 모습으로 솟아있다. 능선을 올라 조망하는 구석구석의 토림에는 자연의 힘이 존재하는 아름다움 자체다.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은 곳이다. 만지면 부서질 듯한 여린 흙기둥을 곧추 세우고 크고 작은 형상은 환상 속 궁전인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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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의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예술작품이다. 여기 저기 부서진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의 발길은 곧 보존을 저해하는 요소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안타갑기만하다. 구릉사이의 탐방로를 봉쇄하고 멀리 외곽루트로만 개방하여 좀더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취할 수는 없을까.

토림은 이미 풍화작용에 의해 물먹은 솜처럼 풀어질듯한데 천년만년 철옹성 같은 신축건물을 짓는 망치소리가 주변을 울리고 있다. 자연은 쇠퇴하는데 자본과 상업화 물결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보호는 등한시 한 채 개발에만 주력하는 인상은 곳곳에 역역하다.

 외곽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길과, 부서지는 흙모래에 낙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보험료를 징구한다면 어찌 말리랴.
 
붉은 저녁노을을 흡수해 기묘한 형상의 토림(土林은), 고대왕국의 위엄처럼 묘한 분위기로 빛나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능선의 여린 풀은 바짝 몸을 숙인다. 온통 붉은 노을로 물들은 토림 왕국은 더없는 환영이다.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없는 토림 왕국에 홀로 떨어져 눈부신 자연의 조화에 취한 두 시간은 언제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둠이 깔리는 계곡을 뒤로하며 내려온다.

3위엔 짜리 국수로 연명한 허기가 그제야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토림을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숙소직원의 안내로 찾아간 식당은 넓은 홀이 텅 비어 있다. 주방으로 안내했다. 냉장고에 보관된 음식재료를 보고 골라보라는 눈치다. 선택의 난이도는 어디에도 마찬가지다. 눈에 띠는 돼지고기와 과일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米” 자를 적어 보였다.

4개의 접시에 가득 담긴 식사량의 부피에 놀라고 다 비운 빈 접시의 크기에 스스로 놀랬다. 출구에는 토림을 배경으로 촬영한 배우 장동건의 멋진 브로마인드가 걸려있다. 

헐거운 3층 숙소의 창으로 밤바람이 사정없이 부딪혀 온다. 밤바람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 붙이고 지내던 짓궂은 모습으로 키 큰 대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언제 생겨났는지 낮은 밤하늘에는 별빛이 마냥 천진스럽다. 같은 하늘아래서 보는 별의 느낌이건만 너무도 생경하다.

바람에 날아오는 작은 모래알의 촉각도 오히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갑다. 3층 높이까지 올라온 대나무 잎에 떨어지는 바람과 별의 요란한 울림에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 계/산/서 ★
 택시 (공항-차화빈관)  30元,  숙박비 차화빈관(바가지?) 180元
 조식 (차화빈관 부페)  15元,  택시 차화-해피쿤밍(환청난로) 13元
 지도 (윈난, 쿤밍)    5元,  중식 (국수+사과+물)    18元
 기차 쿤밍-웬모  40元,  버스웬모-황과웬(3.5)황과-투린(40)  44元
 투린입장료 (입장료40+보험2원) 42元,  숙박비 토림풍경구 경내(호텔) 100元
 석식 (쌀+과일사라다+돼지고기) 20元 ,
  일계 :  507元 (65,900원)
3 Comments
신스 2006.04.14 18:58  
  잘읽고 갑니다.
 혹시 작가이신가요?
꺼벙이 2006.04.14 19:29  
  낌새가 보이나요?  웬걸요. 그렇게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들피리 2006.04.18 09:47  
  글 잘 읽었읍니다,
잘쓰시네요!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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