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자전거 여행기(폰사완-팍산) 2009.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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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자전거 여행기(폰사완-팍산) 2009.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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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겨울의 문턱에 접어드는 11월 초순, 라오스는 우기에서 벗어나 건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제 라오스의 수도 위앙짠(Vientiane)에서 시외버스로 12시간이 걸려 도착한 씨엥쾅(Xieng Khouang)의 주도(州都) 폰사완(Phonsavanh)의 아침은 농무(濃霧)에 묻혀서 시작되고 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씨엥쾅의 주도는 원래 오늘의 목적지인 무앙쿤(Muang Khoun)이었으나 폰사완으로 바뀌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뼈아프고 멀지 않은 과거가 있다.

이 지방은 1964년부터 73년 사이 베트남전 당시 미공군에 의해 약 200만톤의 폭탄이 뿌려진 곳이다. 당시 라오스 전체에 400만톤이 투하되었는데 그 중 절반이 이곳에 뿌려진 셈이다. 그래서, 씨엥쾅의 크고 작은 마을 어디에나 각종 포탄피와 불발탄이 널려 있다. 포탄피는 집의 기둥이나 담장으로 쓰이거나 집 한쪽에 정원 장식물처럼 자리 잡고 있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직도 곳곳에 묻혀 있는 불발탄은 이곳 주민들에게 큰 위협이다. 밭을 갈던 농부가 불발탄이 터져 죽거나 다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져 피해를 입는 사고가 생기곤 한다. 전체 투하량의 30%가량이 불발탄으로 남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 0.49%만이 제거된 상태이다. 라오스 정부는 2020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불발탄 제거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참고:Lao National Unexploded Ordnance Programme - www.uxolao.org) 고엽제로 아직도 벌거숭이로 남아 있는 된 폰사완 인근의 산야와 어디나 널려있는 사람 키보다도 큰 포탄피를 보고 있노라면 이데올로기의 참혹한 측면, 인간의 무자비성,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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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사완의 여행자안내소 앞마당에도 커다란 포탄이 쌓여있다>

선사시대의 수수께끼 “Plain of Jars(돌항아리 평원)”

무앙쿤으로 가는 도중에 ‘수수께끼의 돌항아리 평원’으로 알려진 “Plain of Jars”에 들렀다. 관광안내자료에 따르면, 선사시대 중요 유적인 이들 돌항아리가 만들어진 고대에는 농업생산량이 많았고, 금속 생산이 발달하였으며, 중국과 인도에 이르는 장거리에 걸친 무역이 이루어져 이 지역이 하나의 도시로 발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돌항아리는 화장(火葬) 이후 이차적인 매장과 관련이 있거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힌두교와 불교가 전래된 이후 Ankor시대 왕국에 존재하였던 어떠한 종교적 의식이나 상징과 원리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항아리들은 2500년전 철기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베트남과 인도에서도 비슷한 것이 발견된다고 한다.

 돌항아리의 용도에 대해서 고고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커다란 구조물이 이렇게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한다는 것은, 과거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가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돌항아리 평원도 폭격의 피해로부터 무사할 수 없었다. 안내 표지판에는 불발탄이 있으니 표시된 지역 밖으로 벗어나지 말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돌항아리들은 폭격에 여기저기 부서진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항아리들 사이에는 여기저기 폭탄이 터진 흔적인 웅덩이(bomb crater)가 있다. 전쟁을 딛고 일어서는 라오스를 상징하듯 어느 한 웅덩이 바닥에서는 들꽃이 피어나고 있다.

  폰사완 ~ 무앙쿤 : 42km, 포장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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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대인 무앙쿤의 아침은 짙은 안개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무앙쿤을 벗어나 팍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무앙쿤을 벗어나면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얼마가지 않아 마을이 하나 나오고 마을사람들이 오토바이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니 그 오토바이 운전수는 다름 아닌 방물장수였다. 이곳은 도로사정이 좋지 못하고 대중교통편이 없는지라 이렇게 방물장수가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오토바이에 주렁주렁 달고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파는 것이다. 핑크빛의 카우보이 모자를 쓴 방물장수는 꽤나 젊어보였다. 오토바이에는 각종 공구 등 시골생활에 요긴한 것들이 정말 다양하게 많이도 매달려 있다. 우리가 다가가니 같이 구경하던 마을 아이들은 생경한 우리들의 옷차림에 놀라서 엄마 치마폭 뒤로 숨거나 도망가기 바쁘다. 어떤 아이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다.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무서워 보였나 보다. 나는 라오스 사람들의 이런 순박함이 좋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가니 도로공사를 하고 있다. 표지판에는 공사구간이 약 5km라고 되어 있다. 나중에 보니 무앙쿤에서 타톰까지 대략 80km구간에서는 옛길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전체 구간에서 공사가 진행중인 것은 아니고 구간별로 끊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산을 깍는 작업을 마친 곳은 차량이 왕래할 수 있도록 비포장길을 내 둔 상태이다. 이 길 외에는 우회도로가 없기 때문에 공사중이라도 전면통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방물장수는 여기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포크레인을 잠시 멈추도록 부탁하면서 자전거를 끌고 공사구간을 통과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공사관계자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어떤 곳은 길이라고는 전혀 없이 토사가 흘러내리고 있는 구간도 있다.

  무앙쿤에서 출발해서 약 33km를 가는 동안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도로공사중인 산을 하나 넘으니 조금 큰 마을이 나왔다. 주민에게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쏩씨암(Sobsiom)”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공사구간이 개통되기를 기다리는 차량이 대여섯 대 늘어서 있다. 우리가 지나올 때 본 바로는 차량이 통행하려면 최소한 하루는 기다려야 할 듯 한데 주민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우리는 길가의 작은 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시골에 시원하게 냉장된 맥주가 있다. 가격도 도시와 똑같아서 10,000킵(한화 약 1500원)이다. 시원하게 맥주로 갈증을 풀고, 무앙쿤의 아침시장에서 산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도시락은 바나나잎으로 싸서 찐 묵 같은 것이었는데 안에는 돼지고기 다진 소가 들어 있다.

  어제 무앙쿤에 점심 때 쯤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내쳐 달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폰사완의 호텔 직원에게 물어본 바로는 중간에 잠잘 곳이 없다고 하기에 할 수 없이 무앙쿤에서 숙박을 하고 오늘 길을 나섰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을 라이딩하면서 보니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업소는 없지만, 이따금씩 마을이 나오고 있어서 어제 오후에 그냥 라이딩하였어도 숙박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점심때를 넘어서자 기온이 많이 올라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뙤약볕이 내리 쬐고 있다. 주변에는 정글이 무성하지만, 도로공사로 인해 막상 도로에서는 햇볕을 피할만한 곳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동안 라이딩하다 보니 작은 마을과 개울이 나온다. 개울에서 땀을 닦고 조금 쉬자니, 두 명의 오토바이 여행자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그 오토바이 여행자도 더웠는지 우리가 쉬고 있는 개울에서 멈추었다. 둘 다 신장이 190cm는 되어 보이는 거구인 그들은 독일에서 왔으며 3주간의 휴가동안 라오스를 오토바이로 여행한다고 한다. 자전거 여행은 너무 힘들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들이 부러운 것은 오토바이로 편하게 여행한다는 것보다도 3주간이나 휴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길은 여전히 확장공사는 되었으나 마무리가 덜 된 길이다. 지금은 건기라서 노면이 굳어 있지만, 우기에는 엄청난 진창길이 될 것이란 사실은 길 위에 남아 있는 트럭들의 빠졌던 허리깊이의 바퀴자국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길의 상태에 대해서 ‘우기에는 길이 끊기는 경우가 잦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건기인 지금은 두꺼운 흙먼지가 밀가루처럼 쌓여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길 위에는 뽀얗게 흙먼지가 일었다.

  타 비엥(Tha Viang)마을을 앞두고 작은 강이 나왔다. 메콩강의 지류인 응이엡(Ngiap)강이다. 이번 코스에서는 대여섯번에 걸쳐 작은 강을 건너게 되는데 무릎정도의 깊이라서 건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수량이 많은 우기에는 강을 건너는데 애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의 숙박 예정지인 타 비엥 마을에 도착했으나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15km이내에 2개의 마을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좀 더 진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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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밀전쟁(Secret War)의 현장

  지도를 보면, Tha viang에서 서쪽으로 5번도로로 접어들면 사이솜분(Xaysomboune) 특별구역으로 향하게 된다. 라오스의 행정구역은 17개주와 1개의 특별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로 그 하나의 특별구역이 사이솜분이다. 사이솜분이 특별구역으로 지정된 배경에도 역시 베트남전쟁이 있다. 즉, 베트남 전쟁의 끝나지 않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남아 있는 곳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베트남 중부전선이 차단되자 베트콩은 라오스로 우회하는 호치민 트레일을 개척하여 보급로로 활용했다. 이를 파악한 미 중앙정보부(CIA)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몽(Hmong)족을 무장시켜 호치민 트레일을 차단하고, 미군포로를 구출하는 등의 이른 바 ‘비밀전쟁(Secret War)'를 수행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하자 몽족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종전 무렵 10만여명이 태국으로 피난하였고 일부는 서방세계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으나 5천여명은 사이솜분에 남아 정부군의 추격을 받고 있다. 이는 1993년에 홍콩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가 있다.(이역 2 - 고군(孤軍) (End Of The Road, 異域之末路英雄))

현재 라오스 정부는 라오스에서 가장 높은 산인 Phou Bia가 있는 사이솜분을 특별구역으로 지정하고 내외국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2008년 말에 사이솜분으로 들어갔던 한국인 여행자도 군인들로부터 추방(?)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이솜분 특별구역을 우회하는 남쪽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라오스 시골 민가에서의 하룻밤

포(Pou)마을이 나왔다. 마을 어귀에 라오어와 영어로 마을이름 팻말이 세워져 있어서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처음엔 이 마을도 지나치려 했으나 지도를 자세히 보니 다음 마을이 나오려면 한참을 가야 할 듯하다. 우린 마을로 되돌아가 사람들이 보이는 집에 가서 하룻밤 재워 줄 것을 부탁했다. 모여 있던 마을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깔깔거리느라 야단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 딱 붙는 이상한 복장의 외국인 2명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라오어를 조금밖에 할 줄 몰랐으므로 처음엔 손짓 발짓으로 청하다가, 미리 준비해간 라오어 회화 중 “당신 집에서 재워줄 수 있습니까?“라고 적은 부분을 펼쳐 보였다. 주인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자리 구하기에 실패하면 또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으나 단번에 성공이다.
 “곱 짜이 라이 라이~~ (매우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는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집은 전형적인 라오스 시골가옥이다. 대나무를 엮어서 벽과 지붕을 삼았고, 집안 바닥은 흙바닥 그대로였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왼쪽에 요리를 위해 모닥불을 피우는 곳이 있다. 부엌이다. 몇 가지 부엌세간도 있으나 한 아름에 전부 다 들 수 있을 정도로 단촐하다. 반대편에는 20여 포대는 되어 보이는 쌀가마니들이 쌓여 있다. 방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한쪽 구석에 대나무로 엮어서 구역을 나누었을 뿐 문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으나 기꺼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자신들의 침대 하나를 내어 주었다. 우리 때문에 오늘 저녁은 아들 2명이 부부와 함께 비좁게 잠을 자야 하는 모양이다.

  목욕을 하기 위해 반바지로 갈아입고 아이의 안내를 받아 공동수도로 갔다. 라오스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따로 갖춰져 있지 않아 공동수도나 개울을 이용한다. 여자들은 긴 치마를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씻고, 남자들은 반바지만 입고 씻는다. 우리도 그렇게 했다. 공동수도는 유럽연합의 원조기관인 European Commission Humanitarian Aid (ECHO, http://ec.europa.eu/echo/)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저녁시간까지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므로 우리는 간식거리로 사 간 과일을 꺼내어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어색함을 덜어 보려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바디랭귀지로 소통했고, 그도 통하지 않으면 그저 눈빛만으로 대화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바깥주인이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라고 부르는 소리에 밥상 앞으로 다가 앉았다. 남자 어른들만 둘러 앉았을 뿐 아이들과 여자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손짓으로 같이 먹자고 했으나 괜찮다며 먼저 먹으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 함께 밥을 먹지 않았었는데, 여기는 아직 그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중에 개울에서 씻을 때에도 어떤 아주머니는 나더러 조금 더 상류로 가서 씻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남존여비사상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확실해 졌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경사회가 그 바탕에 있을 것이다.

  밥상 또한 매우 초라했다. 밥과 국, 그리고 고추가루같은 것 한 종지가 전부였다. 가운데에 촛불도 놓여있다. 분위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기가 없기 때문이다. 밥과 국은 큰 양푼에 담아서 모두 함께 먹는다. 국이라 해야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물 한 가지만 넣고 끓여서 풀냄새가 나는 국이다. 밥상이 꽉 차도록 물도 한 양푼 떠 놓았다. 이렇듯 거친 음식과 잠자리지만, 우리들에겐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순박한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순간, 우리들은 잠자리와 음식을 필요로 하는 여행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그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벌써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북극성은 유난히 밝았으며,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기억밖에는 없는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너무나 풍족한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하지만, 풍족하기에 그 고마움을 까마득히 잊은 채 더 많은 물질을 위해 옆이나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쌍한 삶을 사는 것이리라. 채울수록 빈자리가 커져간다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그것을 알고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나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무앙쿤 ~ 포 : 70km, 비포장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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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민가에 숙박을 정하고 난 뒤, 공동수도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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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시골 민가의 침상>
바닥은 그냥 흙이었고, 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로 엮은 칸막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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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짓는 주인집 아주머니>
저 모닥불이 취사용 화력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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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한쪽에 자전거를 들여 놓았고, 그 옆에서 식사중이다.>
집은 거의 원룸같은 구조여서, 자전거를 세워둔 곳이 출입문이고  저녁을 먹고 있는 곳이 거실같은 개념의 공간이고 그 옆이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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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신세진 민가에서 출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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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주섬주섬 시계를 찾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1시를 겨우 넘긴 시각이다. 라오스 닭은 새벽에만 우는 것이 아닌가 보다. 전기가 없다보니 저녁을 먹고 나면 딱히 시간 보낼만한 것도 없는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든 터라 잠도 오지 않는다. 대나무로 엮은 벽체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바람이 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웃집 아기 우는 소리, 우는 아기 달래는 소리, 이웃집 아저씨 기침소리까지.... 온 동네의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정말 재미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층간소음문제로 다툰 끝에 칼부림까지 나는 소식을 접하지만, 여기선 온동네의 소리가 자장가이다.

  새벽 4:30쯤이 되자 열한두살쯤 되어 보이는 딸아이가 일어나서 아침밥을 짓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나이또래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여기서는 한 몫을 톡톡히 한다. 6살 정도 되는 아이도 2살짜리 동생을 업고 다닌다. 사람이 곧 노동력인 것이다.

  아침을 먹고 떠나올 때 미리 준비해간 약간의 선물과 돈을 감사의 표시로 전해 드렸더니 너무나 고마워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점심으로 먹으라며 비닐봉지에 밥을 싸준다. 우리의 작은 선물로 그들이 베풀어준 호의를 다 보답할 수는 없겠지만 작으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열대의 정글숲길을 지나... 산마을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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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열대나무들과 바나나나무가 무성한 숲 사이로 난 길을 지나 페달을 밟았다. 고도가 낮아지니-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폰사완 고도는 1000m정도인데 비해 이곳은 대략 200m정도-기온이 올라가는 낮에는 매우 덥다. 11월인 지금은 건기 중에서도 그나마 서늘(?)한 편이라고 하니, 3~4월에는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민가가 거의 없는 산중을 한참 지나서 산을 내려오니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븐홈 마을이란다. 마을에서 유일한 가게에 들어가 라면을 집어 들고 끓여 달래서 아침에 아주머니가 싸준 밥과 함께 점심으로 먹고 나니 다시 땡볕에서 라이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더위도 식힐 겸 인근에 있는 강에서 잠시 물놀이를 하고 가기로 한다. 투망을 손질하던 아들을 부탁하여 함께 강으로 갔다. 논둑길을 지나니 작고 아름다운 강이 숲 사이로 흐르고 있다. 수심은 깊지 않았으나 물살이 매우 빠르다. 시원한 물속에 누우니 한낮의 열기도 저만치 물러간다. 물속에 잠깐 누웠을 뿐인데, 어느 틈엔가 벌써 거머리 한 마리가 배에 붙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도랑이나 논에서 거머리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녀석이다.

  븐홈마을에서 한낮의 더위를 잠시 식히고 다시 출발!! 마을을 벗어나 얼마를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강변을 따라가면 타씨(Thasi)를 경유하여 좀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산길을 넘어 오늘의 목적지 무앙후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븐홈마을에서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그러나 거리의 단축은 또 다른 고난을 가져왔다. 산길의 경사도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더운 날씨 속에서 가파른 비포장 오르막을 오르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90년대 말 포장되기 전에 올랐던 한국의 조침령이 생각났다. 고개를 넘어서 다운힐은 역시 신난다. 밀림 속에 난 좁다란 길은 겨우 자동차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인데, 길 양옆으로는 싱그러운 열대우림이 우거져 있고 저쪽으로는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밀림속을 한참동안 다운힐하고, 작은 개울을 건너고, 길가에 너댓 가구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고, 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인해 진창이 된 길을 지났다. 더운 날씨 때문에 물을 많이 마셔서 1리터짜리 물통 2개와 1.5리터 물통하나가 이미 바닥이 났다. 아직 두어시간은 더 라이딩하여야 마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물이 흐를 만한 곳을 살펴보며 얼마간 가다보니 벌목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린 염치 불구하고 물통을 들고 달려가 물을 나누어 달라고 졸랐다. 인부들의 허락을 채 듣기도 전에 물통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후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다시 산길을 다운힐 한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될 즈음하여 좀 큰 마을이 나왔다. 마을 이름을 물어보니 남프아라이라고 한다. 지도와 GPS를 살펴보니 오늘의 목적지로 삼은 무앙후앙이 가깝다. 시간은 4:30이니 내쳐 달리면 무앙후앙까지 가는데는 문제가 없겠으나 번화한 무앙후앙보다는 시골마을에서 묵고 싶었다. 가게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들이키고는 주인아저씨에게 하룻밤 재워 달라고 부탁했다. 역시나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아무리 라오스라지만 도시에서는 경계부터 하겠지만 시골인심은 어디나 후하다.

  다음날 아침, 마을을 떠나 무앙후앙으로 향했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무앙후앙에 있는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옆으로 천천히 다가가 싱긋 웃어보이며 “싸바이디~~(안녕)”하니 아이들도 인사를 건네 온다. 라오스 말을 거의 할 줄 모르니 더 이상의 대화는 힘들지만, 우리들은 그냥 웃음으로 말했다. 우리가 좀 앞서가면 아이들은 열심히 페달을 밟아 금새 따라 붙었다. 그러고는 또 웃었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왔던 황토길이 우리의 자전거여행처럼 벌써 아득하다.

  포 ~ 남프아라이 : 60km, 비포장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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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 딸이 밥을 짓고 있다.>
라오스는 주로 찹쌀밥을 먹는데..  밥짓는 방법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우선, 물만 끓인다음 끓는 물에 쌀을 넣고 휘~휘~ 저어가며 한소끔 익힌다.
그런다음, 사진에서 처럼 채에 받쳐 건져낸다.   건져낸 쌀은 아직 덜 익은 상태인데... 이것을 다시 찜통 같은 것에 넣고 완전히 익을때까지 찐다.
찹쌀로만 우리방식대로 밥을 하면... 완전히 떡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찹쌀밥을 먹을 때는 손으로 조금씩 떼어서 조물조물 뭉친다음, 소스에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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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진은 제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coursereview


다른 곳(베트남, 네팔, 중국 운남, 캄보디아)의 자전거여행기는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course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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