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여행일기-추억의 음식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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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여행일기-추억의 음식 한 그릇

필리핀 5 3990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 이름을 듣거나 향내를 맡을 때

머릿속으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애틋한 감정과 사연이 얽혀 있는 음식이 있다.


내게는 짜장면이 바로 그러한 추억의 음식이다.

어릴 적 변변한 먹을거리가 없었던 우리 세대에게

짜장면은 최고의 성찬이 아닐 수 없었다.

오죽하면 그 시절 우리 또래들의 우상은

반장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바로 짜장면집 아들이었다.

그 맛있는 짜장면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그 애가 너무도 부러웠던 것이다.


우리들의 장래 희망 1순위도

짜장면집 주방장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짜장면집 주인보다

주방장이 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주인보다 주방장이

짜장면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그 나이다운 유치한 생각 때문이었다.


식구 중 누군가의 생일이나 명절날,

온 가족이 새옷을 입고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요즘은 짜장면을 주로 배달해서 먹지만

당시에는 짜장면집에 가서 먹었다.

별다른 이벤트가 없던 그 시절에는

외식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만큼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짜장면집에 가면 내가 단골로 향하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주방이다.

당시의 짜장면집들은 지금처럼 기계로 면을 뽑지 않고

100% 손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수타면이라고 하는 그 면 만들기 신공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주방장은

우상의 지위를 뛰어넘어 영웅이었다.


밀가루 한두 대접을 도마 위에 쌓은 후

물을 약간 넣고 몇 번 주물거리다가

어느 정도 반죽이 되면 양손으로 길게 늘어뜨리다가

도마 위에 냅다 패대기친다.

그때 도마 위로 떨어지는 밀가루 반죽 소리가

왜 그렇게 우렁차고 통쾌하게 들렸는지!

그렇게 몇 번의 패대기질과 늘어뜨리기를 반복하면

한 덩어리였던 밀가루 반죽은

어느새 수백 가닥의 면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짜장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거나

짜장면 특유의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면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까까머리 코흘리개 시절의 풍경들이

머릿속 한 구석에 신기루처럼 떠오른다.

비록 입성은 초라하고

먹을 것도 변변찮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사람들과 세상살이가

지금보다는 따뜻하지 않았던가?


2000년에 동남아를 8개월 동안 여행할 때

말레이시아 페낭의 한 호커센터에서

짜장면처럼 보이는 음식을 발견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마주친 그 음식은

향수병에 시달리던 내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페낭에 머무르는 1개월 동안

그 집을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짜장면을 보면 그 집이 생각나고

망명자들의 집합소 같았던 페낭의 거리와

한동안 깊은 신세를 졌던

치 부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푸켓에 가도 짜장면과 비슷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푸켓타운 시계탑 로터리 근처에

몇 군데 국수집이 있는데

그 중 한 집에서 짜장면과 비슷한 음식을 판다.


한국 여행자들에게 소문난 집은

‘쏨찟’이라는 국수집인데

내가 단골로 가는 집은

그 집 옆에 있는 ‘미팟 혹끼엔’이다.


이 집의 짜장면은 돼지고기, 해물,

믹스(돼지고기와 해물 섞은 것), 세 가지인데

나는 주로 믹스를 먹는다.

주문받을 때 계란을 넣을 거냐고 묻는데

개인적으로는 안 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믹스에 계란을 넣으면 50밧이다.


이 집의 단점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국수집이 30초 이내에

음식이 나온다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오래 걸리는 셈이다.

와서 먹고 가는 사람도 많지만

10~20인분씩 포장해가는 사람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종업원들이 무뚝뚝한 것도 감점요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뛰어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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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계란... 50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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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국집처럼 양파를 반찬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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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된 간판...

5 Comments
월야광랑 2008.01.18 12:56  
  엽차도 주나요? ^.^
kris1 2008.01.18 14:00  
  작년에 메트로폴 앞에 주차해놓고 국수 먹다가...주차위반으로 바퀴에 자물쇠....ㅋㅋ 그래도 푸켓 갈때마다 란짠펜과 쏨찟은 항상 제 리스트에...^^
나마스테지 2008.01.28 01:17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초저녁에 넘 자서 깨어있는데..아 먹고싶네여..초등때 짜장면 집-집주인 딸이었어여ㅋㅎ.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디..짜장면 집에 척가서 앉으면 식사하러 온 아저씨들 제치고 제앞에 음식이 공수되었어여..아~부끄럽다...아저씨들 배가 마니 고팠을틴디..저도 필리핀님처럼 주방에서 반죽치는 거 구경 좋아라해서 늘상 주방으로 달려가곤했져^^아~그때 생각난다..주방장아저씨의 예술~마술~~~~또 생각하니...식구들은 배달해 먹었는디..저만 혼자서 쫄래쫄래 식당으로 마니 간 것 같아여..아마 주방을 기웃거릴 목적으로^^ 탁탁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당~~~~
필리핀 2008.01.29 08:38  
  오우~ 짜장면집 딸이라...
인기 최고였겠네여...[[윙크]]
앨리즈맘 2008.04.01 21:25  
  이건 고문입니다.. 파리엔 저맛을 구경하기 힘든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