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s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 기다림의 끝.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번 나의 여행은 결국
내가 출발하기 전 여행기 제목으로 붙인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여행이 되었다.
이 작은 공간에 15일동안 겪고 느낀 모든 일들을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가슴 한켠에 그 곳과 그 사람과의 추억이 남아있다.
이제 하나씩 기억을 꺼내 되새길 시간이다...
2009년 1월 2일.
어쩌면 너무 기다렸던, 어쩌면 너무 오지 않기를 바랬던 그 날이 왔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공항 버스를 타기위해 하이얏트 호텔로 향했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이른 아침에 날씨까지 꽤 쌀쌀하다.
부디 태국에서 아직 낫지 않은 이 지독한 감기도 낫고
엊그제까지 일로 지친 내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기 위해 수속을 밟으려 줄을 서는데
누군가 아는척을 한다.
[혹시 은별이님 아니세요?]
[헉? 네... 그런데 절 어떻게.....]
[태사랑에서 여행기 읽었어요. 배낭보고 알아봤어요.]
[아 예~~ ㅡㅡ;;]
하하... 내 가방이 튀긴 튀나보다.
하긴 70L짜리 배낭인데 튀지 않을리가 없지.
게다가 ABBA라고 써있지 않나....(무슨 가방상표가 팝그룹 이름이냐...)
뭐 여하튼 태사랑이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가방만으로 날 알아보다니. 쩝~
그렇게 수속을 다 마치고 보딩을 기다린다.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유리창 밖으로 보인다...
7시간 반 후면 난 태국땅을 밟고 태국의 공기를 마시고 있겠지.
치, 무슨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나 왜이러니?
감수성이 갑자기 최고조가 된다.
그리고 6개월만에 다시 밟은 태국 땅.
지금부터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차라리 기약이나 없었음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텐데
돌아올 D-DAY를 정해놓고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기분이다.
그래, 이왕 15일뿐인 시간 후회없이 놀자. 좋았어~~
자, 근데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방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카오산으로 향한다.
예약해놓은 방도 없고 그냥 막무가내다. 성수기라고 뭐 방하나 없겠어?
근데 막상 어디론가 가려니 어느 숙소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 좋아.
용기 한 번 내볼까? 거기로 가보는거야. 재밌을 것 같지 않아? ㅎㅎ
그리고 내가 찾은 그곳은 카오산로드 '사쿠라 게스트하우스'
99.9% 일본 아이들만이 간다는 바로 그 곳이다.
이번에 여행은 그냥 처음부터 모든 걸 내맘대로 멋대로 해보고 싶었던 마음에
과감히 내린 결정이었건만 정말.... 정말.... 100% 실수였다.
사실
뭐, 처음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더럽고 여기저기 일본말만 써있고 일본애들만 있다는 정도. 하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문제는 바로
내가 완전 동물원에 동물이 된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쿠라 게스트하우스에는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의자 몇 개가 놓여있는 smoking area가 있다.
내가 방으로 가기위해선 그 곳을 늘 거쳐야 했는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그곳에 앉아있던 4,5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움직면 움직이는 대로 아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때부터 나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닌 것을 바로 느꼈던 것이다.
음...... 내가 그렇게 신기했니??
내가 방을 나가 그 곳을 다시 거쳐갈 때에도,
화장실을 갔다가 방으로 돌아올 때에도,
물 사러 나갈 때에도,
물 사러 나갔다 돌아올 때에도,
밥먹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앉아
일제히 내 움직임을 따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아놔~
그나저나 니들도 참 대단하다.
니들은 어떻게 그 자리에 6,7시간동안 꼼짝도 안하고 앉아
내가 움직일 때 마다
일제히 똑같은 눈동자를 똑같은 방향으로 굴리니. 참나~
여기서 잠깐!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그 악몽의 smoking area 잠시 공개~
그렇다....
결국 난 거기에 지쳐버렸다.
그 낯선 시선들에 사쿠라가 악몽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일 무조건 체크아웃하고 나갈버릴테다, 젠장.
나름 사교성도 좋고 일본어도 할 줄 알아서 이곳에 왔더니만 이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DDM갈 걸 그랬다.
괜히 첫 날부터 기분 쉣이다.
속상한 마음에 리셉션에 있는 태국 남자에게 말을 건다.
[나 한국 사람인데 여긴 가끔 외국애들도 와? 일본애들말고]
[아니, 나 일한 이래로 외국사람은 니가 처음이야.]
[그....그래? 그래서인지 애들이 날 이상하게 봐.
그나저나 너 여기 일한 지 얼마나 됐는데?]
[어? 나 한 달 좀 안됐어.]
[.........]
이건 뭥미? 겨우 한 달 안에 내가 처음이라고?
그럼 그 전 일은 모른다는 거 아냐?? 아놔~
여하튼 이런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하며
리셉션 맞은 편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렇다....
나 그렇게 기다리던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한지
불과 하루도 안됐는데 벌써 누군가가 그리운 것이다.
이런... 말도 안돼.
혼자서 열심히 즐기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사람이 벌써 그립다니.
그러게 말도 안되게 사쿠라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ㅡㅡ;
뭘 바라고 일본 게스트하우스에 갔니.
귀여운 일본 남자애들하고 어울리며
클럽이라도 놀러가서 재미있게 보내는 카오산의 첫날을 기대했니.
즐겁기는 커녕 공식적인 왕따나 됐는데?
어쨌든 오늘 내 한국인의 자존심에 확 금이 갔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하....
그냥 내가 할 일은
그저 내일 이 지옥을 벗어나는 일 뿐이다.(아주 소심하게....)
그래, 그러면 아예 내일 끄라비로 내려가자.
어차피 외로운 인생살이 바닷가에서 외로우면 무드라도 있잖아.
좋아~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