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나를 찾아서...3-3 (아유타야-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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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나를 찾아서...3-3 (아유타야-방콕)

007테디 8 2757
【(툭툭사기 이후) 3일】
 
 
 
지금 돌아보면 툭툭 사기가 아니라 그저 의사소통이 잘못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도 너무 화가나서 아오그냥확.
 
 
내가 내린 곳은 아유타야 기차역이 아니라, 방콕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는, 외딴 버스 정류장이었다.
정말 사람이라고는 동네 한량 3명, 표파는 사람 2명이 전부였다.
아 열받아.
울며 겨자먹기로 버스표를 52밧에 샀다.
버스를 기다렸다.
2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오지않는다.
 
 
여행일지를 쓰고, 아까 코끼리타고 찍은 사진을 보고, 기념품가게에서 산 작은돌에 조각된 코끼리모형들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아 열받아.
표파는곳에 가서 표를 환불해 달라고 했다.
선글라스를 벗고, 당장 바꾸어주지 않으면 가만 안둘꼬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니, 환불해주었다.
 
 
 
나는 아유타야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근처에 있던 세븐일레븐에서, 사실 20분전에 물 한병 사면서, 아유타야역 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물어보았었다.
나에게는 그때 점원이 그려준 지도가 있었다.
지도라고 해야, 이면지 뒤에 모나미 볼펜으로 선 몇개 그려놓은 그런 것이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중요도 1급의 물건이었다.
 
 
한낮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걸었다.
중앙선 부근에는 인도인지, 그냥 화단 옆 조형물인지 모르게, 폭 50cm정도 되는 보도블럭이 길게 깔려있었는데 그 위로 정처없이 걸었다.
간혹 툭툭 기사들이 옆을 지나며 나를 부르고, 흥정을 시도했지만,
이미 한번 심하게 데인터라 나는 그냥 계속 걸어갔다.
 
 
이왕 걸어가는거 즐겁게 걸어가기로 했다.
이국의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약간의 설레임을 품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걸
으려고 해도, 아까전의 일만 생각하면 아오.
점심밥도 못 먹고 이게 뭐야.
 
 
참고로 아유타야에는 방콕 시내만큼 먹거리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오래 걸었지만 식당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유타야에 올 때에는 먹거리를 약간 챙겨오는게 좋을 것 같다.
 
 
한참동안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점점 아유타야역을 떠나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첫번째 만난 분은 현지인 아주머니 40세.
'실례합니다.'
'^^;;;'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며 도망가셨다.
 
 
두번째 만난 분도 현지인 아주머니 40세.
'실례합니다^^'
'?'
'야유타야 역.'
 
 
어느순간 깨닳은것은,
부차적인 단어들 (어디로, 얼만큼, 어떻게, 가야합니까, 등등등...)은 현지인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최대한 요점 단어만 공손한 태도로 이야기 하여 의사 전달을 하는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아유타야 기차역'
나는 만렙인 몸짓언어를 사용했다.
아주머니는 약간 이해하신 눈치였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머니는 이해하셨는데, 내가 이해를 못하겠다.
태국어를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말씀 중간중간에 으흠, 아, 으흠, 아, 추임새를 넣어드렸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갑자기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선생님)'이해되니?'
(취준생)'네.'
 
 
계속 걸어갔다.
길가에 옷가게와 카페를 같이하는 가게가 보였다.
노천카페에는 평범한 아가씨 3명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젊은 그들은 나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다가갔다.
지도를 꺼내어 보여주며 물어보니, 그들은 이해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유여행으로 태국에 갈때에는 반드시 태국어 회화사전을 지참하도록 하자.
 
 
그들 세명은 서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한 명이 나오더니, 거기에 서 있는 차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미를치는 행동을 하였다.
아마도 더위에 지치고, 점심밥 굶고, 다리아프고, 말이 안 통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나 보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차를 타니 그 아가씨는 나에게 뭐라고 말했고, 나는 지도를 보여주며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아유타야 기차역을 가리켰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알았다고 했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자신이 영어를 못 한다고 몸짓언어로 말 해 주었다.
 
 
차가 출발했다.
차가 출발하고 20초 후,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 미를 쳤구나.'
 
 
그리고 그 순간, 급속도로 나의 이성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외교통상부 사이트나, 여행자 주의사항 안내 책자들에서 읽은 문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이글이글 타 오르는 불꽃처럼, 한 자, 한 자, 선명하게 떠 올랐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절대 낯선 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엄마가 생각났다.
아빠 까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엄마가 생각났다.
이번엔 아빠가 약간 생각났다.
그리고 타이나라가 생각났다.
 
 
여행상품 신청만이 아니라, 사소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뭐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사실 이건 레터박스 홍보 문구였다.
 
 
아무튼 타이나라에 전화했다.
 
 
'사장님, 제가 지금 낯선사람 차를 탓는데요.'
 
 
내가 말 해 놓고도 참 어이가 없었다.
일행없이 혼자 여행하면서 낯선 사람차를 타다니.
사장님은 일단 차분한 목소리고 나무라셨다.
'왜 타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이때에 내 머릿속에는 정확히 5:5로 두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납치를 당하면 어쩌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 돈은 얼마를 줘야하지?
 
 
사장님은 침착하게 차의 종류, 운전자 성별, 기타 상황 등등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리고 아마도 선의로 태워주는 것 일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약간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어느 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더니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가 몸짓언어로 저 가게에 좀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계속 하였다.
 
 
 
나는 혹시라도 아유타야역까지 데려다준다고 해도, 이후에 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가 먼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이상, 먼저 돈을 꺼내거나 하지는 말라는 대답을 들었다.
선의로 도와주었는데 돈을 보이면 기분나빠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물건같은것들이 있으면 주는것도 좋을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물건같은것들은 없었다.
 
 
'아, 그런게 없는데요?'
'없나요?'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갑자기,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가, 음료수페트병 하나와 빨대를 내밀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괜찮다고, 받으라고 하였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저, 방금전에 저 분이 음료수를 주시길래 안 받았어요.'
'잘 하셨어요. 혹시 선의로 태워주신다고는 해도, 음료수는 절대 마시면 안되요.'
 
 
이건 뭐, 첩보영화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하는게 참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 후,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다시 차로 돌아왔고, 조수석에 무언가를 놓았다.
...영수증같은것 이었다.
 
 
저기 적혀있는 저 숫자는 나의 몸값인가
 
 
별 해괴망측한 생각을 다 했다.
아무튼 타이나라 사장님은 다시 한번 음료수는 절대 마시면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조심히 넘어오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나서, 별 생각을 다했다.
나에게 만약 무슨일이 생긴다면, 타이나라 사장님이 나의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 주시겠지, 라고 무작정 생각했다.
 
 
창밖을 보면서, 차 안의 시원한 에어컨을 쐬면서,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어느샌가 조금씩 조금씩 정신없던 머리가 차분하게 정리되는걸 느꼈다.
생각이 차분해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고,
나는 왠지 아유타야역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것이, 여권가방에 한국에서 가져간 후라보노 두 통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잘 도착하고 나면, 후라보노 한 통을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에게 선물해야지.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 여행책자 뒤편에 간단한 태국어 몇개가 실려있던것이 생각났다.
나는 거기에서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에게 해 줄만한 말이 뭐가 있을까, 골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아유타야 역에 도착하였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나를 아유타야역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하면서, 여행책자를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내가 하고싶은 말이, 태국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내가 한 자, 한 자, 짚으며 서툰 태국어로 말 할 때 마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아하, 하는 표정과 함께 미소지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나는 학생입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는 자신 앞으로 책을 가까이 당기더니, 본인도 하고싶은 말을 골라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언어로 소통하지 못했지만, 표정과 몸짓과 몇가지 도구를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 도구의 충분한 활용에 있지 않고,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와 내가 똑같은 사람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1시간 전만 해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 하던 사람들이,
길잃은 불쌍한 여행중인 취준생과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아가씨로 만나서 도움을 주고 받았다.
신기한 만남이었고, 좋은 만남이었다.
긴장과 불안의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감사로 마무리 된 이 만남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이후 나는 답례로 후라보노 한 통을 드렸다.
아유타야역에서 후아람퐁행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저쪽에 앉아계시던 또 할아버지를 보았다.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30분이상 늦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시간은 올때의 시간보다 1시간여 더 걸렸다.
하지만 참 많은것을 머릿속에 담은 하루였기에, 오늘 하루를 하나하나 정리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방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카운터로 내려가서 다시 부탁을 하고 카오산으로 나갔다.
내일 아침에는 카오산을 떠날 것 이기에 열심히 구경하고, 이것저것 사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청소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씻으려던 나는, 내 칠키로 배낭 속에서 bed bug를 발견하고,
아유타야와 카오산에서의 피로를 달랠새도 없이 1시간동안 짐을 뒤집고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는 밤 12시 조금 전에 잠들 수 있었다.
 
 
내가 아유타야역 이후의 일정을 간단하게 적은 이유는,
여행기를 읽는 여러분이 오늘의 내 일정들 중에서도 '친절한 사람과의 만남' 에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다.
해외여행에는 참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고, 그 위험들 중 대부분은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고, 그 피해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사람이 해를 입히고, 다른 사람이 해를 입는다.
하지만 이런 위험들 속에서도 나는 친절한 사람을 만났고 도움을 받았다.
이 가슴벅찬 감사함과 감동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고, 나는 이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여러분도 이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분도 혹시 어느날엔가, 나처럼 얼이 빠져서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이런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친절에 감동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더 큰 친절을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
 
 
*기억해야 할 점*
-낯선사람의 차를 타면 안 됩니다.
-낯선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면 안 됩니다.
-여행지에 가기 전에 정확한 지도를 준비합니다.
 
 
*카오산로드에 대하여*
-카오산로드는 유흥거리 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약간 이질감을 느낄수 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노점상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으며, 하룻밤을 목적으로 오는 여행자들도 매우 많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낯선사람이 친절하게 인사한다고 해서 같이 인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즐겁고 유익한 태국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타이나라 여행사 사장님께 이 자리 빌어 감사를 전합니다.
8 Comments
대쥬신 2013.01.27 23:37  
저도 감사합니다.
깔끔한 여행기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ock 2013.01.28 00:31  
정말 담백하면서 귀여운 여행기였어요
잘 봤습니다.
새삶을꿈꾸는식인귀 2013.01.28 17:20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시는 일지입니다. ^^
글솜씨도 좋으세요~
나마스테지 2013.02.03 16:04  
추임새ㅋㅋ
아주 잘돌아다니시네요.부럽!
체력이 좋으신가봐ㅠ
Wizard 2013.02.05 08:26  
작은 것 하나하나가 생생한 여행기네요. 글솜씨에 반했어요
hobbang 2013.03.05 18:05  
전 하지 말아야할거 두가지 다 했네요. 다행히 저도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청년을 만나서 별일은 없었지만요^^ 그때 저도 더위에 정신을 놨었나봐요. 근데 그 평범하고 친절한 운전자 청년이 잘가라고 인사하면서 앞으로 절대 남의 차는 타지 말라, 남이 주는 음식 먹지 말라, 나는 나쁜사람 아니지만 여행자를 노리는 나쁜사람 많다... 조심해라 등등등 헐@.@ㅋㅋㅋㅋ
날자보더™ 2013.03.29 17:09  
뒤늦게 글 정말 잘 읽고있습니다.
계속해서 정주해..(O_O)
seyi0823 2014.07.11 16:14  
저도 나중에 이런식의 여행기를 작성하고싶네요 ㅎㅎ 물론 부끄러우니 혼자만 보게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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