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13 - 빈둥빈둥 쌈쎈, 상 받은 똠얌꿍
여행 4일차
이틀 연속 강행군을 했다.
왕궁과 므앙보란
원래는 위만멕을 볼 계획이었으나,
주말이라는 특성상 짜뚜짝을 보러 가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
짜뚜짝으로 일정을 변경한 상태였다.
내 원래 계획은 이러했다.
방콕에 도착하면 첫 날은 가볍게 오후 반일투어만 하고,
둘째날 부터 4째 날 까지 "빡세게" 돌아다니고
5, 6째 날 반딧불 투어하고 암파와에서 1박 후에는
나머지 일정은 널럴하게 잡아서 시내를 잠깐 다녀오고 호텔수영장,
늦잠 자고 호텔 수영장,
호텔 수영장 갔다가 근처 시장
이런 식으로 짰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일정을 몰아서 배치하고 그 때는 호텔에서 잠만 잘거니까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골랐다.
암파와 및 그 뒤 숙소는 좀 잘 쉬어야 하니까 제법 괜찮은 숙소를 골랐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이론은 좋은데,
실제로 체력이 안받쳐줬다.
우리는 짜뚜짝이고 뭐고 그냥 좀 자고 싶었다.
일어나기 싫었고, 몸이 일어나 지지 않았다.
너무 돌아다녔어 ㅠㅠ
사실, 예산을 넉넉하게 잡지 않아서 환전을 적게 해온지라
돈 걱정에 쇼핑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나의 첫 방타이 3박 5일은
각종 투어와 구경으로 빽빽한 일정이었던지라,
1일 5식 하려던 계획은 이룰 수가 없었다.
호텔 조식, 사먹는거 한 번 이렇게 1일 2식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투어 일정을 빡빡하게 잡느라 식당에서 뭐 사먹는 시간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식당으로 가야 하고(우리나라가 아니니까 아무리 조사를 하더라도 찾아가는 길에 약간 헤매게 되어 있다),
식당에서 메뉴를 보며 한참 고민을 해서 결정을 해야 하고,
주문하면 바로바로 나오는 경상도 식당과 달리 쫌 기다려야 하고,
우린 축구하려고 점심을 3분만에 마시는 남학생이 아니므로 밥 먹는 시간도 필요하고,
그렇게 밥을 먹고나면 한 숨 돌릴 시간도 필요한데
지난 번에는 그런걸 전혀 고려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미리 예약한 투어며 호텔비는 전부 계산을 마친 상태로 환전을 하루 천밧 정도로 충분히 해갔지만
너무 못사먹은 덕에 돈이 많이 남았고,
쇼핑을 많이 했는데도 돈이 남았었다.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이번엔 단순하게 지난번 소비를 기준으로 환전을 했으니..
돈이 모자랄 수 밖에.
게다가 초반에 입장료 비싼 왕궁도 가고 므앙보란도 갔으니..
예산이 위태로웠다.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이러다가 이국땅에서 돈이 없어서 집에 못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불안했다.
그래서 쇼핑은 재끼기로 한다.
물론 동생에겐 피곤하니까 쉬자고 말했지만.
하지만 이렇게 걱정을 하면서도 난 먹는건 잘 챙겨 먹었는데,
그 이유도 역시 첫 방타이의 경험이다.
음식 천국인 태국에서 투어하느라 쫄쫄 굶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그 무엇도 먹어보질 못했다.
심지어 쏨땀 한 번, 팟타이 한 번, 망고(망고밥 아님) 한 번 먹은게 전부다.
태국을 다녀왔는데, 수박쥬스도 못먹었고, 망고 스무디도 못먹었고, 로띠도 못먹었고, 쏨땀누아도 못먹었고, 등등등
못먹은게 너무 많아서 한이 맺힌거다.
여기서 동생의 지론
사람은 한이 남는건 질릴 때 까지 해봐야 한이 풀려서 그 다음엔 안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사먹자는걸 굳이 말리지 않고 다 같이 먹었다 ㅋㅋㅋㅋ
그렇게 또 조식을 놓치고 점심때 까지 자고 일어난 우리는
알로하 하우스에서 상 받은 똠얌꿍을 점심으로 먹으러 출발했다.
일단 호텔 바로 1층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콘파이 하나 사먹고,
동생이 가져온 조리가 바닥이 일어나서 분리가 되었기에 하나 새로 사고
(199밧 붙어있던걸 깎아달라고 하니 190밧 주라고 하던데, 더 깎을 수 있을것 같았지만 어제의 일도 있고,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빨리 가고싶어서 그냥 달라는대로 주고 샀다.)
길거리에서 깎아놓은 망고도 하나 사먹었다.
첫 날 사원 뒷문에서 사먹은 아줌마네 망고는 맛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이건 가계부에 안들어가 있구나..)
이 날 사먹은건 너무 맛이 없었다.
오래되고 말라서.. 게다가 배기가스 먼지가 시껌시껌하게 붙어 있어서..
그래도 첨에 받을 때 아무 생각없이 받았던지라
그냥 다 먹었다.
길은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 쉬웠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라 그래도 긴장하면서 갔다.
다리를 건너고 처음 나오는 건널목을 건너면 거기가 바로 알로하 하우스다.
햇빛이 제법 강했지만 우린 썬크림을 떡칠하고 나왔으니까!
움하하하!!
유명한 집인데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점심피크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건가..
똠얌꿍 하나와 어제 동생이 쏨땀누아에서 시킨것과 유사한 돼지고기 요리를 하나 시키고,
밥 두 개와 물을 하나 시켰다.
메뉴를 보면서 그 돼지고기 요리에 랏카우가 가능하냐고 묻자 주인 아저씨가
약간 성질을 내면서 그런거 안된다고 그냥 메뉴 그대로라고 했다.
아저씨 얼굴도 살짝 사천왕스럽게 생기셔서 화내니까 무섭다.
후기엔 겁나 친절하고 사람좋고 한국 좋아한다더니 그런거 없나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물이 제일 먼저 나왔다.
좀 더 기다리니 아저씨 딸이 학교를 마치고 온건지 교복을 입고 들어왔다.
그 뒤에는 아저씨 딸이 우리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상 받았다는 똠얌꿍
새우의 크기는 푸아끼에서 먹었던 것 보다 작다.
입이 둔해서 푸아끼랑 뭐가 다른지 잘은 모르겠지만
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어딘가 더 깊은 맛이 나는거 같기도 했다.
동생님이 주문한 돼지고기 요리
김치가 같이 나오는게 인상적이었다.
돼지고기 튀김이면 맛은 보장된거지.
단체샷
맛있었다.
근데.. 생각보단 가격이 좀 나가더라고.
똠얌꿍이 149밧이었는데, 똠얌만두는 50밧이었던것 같다.
같은 국물이면 새우에 집착하지 말고 똠얌만두로 먹는게 더 좋을것 같다.
우린 다음에 똠얌만두 먹어보자~ 해놓고 다음에 못갔다.
다른데도 갈데가 너무 많아서 ㅋㅋ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상을 받으신 주인공, 주인 아줌마가 엄마미소를 띄고 나오셔서
음식이 어떠냐고 물으신다.
사천왕같은 아저씨랑 닮은 얼굴이지만 인상이 너무 좋고 엄마같아서 묘하게 다른 사람같다.
아줌마에게 엄지를 들어보이며 난 너무 맛있다고 오바를 했다.
상 받으신거 안다고, 그래서 먹으러 왔는데 역시 맛있다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흡족한 표정으로 가서 딸이 밥 먹고 있는 옆에 앉아서 같이 식사를 하신다.
이 분들도 점심장사 끝나고 이제 점심 드시는가 보다.
근데 아줌마가 딸래미한테 뭐라고 하더니 딸래미가 우리한테 뭘 하나 갖다준다.
아줌마가 시켜서 딸이 우리에게 갖다준 것
달고 저 노란 것은 밤 씹는 느낌이었는데
밤 맛은 아니었다.
단호박이라고는 하는데 그것 치고도 달았고,
나중에 생각하니 저 식감은 양갱에 가까웠다.
이게 뭐지? 된장국인가? 이러면서 한 입 먹어봤는데
달았다.
국이 아니구나.. 그럼 뭐지?
맛이 있고, 어디선가 먹어본 맛 같기도 한데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이게 뭔지 물어봤더니
단호박이란다.
단호박이 이런 맛이 났던가?
신기해 하면서 후식으로 싹싹 긁어먹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으니까 아줌마는 진짜 환하게 엄마미소를 띄고 우리를 바라보신다.
우리가 잘 먹으니까 아저씨는 장난기 어린 말로 이렇게 우리에게 이야기 했다
"스윗 펌킨, 잇츠 스윗. 이프 유 잇 댓 투 머치, 유 윌 비 '뚱뚱'"
뚱뚱이란 단어를 한국어로 사용했다.
순간 찔려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Oh, it's OK, I'm already 뚱뚱"
이라고 받아치자 아저씨가 무슨 소리냐며 그렇지 않다고 오바 하셨다.
조금이라도 싸게 먹으려고 랏카우 되는지 물어본 우리에게 화를 내듯 안된다고 했던 아저씨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아줌마의 따뜻한 마음으로 봄날에 눈 녹듯 사라지고
접시를 깨끗히 비운 우리가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가려고 하자
아저씨가 거기 서보라면서 우리 사진을 찍었다.
맨날 찍기만 하다가 찍히니까 기분이 묘했다 ㅋㅋ
아저씨 카톡도 많이 하시던데 ㅋㅋ
한국 좋아하긴 하시는 듯 하다.
그렇게 또 배가 찢어질 듯이 부른 상태로 가게를 나와 오던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겁나 싱싱한 해산물로 고급 팟타이를 만들어 준다는 테휏의 팟타이 가게가 어디쯤 있나 볼 겸 해서
동생에게 근처에 꽃시장이 있는데 보러 가자고 꼬시니 순순히 따라온다.
근데 꽤 걸어서 이제 곧 태사랑 지도에 표시된 지점이 끝나갈 즈음
슬슬 더 걷기가 싫어졌다.
오늘은 쉬기로 한 날인데 이렇게 참고참고 또 참으며 캔디처럼 걸어야 하나 싶다.
날도 덥고.. 그냥 에어콘 나오는데서 편하게 앉아서 쉬고싶었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4시가 다 돼 갔던가) 꽃시장에 가봐야 뭘 볼까 싶었다.
그리고 굳이 꽃을 살것도 아니고..
내가 꽃을 보고 감탄할 만큼 아직 감수성이 살아있는것도 아니잖아?! 싶은 생각까지 이르자
바로 옆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여행을 가면 예쁜 커피숍에 앉아서 빈둥거려보고 싶던 로망을 지금 이룰 수 있다!
동생에게 피곤해서 카페인이 땡긴다고 하면서 저기 들어가자고 하니
또 순순히 응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카페인 러버>
우리는 그 순간 보물을 찾았다는걸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