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25 - 마지막까지 삽질
호텔 로비에서 예약해둔 공항행 미니밴을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우리를 불렀고, 영수증을 보여준 뒤 차에 탔다.
이제 정말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가장 아쉬울 때라고 하신 것과는 달리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아, 이제 집에 가는구나' 하는 정도의 담담한 마음이었다.
봉비방님 글에서 본 것 같은데, 그 분은 15일 이상을 장기여행으로 생각하신다고 했다.
그 때 쯤 처음으로 향수병이 오기 때문이란다.
나는 향수병은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감정이 올라올 때 즈음해서 방콕을 떠났던 것 같다.
여행중에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있거나
저녁에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인터넷을 했는데,
가장 많이 한 것이 태사랑 방문 및 댓글 확인이었다.
수시로 올리는 생존신고 글에 달아주시는 댓글 중에는 물어볼 생각도 못했던 부분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핫한 여행기였던 pf13님의 글도 수시로 체크했다.
사진이 없는 여행기라 태국에서 읽기에도 좋았다.
하필 내가 태국을 떠나는 날, 로비에서 미니밴을 기다리던 그 때에 여행기가 올라와서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그걸 읽겠다고 굳이 작은 폰을 들여다 보다가
멀미로 토할뻔 했다;
원래 한국에서도 고속버스 안에서는 책 못읽는 사람이었다.
좀 기다렸다가 공항에 도착해서 봐도 됐을텐데 (수완나품에서 한 시간 무료 와이파이 준다고 하는걸 나중에야 알았고, 당시에 와이파이를 잡으려 해도 하나도 안잡혀서 노랭이같은 수완나품이라고 욕을 하며 무료한 대기시간을 보냈다.)
그 땐 빨리 읽고싶은 마음이 앞섰고,
무엇보다도,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보는 재미가 그닥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었다.
담담한 마음이어서 그런지 앙큼오시님처럼 마지막 날이니까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렇게 멀미기운이 돌아서 가까스로 진정을 시키고 공항에 도착했다.
8시 미니밴으로 예약해도 충분할거란 댓글은 7시 미니밴을 예약하고 난 후에 본 것이어서
우린 티켓팅 전에 또 공항에서 기다렸다.
인천공항과는 달리 수완나품 공항에는 벤치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그냥 앉는 여행자들도 많았다.
우린 그나마 체크인 카운터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아 나이쏘이를 먹고 온 동생보다 배가 고파서
남은 과일을 꺼내서 열심히 먹었다.
어차피 면세구역 들어갈 때 버려질 것들이니, 버려지기 전에 먹어야 한다.
열심히 두리안을 먹고 있는데
(사실 호텔 로비에서는 냄새난다고 할까봐 못 먹고 눈치를 봤는데, 돗데기 시장같은 수완나품 출국장에서는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중국 사람으로 보이는 (중국인인지 홍콩인인지 대만인인지는 모르지만) 커플이 우리 옆 의자에 앉으려고 우리 쪽을 보면서 왔다.
열심히 먹고 있던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무안해서 내가 '좀 줄까?' 하는 제스쳐로 두리안을 조금 들어보이자
자기들은 냄새나서 안먹는다는 제스쳐를 했다.
물론 기분나쁘지 않게..
알았다고 하고 나는 또 두리안을 먹었다.
한참을 열심히 먹으니 망고스틴은 다 먹었는데, 두리안은 반이 남았다.
일단 봉지를 여미고 정리를 한 다음 손을 씻고 와서 다시 앉았는데,
심심해서 내가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여친이 뭘 사러 갔는지 혼자 앉아있던 그 중국남성이 내 폰을 슬쩍 본다.
그러더니 사진 좀 보자며 폰을 뺏어간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순순히 폰을 넘겼다.
몇 번 넘겨보더니 다시 나에게 폰을 주었는데,
몇 장만 더 넘겼으면 내 셀카카 나왔을 텐데 다행히 거기까진 안보고 비슷한 사진이 많아서 지겨웠는지 금방 넘겨주었다.
그렇게 또 앉아있었는데 그 남자가 말을 건다.
중국말로.
나는 중국어 못하고 한국 사람이고 영어만 쪼끔 한다고 영어로 이야기 했는데,
영어도 못알아듣는것 같았다.
혼자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한궈른"이 들렸다.
그래서 거기서 ㅇㅇ 이러면서 한국인이라고 이야기 해줬더니 알아 들었다.
앞에 있는 티켓 창구를 가리키며 이 비행기 기다리냐고 물어왔다.
중국계 항공사여서 나는 다른거 탄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그는 중국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한국어/영어/고개 끄덕거림 혹은 고개저음으로 대답하며 짧은 소통을 했다.
영어를 전혀 못하시던 택시기사님때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런 대화였다.
그 중국인 커플은 우리보다 먼저 티켓팅을 했다.
우린 더 기다리다가 티켓팅을 하고 들어갔다.
체크인 과정에서도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카운터 줄 앞에 캐리어를 줄세워두고 갔다.
그래서 동생이 그걸 보고 우리 가방도 줄을 세워두었는데,
카운터가 열린 후에도 그 주인들이 오지 않아서 뒤에 있던 우리가 그냥 카운터로 나가 버렸다.
카운터 열 시간이 되지 않아서 앉아서 기다리던 태국 현지인 남자 직원은 우리에게 발권을 해주지 않고
딱 체크인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한국이었으면 그냥 시작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그 사이에 가방 주인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먼저 줄을 세웠으니 먼저 발권을 하겠다고 한다.
그 주인들 바로 뒤에 가방을 줄세웠던 나는 싸우기 싫어서 그러라고 했는데,
현지인 가이드로 보이는 남자가 여권 뭉치를 들고와서 그러는 통에 내 바로 뒤에 있던 커플은 열이 받아서 안된다고 했다.
(줄 세운 가방은 여섯개)
그랬더니 여행가방 주인 중 한 사람인 듯한 아저씨가
"이 공항은 원래 그래요. 가방으로 줄 세워두는거에요. 우리가 먼저 왔어요. 여긴 원래 그래요."
이런다.
원래 그렇다라..
딱히 이유를 대지 않아도 그럴듯한 이 말을 나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원래가 어딨나
원래는 없다.
뭐든 바뀌기 마련이다.
양천의 구분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고, 한 번 부자면 '영원한' 부자도 아니고, 한 번 가난하다고 '영원히' 가난하지도 않다.
지구를 정복할 것만 같던 징기스칸이나 로마제국도 결국에는 망했고,
현재의 기술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고도의 고대문명들 역시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래는 없다.
이건 손쉽게 자신의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한 그럴듯한 개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한 마디 했다
"아저씨, 원래는 없어요. 싸우기 싫으니까 먼저 해도 좋은데 원래 그런건 없어요."
손이 매우 느린데다가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그 태국 직원은 그런 상황에서 더욱 줄 선 승객들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
그렇게 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최대한 빨리 G구역 CIP라운지를 찾아갔다.
발급받은 PP카드를 쓸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르는 이번 여행에서의 유일한 사용가능처이기 때문이다.
CIP라운지는 여기저기 있다고 하는데, G구역에 있는 것만 샤워룸이 있어서 굳이 거기로 갔다.
pp카드는 내 것 하나 뿐이어서, 동생은 돈을 내고 들어갈 계획이었다.
공항안에서 간단한 다과와 샤워는 27불을 내도 좋을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카드로 계산하겠다고 하고 내밀었더니 이것들이 지들 마음대로 천바트를 결제한다-_-
분명 27불로 알고 갔는데..
이거 뭐냐고, 27불인데 왜 바트로 계산하냐고 했더니
여긴 바트만 받는단다.
헐.. 공항에서 달러가 안된다는게 말이 됨??
이런 사기꾼들을 봤나
아마도 되는데 안되는척 하고 바트로 결제한 거겠지..
27불 만큼 라운지 회사에 내고 차액은 삥땅하는 거겠지.. 싶다.
근데 싸울 기운도, 시간도 없다.
괘씸하고 짜증나고 분하지만 우린 샤워하고 다과를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게다가 동생은 면세점 구경도 하고 싶다고 해서
싸울 시간이 없다.
짜뚜짝에서 쇼핑을 많이 하지 않아 많이 남은 현금으로 계산하겠다고 하고 카드를 취소시켰다.
천 밧을 주고 들어왔다.
샤워룸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시설은 별로다.
수건이 호텔만큼은 아니었다. 크기도 작고 하나 뿐..
비품도 아주 간단하게만 있어서 역시 여성 여행객들은 자기가 쓸 것은 미니어쳐로 챙겨가는게 좋다.
샴푸, 샤워젤, 치약, 칫솔 뿐이다.
이런 단촐한 구성에도 샤워캡이 빠지지 않는다는건 놀랍다.
여성 샤워룸은 두 개 였는데
시간이 없으니 동생이랑 나랑 둘이 하나씩 썼다.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운이 좋았다.
샤워룸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다면.. 시간이 매우 촉박했을 것이었다.
들어가서 문을 잠궜는데, 안에서 열어보니 열렸다.
문을 연 채로 밖의 문고리를 테스트 해 볼 생각은 미처 못하고
호텔 문처럼 안에서는 잠긴 상태에서도 열면 열리는 그런 구조의 문인줄 알았다.
몇 번을 해 봐도 계속 열려서..
그렇게 재빨리 옷을 벗고 샤워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리를 질렀다. (비명까진 아니고 사람 있다는 표시 정도..)
소리를 들어보니 일본 할머니 관광객 같았다.
근데 이 할매가-_- 사람이 있는걸 알면서 자꾸 몇 번들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내 속옷도 다 봤겠지-_-
일본사람이 민폐 안끼친다는거 이제 안믿을거다.
사람이 있는거 뻔히 알면서 왜 자꾸 들어와, 들어오길-_-
글고 라운지!!!
사기쳐서 천 밧으로 받았음 시설이라도 좋아야지 왜 문을 그따구로 잘 안잠기게 만들어서
민망한 상황을 만드냐-_-
샤워하다 말고 나가서 잠갔는데
문을 아주 힘껏 세게 밀고 조금 더 밀어서 잠궈야 잠겼다.
짜증게이지 200%
여튼 재빨리 샤워를 하고 나오니 동생은 이미 나와서 뭔가를 먹고 있다.
시계를 보니 진짜 시간이 얼마 없다.
이것저것 가져다 먹는데 음식이.. 또 짜증 유발
샌드위치 속은 왜 한 가운데에만 동그랗게 조금만 넣은거지?
샌드위치 속 내용이나 빵 대비 볼륨은 둘째치고라도
빵 전체에 잘 발라줘야 하는거 아닌가?
천 밧 받잖아??
하지만 따질 시간도, 골라먹을 선택지도 없다.
동생이 신기한 음료수를 들고 왔는데 체리술이란다.
얼음에 사이다랑 체리술을 섞어서 가져왔는데 꽤 맛이 좋았다.
술 선반 앞에 서서 조금씩 따라서 다 먹어봤는데 이게 제일 맛있었단다.
그래서 나도 계속 그렇게 먹었는데 (컵이 매우 작아서 여러번 왔다갔다 했다)
그 술을 따르고 있는 나를 좀 오래(한 10여 초?) 바라본 서양인 할배가 있었다.
어, 쟤가 저 술을 마실 줄 알아?
뭐 이런 생각으로 쳐다본것 같았다.
cherry라고 적혀있었는데, 이게 그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쉐리주인지는 알 길이 없다.
불란서 발음으로 쉐리라고 할 것 같긴 한데..
<Mad Men>에 보면 쉐리주가 나오던데 광고회사 이사장단 모임에 나온 할머니가 마시는것으로 보아 고급 술인거 같았다.
여튼, 비행기에서 잘 자려고 술을 많이 먹었다.
근데 잔이 너무 작아서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못했다.
약~~~간 알딸딸 해지려고 하는 순간 정도랄까?
머리가 약~간 딩~ 해지는 느낌이 드는 정도랄까?
조금 더 마셨어야 하는데..
너무 술이 취하면 비행기 찾아 타기 힘들까봐 자제를 했더니.. 나중에 후회했다.
Leo 맥주가 있길래 그것도 먹어보았는데, 맛이 소주스러워서 난 좀 별로였다.
아이스크림도 먹어보았는데, 이것도 맛이 영 별로..
요새는 우리나라 슈퍼에서도 맛보기 힘든 저렴한 바닐라 맛
여보세요, 천 밧 받잖아!!!!
여튼 간단히 배를 채우고 탑승 45분여를 남기고 라운지에서 나왔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닌 내가 탑승 게이트를 A로 잘못 보고 A게이트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동생 말이 맞음을 확인하고 되돌아 갔던 일은 비밀로 하고싶다.
동생이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비행기를 놓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F게이트였던가.. 여튼 G구역으로 갈라지는 가지에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게이트였다.
면세점을 좀 구경하던 동생 덕분에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모든 인원이 탑승을 했었고,
승무원이 빨리 탑승하라고 했던 긴급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화장실도 갔다가 탑승을 했다.
입구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두 여성 승무원 언니(라고 쓰지만 나보다 어리겠지)들이 너무 예뻐서 반할 뻔 했다.
한국말로 어서오세요를 들으니 진짜 집에 가는구나 실감도 났다.
나도 모르게 그 좁은 문을 지나면서 동생에게 귓속말로
"한국말을 들으니까 되게 안심되고 좋다"
이랬다.
주책주책
그랬더니 귀염상으로 예쁜 승무원이
"저희도 한국분들 타시니까 좋습니다^^"
이러면서 생긋 웃어주는데 진짜 반할 뻔 했다.
그 마음을 또 솔직하게 바로 동생한테 속삭였다.
"역시 한국 승무원이 제일 이쁘다. 넘 예뻐+_+"
그랬더니 또 들었는지;
"감사합니다^^"
하면서 두 명이 생긋 웃어주었다.
남자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고 떨리고 주책을 떨었는지;;
그래도 그 주책 덕분에 서비스가 좋았던것 같다.
물 달라고 몇 번 불렀는데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잘 갖다주고,
지나가다가도 나를 못보는 일이 없이 물을 잘 주셨다.
진짜 여러번 먹었는데..
그렇게 기내에 타고보니 우리 자리가 창가쪽.. 이미 복도측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늦게 타서 안에 앉으려니 미안한 마음도 드는데 그래도 좌석에 앉긴 앉아야 할 것 아닌가.
이 처자는 우리가 타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조금 싫은 티를 냈다.
급하게 타느라 가방을 올리고 급하게 앉았는데, 내 긴팔 옷이 가방안에 들어있다.
티웨이는 저가항공이라 담요를 안줘서 그건 꼭 꺼내야 해서 미안하지만 가방에서 뭣 좀 꺼내겠다고 하고 다시 일어나 옷을 꺼내 앉았다.
진짜 재빨리 꺼냈다.
근데 그 처자는 조금 더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앉아서 심심해하니 동생이 넷북으로 저장해 둔 영상을 보자고 한다.
근데 이어폰이 가방안에 있다.
이런-_-
그 처자 눈치가 보여서 그냥 영상 감상은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옆에서 들었는지 짜증섞인 목소리로
뭐 꺼내려면 지금 빨리 한 번에 다 꺼내란다.
괜찮다고, 안꺼낼거라고 대답했는데 그래도 짜증섞인 몸짓으로 잠을 청한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건가-_-?
이륙 후 힘들게 잠이 들었는데,
숙면을 빌어주신 pf13님의 따뜻한 마음도 무색하게 3시 반 쯤 깨버렸다.
역시 술을 너무 덜마셨어..
타이항공이었으면 맥주 달라고 해서 세 캔 정도 드링킹 하고 잤을텐데 저가항공이 이럴 땐 아쉽다.
기내는 건조하고, 목은 바짝바짝 마르고, 자리는 좁고,
옆자리 깡마른 처자도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계속 신경질적으로 뒤척이는데
그 처자 눈치가 보여서 나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저가항공이 그렇게 불편하고 짜증나면 큰 비행기 비지니스를 타든가-_-
나는 비행기 좌석이 좁고 불편해서 힘들었던게 아니라
그 처자 눈치 보느라 힘들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나도 짜증 부릴 줄 안다.
일출 시간이 다가오자 비행기 창문의 가리개가 여기저기서 올라간다.
일 년에 한 번 타볼까 말까 한 비행기에서의 하늘 구경인데, 우리도 당연히 가리개를 올렸다.
몇 번 비행기를 타봤지만 하늘에서 보는 하늘은 늘 멋지고 감동적이다.
구름도 예쁘고 하늘빛도 예쁘다.
그냥 구름에 그냥 하늘이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이런게 자연의 위대함 아니겠나.
스스로 그러한 것 (自然)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然자는, 개(犬)가 달(月)을 보고 멍멍멍멍(,...) 짖어서 그러할 연이라 했다.
한문도 잘 모르고, 중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지만
중국인들의 철학의 깊이도 상당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위대한 자연, 단 한 순간도 같지 않고 시시각각 변모하며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보고 있자니
티켓팅할 때의 '원래 그래요' 아저씨가 생각나면서 또 웃긴다.
자연 조차도 '원래'의 모습 없이 시시각각 변하는데 '원래'가 어딨냐
그렇게 일출을 감상하고 있자니 아침을 준단다.
저가항공에서 밥을 주다니 감사한 일이다.
근데 티웨이 언니들은 이쁜데 기업마인드는 똥통인건지-_-
태국으로 갈 때도 느꼈지만 남양 요구르트를 준다-_-
님들 뉴스도 안봐여?
나는 남양 불매자니까 다른건 다 싹싹 긁어먹고 딱 그거만 남겼다.
태국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옆에 앉았던 아저씨가 아가씨 다 먹어야지 왜 그건 안먹냐고 해서
나쁜 사람들이 만드는거라 안먹는다고 대답했다.
별스런 사람 다 보겠네 싶은 표정으로 대답하셨지만, 뭐 어때
그 아저씨가 나를 별스럽게 보든 말든, 나 스스로는 내가 별스럽지 않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인천 도착.
보통이라면 다들 여기서 여정이 끝나겠지만 우리에겐 아직 집으로 가는 길이 멀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갈거지만 굳이 공항버스를 탄 이유는
신용카드에서 귀국시 공항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서였다.
나는 분명 그렇게 설명을 듣고 계획을 잡았는데,
버스를 타니 아저씨가 카드를 단말기에 찍어버린다.
찜찜해서 나중에 카드사에 물어보니 공항 안 무슨 카운터에서 표를 받아야 한다고 하던데
분명히 설계사는 나에게 기사님에게 비행기표랑 카드를 보여주면 된다고 해서 혼란스러웠다.
나중에 설계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비행기 티켓을 그 카드로 끊어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왜 말이 달라지지?
기억이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지만
분명 15천원짜리 공항버스 기사님에게 물었을 때에는 그냥 타면 된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꿈꾸고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테다.
공항버스 안내하시는 아저씨들이 저 쪽 것이 더 빨리 가고(서울역까지) 차비도 더 싸다고 해서 (그건 만원) 5분 더 기다려서 다른 버스를 탔는데
이 기사님이 쿨하게 단말기에 카드를 찍어버린 것이다ㅠㅠ
개쏘쿨
만원짜리였기에 망정이지 ㅠㅠㅠㅠ
공항철도는 훨씬 싼데 ㅠㅠ (아, KTX안탔으니 할인이 안됐으려나)
그렇게 약 한 시간 여를 달려 서울역 도착.
철도회원 라운지에서 조금 쉬기로 하고 라운지로 들어가는데
동생이 회원카드를 가져오지 않아서 들어갈 때 직원에게 손짓을 하여 불러서 들어갔다.
거기서 회원번호 알려주고 들어갔는데
부산역의 친절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르고 예쁘기까지 한 직원의 태도와는 달리
서울역 직원은 까칠하고 불친절하게 다음에는 카드 없으면 못들어온다며 짜증을 부렸다.
한 번 일어났다 앉는게 그렇게도 짜증나니?
귀찮아서 숨은 어떻게 쉬고 사니;;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회원카드 없이도 문이 열리면 그냥 쓕쓕 잘 들어가더라.
일행이 아닌데도 들어가는 다른 사람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앉아서 조금 쉬다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로 했다.
우린 공항버스 타는데에 급급해서 바보같이 공항에서 순두부 무료식사도 하지 못하고 버스를 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출국시 탑승동으로 가는 트레인을 막차 잡아타듯 뛰어가서 타고 라운지를 이용하지 못한 것과 같은 삽질ㅠㅠ
그러게 또 예정에 없이 점심값을 써서 순두부를 사먹고
우리가 탈 기차에 탑승했다.
여행경비 아껴보려고 차에서 자면 된다며 겁도 없이 KTX표를 무궁화로 바꾼 그 기차에.
나는 거의 깨지 않고 푹 잔 반면
동생은 잘 자지 못한것 같았다.
괴롭고 긴 기차여행에 대해 동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궁뎅이가 없어질것 같다."
빨라도, 귀아프고 불편하고, 과도한 요금을 받는다고 느껴지고, 왠지 몸이 안좋아지는것 같은 KTX보다
덜컹덜컹 리듬있고 적당한 속도로 달려서 창 밖을 구경하기도 좋은 무궁화가 나는 좋은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더라 ㅋㅋ
난 동생이 "무궁화로 바꾸까?"라는 말을 듣고도 새마을로 이해하고 ㅇㅋ를 해버린 실수를 저질렀으므로 불평할 자격이 없다;
KTX를 타면 아빠가 데리러 기차역으로 나왔을텐데
우리의 도착시간을 듣자(저녁 7시 였나.. 그 쯤.. 해 진 후였어요) 아빠는 쿨하게
"그럼 택시타고 온나"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뚝 끊어 버리셨다.
아빠 딸바보 맞아?? ㅡㅜ
차 댈 데가 없으니 그 시간에 나오기 싫은건 이해가 되는데..
그래, 택시 타도 편하게 집에 올 수 있긴 한데..
우리 안보고 싶었숴??
미묘하게 서운한 통화였다.
그렇게 집에 오는 순간까지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며 여행을 마무리 했다.
<오늘의 지출내역>
날짜 | 사용내역 | 사용금액 (THB) | 비고 |
08월 16일 | 택시비 (수르야ㅡ>크루아 압손) | 50 | |
크루아 압손 455 | |||
게카레 | 370 | 크루아 압손 | |
카나무크럽 | 70 | ||
밥 | 15 | ||
편의점 49 | |||
햄치즈 크로와상 ♥ | 25 | 세븐 일레븐 ♥ | |
타이 밀크티 ♥ | 24 | ||
버스비 (민주기념탑ㅡ>짜뚜짝) *2 | 30 | ||
짜뚜짝 화장실 *2 | 4 | 유료화장실 ㅋㅋ | |
동전지갑 2묶음 | 160 | 짜뚜짝 쇼핑 | |
쿠션 카바 | 200 | ||
코끼리 파우치 *3 | 220 | ||
태국의 미소 3조각 셋트 | 350 | ||
레몬쥬스 | 45 | ||
팔찌 | 100 | ||
버스비 (짜뚜짝ㅡ>땡화생) *2 | 30 | ||
나이쏘이 | 50 | ||
계 | 1743 |
=============================================================================================================
카드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피피카드 라운지는 제가 알던대로 27달러가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 다른 여행자들이 피해입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낸 천밧을 환불받고 27달러로 결제하긴 힘들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사기쳐도 넘어갈 만큼 허술하게 생겼나봅니다.
어려보이는게 죄지 어쩌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